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家別傳] 송광사(松廣寺) 강원(講院) 1 게시기간 : 2022-08-10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2-08-09 09:45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佛家別傳
|
||||||||
1. 들어가는 말 송광사는 고려후기 보조국사 지눌(普照知訥, 1158-1210) 이후 소위 16국사를 배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후기에도 부휴선수(浮休善修, 1543-1615)의 문도(門徒)들이 사자상승(師資相承)하여 법맥을 이어 우리나라 승려 양성의 요람이어서 승보종찰로 불린다. 절 이름인 송광사(松廣寺)에서 송(松)은 十八(木)+公을 가리키는 글자로 18명의 큰 스님을 뜻하고,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가리켜서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서 불법을 크게 펼칠 것이라는 것이다. 고려 말기에 나옹화상은 송광사를 가리켜 “동방제일도량‘이라 지칭하였는바, 송광사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찰이었으며, 이와 짝하여 허다한 고승을 배출하였던 도량이다. 이에 승보종찰 조계총림 송광사를 이루는 한 부분인 송광사 강원의 역사와 그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2. 강원(講院)이란 무엇인가?
강원은 불가의 계율율 익히는 율원, 참선을 행하는 선원, 염불을 외우는 염불원과 함께 총림도량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강원은 불경공부를 하는 곳, 불교이론을 배우는 곳으로 근래에는 승가대학이라고 고쳐 부르고 있다. 절집에서 불경을 공부하는 학교를 전통식 이름으로는 강원, 현대식 이름으로는 승가대학이라고 한다. 강원의 학인, 승가대학의 학인으로서의 공부가 승려로서의 생활에 중요함을 일컫는 말이 있어 참고해 보기로 한다.
1. 송강사 강원 “행자시절은 중노릇의 밑천이요, 학인시절은 중노릇의 절반이다”라는 말이 있다.1) 강원의 학인 시절이 승가생활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함을 일깨우는 말임에 틀림이 없다. 승려생활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강원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3. 일제강점기 송광사 강원의 역사 송광사 강원의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 일제강점기 불교잡지를 뒤적일 필요가 있다. a, 1914년 2월 각본말사 보통학교 및 전문강원 조사표에 의하면2) 송광사 본말사 보통학교 1, 전문강당 1이 보여 송광사 강원이 1914년 이전에 개설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겠다.
b, 1918년 9월에는 僧刹 조계강원 제2회 조계강원 대교과 李東秀 외 졸업생 6이 배출되었다.3) c. 1949년과 1963년, 1969년 세 차례나 송광사 주지를 역임했고, 1969년 조계총림 개설시에 염불원 회주와 전국 불일회 초대회장을 지낸 취봉창섭(翠峰昌燮 1898-1982)은 일제 강점기인 1923년 송광사 강원을 수료했고, 1940년 송광사 강원 강사를 역임했다. d. 1933년 1월 15일에 송광사 전문강원 내에서 강우회 제회 정기총회를 개최하여 제반의안을 토의한 후 각부 임원을 투표 개선한 바 서무부장, 재무부장, 문예부장, 문예상무, 체육부장, 이발부장을 선임하였다.4) e. 1933년 1월 13일 오전 9시에 송광사 불교전문강원내에서 졸업 및 수료식을 거행한 바, 초등과 졸업 1명, 반야경 수료 5명이 졸업하였다. f. 1937년 강주 林錫虎, 朱龍隱이 대교과 강도영 외 6명, 사교과 강원조 외 8명, 사집과 배정우 외 6명, 사미과 김학동 외 3명 등 27인이 송광사 강원에서 배출되었다.5) g. 1938년 3월 26일 오전 9시에 송광사 불교전문강원에서는 송광사 본말사 주지 및 다수 내빈의 참석하에 고등과 졸업 및 중등과 수료식을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졸업생은 고등과 2명, 중등과 10명, 원각경 수료 1명, 능엄경 수료생 4명, 초등과 수료생 6명, 예비과 수료생 2명이 졸업하였다.6) h. 송광사 전문강원 학우회에서는 11월 24일 오후 1시 30분에 제24회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제반사항을 토의한 후 서무부장, 문예부장, 재무부장, 체육부장, 이발부장 등 역원을 선거하였다.7) i. 1941년 7월 20일에 송광사 전문강원에서는 강백 임운양, 한재덕 양대화상 회하에 제9회 졸업식을 거행한바 고등과 5명이 졸업했다.8) j. 1941년 7월 13일 오전 7시 30분에 송광사 조계강우회에서는 제26회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제반사항을 토의한 후 본년도 하기 신임원을 선거하여 서무부장과 부원, 문예부장, 재무부장, 체육부장, 이발부장 등을 선출했다.9) k. 1941년 12월 21일 오전 9시에 송광사 강우회에서는 제27회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제반사항을 토의한 후 17년도 신임원을 선거하여 서무부장과 부원, 문예부장, 재무부장, 체육부장, 경리부장을 선출했다.10) n. 1943년 7월 21일 오후 1시경에 송광사 조계강원에서는 제30회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제반사항을 토의한 후 각부 임원을 개선하였는데, 신임원에 회장에 강사금택의광을, 부회장, 서무부장, 재무부장, 체육부장, 이발부장, 서무부원, 이발부원을 선출했다.13)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송광사 강원이 언제 개설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전문강원 조사표에 1914년에 이미 그 명칭이 보이고 1918년에 조계강원 2회 대교졸업생을 배출하고 있음을 보아 1910년경에 강원이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14) 일제 강점기의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이어가려는 송광사 조계강원의 끊임없는 노력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허다한 학인을 배출하였다. 송광사 6대 주지(1979. 3~1983. 3)를 역임한 대응원명(大應元明, 현 대구 관음사 주석)은 1947년 4월 송광사 강원을 졸업했다. 그러나 해방이후 좌우의 대립과 6·25 한국전쟁, 1950년대 승단정화운동은 모든 사찰을 황폐화시키기에 이르렀다.
