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남일보]우리 고장 정신문화 르네상스의 요람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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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우리 고장 정신문화 르네상스의 요람을 꿈꾸며
이종범 한국학호남진흥원장
프랑스혁명이 계몽주의 백과사전'의 활동에 힘입었듯이, 사회변화 역사발전에 있어서 학술의 역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지대하다.
비근한 예로도 20세기 '팍스 아메리카나'는 유럽 지성의 거대한 이동에 따른 사상 융합, 과학 발전의 힘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며, 작금의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중국몽(中國)' 또한 유교 불교도교 등의 사상전통 나아가 중국사회주의를 집대성하는 학술사업과 궤를 같이하고 있는데, 청대 고증학 운동의 산물인 사고전서(四庫全書)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우리 겨레도 다르지 않았다. 흔히 민족문화의 황금기라고 하는 세종 치세는 우리 고유의 풍토와 민속, 하늘과 땅, 소리와 말이 중국과 다르다는 자각을 바탕으로 당대일류 인재들이 집현전이란 학술기관을 무대로 분투한 때문에 가능했다. 그들의 시선은 '지금 여기에 꽂혔고, 내일의 여민동락(與民同樂) 을 향했었다.
어느 시대 어떠한 나라도 자기 전통을 무시하고 외부의 시선 개념에 의존해서는 주체적 성찰이 가능하지 않을 뿐아니라 내부의 동력을 이끌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광주시와 전남도가 공동 출연해 지난 2018년 4월 개원한 (재) 한국학호남진흥원 또한 조례와 정관에 의해 부여받은 기본과업 즉 기초자료 집성과 고전문헌 국역 편찬을 차질 없이 수행하는 한편 우리 고장의 역사전통 복원과 공동체 가치의 구현이라는 시대담론에 충실하고자 한다. 시민과 함께 하는 생활한국학, 내일의 문화주체를 위한 청년한국학, 겨레와 고장의 변화 발전을 위한 미래한국학의 기차를 내세우며 '한국학 전문강좌', '고전국역 전문과정 (고문서 문집독해)', '호남한국학 혁신인재 지원', '호남한국학 저술 국역 출판지원', '호남한국학 활성화를 위한 논문 발표 및 강좌 지원' 등의 사업에 힘들이는 까닭이다.
아울러 우리 고장 대학 관련 연구소와 학회, 관계 기업과 협력해 '광주역사문화인물선양’, ‘마한역사문헌조사집성', 'Blue Tourism 문화자원구축' 등의 광주시와 전남도의 정책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학호남진흥원은 올해로 출범 3년째를 지나고 있다. 호남한국학 진흥 기본사업인 멸실 위기의 고문서와 고문헌을 발굴하고 수집·정리해 이를 국역 보급할 수 능력 있는 연구자를 초빙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학술행정의 선순환 모델을 구축하는 정초 작업에 각별하게 노력했다. 이를 통해 적지 않는 사업성과를 도출하면서 문화체육관광부의 국고보조금 또한 수직 상승해 증액했다. 호남한국학이 시민권을 획득한 것이다. 하나의 소망을 덧붙이고 싶다. 우리 겨레의 사상문화 생활지혜가 구학(舊學) 구습(舊習)으로 펌하되고 부정되었던 것은 자주적 근대국가에 실패하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였음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우리 겨레는 '신(新) - 구(舊)', '선진 후진' 프레임에 시달리고, 변방 · 소국 트라우마'라는 문화심리적 질곡을 겪었다. 하지만 지금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 개방과 투명을 통한 시민 참여로 코로나 방역 모범국가가 됐다. 한때 남과 북이 무서운 전쟁과 단절을 겪고 아직도 갈등하지만 어느 누구도 우리 민족끼리 화해·협력 공존 · 평화번영의 공동 목표를부정하지 않는다.
식민과 전쟁, 분단과 독재의 어둠을 떨쳐내는 빛은 어디에서 왔던 것일까? 교과서에서 배운 구미 민주주의에 서 받았던 영감도 있었지만, 회한과 좌절을 이겨낸 우리 가까운 선조의 상부상조 공동체 가치의 힘이 훨씬 지대하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이러한 가치가 스며있는 고문서 · 고문헌을 빛이 들지 않는 시렁 위에 숨겨두어야만 할 것 인가?
이러한 고문서 · 고문헌에 빛을 비추고 항내를 피어오르게 하는 한국학호남진흥원이 되고 싶다. 지금 본원에서 '선비, 길을 열다', '명시초대석', '풍경의 기억', '문화재 창 (窓)', '미지의 초상', '불가별전'과 같은 표제로 일반에게 메일링서비스 되는 '호남학산책'에는 이러한 빛과 향내가 가득하다.
끝으로 무서운 페스트 시대 수도원의 옛 문헌 찾기 읽기가 인간의 발견 르네상스의 자양분이 됐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팬데믹 시대 호남진흥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즐거운 상상으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