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유학문선] 신학을 넓혀 구학을 돕는다 게시기간 : 2019-08-01 07:00부터 2030-01-01 00:00까지 등록일 : 2019-07-31 17:06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근대유학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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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 사회는 유교 담론의 전성기였다. 유교 담론이 이 시기보다 왕성하게 피어난 적이 있었을까? 박은식은 ‘유교구신(儒敎求新)’을 말했고 이병헌은 ‘유교복원(儒敎復原)’을 말했고 임한주는 ‘유교발흥(儒敎勃興)’을 말했고 송기식은 ‘유교유신(儒敎維新)’을 말했다. 유교 담론의 배경은 시대의 변화이다. 서서히 유교의 바깥으로 나가면서 비로소 유교가 자각되기 시작했다. 바깥에서 보는 유교의 유력한 발원지는 재중 서양 선교사의 근대 중문 매체이다. 특히 『만국공보』(1868∼1883 주간지, 1889∼1907 월간지)는 한국의 한문 독자층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906년 박은식은 『대한매일신보』에 길버트 리드의 글을 실었다. 신학을 넓혀 구학을 돕는다. 이 글을 읽은 이병헌은 천하의 선비와 만났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독후감을 지었다.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번역] 나는 『만국공보(萬國公報)』에서 미국의 진사 이가백(李佳白, Gilbert Reid, 1857∼1927)이 지은 「열국정치이동고(列國政治異同攷)」1)를 읽었는데, 넓게 경험하고 정성껏 고찰하여 신학과 구학의 법도를 조화시켰음에 감탄하며 마음 씀이 공평하고 조예가 정밀함에 감복했다. 마침 『대한매일신보』 지면에서 다시 「광신학이보국학설(廣新學以輔舊學說)」2) 한 편이 번역된 것을 읽었는데 그런 뒤에야 비로소 선생이 홀로 광대한 역량과 정미한 깨달음을 갖추어 진화(進化)의 세급(世級)을 면려하고 대동(大同)의 공무(公務)를 제창하여 세계 모든 사람이 번창할 수 있도록 하였음을 알았다. 번역자는 특히 표장을 가해 동포에게 거듭 고했는데 우리 한국의 사림(士林)에게 바라는 것이 극진했다.3) 나는 참망함을 헤아리지 않고 이에 마음에서 느낀 점 네 가지를 열거해 세상의 공평한 안목이 있는 사람들이 채택하기를 바란다. (…) 하나. 유교의 문제점은 그 내력이 오래되었다. 비유하면 아름다운 금옥(金玉)이 진흙과 모래에 섞여 있는데 서양인이 한갓 모래와 돌을 보고 금옥을 심히 무욕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유자(儒者)도 필생 유교에 힘써 종사하나 한 사람도 끝내 그 진체(眞諦)를 엿보지 못한다. 이 때문에 ‘수구(守舊)’ 하는 사람은 외국을 물리치고 이단을 배척하는 허습(虛習)에 연연하여 진흙, 모래, 와석(瓦石)을 숭상하기만 하고, ‘유신(維新)’ 하는 사람은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매도하는 망상을 일으켜 아름다운 금옥을 멸시하기만 한다. 학문이 고금에 통달하고 시국에 절실히 감개하기로는 채이강(蔡爾康, 1851∼1921)처럼 현철한 분도 없는데 그가 다시 재앙의 근원을 차례로 연구해 중국의 병근의 소재를 논한 데에 이르러서는 송나라 유학자의 해악에 중독되었다고만 말했을 뿐이니 양이(攘夷)와 복수(復讎)가 지금에는 이를 데가 없지만, 송나라 시대에는 그러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4) 그러나 그것이 세상의 선비에게는 침폄(針砭)이 되니 약석(藥石)이라 해도 가하겠고 재앙의 원류를 추구하면 여기에서 문제를 얻게 된다. 