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보] [천득염 한국학호남진흥원장] 호남학과 인공지능(AI)
오랫동안 대학에 봉직하다 몇 달 전 호남 지역의 한국학 진흥을 위한 ‘한국학호남진흥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간 지역학을 공부하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돼 개인적으로 참으로 기쁘다. 진흥원에서 하는 일은 한국학 분야의 다양한 기록 문화유산을 수집·정리하고, 보존하며 번역 출간함과 동시에 정보 자료화하는 것이 과업이다. 고문헌 자료를 중심으로 개인의 문집이나 편지·일기·교지 등을 주요한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우리의 중요한 기록 문화자산이지만 전통적인 규범을 중심으로 한문으로 쓰여진 문헌이다 보니 일반인들에게는 재미없고 현대의 정보통신 매체와의 접합이 어려워 대중성이 떨어진다. 특히 경상 지역에는 이미 20여 년 전에 ‘한국국학진흥원’이라는 유사한 기관이 설립되어 수많은 자료를 선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력이나 예산, 시설이 부러울 정도로 매우 우수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호남 지역을 아우르는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까. 우선 지역의 자긍심과 정체성에 어울리는 장르를 찾아내고 이를 중점적으로 꾸준히 천착하는 것이다. 소위 고문헌 분야에서 호남학의 외연을 넓히고, 눈높이를 낮추어 일상 속에서 대중과 함께 하는 일이 시급하다. 한반도의 서남부 지역인 호남에 어떠한 명제들이 있을까? 강과 농경, 섬과 해양, 남도인의 심성, 마한과 백제, 왕인과 장보고, 임진왜란과 의병, 민속, 실학, 시서화(詩書畵), 미향(味鄕), 구산선문(九山禪門), 금석문, 소리, 춤, 동학농민항쟁과 광주학생운동, 근대유산, 전통문화 콘텐츠 구축 등 헤아릴 수없이 많다. 이런 명제는 충분히 지역을 상징하는 것들로 무어라 해도 호남학 그 자체이다.
이렇게 많고 많은 일들을 어떻게 해낼까? 구성원들의 역량만으로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는 만큼 새로운 현대적 수단인 인공지능(AI)을 통하여 수행하는 방법에 도전해 볼 만하다. 마침 광주가 AI도시를 지향하고 있고 세계적인 수준의 시설도 갖추었다. AI는 주로 특화된 형태로 개발되어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활용된다.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나 의료 분야에 사용되는 왓슨(Watson)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다고 꼭 현대적인 첨단 분야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학과 호남학 진흥을 위하여 또 다른 현대적 수단인 AI를 적용해 볼 만 하다. 견강부회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미 많은 전통 학문 분야에서도 이런 현대적인 방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인공지능이란 사고나 학습 등 인간이 가진 지적 능력을 컴퓨터를 통해 구현하는 기술이다. 현대적인 디지털 컴퓨터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해내는 것이다. 우선 고문헌의 어려운 한문을 번역하는 일을 해낼 수 있다. 소위 요즘 말로 하면 청와대비서실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승정원일기’를 고문헌 번역자가 하려면 수백 년이 걸린다. 그러나 교육된 AI가 수행한다면 소요 시간과 에너지는 현저하게 줄어든다. 이뿐이겠는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거의 모든 일을 AI는 해낼 수 있다. 옛 그림에서 사라져 버린 부분을 디지털로 복원하고, 팔만대장경에서 채집된 글자체를 개발하고, 남도의 소리에서 모아진 치유의 소리(Ambient Music)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한(恨)의 정서와 유배 문화, 호남 인물, 우리 지역에서 발간된 수많은 고문헌을 쉽게 정리해 사용할 수 있다. AI로 문헌을 인식하여 정리되고 검색되어 활용된다면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또한 흔적만 남아 있는 옛터를 가상현실인 VR로 재현하여 실감 나게 체험하는 경우도 있다.
내년에는 기대승 선생 서거 450주년이 되는 해이다. 퇴계 이황과 기대승이 교류하고 화답하는 장면과 내용 들을 실감으로 구성하면 실제 두 분이 살아서 돌아온 것 같을 것이다. 5월 광주의 아픔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를 함께 3차원 영상 홀로그램으로 처리하면 더욱 실감나게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인공지능이라는 과업을 광주에서 세계적 수준으로 수행할 수 있으니 참으로 의미가 크다. 이를 성공적으로 지속하기 위해서는 창발적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는 인재 양성과 중앙처리장치(CPU) 등의 최신 설비 투자가 필수적이다. 광주의 미래를 위하여 선택된 인공지능, 지속적인 투자와 창의적 교육이 이루어져 우리 지역의 문화적 자양분을 먹고 튼실한 열매를 맺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