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이야기] 나비, 꽃을 찾아 날아온 사호 송수면의 <화접도(花蝶圖)> 게시기간 : 2022-05-17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2-05-16 11:00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옛 그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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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접도> 제8폭, 제9폭 제화시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이 <화접도>는 사호 송수면(沙湖 宋修勉, 1847-1916)이 그린 것으로, 다양한 꽃과 나비를 10폭에 걸쳐 담아낸 것이다(그림 1). 제화시로 당나라 말기 시인인 정곡(鄭穀, 849-911), 소식(東坡 蘇軾, 1036-1101), 조선 후기 신위(申緯, 1769-1845)가 쓴 나비와 관련된 시를 차용하여 그림에 정취를 더한다.2) 화순출신 문인화가 송수면 사호 송수면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안여(顔汝), 호는 사호(沙湖)와 함께 만년에는 노호(老湖)라는 호도 사용했다.3) ‘사호’는 화순 남면 사평의 사평천에 기인한 것으로 그가 평생을 보냈던 곳이기도 하다. 오세창의 『근역서화징』에 의하면 송수면이 진사를 지냈으며 묵죽을 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진사는 하지 않았고 초시 합격 이후 벼슬에 연연해하지 않고 시서화로 일생을 보냈다. 송수면은 사군자에서 매화와 특히 묵죽도에 뛰어났으며, 산수와 화조 등 다양한 소재를 다뤘다. 집안에 가전되었던 고화(古畵)와 『고씨화보(顧氏畵譜)』 『십죽재서화보(十竹齋書畵譜)』 등의 여러 화보를 임모하면서 그림공부를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의 묵죽도는 조선 중기 탄은 이정(灘隱 李霆, 1554-1626)의 묵죽도와 유사한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소치 허련과의 교유를 통해 허련의 화법을 배우고 함께 합작한 작품도 남겼다.4) 송수면의 작품은 많이 남아 있지 않은데 한국전쟁 때 거의 소실되었다고 하며, 그의 작품을 모아 사평리에 작은 기념관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호남의 ‘송나비’ 송수면의 작품은 현재 박물관을 비롯해 몇 군데 미술관과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그의 작품 중 유명한 작품은 <묵죽도(墨竹圖)>‧<묵매도(墨梅圖)>와 <화접도>를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화접도>는 ‘송나비’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뛰어난 묘사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화조화의 주요소재였던 나비는 신사임당의 초충도나 정선, 심사정, 그리고 김홍도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김홍도의 <호접도(蝴蝶圖)>는 찔레꽃과 호랑나비 등 다양한 나비를 세밀하고 정확하게 표현하였다(그림 2).
그림2 김홍도, <호접도>, 종이에 채색, 나비그림은 나비 ‘접(蝶, dié)’자가 80세 노인을 뜻하는 ‘질(耋, dié)’자와 중국어로 읽는 발음이 같아 일찍부터 장수를 기원하는 축수도(祝壽圖)의 의미로 그려져 선물용으로 많이 제작되었다. 일호 남계우(一濠 南啓宇, 1811-1890)를 시작으로 이교익(李敎翼, 1807-?), 서병건(徐丙建, 1850-?), 이경승(李絅承, 1862-1927) 등으로 계승된 호접도를 전문으로 그린 화가들이 19세기에 대거 등장하였다. 장식적인 화조화나 초충도 등 회화 수요가 많아지는 사회 분위기도 호접도의 유행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양반층을 비롯해 상업의 발달로 부를 축적한 이들뿐만 아니라 서민에 이르기까지 나비그림은 매우 인기 있는 소재로 사랑받았다. 송수면은 호남지역에서 ‘송나비’라 불릴 정도로 나비 그림에 뛰어났다. 이 <화접도>는 그의 명성에 알맞은 다채로운 나비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이다.
