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기행] 뻘 속의 산삼으로 가을을 준비한다 남도 뻘낙지 게시기간 : 2022-08-05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2-08-01 09:37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맛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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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철이면 여기저기 몸을 추스르는 음식을 찾느라 바쁘다. 어디서는 민어가 좋고, 누구는 닭죽이 좋고, 반려동물의 논란 속에서도 식용은 다르다며 여전히 보신탕을 찾는 사람도 있다. 조선시대 왕들은 영계백숙, 육개장, 곰국 등을 즐겼다고 한다. 남도 바닷마을에서는 낙지금어기가 끝나면서 갯벌이 술렁인다. 그 사이 낙지씨알이 많이 굵어졌다. 갯벌어업을 하는 어민들은 낙지만한 보약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낙지는 몸통, 머리, 발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는 여덟 개이며 각 발에 2열의 흡반이 있다. 야행성으로 밤에 갯벌 속 구멍에서 나와 게, 새우, 작은 물고기 등을 잡아먹는다. 어민들은 이러한 습성을 이용해 밤에 게를 미끼로 낙지를 유인해 잡는다. 낙지의 수명은 보통 일 년이다. 봄에 알에서 깬 새끼낙지는 여름을 견디고 가을을 잘 보내면 큰 낙지가 되어 겨울잠을 잔다. 이 무렵 낙지는 겨울을 나고 산란을 준비하며 몸을 만든다. 이 낙지를 어민들은 ‘꽃낙지’라 한다. 낙지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가장 맛이 좋고, 씨알도 굵고 값도 후하게 받는다. 남도에서는 뻘낙지를 최고로 치지만 남해에서는 깊은 바다 돌 틈에 사는 붉은 색을 띠는 돌낙지가 더 맛있다고 자랑한다. 뻘낙지는 발이 가늘어 ‘세발낙지’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잡는 방법에 따라 삽으로 잡는 가래낙지, 통발로 잡는 통발낙지, 맨손으로 잡는 손낙지, 밤에 불을 켜고 줍는 홰낙지, 오래된 전통의 묻음낙지까지 다양하다. 북한에서는 낙지는 오징어를, 오징어는 갑오징어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출판한 『조선의 바다』(1965, 평양)에는 ‘낙지는 발이 10개 있고 몸통은 길고 유선형으로 되어 있다. 오징어라고도 한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낙지는 동해안에서 잡히는데 오징어는 서해안에서 잡힌다’, 오징어는 ‘뼈를 가지고 있고 발은 10개’라고 했다. 그러니까 오징어는 갑오징어를 말한다.
* 정말 쓰러진 소를 일으켜 세울까. ‘자산어보’에는 낙지를 석거(石距)라하고, 속명은 낙제어(絡蹄魚)리 기록했다. 그리고 모양이 장어(章魚, 문어을 말함)와 유사하지만 다리가 길다. 겨울잠을 자는 특징이나 뱃속에 쌀밥처럼 생긴 알이 있다는 것이나, 새끼가 자라면서 어미를 먹는다는 등 특징을 잘 설명했다. 무엇보다 마르고 쇠약한 소에게 낙지 네다섯 마리를 먹이면 바로 건실해진다고 했다. 여기에 덧붙여 이청(정약용의 제자)은 ‘민간에서 낙지가 뱀과 교미’한다는 속설에 대해서 ‘스스로 알이 있으니 뱀이 변한 것은 아니다’고 중국문헌의 내용을 바로잡기도 했다.
‘성호사설’ 제 5권 ‘만물문(萬物門)’에는 ‘본초’를 인용한 글에서 ‘뼈가 없는 고기로 장거(章擧)와 석거(石距)라는 두 종류가 있다’면서, ‘우리나라 문어와 낙제’처럼 생겼다며, 낙제는 속명이 소팔초어(小八梢魚)라 했다. 또 ‘청장관전서’에도 장거(章擧)를 석거(石距)라고 해석하고 ‘모양이 문어와 같으면서 작다. 일명 소팔초어(小八梢魚)라고도 한다’고 풀이했다. ‘임원경제지’ 정조지에도 ‘석거’라 했고, ‘화한삼재도회’를 인용해 ‘뱀이 강이나 바다로 들어가서 낙지로 변하는데, 사람들 중에는 그것이 반만 변하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많이 먹으면 몸이 냉해진다’고 했다. 다산의 탐진어가10장(耽津漁歌十章)에는 낙지를 낙제(絡蹄)라 기록하고, ‘어촌에서 모두가 낙지국을 즐겨 먹고(漁家都喫絡蹄羹)’라고 했다. 그리고 ‘동지승람에는 낙제라 장거를 말한다’고 풀이했다(絡締者章擧也。見輿地勝覽). 고종 15년(1878) ‘승정원일기’에는 종묘에 올린 물목으로 2월에 생낙지(生絡蹄)가 포함되기도 했다.
