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이야기] 매화꽃 향에 실려 온 봄소식 게시기간 : 2022-03-18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2-03-16 14:16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옛 그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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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古木)의 매화 두 그루가 서로 뒤엉켜 백매와 홍매꽃을 앞다투어 피워낸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매화는 매서운 추위를 뚫고 이른 봄이 되었음을 알린다. 매화는 지조와 군자를 상징하여 많은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이 중국 북송시대 항주(杭州)의 서호(西湖)가 내려다보이는 고산(孤山)에 은거해 살았던 임포(林浦, 967-1028)이다. 그는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았다고 하여 세상에서는 ‘매처학자(梅妻鶴子)’라 하였다.1) 이러한 임포의 일화를 그린 ‘고산방학(孤山放鶴)’의 테마는 겨울날 산속에 학과 함께 그려져 고사인물도의 전형으로 꼽힌다. 임포는 매화시를 많이 남겼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산원소매(山園小梅)」일 것이다. 이 시는 매화 그림의 단골 화제(畵題)로 사용되었으며, 많은 화가들이 시구를 빌려다 자신들의 감성으로 매화를 그렸다. 미산 허형도 <매화도12폭병풍>에 이 시를 화제로 삼아 화폭에 담아냈다(그림1). 미산 허형, 소치의 아들이자 남농의 아버지 미산 허형(米山 許瀅, 1862-1938)은 소치 허련(小痴 許鍊, 1809-1892)의 아들이자 남농 허건(南農 許楗, 1907-1987)의 아버지로 더 알려져 있다. 근대로 이어지는 변환기에 활동한 허형은 호남화단에서 과거와 현대를 잇게 한 교량적 위치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허형은 화가로서 허련의 화격(畵格)을 잇지 못하고 허건과 허백련의 화명에 가려졌다는 평가를 받았다.2)
1862년 소치 허련의 네 명의 아들 중 막내로 전주에서 태어난 허형은 이내 진도로 옮겨 운림산방에서 성장하였다.3) 허련은 총애하던 큰아들 미산 허은(米山 許溵, 1831-1865)이 일찍 세상을 뜨자 허형에게 그림에 소질이 있는 것을 보고 그림을 가르쳐 운림산방의 대를 잇게 하였다. ‘미산’이라는 호도 형의 것을 물려받게 했다. 그래서 허은을 ‘대미산(大米山)’, 허형을 ‘소미산(小米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허형의 다른 이름은 ‘준(準)’인데, 이 이름은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가 명단에 올라와 있으며 간혹 ‘허준’이라는 낙관이 있는 작품이 발견된다(그림 2). 허형은 무정 정만조(茂亭 鄭萬朝, 1858-1936)를 비롯해 문장가였던 혜사 박진원(蕙史 朴晉遠, 1860-1932) 등과 교유하였다.4) 하지만 아버지 허련처럼 좋은 스승도 없었고 폭넓은 문화적 교류를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지역 안에 국한되어 새로운 조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전통화풍을 이어갔다. 허련에게서 간헐적으로밖에 서화지도를 받지 못한 허형은 ‘작대기 산수’를 그려야 한다고 배웠으나 이를 온전히 터득하지는 못했다. 허백련에게 서화를 가르칠 때 허백련이 작대기 산수에 대해 물었는데 명확하게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다만 “아마 두껍고 무거운 산수를 말하는가 싶은데 속이 비어서인지 붓끝이 말을 안 듣는다”라고 하였다고 한다.5) 아버지 허련이 강조한 남종문인화의 화격을 이루지 못했던 것에 대한 자신의 부족함을 이야기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림 2 허형(허준), <산수도>, 종이에 엷은 채색, 103×35cm, 전남대학교박물관 소장 허형은 진도와 강진, 목포 등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는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안정되지 못한 생계 때문이었다. 넉넉지 못한 생활 때문에 허형은 다작(多作)을 했다. 68세라는 늦은 나이에 개인전을 열기도 했고 선전(鮮展)에 입선하기도 했으나 화가로서의 처지도 그렇고 생활고는 여전했다. 그 와중에도 허형은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운림산방의 화업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고매(古梅)에 깃든 부드러운 봄바람 허련의 화법을 이은 허형은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으나 산수화를 비롯해 모란과 노송, 백납도, 사군자 등의 다양한 화제를 능숙하게 다루었다. 특히 매화그림에서 그의 기량이 잘 드러나는데 <매화도12폭병풍>은 허형의 매화그림 중 가장 대작이고 수작으로 꼽힌다.
한 그루의 매화를 12폭의 넓은 화면에 펼쳐 그린 이 그림은 노매(老梅)의 힘찬 형태와 만개한 매화꽃을 담아냈다. 화면 오른쪽 하단에서부터 구불거리며 올라가는 매화나무는 양쪽으로 가지를 뻗으며 화면을 가득 채운다. 진한 먹을 사용하여 구불구불하고 거친 나뭇가지를 표현하고 홍매와 백매를 그렸다. 화면 구성에서 매화가지를 왼쪽으로 길게 하여 비대칭을 이루는 회화적인 감각이 돋보인다. 줄기는 다양하게 각도를 꺾어 농묵을 사용해 다소 거칠지만 힘차게 표현하였다. 길게 뻗어나가는 매화가지에는 붉은 꽃송이, 흰 꽃송이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홍매는 눈에 띄게 밝고 선명한 분홍색으로 그렸으며 백매는 꽃봉우리와 반쯤 피거나 활짝 핀 꽃들이 다채롭다. 활짝 핀 꽃송이만으로 화면 전체에 매화향이 은은히 떠도는 듯하다. 줄기의 내부에는 필선을 가하지 않고 윤곽선 부분에 농묵으로 먹점을 찍어 입체감을 살렸다. 이 작품처럼 여러 폭의 병풍에 한 두 그루 매화를 펼쳐 그리는 형식은 매화의 상징성보다도 매화의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으려 한 것으로, 19세기 조희룡의 매화도에서 시작하여 허련의 작품에서 자주 사용되는 형식이다.
