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이야기] 산정일장(山靜日長), 여름날 어느 선비의 하루 소치 허련 <선면산수도> 게시기간 : 2022-06-30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2-06-28 09:39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옛 그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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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 허련이 부채에 그린 이 산수도는 문학작품의 하나인 중국 남송대 문인 나대경(羅大經)의 『학림옥로(鶴林玉露)』가운데 「산정일장(山靜日長)」을 화제로 그린 것이다. 허련은 산정일장의 내용을 그림 여백에 빼곡하게 추사체로 써 놓았다. 내 집은 깊은 산 속에 있어 매년 봄이 가고 여름이 올 때면 푸른 이끼 섬돌에 차오르고 떨어진 꽃잎 길바닥에 가득하네. 찾아와 문 두드리는 사람 없고 소나무 그림자 들쑥날쑥한데 새 소리 위 아래로 오르내릴 제 낮잠이 막 깊이 드네. 돌아가 산골 샘물 긷고 솔가지 주워 와 쓴 차를 끓여 마시네. 내키는 대로 『주역(周易)』, 『국풍(國風)』, 『좌씨전(左氏傳)』, 『이소(離騷)』, 『사기(史記)』, 도연명(陶淵明)과 두보(杜甫)의 시, 한유(韓愈)와 소동파(蘇東坡)의 문장 몇 편을 읽네. 한가로이 오솔길을 거닐며 소나무·대나무를 쓰다듬고 새끼사슴·송아지와 더불어 긴 숲, 우거진 풀 사이에 누워 쉬기도 하고 흐르는 시냇가에 앉아 찰랑이며 양치질도 하고 발도 씻는다네. 대나무 그늘진 창 아래로 돌아오면 산골 아내와 자식들이 죽순과 고사리 반찬에 보리밥 지어내니 기쁜 마음으로 배불리 먹는다네. 창가에 앉아 글씨를 쓰되 크기에 따라 수십 자를 써보기도 하고 간직한 법첩(法帖)·필적(筆跡)·화권(畵卷)을 펴놓고 이리저리 보다가 흥이 나면 짤막한 시도 읊조리고 오롯이 한 두 단락 초잡기도 하네. 다시 쓴 차 달여 한 잔 마시고 집 밖으로 나가 시냇가를 걷다 보면 밭둑의 노인이나 냇가의 벗들과 만나 뽕나무와 삼베 농사를 묻고 벼농사를 얘기하네. 날이 개거나 비 올지도 모른다는 얘기 주고받다가 돌아와 지팡이에 기대어 사립문 아래 서니 석양은 서산에 걸려 있고 자줏빛·푸른빛이 온갖 형상으로 문득 변하여 사람의 눈을 황홀하게 하지. 소 잔등에서 피리 불며 짝지어 돌아올 때면 달빛은 앞 시냇물에 뚜렷이 떠오른다네.
병인년 여름 비오는 날에 소치 그리다. 余家深山之中 每春夏之交 蒼蘚盈堦 落花滿徑 門無剝啄 松影參差 禽聲上下 午睡初足 旋汲山泉 拾松枝 煮苦茗啜之 隨意讀周易 國風 左氏傳 離騷 太史公書 及陶杜詩 韓蘇文數篇 從容步山徑 撫松竹 與麛犢 共偃息於長林豊草間 坐弄流泉 漱齒濯足 旣歸竹窗下 則山妻稚子 作筍蕨 供麥飯 欣然一飽 弄筆窗間 隨大小作數十字 展所藏法帖 墨跡 畵卷 縱觀之 興到則吟小詩 或艸玉露一兩段 再烹苦茗一杯 出步溪邊 邂逅園翁溪友 問桑麻說秔稻 量晴校雨 探節數時 相與劇談一餉 歸而倚杖柴門之下 則夕陽在山 紫翠萬狀 變幻頃刻 恍可人目 牛背笛聲 兩兩來歸 而月印前溪矣 丙寅 季夏雨中 小痴 寫 호남 남종화의 종조(宗祖), 소치 허련
소치 허련(小痴 許鍊, 1809-1892)은 호남을 근대 전통회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인물이다.1) 호남이 ‘예향’으로 불리게 된 데에는 허련을 통해 이어온 화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2) 소치 허련은 호를 소치(小痴), 노치(老痴), 석치(石痴), 혹은 진도의 옛 이름을 따라 옥주산인(沃州山人)이라 했으며, 허유(許維)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다. ‘소치’는 원말사대가 황공망(黃公望, 1269-1354)의 아호 ‘대치(大痴)’에서 따왔으며 ‘마힐(摩詰)’이라는 자와 ‘유’라는 이름도 수묵산수와 남종문인화의 시작인 당나라 왕유(王維)에서 비롯되었다. 나중에 진도에 운림산방을 지었는데, ‘운림(雲林)’ 역시 원나라 예찬(倪瓚, 1301-1374)의 아호를 빌려온 것이다.