흰나비 호랑나비 청산을 찾으니 <화접도> 열 폭에는 괴석과 여러 종류의 나비, 꽃이 그려져 있다. 각 폭마다 제시와 함께 ‘사호’라는 낙관, 그리고 ‘사호’ 혹은 ‘송씨수면’을 비롯한 십여 가지의 도장이 찍혀있다. 마지막 폭에는 “정해년 봄에 사호가 쓰고 그려서 지산성주 합하에게 바친다(丁亥季春 沙湖書寫 呈于芝山城主閤下)”라는 관지가 있어 이 그림이 1887년에 ‘지산성주’에게 그려준 것임을 알게 한다. 송수면의 화접도는 그야말로 풍요로운 색채의 향연이 펼쳐진, 호젓한 배경에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봄나비의 다양한 모습이 드라마틱하게 표현되어 있다. 선명하고 화사한 채색이나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묘사된 꽃과 나비를 통해 송수면의 기량을 가늠할 수 있다. 특히 갖가지 나비의 모습에서 주의 깊은 관찰이 뒷받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제1폭은 괴석과 함께 분홍색 꽃, 그리고 호랑나비와 제비나비, 흰나비, 노랑나비를 비롯한 여러 마리의 나비가 그려졌다. 제2폭은 패랭이와 호랑나비, 제비나비 등이, 제3폭은 호랑나비, 제비나비, 흰나비, 노랑나비가 파란색의 붓꽃과 함께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의 구성은 남계우의 <화접도> 중 붓꽃과 호랑나비가 있는 구성과도 흡사하다.5) 제4폭에서부터 제10폭까지 유사한 구성으로 국화, 모란을 비롯한 여러 꽃들과 나비들을 함께 그렸다. 그림에 등장하는 나비의 종류는 10여 가지가 넘는다. 가장 많이 그려진 나비는 호랑나비와 제비나비, 노랑나비, 흰나비이다. 이외에도 부처나비, 황오색나비, 작은멋쟁이나비, 남방씨알봉나비, 표범나비 등도 등장한다. 그림 속 나비는 나비도감의 삽화로 쓰여도 손색없을 정도의 사실성을 보여준다. 송수면이 나비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30대 이후라 한다. 이 정도로 섬세하고 세밀한 필치의 묘사력을 보여주려면 나름의 연구와 연습이 필요할 터이다. 이와 관련한 노력의 흔적이 엿보인다. 예를 들면 날아다니는 나비는 입의 긴 대롱을 둥글게 말고 있다거나, 또는 꿀을 빨기 위해 꽃에 앉아 있는 나비는 대롱을 길게 편다거나 하는 나비의 생태적인 특징이 잘 묘사되어 있다(그림 5, 6). 나비를 그리기 위해서는 이처럼 정확한 관찰력과 묘사력이 필요할 것이다. 섬세한 나비그림인 만큼 채색도 공을 들였다. 흰색의 호분과 검은색,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등의 진채의 색채는 마치 수채화와 같은 느낌을 준다. 제시에서도 날개의 다채로운 색채에 대해 “한 쌍의 더듬이는 철사처럼 말렸고, 두 날개에는 금가루가 칠해져 있네(翅輕於粉薄於繒 長被花牽不自勝).”라 묘사하고 있다. 6)
그림 5 제8폭 대롱을 말고 있는 나비 그림 6 제1폭 대롱을 편 나비 나비와 함께 그린 꽃들 역시 순수한 우리 꽃이다. 패랭이꽃, 술패랭이꽃, 붉은 국화, 파란 붓꽃, 장미, 원추리 등 여러 종류이다(그림 8). 송수면이 남긴 《화조잡화권(花鳥雜畵卷)》에는 다양한 꽃이 그려져 있는데, 꽃의 모양이나 모습을 연습한 후에 이를 바탕으로 그려진게 아닌가 생각된다(그림 7).
