[명시초대석] 초가을 날, 잠 못 이루는 밤에 게시기간 : 2019-08-29 07:00부터 2031-01-01 00:00까지 등록일 : 2019-08-28 15:17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명시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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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자주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삶의 질(質)’이다. 삶의 주인공인 나를 되찾자는 맥락에서 등장하는 표현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 여유를 가지게 되면서 우리 사회가 재발견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삶의 질은 일정하게 경제력에 의해 보장되는 면이 있다. 그렇지만 물질적 풍요는 자칫 판단을 흐리게 하고 권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득의(得意)한 인생에는, 오히려 물질의 문제와 별개로 뚜렷한 자기 관점과 생활을 통어하는 특유의 방식이 함께 함을 보게 된다. 선인의 시를 통해, 생활 속에서 우리를 보다 나은 단계로 도약시킬 실마리를 찾아보기로 한다. 이 시는 조선중기 최고의 시인으로 이름 높았던 권필(權韠, 1569∼1612)이 쓴 것이다. 권필의 자는 여장(汝章), 호는 석주(石洲)이고 본관은 안동이다. 부친은 습재 권벽(權擘), 장인은 호남의 처사 해광(海狂) 송제민(宋齊民, 1549∼1601)이다. 송제민은 호방한 기질의 소유자로 과거에 뜻을 접고 독서에 몰두하며 지역의 장자(長者)들과 교유했는데, 권필이 기질이 부합한다고 하여 스스로 사위 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권필은 발해(發解)에서 장원하고 복시(覆試)에서 또 장원하였으나, 한 글자를 잘못 써서 출방된 뒤로 다시는 응시하지 않았다. 임란(壬亂) 중에는 강화에서 김천일(金千鎰)의 의병에 합류했었고, 정유재란 시기에는 장성에 머물며 강항(姜沆, 1567∼1618)을 만나기도 했다. 당대의 명사인 이안눌, 조위한, 조찬한, 임전, 허균 등과 교유하였고 1600년에는 원접사의 제술관으로 의주(義州)에 가기도 하였다. 1612년 임숙영(任叔英, 1576∼1623)이 전시(展試) 대책(對策)에서 외척의 권력 남용을 비판하다 삭과(削科)의 위기에 처하자, 궁류시(宮柳詩)를 지어 이 상황을 풍자하였다. 얼마 후 이로 인해 신문(訊問)을 받고 이때의 혹독한 형벌로 귀양길에 오르던 중 세상을 뜨게 된다. 인조반정 후에 사헌부 지평에 추증되었고, 광주 운암사(雲巖祠)에 송제민을 따라 배향되었다. 이 시는 권필의 문집 『석주집』에 「초가을 밤에 앉아 회포를 적다(初秋夜坐書懷)」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허균의 『국조시산』에는 「초가을 밤에 앉아 책을 읽으며(初秋夜坐讀書)」라는 약간 다른 제목으로 나온다. 허균은 초가을 밤 책장을 넘기며 사념(思念)에 잠긴 시인의 모습을 떠올렸던 것 같다. 허균은 권필의 시 가운데 이 작품과 같은 오언율시를 최고로 평가했으며, 중국에 사신 갈 때는 스무 편을 노자로 부탁하기도 했다. 오언율시는 내면의 정회(情懷)를 담박(淡泊)하고 자연스럽게 드러내기에 적합한데, 권필이 이러한 서정(抒情)의 국면에 탁월한 것으로 본 것 같다. 여름이 가고 가을의 문턱에 들어설 때, 우리는 문득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살갗에 느껴지는 공기의 촉감이나 한풀 꺾이는 잎의 색깔에서 세월의 변화를 체감하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곳이 익숙한 곳이 아니라면, 세월의 변화는 더 큰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지난 계절과 새로운 계절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가지게 되는 무언가 편치 않은 마음. 첫 구에서 말하는 시인의 시름[悄]은 그러한 것은 아닐까? 객지에서의 깊은 밤에 시인은 그러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생각에 잠긴다. 시인은 문득 지나간 세월을 돌아본다. 최고의 시인으로 이름 높았지만, 자신의 시대에는 더 이상 학문 이상을 실현할 희망이 보이질 않았다. 그러기에 19세 무렵 출방 이후 과거에 뜻을 접고, 산천(山川)을 오가며 오직 시주(詩酒)로 마음을 달랬다. ‘세상 길 어려움 이와 같다’란 학문에 뜻을 두던 시기부터 출사의 뜻을 접었던 시기까지의 힘듦과 고난을 압축한 표현이다. 그러한 시기에 술은 위안물이자 부정한 세상을 향한 의분(義憤)의 촉매제였고, 비판과 풍자의 시들은 바로 그 결과물이었다. 시인의 삶에는 아직 진행 중인 전란이라는 큰 풍파도 있다. 임란이 발발한 뒤에는 의병에 합류했었고, 강화와 호남을 다니며 참혹한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젊음의 파란과 전란의 기억이 또렷하게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데, 새로운 계절의 밤에는 여느 가을처럼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가을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순간 시인은 여름이 가을로 바뀌듯, 한 세월을 지나 늙음이 다가옴을 느낀다. 불현듯 발견한 ‘흰 머리칼’은 바로 젊음과 늙음을 가르는 하나의 상징이다. 어떤 것도 해 낼 것만 같던 젊은 시절의 마음은, 이제 시간 저편의 기억에만 있는 것인가? 이러한 생각을 하는 순간, 어두운 밤의 세상은 적막감으로 다가온다. ‘서회(書懷)’라는 이 시의 제목은 ‘회포를 적다’, ‘마음속의 생각을 쓰다’로 해석될 것 같다. 시 창작 유형으로 볼 때, 제재와 긴장의 전선(戰線)을 형성하기보다는 마음 안에 쌓인 것을 편안하게 적어가는 형태이다. 이러한 시들은 대개 홀로 있는 상황이나 밤의 고적한 시간을 배경으로 한다. 악기(樂器)에 비유하자면, 연주를 끝내고 악기의 몸체로부터 줄[絃]을 풀어놓는 그 순간이다. 이 시를 들여다보면, 시인은 마음 안의 정서를 그대로 드러낼 뿐, 무언가를 전망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무게로부터 점차 벗어나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러한 ‘리듬’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늦은 밤 우두커니 창밖을 보든, 목적 없는 여행에 나서든, 다소 낯선 ‘비효율’의 시간을 일상 안에 끌어들이는 것을 어떨까? 달리 말하면 이것은 가쁘게 달려온 일상의 중압감으로부터, 그리고 그것에 익숙한 호흡으로부터 스스로를 떼어놓는 일종의 연습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구축된 고독의 공간에서 우리는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다. ‘또 다른 나’는 ‘자상한 친구’도 ‘냉엄한 관찰자’도 될 수 있다. 그 대면을 통해, 우리는 누군가를 향했던 언사를 후회할 수도 있고, 어떤 순간의 절제에 안도할 수도 있고, 주저하지 않았던 용기에 스스로를 격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객관화하고 덜어내는 리듬을 살릴수록, 일상에 다시 설 우리는 더 큰 동력을 확보하고 보다 넓은 시야를 얻게 될 것이다. 몸이 스스로 신진대사를 거듭하듯, 우리의 마음에도 신진대사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비우고 채우는 마음의 리듬을 찾는 데에서 시작될 것이다. 글쓴이 김창호 원광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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