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길을 열다] 임금 홀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 게시기간 : 2019-07-22 07:00부터 2030-01-23 22:32까지 등록일 : 2019-07-19 15:38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선비, 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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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포부는 컸다. “하늘이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리려고 한다면 지금 세상에 내가 아니면 누가 있겠는가!”1)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도 거뜬하였다. “옛사람은 뜻을 얻으면 백성에게 은택을 보태고, 뜻을 얻지 못하면 제 몸을 닦아 세상에 자신을 드러냈다. 곤궁하면 홀로 자기 몸을 착하게 하고, 출세하면 천하를 모두 착하게 한다.”2) 순자는 맹자 말년에 태어났다. 임금 섬김의 자세, 출처(出處)의 원칙은 맹자에 방불하다. “신하는 도(道)를 따르지 군주를 따르지 않는다.”3) “통달하면 천하를 통일하고 곤궁하면 홀로 귀한 명성을 세운다.”4) “군주가 등용하면 조정에 자리를 잡아야 마땅하지만, 등용하지 않으면 물러나서 백성과 같이 살며 성실히 본분을 지켜서 반듯이 아랫사람을 순화시킨다.”5) 기상 또한 못지않았다. “선비가 의지를 닦으면 부귀가 얕보이고 도의가 높아지면 왕공(王公)도 가볍게 여긴다.”6) “대유(大儒)가 비록 궁벽한 뒷골목 비 새는 집에 숨어 살고 송곳 꽂을 땅이 없더라도, 왕공은 결코 그와 명성을 다툴 수 없다.”7) 혁명론은 선명하였다. “신하가 혹 임금을 시해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없다. 군자가 자초한 결과이다.”8) “(나라를) 빼앗은 후에 의롭게 되고, (폭군을) 죽인 후에 어질게 되고, 임금과 신하가 자리를 바꾼 후에 곧게 되었으니, 그 공은 천지와 짝할만하고 생민이 은택을 입었으니, 바로 탕무(湯武)가 그렇다.”9) 위민(爲民)의 관점도 투철하였다. “하늘이 백성을 낸 것은 군주를 위해서가 아니며, 하늘이 군주를 세운 것은 백성을 위해서이다.”10) 순자는 민생 안정에 관한 맹자의 뜻을 수긍하고 대책을 받아들였다. 맹자가 제나라 선왕(宣王)에게 말하였다. “농민에게는 9분의 1을 세금으로 거두고, 관문과 저자는 기찰(譏察)은 하지만 세금을 매기지 않고, 어장의 고기잡이는 금지하지 않는다.”11) 순자도 거의 같았다. “전야의 세금은 10분의 1로 하고, 관문과 저자는 기찰을 해도 세금을 매기지 않고, 산림과 어장을 때때로 개방하거나 폐쇄할 수 있지만 세금은 없다.” 그런데 맹자와 순자는 정책 논리의 근거 나아가 지향이 달랐다. 맹자는 주나라 문왕이 민심을 얻을 수 있었던 성공사례 즉 선왕(先王)을 앞세웠지만, 순자는 선왕이 시행하지 않았던 정책까지 제시하였다. “농토의 세금은 토질에 따라 차등을 두고, 공물은 도로의 원근을 헤아려 거두며, 재화와 곡물의 유통이 막히지 않도록 함으로써 사해(四海)를 일가(一家)와 같이 만들어야 한다.”12) 주나라 초기와는 차원이 다른 전국시대의 사회경제적 변화―농토가 크게 늘며 생산성에 격차가 생기고, 지방마다 특산품을 생산하며 시장경제가 발전하였던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이상의 정책구상을 순자는 당대 군주의 과업으로 제시하였으니, ‘(이렇게 하면) 백성의 사표(師表)가 되니, 바로 왕자(王者)가 행해야 하는 법도’라고 하였다. 