그림 2 허련, <방예운림죽수계정도>, 종이에 담채, 21.2×26.3cm, 서울대학교박물관 허련은 초년에 해남 윤선도 고택인 녹우당에서 공재 윤두서의 작품을 보면서 그림공부를 하였다.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의 소개로 서울로 상경해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를 만났으며 그의 문하에서 서화수업을 시작하였다. 조희룡과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에 실린 김수철․이한철․유재소․전기 등 여러 여항문인화가들과 함께 글과 그림을 배웠다. 김정희에게 ‘우리나라의 누추한 습관을 벗어버려 압록강 동쪽에서 이에 비할 이가 없다(其人其佳 畵法破除東人陋習 鴨水以東無此作矣)’ 라는 극찬을 받은 것은 유명하다. 허련은 김정희를 통해 중앙의 여러 명사와 세도가들을 후원자로 두었다. 전라우도수군절도사 신관호(申觀浩, 1810-1884)와 영의정을 지낸 권돈인(權敦仁, 1783-1859)을 비롯해 정약용의 아들인 정학연(丁學淵, 1786-1855), 그리고 흥선대원군과 민영익 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류하며 폭을 넓혔고, 헌종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등 지방 화가로서 조선 말기 서화계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보여주었다. 1856년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낙향하여 고향인 진도로 돌아왔다. 운림산방을 마련하고 호남 이곳저곳을 오가며 산수와 사군자, 모란, 괴석, 노송 등 지역민의 수요에 부응하는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였다. 산은 태고인 양 고요하고
허련이 그린 <선면산수도>는 산정일장도이다. 산정일장도는 나대경이 여름날 은거지에서 생활하는 모습 즉 경치를 보고 차를 마시며 독서나 작시(作詩), 예술감상, 담화(談話)를 하는 것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3) 명대(明代) 문징명(文徵明, 1470-1559), 당인(唐寅, 1470-1523) 등에 의해 이 화제가 작품화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에 전해져 정선을 비롯한 여러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산정일장의 주제는 정조와 순조연간 차비대령화원 녹취재 시험에 출제될 정도로 조선후기 화단에서도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화가들 중에서도 이인문(李寅文, 1745-1824년경)은 단일주제로서 산정일장도를 특히 많이 남겼다.4) 산정일장도는 단폭으로도 그려지지만 글의 내용에 따라 대체로 8폭으로 구성된다(그림 3). 1폭은 <산정일장도>로 대숲으로 둘러싸인 건물 안에 선비가 낮잠을 즐기며, 시동이 차를 끓이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 주제는 “禽聲上下午睡初足”만 따로 쓰여 ‘오수도(午睡圖)’의 단독주제로도 활용된다. 2폭 <수의독서도(隨意讀書圖)>(또는 山家讀書圖)는 건물 안의 선비가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며 시동이 등장한다. 3폭 <좌롱유천도(坐弄流泉圖)>는 ‘탁족’을 주제로 선비가 계곡 사이에 앉아 있고 그 옆에는 시동이 서 있다. 4폭 <산처치자도(山妻稚子圖)>(또는 麥飯欣飽圖)는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건물 안에 밥상을 받고 있는 선비와 옆 건물에 산처(山妻)와 아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5폭 <농필전첩도(弄筆展帖圖)>(또는 弄筆窓間圖)는 물 위 누각에 앉은 선비와 시동이 등장하며, 6폭 <계변해후도(溪邊邂逅圖)>는 계곡 옆에 선비 둘이 만나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으로 그려진다. 7폭 <의장시문도(倚杖柴門圖)>는 사립문 아래 지팡이를 짚고 있는 인물이 등장하고, 마지막 8폭 <월인전계도(月印前溪圖)>는 어스름한 저녁 무렵의 선비와 소를 타고 가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인문이 그린 산정일장도는 세로가 긴 축화(軸畵)로 산수가 강조된 작품이다. 배경에 큰 산을 두고 전경에 소나무,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가옥과 그 안에 주인공인 선비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인문은 《강산무진도권(江山無盡圖卷)》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의 희노애락과 다양한 사람살이를 무궁무진하게 펼쳐진 거대한 자연의 일부로 그려내었다. 산정일장도 또한 어느 여름날, 고요하고 평화로운 산 속에서의 여유를 한껏 만끽하는 한 선비의 일상의 삶을 읊은 나대경의 시를 형상화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산수 속에 기대어 자연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조용한 곳에 독서를 즐기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문인들의 이상이 되어 왔다. 그림은 글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실제로 은둔하지는 못하지만 산수 속에 은거하고자 하는 이상을 문인들은 그림을 통해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소치 허련의 집, 소허암(小許庵) 1866년 여름 허련이 59세 때 그린 이 그림은 허련이 지향하는 바를 잘 보여준다. 허련은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해인 1856년에 진도로 돌아온 후에 첨찰산 아래 거처 겸 화실을 마련했다. 김정희는 허련에게 ‘소허암(小許庵)’이라 써주었는데, 이를 허련이 직접 각하여 운림산방에 걸었다고 하였다.5)
사진 운림산방,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출처 : http://www.k-heritage.tv/)
그림 4 김정희 글씨, 허련 판각, <소허암> 운림산방은 첨철산을 배경으로 서 있다. <선면산수도>에 보이는 거대한 주산은 첨철산을 형상화한 듯 닮아있다. 화면 근경 바위 언덕에 서로 다른 종류의 고목들 사이 운림산방으로 보이는 가옥이 그려져 있고 화면 왼쪽 다리를 건너 집으로 돌아가는 한 선비의 모습이 보인다. 허련은 특유의 까실하고 메마른 필치의 거친 피마준법(披麻皴法)을 구사하여 나무와 가옥 등의 경물을 묘사하였으며, 전반적인 구도와 배치는 그동안 그가 자주 그렸던 은거도 형식을 따랐다. 푸른색과 갈색의 담채로 여름날의 맑은 계절감을 더하였다.