4. 1969년 조계총림 개설 이후 송광사 강원
1969년 조계총림 개설 이래 송광사에서는 강원이 없어 안타까워하던 중 불기 2526년(서기 1982년) 처음 강원이 개원되었다.15) 初代(1980-1983) 白雲知興, 二代(1984) 蓮潭宗眞 스님이 講主를 맡으셨고 그 이후 석전정호 대강백16)에게 전강을 받은 雲惺昇熙 大講伯17)이 송광사에 주석하여 三代(1984-1993) 講主로서 후학을 11년 동안 이끌어 많은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92년 雲惺昇熙 大講伯에게 전강을 받은 道圓智雲18) 스님이 四代(1993. 9. 15- 2002. 7. 15) 講主가 되어 후학을 지도하여 송광사 강원의 체계를 세웠다. 제5대 講主(2002. 10. 5- ?)로 慧燈玄眞19) 스님이 역임하였다. 제6대 강주는 重顯一歸20) 스님인데, 송광사 강원 출신(제1회)으로는 최초로 松廣寺의 講主가 되었다.
3. 송강사 승가대학 졸업식 이와 같이 송광사 강원 역대 강주는 용운완섭(龍雲完燮), 기산석진(綺山錫珍), 백운지흥(白雲知興), 연담종진(蓮潭宗眞), 운성승희(雲惺昇熙), 도원지원(道圓智雲), 혜등현진(慧燈玄眞), 중현일귀(重顯一歸) 스님이다. 송광사 강원의 원훈(院訓)은 목우가풍(牧牛家風, 보조지눌의 유풍)이다. 강원의 당우는 법성료(法性寮)이다.
5. 송광사 강원의 직제와 교육활동
송광사 강원에서는 보름마다 포살을 통해 계율을 지키게 하고 대중을 화합하게 하며, 예불, 강의, 문답, 논강, 간경, 참회 등을 실천하게 함으로써 승가를 유지 존속하게 하는 기초를 다짐과 함께 정과 혜를 닦는 제도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간경과 논강은 경전의 뜻을 강론하는 것이고, 상강례는 공경을 표하는 것인데, 강원의 강의, 간경, 논강, 상강례 등이 모두 법의 쇠퇴를 막고 오래도록 존속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21) 송광사 강원의 직제는 강주, 학감 외에 강사를 두며 초빙강사, 명예강사, 대우강사를 임용할 수 있으며, 강주는 위촉권을 가진다. 소임으로 강주, 학감, 강사, 교무과, 재무과, 입승, 찰중, 반장이 있다. 송광사 강원은 사미과, 치문과, 사집과, 사교과, 대교과를 둔다(「송광사 강원 학칙」). 수업연한은 4년이며, 재학연한은 5년을 원칙으로 한다. 학년도는 음력 2월 15일부터 다음 해 2월 15일까지이며, 제1학기는 음력 2월 15일- 음력 8월 15일, 제2학기는 음력 8월 15일- 명년 음력 2월 15일이다. 수업일수는 매 학년 180일 이상이다. 교과목은 교양과목과 필수과목으로 나뉘어 있는데, 수업시간표는 새 학기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강사회를 거쳐 학감이 공고했다. 송광사 강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유명한 강백(講伯) 스님을 중심으로 경전을 공부하던 이들이 이어 왔지만, 강원이라는 명칭을 내걸고 송광사로 모이기 시작한 시기는 일제강점기에 시작되었으나 확고하게 자리 잡은 시기는 대략 1980년경이다. 아마도 목우가풍(牧牛家風)을 드날리던 선(禪) 중심의 도량이었기에 경(經) 보는 것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긴 탓도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1980년 범어사에 계시던 백운지흥(白雲知興) 강백을 모셔오면서 강원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고, 그 뒤를 이은 선운사 운성승희(雲惺昇熙) 강백이 주석하시던 1984∼93년까지의 기간에는 졸업생을 배출하기 시작하면서 전문교육기관인 강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1993년 9월 강주로 취임한 도원지운(道圓智雲) 강백의 원력으로 강원의 모습이 일신하면서 안정된 틀을 이루었고, 이에 공부하기 좋은 도량이라는 평가와 함께 많은 학인들이 모여들어 수행정진 하게 되었다. 또한 조계종이 표방하는 기본교육기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모범강당으로 자리 잡았다. 2013-2015년 강주 덕조스님이 강원을 이끌었으며, 현재 승가대학장 연각스님이 도제양성을 위해 힘쓰고 있다. 1) 현진, 『오늘이 전부다』,(클리어마인드, 2009)
