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원 개원 4년…고문헌 자료 4만여점 수집, 보존·정리·출판 진행
‘호남학 TV’ 개설,‘논어’ ‘맹자’ 강좌, 콘텐츠 VR 구현 등 정착화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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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득염 한국학 호남진흥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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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국학호남진흥원은 훼손과 멸실(滅失) 위기에 처해 있는 호남지역 한국학 자료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수집, 보존, 연구를 위해 설립됐다. 광주시와 전남도가 지난 2017년 9월 공동 설립해 ‘전라도 정명(定名) 천년’을 맞은 이듬해 4월 문을 열었다. 제 2대 천득염(71) 원장으로부터 개원 4주년을 맞은 호남진흥원의 운영 포부를 들어본다.
“민간 기록문화유산은 썩고 불타고 유실되기 쉽습니다. 지역에 있는 기록문화 유산을 모으고 정리·보존 처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하는 것이 우리한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책무입니다. 민간 기록문화유산의 허브(Hub)가 되겠습니다.”
지난해 1월부터 (재)한국학호남진흥원을 이끌고 있는 천득염 원장은 대중들에게 호남학을 친근하게 만들고, 호남 문화자산을 콘텐츠로 개발하는 등 ‘지역민과 함께 하는 한국학 진흥’이라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학호남진흥원은 광주시 광산구 소촌동 광주시 공무원 연수원 3~4층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직원 수는 박사급 연구원 10명과 행정직 등 총 18명. 개원 이후 현재까지 고문헌과 자료 등 4만 여점을 수집했다. 또한 노사(蘆沙) 기정진의 ‘답문류편(答問類編)’(15권 6책)를 비롯해 광주·전남 각 문중과 개인, 서원, 향교 등지에서 기탁 받았거나 수집해온 고문헌과 자료를 ‘호남선현문집 국역총서’와 ‘호남한국학 자료총서’로 펴내는 등 수집과 보존처리, 번역, 출판 작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천 원장은 “앞으로 연구 인력을 늘리고 예산 증액, 신청사와 수장고(收藏庫) 신축 등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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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년(1952~2018년)동안 광주 농촌생활사를 생생히 기록한 ‘고 김봉호 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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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국학호남진흥원이 개원한지 만 4년이 됐습니다. 호남진흥원은 호남학 연구의 산실로서 어떤 업무를 수행하고 있나요.
“기록문화유산은 개인 문집(文集), 선현들이 썼던 편지·일기, 교지(敎旨), 향약(鄕約) 등 다양합니다. 이런 고문헌, 민간 기록문화유산을 수집하고 정리합니다. 때로는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배접(褙接·종이 따위를 여러 겹 포개어 붙임)하고 깨끗이 씻어낸달지 일종의 ‘보존 처리’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내용이 어떤 것인가를 쉽게 풀이하는 ‘해제’(解題), 그 다음에 내용 전체를 번역합니다. 귀한 고문헌은 한 장 한 장 사진을 찍어 ‘영인’(影印)해서 출간을 합니다. 또 하나는 읽기 쉽도록 글자 옆에 동그라미를 치는 ‘표점’(標點) 처리를 합니다.
-그동안 고문헌을 얼마나 수집하고 출판했나요.
“개원이후 지금까지 4만여 점의 고문헌과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정리해서 많은 영인본과 번역본을 출간했습니다. 지난해 3월과 12월에 ‘판결문으로 본 광주·전남 3·1운동’과 ‘판결문으로 본 광주·전남 학생운동’(번역 박해현 초당대 교수)을, 지난 3월에 ‘광주향약’을 발간했습니다. 또한 광주 학생독립운동 기념사업회의 제보를 받고 곡성 함안조씨 조원규 후손가에서 매천 황현 선생의 간찰(簡札)과 광주 학생독립운동 주역인 조용표의 일기자료 등을 기탁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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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학의 미래를 탐색한다’를 주제로 전남대에서 열린 호남학 토론 및 정책 간담회. (2021년 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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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취임 이후 대중에게 다가가는 인문학 강좌 개설과 재미있는 호남학 관련 콘텐츠 개발에도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한국학, 호남학은 일반 대중과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이 한정돼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학·호남학을) 재미있게 하려고 하는 노력들을 요사이 하는 것이죠. 재미있게 한다는 얘기는 그 안에 있는 내용들을 소재로 해서 콘텐츠로 만든달지, 이걸 현대적 입장에서 다른 장르가 있는가를 찾아보는 거예요. 심지어 인공지능(AI)을 이용해서 가상현실(VR)로 구현하는 것, 거기에서 콘텐츠를 찾아내서 소설이나 연극, 방송의 주제로 활용한달지 아주 다양해요. 호남진흥원은 설립 5년째로 가고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은 이제 막 시작한 일이고, 저는 그 시작 위에 뭔가 좀 쌓아가고, 정착화시키는 일들을 하고 있죠. 지역사회에서 한국학호남진흥원이 뭘 하는 곳인지 사실 모르죠. 그래서 올해부터는 시·도민, 또 대중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와 올해, 대학생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문헌 국역 강좌 및 인문학 강좌를 여셨는데.