허련의 매화그리는 방식을 이은 허형은 화면 오른쪽 하단에서 뻗어나가는 구도 등 화면을 구성하는 것에서부터 아버지 허련의 매화도를 참고했다(그림 3). 허형의 매화도는 전체적으로 허련에 비해 먹이 진하고 물기가 많아 습윤한 느낌을 준다. 허련은 대체로 갈필을 사용하여 수묵으로만 그렸고 허형은 붉은색 등 담채를 사용하면서 감각적으로 화면을 구성하였다. 거친 듯 하나 부드러운 용필(用筆)은 기교적이면서도 당시 근대적인 매화도의 특징을 보인다(그림 4). 감상층이 확대되면서 화려한 형태의 매화도가 크게 유행하여, 허형도 다양한 계층의 주문에 맞추어 각종 매화도를 제작하였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림 1-2 허형, 매화도12폭병풍 부분 전통과 근대를 이은 가교로서의 미산
허형은 허련의 정형적이고 반복적인 경향을 답습하였다는 한계를 지니지만 다양한 소재의 다양한 작품을 제작했다. 이 가운데 여러 주제의 작은 그림이나 글씨 등으로 꾸민 <백납도>병풍은 서로 다른 형태의 틀에 다양한 화재(畫材)를 조화롭게 배치하여 조형미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그림 5). 화조, 사군자, 산수, 인물화 등을 사각형, 원형, 다각형, 꽃모양, 부채모양의 틀 안에 작은 크기의 간단한 형태로 묘사한 것들로, 화보식 구성과 기법을 따르고 있다. 허형이 주문에 응하여 여러 종류의 그림을 제작했던 사실을 보여준다. ‘미산 없이 의재와 남농 없다’라는 말이 있다. 미산 허형은 호남화단의 명맥을 이어오게 한 인물이다. 허련의 화업을 이어받아 허건과 허백련에게 전수하였으며, 이들의 화맥의 기초를 형성시키고 전통남종화의 정신을 이어주었다. 남농 허건은 목포에서 활동하며 ‘남화연구원’을 통해 제자들을 배출했고, 의재 허백련은 광주에 정착하여 ‘연진회’를 열어 후학들을 양성하면서 독자적인 화단을 구축했다. 광주‧전남을 ‘예향’으로 자리 잡게 만드는 데 실질적인 영향을 준 이가 허형인 셈이다. 허형은 전통적 남종화의 계율을 지키며 그의 일생에 걸친 화업에 나름의 의미와 시대정신을 담아내었다. 그의 그림에는 가풍과 전통을 이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풍부한 제재와 기량, 그리고 뛰어난 용필로서 이루어진 화품은 한국 근대화단 특히 호남화단에 있어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 『宋史』卷457, 隱逸列傳上, 林浦.
2) 문순태, 「米山의 繪畵史的 位置」, 『小痴一家四代畵集』(양우당, 1990), pp. 336-372 ; 이태호, 「조선시대 호남의 전통회화」, 『호남의 전통회화』(국립광주박물관, 1984). 3) 허형의 생애는 김현옥, 「米山 許瀅의 生涯와 作品 硏究」(전남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pp. 4-8 참조. 4) 정만조의 『은파유필(恩波濡筆)』에 「다시 미산의 집에서 읊다(復吟米山室)」이라는 시가 있다. 정만조는 허형 집에서 집 주인과 함께 「수선화」 시를 읊는다고 하였다. 정만조 저,박명희‧김희태 역, 『역해 은파유필』(도서출판 온샘, 2020), pp. 319-320 참조. 5) 이선옥, 『호남의 감성으로 그리다』(전남대학교출판부, 2014), pp. 69-70. 참고문헌 및 인용출처 『雲林山房畵集』, 전남매일신문사, 1979.
『호남의 전통회화』, 국립광주박물관‧광주박물관회, 1984. 『小痴一家四代畵集』, 양우당, 1990. 『남종화의 거장 소치 허련』, 국립광주박물관, 2008. 『전남대학교박물관 명품도록』, 전남대학교박물관, 2015 김상엽, 『소치 허련』, 돌베개, 2008. 김현옥, 「미산 허형의 생애와 작품 연구」, 전남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문순태, 「米山의 繪畵史的 位置」, 『小痴一家四代畵集』(양우당, 1990), pp. 336-372. 박수홍, 「林人 許林(1918-1942)의 회화 연구」, 명지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3. 이선옥, 『호남의 감성으로 그리다』, 전남대학교출판부, 2014. 이태호, 「조선시대 호남의 전통회화」, 『호남의 전통회화』, 국립광주박물관‧광주박물관회, 1984. 정만조 저, 박명희‧김희태 역, 『역해 은파유필』, 도서출판 온샘, 2020. 글쓴이 김소영 한국학호남진흥원 일반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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