2) 『海東佛敎』 제4호, 1914년 2월 3) 『朝鮮佛敎叢報』제11호, 1918년 9월 4) 『佛敎』 제106호, 1933년 4월 5) 『弘法友』1937년 6) 『佛敎時報』36호, 1938년 7월호 7) 『佛敎時報』67호, 1941년 2월호 8) 『佛敎時報』73호, 1941년 8월호 9) 상동 10) 『佛敎時報』78호, 1942년 1월호 11) 『佛敎時報』91호, 1943년 2월호 12) 『佛敎時報』97호, 1943년 8월호 13) 상동 14) 佛學硏究所 編, 『講院總覽』( 大韓佛敎曹溪宗 敎育院, 1997년) 154쪽 15) 一歸,「發刊辭」(松廣寺 講院 總同門會,『同門手帖 1969~2003』(청타문화사, 2003) 16) 석전정호는 선암사의 장금봉, 화엄사의 진진응 스님과 함께 한국 근대불교사의 三大 大講伯이다. 17) 雲惺昇熙(1910. 8. 8-1995. 5. 6) 大講伯의 傳講脈은 다음과 같다. 道圓智雲(1993년 3월 9일 동화사에서 전강) 重顯一歸(1993년 3월 9일 동화사에서 전강) 石顚鼎鎬- 雲惺昇熙- 定慧至晤(1993년 가을 범어사에서 전강) 愚玄正和(1994년 5월 고흥 수도암에서 전강) 心光圓珣(1994년 5월 고흥 수도암에서 전강) 18) 道圓智雲(1955. 7. 19- ) 스님은 1976년 은해사에서 知性화상을 恩師로, 古松선사를 戒師로 沙彌戒를 受持하였고, 1979년 해인사에서 慈雲律師를 戒師로 비구·보살계를 수지했고, 1982년 법주사 강원(11회)을 졸업했으며, 1985년 중앙승가대를 졸업(4회)하여 1986년 송광사 강원의 강사가 되었다. 1992년 3월 9일 동화사에서 雲惺昇熙 大講伯으로부터 傳講하였다. 1993. 9. 15 - 2002. 7. 15 까지 송광사 강원의 제4대 강주를 역임했다. 19) 慧燈玄眞 스님은 1974년 수월산에 입산하여 1989년 통도사 강원을 졸업했고, 1999년 은해사 승가대학원을 졸업했다. 1990-1995년 통도사 강원 仲講을 역임했으며, 1999- 2000년 직지사 강원 강사를, 2002-2002년 송광사 강원 강사를 역임했다. 2002년 10월 5일 송광사에서 如天無比 講伯에게 傳講을 받았으며 2002년 10월 15일-? 송광사 강원 제5대 강주를 역임했다. 20) 重顯一歸(1955. 2. 8- ) 스님은 1981년 11월 해인사에서 九山禪師를 恩師로, 古庵禪師를 戒師로 沙彌戒를 수지했다. 1982년 夏安居로부터 수덕사, 망월사, 김천 수도암, 송광사 선원 등에서 안거했다. 1985년 범어사에서 慈雲律師를 戒師로 比丘戒·菩薩戒를 受持했으며, 1988년 조계총림 율원 立繩을, 1989년 송광사 교무와 강원 學監을, 1992-1995년 송광사 강원 講師를, 1993-1995년 송광사 교무를 역임했다. 1992년 3월 9일 桐華寺에서 雲惺昇熙 大講伯으로부터 傳講을 받았다. 1999년 9월 銀海寺 僧伽大學院을 졸업했으며, 1999-2002년 實相寺 화엄학림 교수를, 2002. 9- 송광사 교무와 송광사 강원 총동문회장을 역임했다. 조계총림 송광사 제6대 강주로서 소임을 다했다. 21) 佛學硏究所 編, 『講院總覽』( 大韓佛敎曹溪宗 敎育院, 1997년) 160쪽 글쓴이 이계표 전라남도 문화재위원 |
||||||||
Copyright(c)2018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All Rights reserved. | ||||||||
· 우리 원 홈페이지에 ' 회원가입 ' 및 ' 메일링 서비스 신청하기 ' 메뉴를 통하여 신청한 분은 모두 호남학산책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호남학산책을 개인 블로그 등에 전재할 경우 반드시 ' 출처 '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