대개 중국의 인문은 복희(伏羲)ㆍ헌원(軒轅)에서 시작하여 요순(堯舜)에서 왕성했고 삼대에서 구비되었다. 진(秦)나라가 백성을 어리석게 만드니 군자가 대도를 듣지 못했고, 한(漢)나라가 백가를 축출하니 소인이 곡예를 익히지 못했다. 이로부터 허위와 부탄(浮誕)의 술법이 사이에 끼고 틈을 파고들어 세대가 내려올수록 풍속이 부박해졌다. 현철한 송나라 군자들이 힘껏 진리를 구해 앞선 성현의 계천입극(繼天立極)5)의 종지를 체득했으나 역량이 공맹에 미치지 못하고 보무(步武)가 구역을 넘지 못해 중국 유학의 재앙을 구원하여 만세의 터전으로 만들지 못했다. 공은 미주(美洲) 문명의 나라에서 태어나 앞선 성현의 서로 전한 학문을 고찰해, 이것이 진흙, 모래, 와석과 섞여서는 아니 됨을 능히 알고 아름다운 금옥으로 쓸만한 것을 홀로 골라내 차례로 표장하니 말이 꼭 들어맞았다. 그 밝음에 미칠 수 없고 그 앎을 헤아릴 수 없으니 공과 같은 사람은 중용(中庸)을 택했다고 이를 만하겠다! [원문] 僕於萬國公報中, 得見大美國進士李佳白氏列國政治異同攷, 而歎其經歷之廣, 攷勘之精, 調和新舊學界之法, 而服其用意之公, 造理之密矣. 迺者於大韓報紙上, 又得所譯廣新學以輔舊學說一篇而讀之, 夫然後始知先生獨具, 廣大之量, 精微之得, 而可以勵進化之世級, 倡大同之公務, 爲五洲圓顱方趾者之倡審矣. 譯者之特加表章, 輪告同胞, 其望我韓土之士林者摯矣. 僕不揆僭妄, 玆列其感發於中者四端, 以望世之公眼者採擇焉. (…) 一. 斯道之受病, 其來遠矣. 譬如良金美玉, 混於泥沙, 雜於瓦石, 不惟西人之徒見沙石而厚誣 金玉, 乃華儒之畢生用力從事於斯道斯敎者, 終未有一人能覈其眞諦者. 是以守舊者甘戀攘外闢異之虛習, 而惟泥沙瓦石之是崇是獎, 維新者徑起訶佛罵祖之妄想, 而惟良金美玉之是汙是蔑, 其所以學通今古慨切時局者, 無如蔡子爾康氏之賢焉, 而又能歷究禍源, 至所以論中國病根之所在, 則不過曰中宋儒之蠱毒耳, 殊不知攘夷復讎在今則無謂而在宋則不得不爾也. 然其針砭世之士夫, 則可當藥石矣, 推究禍之源流, 則爰得問題矣. 盖中土人文, 昉於羲軒, 盛於唐虞, 備於三代, 秦愚黔首而君子不得聞大道, 漢黜百家而小人不得習曲藝. 自玆以還, 虛僞浮誕之術, 投間抵隙, 世愈降而俗愈薄, 雖以趙宋諸君子之賢, 力求眞理, 克軆先聖賢繼天立極之旨, 而力量未逮於洙泗, 步武不越乎區宇, 將無以救中儒之禍, 而爲萬世地矣. 公生於美洲文明之邦, 考夫先聖賢相傳之學, 能知泥沙瓦石之不可混, 而獨採良金美玉之爲可用, 歷敍表章, 語合稱停, 其明不可及而其知不可測也已, 如公者可謂擇乎中庸者歟! [출전] 이병헌(李炳憲), 『이병헌전집(李炳憲全集)』, 「미국 진사 이가백 씨의 신구학설의 뒤에 제하다[題美國進士李佳伯氏新舊學說後]」 [해설] 기독교 신약성서 요한복음에는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이 중국에서 발행된 한문 월간지 『만국공보』(1903.12.)의 「석자유(釋自由)」라는 글에는 ‘이필식진리(爾必識眞理), 진리필석방이(眞理必釋放爾)’라고 씌어 있다. ‘자유’ 대신 쓰인 ‘석방’이란 말이 이채롭다. 이 글은 인간이 자유를 얻어야 세계가 진보하고 진정한 자유는 기독교 성서의 가르침에 있다고 설명한다. 사이에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그림이 끼워져 있다. 그림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자유는 미국에 있다! 석 달 전의 『만국공보』(1903.9.)에서는 마르틴 루터를 만날 수 있다. 「루터가 보름스 제국의회에서 진리를 굳게 지킨 일을 대략 기록함」이라는 기사가 있다. 기사의 지은이는 『만국공보』 주필 알렌. 그는 서양 근대 문명이 종교개혁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루터가 종교를 개혁한 일을 대략 기록함[路得改敎紀略]」을 지었는데 다시 인도에서 발간되는 영문 신문에서 관련 기사를 발견하고 이를 한문으로 번역해 편집한 것이다. 중간에 루터가 보름스 제국의회에 출석한 장면이 삽화로 들어가 있다. 서양사에서 극적인 종교개혁의 한 장면이 이 한 장에 재현된다. 