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보] 한 줄 기록이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다면-송기동 예향부장·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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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7월 7일 일요일 비(雨). 작야(昨夜·어젯밤)부터 내리는 비는 종일 내리고만 있었다. 어재(어제) 그재(그제) 초벌판 하부(下部)를 시비(施肥·거름주기)하였든 분(分)도 아마 상당히 유실되지 않하였을까(안하였을까) 생각킨다. 오날(오늘)도 머구쟁이들 논매기로 하였는대 강우(降雨)로 할 수 없어 중지하였다.”
“1960년 9월 5일 월요일 흐림(陰). 백중날로서 OO와 OO는 휴(休). 나는 부친과 같이 작추(雀追·참새 쫓기) 및 피 뽑기 하였다. … 신미(新米·찐쌀) 근당(斤當) 200환 한다는 것이다. 금년 시세로 별 것 없을 성 싶다.”
‘호남학 산실’ 한국학호남진흥원
광주시 광산구 하남동에 살던 고(故) 김봉호 어르신은 1952년 10월 24일부터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인 2018년 10월 23일까지 무려 66년 동안 일기를 썼다. 일기에는 광주 근교에서 평생 농사를 지었던 농부의 시각에서 바라본 시대상과 참새 쫓기, 쌀값 변동 등 농사와 관련된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일기는 문장에 한자가 많이 사용되고 손 글씨로 쓰인 까닭에 한눈에 읽기 쉽지 않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광주 농촌 생활사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범한 촌부(村夫)가 쓴 일기의 가치는 한결 빛난다. 유족들은 지난해 11월 (재)한국학호남진흥원에 83권의 일기 자료를 기탁했다.
자칫 망실(亡失)될 수 있는 광주·전남 지역 민간 기록문화 유산이 새 생명을 얻고 있다. 광주시와 전남도가 지난 2017년 9월 공동 설립한 (재)한국학호남진흥원(이하 호남진흥원)이 현재까지 수집한 고문헌과 자료는 4만여 점. 개인 문집을 비롯해 간찰(簡札), 교지(敎旨), 일기(日記), 향약(鄕約) 등 다양하다.
최근 취재를 위해 광주시 광산구 소촌동 광주시 공무원연수원 건물 3·4층에 자리한 호남진흥원을 찾았다. 3층 수장고(收藏庫)에 들어서자 광주·전남 각 문중과 개인, 서원, 향교 등지에서 기탁받았거나 수집한 수많은 고문헌과 자료들이 내용별로 분류돼 서가에 차곡차곡 보관돼 있었다. 누렇게 변색한 고서들마다 뭔가 ‘자기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 보였다.
호남진흥원은 수집·발굴한 고문헌과 자료를 정리하고 보존 처리하는 한편 한글 번역 작업과 출간(出刊), 해제(解題), 영인(影印), 표점(標點) 작업 등을 지속적으로 펼쳐 오고 있다. ‘김봉호 일기’와 광주 학생독립운동 주역인 ‘조용표 일기’ 등 육필(肉筆) 일기류 또한 주요한 역사 자료이다. 호남진흥원은 20세기 초에 쓰여진 ‘가정 일기’(춘강 고정주)’와 ‘채희동 일기’(고암 채희동)를 새로 발굴했다. 같은 장흥 고씨 문중이었지만 구한말 의병을 일으켜 총칼로 일제에 맞선 녹천(鹿泉) 고광순(1848~1907) 의병장과 달리 영학숙(英學塾)을 세우는 등 인재 양성을 위한 신교육에 헌신했던 춘강(春崗·1863~1933)은 일기에 어떠한 심경을 토로했을까?
그동안 사화(士禍)와 전쟁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등 시대적 상황 속에서 소중한 고문헌들이 수없이 사라졌다. 요즘은 화재와 습기, 도난으로 인해 빠르게 훼손되거나 망실되고 있다. 5년간 맡기는 기탁은 선대의 손때가 묻은 고서를 안전하게 보존 처리하면서 그 안에 실린 내용을 세상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집안이나 문중에 대대로 전해 오는 케케묵은 고서(古書) 속 한 줄 기록이 새로운 역사를 쓰게 할 수 있다. 평범한 촌부 또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은 선비들이 남긴 문집과 일기, 시문집 등이 많이 발굴돼 국역(國譯)을 거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수장고·인력 확충 등 투자 필요
설립 5년이 돼 가는 (재)한국학호남진흥원은 호남학 연구의 산실(産室)이자 민간 기록문화유산의 허브(Hub)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연구 환경은 열악하다. 아직 새 청사를 갖추지 못한 채 광주시 공무원연수원 건물 일부를 사용하고 있다. 수장고도 좁아 조만간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방대한 수집 자료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전문 인력 확충도 필요하다. 그러려면 광주시와 전남도의 과감한 지원이 뒤따라야만 한다. 27년 전인 지난 1995년에 세워진 경북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과 비교하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호남진흥원에 비해 예산은 12배, 수장고 책은 15배가 많다고 한다. 호남진흥원은 장기적으로 50만 권 이상의 고문헌과 자료를 수집할 계획이다.
광주·전남을 중심에 둔 호남학 연구는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첫 걸음은 묻혀 있는 원천 자료를 확보하는 데서 시작한다. 조상들의 손때가 묻은 고문헌과 자료를 씨줄 날줄로 삼아 새로운 문화 콘텐츠가 창출되길 기대한다. 나아가 소설과 드라마, 영화, 노래, 게임 등 여러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창작의 원천이 됐으면 좋겠다. 바야흐로 ‘호남학’이라는 새로운 꽃이 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