그림 송수면, 《화조잡화권》 중 부분, 19세기말~20세기초, 종이에 수묵, 25×1580cm, 개인소장 <화접도>에 그려진 꽃과 함께 그린 괴석은 비교적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다. 윤곽선을 그려 형태를 나타내고 살짝 음영을 가하였고 거기에 이끼점을 찍었다. 시원스러운 공간감을 위해 바위의 묘사는 자제하여 배경을 넉넉하게 구성하였다. 바위 주변에는 엷은 초록으로 작은 풀들을 그려 정원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호접도는 대부분 축으로 그려져 상단에 제발, 중단에 군접(群蝶), 하단에 배경을 두는 3단 구성을 하고 있다. 긴 축으로 인해 생긴 공간에 나비들을 군접형태로 묘사하여 효과적으로 배치하였는데, 이는 남계우의 화면구성과 그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7) 거기에 배경으로 화훼와 괴석이 함께 등장하는 것은 남계우 이후 19세기 말 이후 작품들에서 보이는 특징으로, 송수면은 거기에다 나비를 많이 그려넣어 장식적인 면을 강조하는 형태로 자신만의 화접도를 완성해내었다. 시골 선비화가의 풍격(風格) 송수면의 <화접도>는 갖가지 종류의 나비를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송나비라 불렸다는 그의 나비그림에서의 명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산수화도 다수 남아 있는데 주로 화보를 임모(臨摸)한 것들로, 특히 『고씨화보』를 모본으로 하여 조금씩 변화를 준 것들이다. 특별히 독창적이지는 않지만 그가 화업의 지경을 두루 넓힌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이다. 송수면의 특장은 매화와 대나무 그림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 둘을 번갈아 그린 예도 있다. 묵매와 묵죽도는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며, 앞서 언급했듯이 조선 중기 화풍의 영향이 엿보인다. 8) 한 붓으로 줄기를 그리는 방식이나 꽃 표현에서 고식(古式)을 띤다. 묵죽의 경우에도 화보를 통해 습득했으므로 전통적인 표현이 두드러진다. ‘시골 선비화가의 소담한 화격(畵格)으로 여기적(餘技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평이 있지만, 다양한 화제를 능숙하게 다룬 송수면의 회화는 고풍(古風)의 맛을 보여준다. 궁벽한 시골에서 마땅히 스승도 없었고 오로지 화보와 고화를 통해 습득한 실력이지만, 송수면의 그림에는 소박하면서도 담담한 정취가 담겨 있다. 그야말로 ‘시골 선비화가의 풍격’이다.
참고문헌 『사호 송수면의 회화세계』, 국립광주박물관‧부국문화재단, 2007.
『화순출신 작고작가 특별전-다시 피어나는 예향의 꽃』, 화순군, 2012. 박종석, 『세한을 기약하고-염재 송태회의 삶과 예술』, 굿디커뮤니케이션스, 2010. 이선옥, 「사호 송수면(1847-1916)의 생애와 회화」, 『사호 송수면의 회화세계』 (국립광주박물관‧부국문화재단, 2007), pp. 129-149. 이소연, 「一濠 南啓宇(1811-1890) 胡蝶圖의 연구」, 『미술사학연구』(242‧243호, 2004), pp. 291-318. 나비 참고사이트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
https://ko.wikipedia.org/wiki/ 1) 鄭穀, 「趙璘郎中席上賦蝴蝶」, 『全唐詩』 권674.
2) <화접도>의 순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순서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화제시를 보면 제1폭과 2폭, 8폭과 9폭을 서로 바꾸어야 더 자연스럽다. 1폭과 2폭은 신위의 「胡蝶靑山去」를 빌려 썼으며, 8폭과 9폭은 정곡의 「趙璘郎中席上賦蝴蝶」이다. 각각 배치를 바꿔서 보아야 할 것이다. 3) 사호 송수면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은 이선옥, 「사호 송수면(1847-1916)의 생애와 회화」, 『사호 송수면의 회화세계』 (국립광주박물관‧부국문화재단, 2007), pp. 129-149를 참고하였다. 4) 송수면은 1883년 소치 허련을 만나 그림에 대한 자문을 받았는데, 이때 매화도, 묵죽도 등을 함께 제작하였고, 허련으로부터 묵죽(墨竹) 체본을 받았다고 한다. 박종석, 『세한을 기약하고-염재 송태회의 삶과 예술』(굿디커뮤니케이션스, 2010), pp. 27-33 참조. 5) 일호 남계우는 19세기 활동했던 문인화가이다. ‘남나비’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호접도에 뛰어났다. 어려서부터 나비를 좋아해 나비를 쫓아 동리밖까지 가서 잡아가지고 돌아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세심한 관찰력과 정확한 사생력을 바탕으로 많은 나비그림을 남겼다. 남계우에 대해서는 이소연, 「一濠 南啓宇(1811-1890) 胡蝶圖의 연구」, 『미술사학연구』(242‧243호, 2004), pp. 291-318 참조. 6) 이선옥, 위의 논문, pp. 140-141. 7) 이소연, 위의 논문, pp. 309-310. 8) 이와 관련해서는 이선옥, 「조선 중기 매화도 화풍의 특징과 영향」, 『미술사학연구』(한국미술사학회, 2006. 3) 참조. 글쓴이 김소영 한국학호남진흥원 일반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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