“차세대 국역(國譯) 전문가 양성을 위해 지난해 ‘논어 집주(論語集註)’(총 24강) 강좌를 했고, 올해 조선대에서 ‘논어’·‘맹자’(총 60강) 강좌를 하고 있습니다. 한문학에 관심 있는 분들이 이런 과정을 거치면 나중에는 번역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호남학 연구 활성화를 위해 시민단체와 문화원 등 10곳에서 마련한 ‘열린 강좌’를 후원하고, 호남학 관련 저서를 출판할 때 비용을 지원합니다.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려고 노력하죠.”
-전반적인 호남학 관련 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장 큰 애로는 무엇인가요.
“일단은 대중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원장을 맡고나서 ‘한국학의 눈높이 낮추기’, ‘한국학의 외연(外延) 확장’, 그리고 젊은이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유튜브 채널 ‘호남학 TV’ 개설 등에 힘썼습니다. 이제 차근차근 키워나가는 거예요. 두 번째는 ‘한국학 중앙연구원’(경기도 성남시) ‘한국 국학진흥원’(경북 안동시)과 비교하면 청사와 예산, 연구원, 수장고(收藏庫) 등 여러 가지가 필요합니다. 안동은 우리보다 20년을 앞서는데 예산은 우리보다 12배 많고, 책은 우리보다 15배 많죠. 우리가 지금 4만 책 정도 되는데 ‘국학진흥원’은 60만권 넘은 지가 몇 년 됐습니다. 우리는 엄청 큰 수장고가 반드시 있어야 돼요. 원천자료가 많아야 합니다. 우리도 최소한 50만권 이상을 모아가야 됩니다. 연구인력 늘리는 것, 예산 증액 받는 것, 신청사와 수장고를 빨리 짓는 것… 모두 함께 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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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고흥류씨 문중을 찾아 자료조사중인 연구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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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득염 원장은 불탑(佛塔)과 소쇄원(瀟灑園)·전통 건축을 필생의 연구주제로 다뤄온 건축사가(建築史家)이다. 지금 맡고 있는 한국학·호남학 분야 역시 그러한 학문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나아가 천 원장은 한국학호남진흥원의 외연(外延) 확대를 구상한다. 수집한 고문헌 연구 외에도 마한(馬韓)과 의병, 호남 인물, 인공지능(AI)과 접목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 개발, ‘재미있는 도시’(Fun City) 아이템 개발 등 기초적인 자료를 찾아내서 광주시와 전남도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시범적으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고문헌 번역작업도 시도할 계획이다. 올해 금석문(金石文)과 일기 자료, 누정(樓亭)·원림(園林), 과거시험 등을 신규 과제로 다루고 있다. 특히 고봉(高峯) 기대승(1527~1572) 선생 서세(逝世) 450주년을 맞아 오는 11월 22일 광산구청과 함께 월봉서원에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개최할 계획이다.
한국학호남진흥원 연구의 첫 걸음은 수집이다. 한국학호남진흥원에 자료를 기증 또는 기탁(5년)하려면 기증·기탁 문의→현지조사 및 보존상태 확인→기증·기탁 협의 및 신청서 접수→ 자료수집 및 수장고 이관→ 기증·기탁 심의→ 기증·기탁 협약체결 →기증·기탁식 개최 등 절차를 밟게 된다. 기증·기탁된 자료는 국비를 투입해서 3~5년여에 걸쳐 심층 연구를 통해 번역되고, 영인본·자료집으로 발간된다. 또한 항온·항습 시설을 갖춘 수장고에 보존되며, ‘호남한국학종합 DB’에 올려져 연구 자료로 활용된다. 문의 062-603-9626~27.
/송기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