『만국공보』에 기독교 성서와 기독교 역사 이야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헐버트 스펜서와 더불어 영국 사회진화론의 유명한 이론가 벤저민 키드의 책 『Social Evolution』(1894)이 출판되자 이 책은 ‘대동학(大同學)’이라는 새로운 제목을 얻어 『만국공보』에 연재되었다. 『만국공보』 1899년 4월호 기사는 대동학 제3장 ‘상쟁상진지리(相爭相進之理)’인데, ‘피차의 상쟁(相爭)’이 있어야 ‘고금의 상진(相進)’이 있다는, 경쟁을 통한 역사의 진보론이다. 같은 호에는 「섬라중흥기(暹羅中興記)」라는 기사가 있다. 타이 국왕이 내정 개혁에 영국인을 등용해 국가 중흥에 희망이 있으니 중국이 속히 타이를 본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첨부된 『타임즈Times』 기사는 일본ㆍ이집트ㆍ한국ㆍ타이의 정치 개혁을 비교한 글인데 한국은 네 나라 중에서 사사건건 구법을 붙들고 있는 열악한 나라였다. 『만국공보』 기사는 한국 사회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고 종종 한국 언론에 전재되었다. 키드의 진보론과 타이 중흥론은 바로 그 해에 곧바로 『독립신문』에 소개되었는데, 이 신문의 논설 「진보론」과 「중흥론」은 각각의 한글 번역이었다. 『만국공보』는 한국의 유림 사회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한국 최초로 고대 그리스 철학을 비평한 것으로 유명한 영남 유학자 이인재(李寅梓)는 「구경연의(九經衍義)」라는 글에서 대한제국의 분발자강의 모델로 앞서 말한 타이의 중흥을 거론했다. 역시 영남 유학자 이병헌은 『만국공보』에서 미국 선교사 길버트 리드의 글 「열국정치이동고(列國政治異同攷)」를 읽고 신학과 구학에 대한 공정한 태도에 감탄했다. 마침 박은식이 주필로 있던 『대한매일신보』는 1906년 한국 사회의 흥학(興學)을 위해 『만국공보』에 실린 길버트 리드의 다른 글 「중국의광신학이보구학설(中國宜廣新學以輔舊學說)」을 연재하였다. 신학을 넓혀 구학을 돕는다. 길버트 리드의 이 글은 요지가 간명했다. 중국은 진시황과 한무제 때문에 고래의 ‘실학’이 사라졌는데 태서(泰西)는 중국에서 실종된 ‘실학’, 곧 격치기예학이 발전했으니 이를 만국 공통의 보편 학문으로 수용하자는 것. 서학이 곧 ‘실학’이라는 것이다. 이 글을 읽은 이병헌도 이렇게 말했다. “1906년을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나는 살아서 자유를 누릴 수 없고 죽어도 돌아갈 곳이 없구나. 지금의 시의(時宜)는 서방의 실업이다. 동지의 선비와 더불어 천하의 책을 널리 고찰해 진정한 이치를 강구하던 차에 『대한매일신보』 기자 덕분에 천하 선비의 지론을 보게 되었다. 동포 군자들에게 나의 충정을 알리고 싶다. 신학과 구학은 모순 관계가 아니다. 이 글 지은이는 대중 강연에서 공자의 말을 인용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면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신학과 구학을 하나로 합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뜻을 명심해야 한다.” 신학을 넓혀 구학을 돕는다. 신학과 구학을 합일한다. 1900년대 한국 지성계의 화두는 단연 신학과 구학이었다. 길버트 리드의 『만국공보』와 박은식의 『대한매일신보』는 이 시기 신학 담론의 주요한 매체였다. 다만 길버트 리드가 박은식과 이병헌에게 친근감이 들었던 이유를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는 신학을 주장했지만, 구학을 존중했다. “기독교 성서의 상제는 사서오경의 상제와 같다.” 이런 생각으로 그는 산동성에서 선교할 적에 공자의 묘를 참배하고 공자의 위대함을 높이 평가했다. 