* 살 곳은 없애고, 찾는 사람은 많다 낙지는 여름이 깊어지고 가을로 다가서면 그 존재감이 더욱 도드라지고 높아진다. 몸도 굵고 값도 후해 진다. 낙지 몇 마리면 시장에서 살 한 포대 쉽게 구할 수 있다. 쌀이 귀하던 시절에는 몇 접(1접, 20마리)을 가지고 가도 쌀 한 말과 바꾸기 어려웠다. 이젠 쌀은 흔해지고 낙지는 귀해졌다. 뻘낙지로 유명했던 영암 갯벌은 공장이 들어서고 농지가 조성되었다. 영산강하구에 위치한 영암갯벌은 우리나라 최상품의 세발낙지 서식지였다. 경기만 일대 갯벌도 낙지천국이었다. 시화호와 화흥호 일대의 갯벌이다. 낙지가 많았던 시화호 안에 있는 음도, 어도, 형도 그리고 갯벌이 섬과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입맛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아 곳곳에 낙지전문점이 간판을 걸고 영업 중이다. 갯벌이 좋은 인천 송도갯벌의 낙지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은 인천국제공항으로 변한 영종도, 삼목도, 신불도, 용유도, 신도, 시도 모도 그리고 무의도와 소무의도 일대도 낙지가 많았다. 북쪽으로 강화갯벌과 석모도에도 낙지가 많았다. 낙지가 귀해졌지만 가래나 맨손이나 호미 등 간단한 도구를 이용해 낙지를 잡는 ‘무안·신안갯벌낙지맨손어업’이 2018년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등재된 대상지역은 전라남도 무안군 48.87㎢와 신안군 69.48㎢, 총 118.35㎢의 갯벌지역이다. 이곳 낙지잡이는 전통적인 맨손어업의 비중이 높고, 전통지식이 전승되고 있다. 무엇보다 맨손어업의 지속적인 보전관리를 위한 행정과 주민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간척과 매립은 물론 연안어장의 오염으로 서식지는 점점 감소하고 연승어업과 통발 등 남획으로 개체수가 급속하게 감소했다. 여기에 지구온난화와 수온변화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조건에서 지속가능한 어업으로 평가받는 맨손어업을 이용한 낙지잡이가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의미가 크다. 이곳만 아니라 고흥군 성두, 예회, 노일, 풍류, 대전 등 득량만의 바닷마을은 마을주민들이 일 년에 몇 차례 낙지를 잡는 날을 정해 두고, 가래만을 이용해 공동으로 낙지를 잡기도 한다. 다행스럽게 낙지가 많이 서식하는 보성·순천갯벌, 신안갯벌 등이 2021년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 낙지로 몸을 보하다 자산어보나 동의보감의 이름을 빌리지 않더라도 낙지가 몸에 좋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산골마을에 살 때 아버지가 쟁기를 지고 소를 끌고 나가시면 어머니는 주조장에서 큰 소주병에 막걸리를 담고 비싼 낙지를 가져가곤 했다. 주전자가 아니라 병에 술을 담아가는 것도 이해하가지 않았지만 낙지는 더욱 그랬다. 쟁기질을 하던 소가 쓰러지면 낙지를 풀에 둘둘 말아서 입을 벌리고 밀어넣고 병을 소 입에 넣어 막걸리를 마시게 했다. 그러면 정말 소가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는 그제야 담배 한 대를 피고, 남은 막걸리를 한 잔 하시고 쟁기질을 했다. 낙지를 두고 ‘뻘 속에 산삼’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해를 제외한 모든 연안에 낙지가 서식하기 때문에 지역마다 낙지음식도 다양하다. 목포, 무안, 신안, 영암, 강진 등 낙지를 많이 잡는 서남해에서는 산낙지, 기절낙지, 낙지물회, 연포탕, 탕탕이, 낙지육회 등 다양한 음식을 내놓는다. 태안의 박속밀국낙지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낙지주물럭, 낙지젓갈, 김치에 넣는 낙지섞박지, 낙지찜도 있다. 최근에 광주에서는 낙지와 소고기를 결합한 낙지탕탕이육회가 만들어지고, 강진과 영암에서는 낙지와 갈비와 황칠을 더해 ‘황칠갈낙탕’도 인기다. 낙지와 삼겹살을 함께 굽는 낙삼불고기도 있다. 낙지를 짚에 돌돌 말아 구워 잔치나 제사에 올리는 낙지호롱이 무안에서는 지역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낙지를 이용한 음식 중에서 가장 독특한 것이 고흥에서 맛본 낙지팥죽이다. 낙지를 삶아 건진 후 쌀과 팥을 넣고 죽을 끓인 후 낙지를 넣은 죽이다. 팥도 몸에 좋고 낙지도 몸에 이롭다. 낙지보양식은 다른 식재료를 만나 진화중이다.
글쓴이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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