굳이 덧붙이면 맹자가 옛 임금을 본받는다는 ‘법선왕(法先王)’에 충실하였다면, 순자는 당대 임금의 왕천하(王天下)에 방점을 찍었던 ‘법후왕(法後王)’의 편에 섰다. 실제 순자는 제자백가를 대표하는 12인을 품평하고 유학의 가치 효용을 설명하면서 맹자를 비판하였다. “대강 선왕을 본받았으되 강령을 모르고, 재주가 많고 뜻은 컸어도 견문이 장황하다.”13) “대강 선왕을 본받았으되 후대의 왕을 따라서 하나의 제도를 세울 줄 모른다.… 선왕을 들먹이며 우매한 사람을 속이고 의식(衣食)을 구한다.”14) 순자는 인성론에서 맹자와 갈렸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욕망이 있다.”15) “사람의 본성은 악이니, 선은 작위[僞]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한다.”16) 본성이 악한 사람은 욕망과 호리(好利)의 충돌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 무리[群]를 짓기 때문이다. 다툼이 없을 수 없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무리를 짓지 않을 수 없다. 무리를 짓고서 구분[分]이 없으면 다투고, 다투면 혼란하고, 혼란하면 떨어지고, 떨어지면 약해지고, 약해지면 외물(外物) 즉 자연을 이길 수 없다.”17) 따라서 다스림[治]이 필요하다. “하늘에는 때가 있으며, 땅에는 재화가 있으며, 사람에게는 다스림이 있는데 이것을 능참(能參)이라고 한다.”18) ‘능참’은 천지의 변화에 참여하는 능력이다. 하늘의 때에 따라 땅의 먹거리가 생기는데, 사람이 다스린다는 것이다. 다스림은 법제의 수립, 문명화와 통하는데, 주체는 임금[君]이었다. 순자는 임금을 ‘아랫사람을 부리면서 무리를 잘 짓는 사람[善群]’ ‘무리를 잘 이끄는 사람[能群]’이라 하였다.19) ‘능군(能群)’과 ‘선군(善群)’은 무리를 화목하게 하고 착하게 한다는 뜻으로 풀어도 좋다. 어떻게 다툼을 그치게 하였을까? “혼란을 싫어한 옛 임금이 예의(禮義)를 제정하여 구분함으로써, 사람의 욕망을 길러주고 사람의 요구를 받아주었다. 예가 생긴 이유이다. 그러므로 예란 길러줌[養]이다.”20) “사람은 어떻게 능히 무리를 이룰 수 있는가? 바로 구분[分]이다. 어떻게 능히 구분할 수 있겠는가? 바로 의(義)다. 의로서 구분하면 사람들이 화합하고, 화합하면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되면 힘이 세지고, 힘이 세지면 강성하고, 강성하면 자연을 이길 수 있다.”21) 그렇다면 예의는 어떻게 세워지는 것일까? 가운데[中]를 취하여야 하니, 그러한 길[道]은 하늘이 내려주고 땅에서 절로 솟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몫이었다. “중(中)이란 무엇인가? 바로 예의(禮義)이다. 도는 하늘의 도가 아니며, 땅의 도가 아니며, 사람이 사람인 까닭의 도이며, 군자가 행하는 도다.”22) 군자는 학식과 덕행이 뛰어난 선비이지만 이때는 임금, 군주와 같다. 순자는 사람이 욕망의 갈등을 해결하고 문명을 건설하는 요체를 이렇게 집약하였다. “천지는 생명의 시작이요, 예의는 다스림의 시작이요, 군자는 예의의 시작이다.”23) 성악설의 정치적 귀결은 군주 지존(至尊), 군주 일통(一統)이었다. “임금은 나라에서 가장 존귀하고 아버지는 집에서 가장 존귀하다. 가장 존귀한 자가 하나만 있으면 다스려지고 둘이 있으면 어지럽게 된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존귀한 두 사람이 권력을 다투고서 오래 가는 나라나 집안은 없었다.”24) 이렇듯 성악에서 출발한 순자는 정점을 군주에 찍었다. 「군도(君道)」에서 말했다. “도란 무엇인가? 임금의 도이다. 道者 何也? 曰君道.” “군주는 백성의 근본이다. 