<선면산수도>를 보면 허련이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하지만, 실제로 그의 생활은 그러하지 못했다. 그림을 그린 그해 초의선사가 세상을 떠나고 허련도 서울과 진도를 오가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림처럼 여유롭고 한가한 일상을 누리지는 못했다. 운림산방이라는 자신의 은거지에서 나대경의 시처럼 평온한 삶을 꿈꾸었던 허련은 <선면산수도>를 통해 다만 그 바람을 담아놓은 것이 아니었을까. 예향의 산실, 운림산방
그림 5 허련, <방완당의(倣阮堂意) 산수도>, 종이에 수묵, 31.0×37.0cm, 개인소장
그림 6 허련, <산수>, 1874년, 종이에 엷은 색, 29×29cm, 개인소장 허련의 산수화는 “황공망․예찬의 구도와 필법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거친 독필(禿筆)의 자유분방한 필치와 푸르스름한 담청을 즐겨 쓴 개성적인 담채”로, 낙향 후에 더 거칠어지고 활달해진 독필과 담채, 그리고 수묵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양식화된 경향을 보인다.6) 간일(簡逸)한 구도와 마른 붓질, 인적이 드문 정자 곁에 고목을 배치하는 남종산수화의 세계는 스승이었던 김정희가 추구하던 것이었고, 가르침이었다. 허련은 이를 충실하게 이어받아 호남화단에 전수하였다. 조선 말기 화단에서 남종화가 발전하는데 기여한 허련의 회화는 한편으로 ‘사대부문화 지향적 가치관’과 ‘문화적 소외의식의 극복’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그는 남종화의 본질을 ‘운림산방의 화맥’으로 이어지게 했다. 결국 미산 허형을 거쳐 남농 허건, 의재 허백련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예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호남 예술가의 산실인 운림산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1) 허련의 생애와 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은 김상엽, 『소치 허련』(돌베개, 2008)을 참고하였다.
2) 이태호, 「조선시대 호남의 전통회화」, 『호남의 전통회화』(국립광주박물관․광주박물관회, 1984) ; 이구열, 「근대 호남화단의 전개」, 『호남의 전통회화』(국립광주박물관․광주박물관회, 1984) ; 김상엽, 「남종화의 전개와 호남의 화단」, 『남농 허건』(국립현대미술관, 결출판사, 2007) ; 김상엽, 「소치 허련의 생애와 회화세계」, 『남종화의 거장 소치 허련 200년』(국립광주박물관, 2008), pp. 368-377 등 참조. 3) 산정일장도에 대해서는 오주석,『이인문의 강산무진도』(신구문화사, 2006), pp. 110-125 ; 조규희, 「朝鮮時代의 山居圖」(서울대학교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 석사학위논문, 1998);「朝鮮時代의 山居圖」,『미술사학연구』217․218(한국미술사학회, 1998. 6), pp. 29-60에서 다루어졌으며, 산정일장도만을 논의한 洪慧臨, 「조선후기 山靜日長圖 연구」(고려대학교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15)와 김소영,「이인문(李寅文)의 산정일장도(山靜日長圖) 연구」, 『인문과학논총』 36권 2호(명지대학교인문과학연구소, 2015. 5) 등이 있다. 4) 조규희, 위의 논문(『미술사학연구』217․218, 1998. 6), p. 53. 5) 김상엽, 앞의 책, pp. 111-113 참조. 5) 이태호, 앞의 글, pp. 182-191 참조. 참고문헌 및 인용출처 국립광주박물관, 『남종화의 거장 소치 허련 200년』, 국립광주박물관, 2008.
김상엽, 『소치 허련』, 돌베개, 2008. 김소영, 「이인문(李寅文)의 산정일장도(山靜日長圖) 연구」, 『인문과학논총』 36권 2호, 명지대학교인문과학연구소, 2015. 5. 이태호, 「조선시대 호남의 전통회화」, 『호남의 전통회화』, 국립광주박물관․광주박물관회, 1984. 글쓴이 김소영 한국학호남진흥원 일반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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