『만국공법』의 번역으로 유명한 미국 선교사 마틴도 비슷한 생각으로 공자에 예수를 더한다는 이론을 제기했다. 영국 선교사 윌리암슨은 유학의 오륜(五倫)에 상제(上帝)와 원인(遠人)을 더해 칠륜(七倫)을 창안했다. 세기 말 세기 초 한국 사회는 『만국공보』에서 실험되는 온갖 새로운 학설이 직수입되어 일어나는 지적인 들끓음의 시기였다. 들끓음의 시기에 방향 감각을 살려주는 푯대가 필요했다. ‘신학을 넓혀 구학을 돕는다’는 그러한 푯대의 하나였다. 1) 열국정치이동고(列國政治異同攷) : 길버트 리드의 작품으로 『萬國公報』 제169책부터 제189책까지 21개월의 장기간 연재되었다. 이것은 본디 청말 辛丑新政을 배경으로 그가 상해에서 개최한 강좌의 강연이었다. 수많은 청중이 이 강연에 참석했고 『申報』에서 ‘美儒講學’, ‘西儒演說’ 등의 제목으로 자주 보도할 정도로 사회적인 이목을 끌었다.
2) 광신학이보국학설(廣新學以輔舊學說) : 1906년 2월 10일부터 동년 3월 13일까지 『大韓每日申報』에 7회 연재된 작품이다. 본디 길버트 리드의 작품으로 원명은 ‘中國宜廣新學以輔舊學說’이고 『萬國公報』 제102책(1897년)에 게재되었다. 『대한매일신보』 연재물은 이를 국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3) 번역자는 … 극진했다 : 번역자는 『대한매일신보』 주필 박은식으로 추정되는데 그는 연재를 시작하면서 길버트 리드의 이 작품이 구학과 신학의 원류를 해박하게 논했기에 이를 역술해 ‘大韓 士林’에게 열람을 제공한다고 밝혔다.(『大韓每日申報』 1906년 2월 10일, 잡보 「廣新學以輔舊學說」) 4) 채이강 … 것이다 : 이병헌이 말하는 蔡爾康의 작품은 「宋儒貽禍中國論」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채이강의 이 글은 알렌이 지은 『中東戰紀本末』에 실려 한국 사회에 널리 알려졌고 유림 사회에서 거센 비판이 제기되었다. 田愚는 송나라 유학자가 공맹 유학의 고훈을 부회하여 공맹 유학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고 지금의 풍속이 송나라 유학자의 해악에 중독되었다는 이 글의 입론을 비판하였다. 또, ‘복수’라는 말은 공자가 쓰지 않았고 송나라 유학자에게 나오는 것으로 공맹 유학과 무관하다는 이 글의 입론에 대해서도 비판하였다. 5) 계천입극(繼天立極) : 朱熹가 지은 「中庸章句序」에 ‘상고부터 성인이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법칙을 세워 도통의 전함에 유래가 있다.(自上古聖神繼天立極. 而道統之傳, 有自來矣.)’는 구절이 있다. [참고문헌] 田愚, 『艮齋文集前編』 권12 「㤓言」 『독립신문』 1899년 8월 5일 「진보론」 『독립신문』 1899년 8월 8일 「중흥론」 『大韓每日申報』 1906년 2월 10일, 잡보 「廣新學以輔舊學說」 李天綱 編校, 『萬國公報文選』, 生活ㆍ讀書ㆍ新知三聯書店, 1998 楊代春, 『《萬國公報》與晩淸中西文化交流』, 湖南人民出版社, 2002 王 林, 『西學與變法 - 《萬國公報》 硏究』, 齊魯書社, 2004 鄭連根, 『那些活躍在近代中國的西洋傳敎士』, 新銳文創, 2011 차태근, 「19세기말 중국의 서학과 이데올로기」 『중국현대문학』 33, 2005 노재식, 「19세기 말 내화 선교사들의 유교에 대한 인식」 『진단학보』 116, 2012 노관범, 「대한제국기 실학 개념의 역사적 이해」 『한국실학연구』 25, 2013 박형신, 「영 J. 알렌의 「만국공보」에 관한 연구」 『한국기독교와 역사』 49, 2018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특별전시회 도록, 『규장각, 세계의 지식을 품다』, 2015 글쓴이 노관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부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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