君者 民之原也” 백성의 근본, 지존의 군주가 백성을 사랑하려면 사사로운 호리(好利)를 극복하고 법치를 중시해야 한다.25) 여기에 능력 있는 신하도 필요하다. 순자가 생각하는 능신(能臣)은 세 부류였다. “하신(下臣)은 재화로서 임금을 섬기고, 중신(中臣)은 온몸으로 임금을 섬기며, 상신(上臣)은 사람으로 임금을 섬긴다.”26) ‘상신’은 재물을 모아주고 온몸으로 충성할 신하를 천거할 수 있는 대신 혹은 재상이다. 군주는 이러한 재상을 얻어야 한다. “국가를 유지하는 자는 혼자서 할 수 없다. 굳센가? 스러질 것인가? 영광인가? 수치를 당할 것인가? 재상을 잘 골라야 한다. 자신이 유능하고 재상이 유능하면 천하의 왕이 된다.”27) 군주와 신하가 다스린다는 군신공치론(君臣共治論)은 훗날 군주세습 시대 금과옥조가 되었다. 성선(性善)을 부정하고 맹자를 깎아내린 순자가 지워질 수 없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1) 『맹자』 公孫丑下 “夫天 未欲平治天下也, 如欲平治天下 當今之世 舍我其誰也!”
2) 『맹자』 盡心上 “得志 澤加於民, 不得志 修身見於世, 窮則獨善其身 達則兼善天下.” 3) 宋基采 역주, 『荀子集解』 3, 臣道 “從道不從君” 4) 『순자집해』 2, 儒效 “通則一天下 窮則獨立貴名” 5) 『순자집해』 2, 儒效 “人主用之 則勢在本朝而宜 不用 則退編百姓而慤 必爲順下矣.” 6) 『순자집해』 1, 修身 “志意修則驕富貴 道義重則輕王公” 7) 『순자집해』 2, 儒效 “彼大儒者 雖隱魚窮閻漏屋 無置錐之地 而王公不能與之爭名.” 8) 『순자집해』 3, 富國, “臣或弑其君…無它故焉 人主自取之也.” 9) 『순자집해』 3, 臣道 “奪然後義, 殺然後仁, 上下易位然後貞, 功參天地, 澤被生民, 夫是之謂權險之平. 湯武是也.” 10) 『순자집해』 6, 大略 “天之生民非爲君 天之立君以爲民” 11) 『맹자』 梁惠王下 “昔者文王之治岐也 耕者 九一…關市譏而不征, 澤梁無禁” 12) 『순자집해』 2, 王制 “田野什一 關市幾而不征 山林澤梁 以時禁發而不稅 相地而衰政 理道之遠近而致貢 通流財物粟米 無有滯留 使相歸移也 四海之內若一家…夫是之爲人師 是王者之法也” 13) 『순자집해』 2, 非十二子 “略法先王 而不知其統, 猶然而猶材劇志大, 聞見雜博.” 14) 『순자집해』 2, 儒效 “略法先王而足亂世術 繆學雜擧 不知法後王而一制度 …呼先王以欺愚者而求衣食焉.” 15) 『순자집해』 5, 禮論 “人生而有欲” 16) 『순자집해』 6, 性惡 “人之性惡, 其善者 僞也. 今人之性 生而有好利焉…生而有疾惡焉” 17) 『순자집해』 2, 王制 “人生不能無群 群而不分則爭 爭則亂 亂則離 離則弱 弱則不能勝物” 18) 『순자집해』 4, 天論 ”天有其時 地有其財 人有其治 夫是之謂能參.” 19) 『순자집해』 2, 王制 “能以使下謂之君, 君者, 善群也.” 및 3, 君道 “君者 何也? 曰能群也.” 20) 『순자집해』 5, 禮論 “先王惡其亂也. 故制禮義以分之 以養人之欲 給人之求…是禮之所起也 故禮者 養也.” 21) 『순자집해』 2, 王制 “人何以能群? 曰 分. 分何以能行? 曰 義. 故義以分則和 和則一 一則多力 多力則彊 彊則勝物 故宮室可得而居也” 22) 『순자집해』 2, 儒效 “曷謂中? 曰禮義是也. 道者 非天之道 非地之道 人之所以道也, 君子之所道也.” 23) 『순자집해』 2, 王制 “天地者 生之始也, 禮義者 治之始也 君子者 禮義之始也.” 24) 『순자집해』 4, 致士 “君者 國之隆也 父者 家之隆也 隆一而治 二而亂 自古及今 未有二隆爭重而能長久者” 25) 『순자집해』 6 大略 “重法愛民而覇 好利多詐而危” 26) 『순자집해』 6, 大略 “下臣事君以貨 中臣事君以身 上臣事君以人” 27) 『순자집해』 3, 王霸 “彼持國者 必不可以獨也 然則强固榮辱 在於取相 身能相能 如是者王.” 글쓴이 이종범 (재)한국학호남진흥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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