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초대석] 죄 지은 보리ㆍ그리고 그의 항변_위백규의 소회시 게시기간 : 2021-12-08 07:00부터 2030-12-17 16:16까지 등록일 : 2021-12-07 09:42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명시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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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백규가 지은 소회시(所懷詩) 이 시는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 1727~1798)가 그의 나이 41세 때 지은 「죄맥」의 앞 4구이다. 위백규의 자는 자화(子華)이고,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존재는 그의 호이다. 장흥부 고읍방(古邑坊) 계춘동(桂春洞)에서 아버지 진사 위문덕(魏文德)과 오일삼(吳日三)의 딸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25세 때 충청도 덕산에 살던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를 찾아가 사제 관계를 맺었고,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글 「정현신보(政絃新譜)」(33세), 「봉사(封事)」(50세), 「만언봉사(萬言封事)」(70세) 등을 썼다. 이렇듯 현실에 바탕을 둔 개혁 의식을 지녔기 때문에 위백규를 18세기 호남을 대표하는 실학자 중 한 사람으로 지칭하고 있다. 「죄맥」은 총 84구로 이루어진 장편시인데, 인용한 4구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새겨보면 다음과 같다. 곡식이라 불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수백 가지인데, 그 중에 미움 받고 있는 것은 보리뿐이다. 보리는 수많은 나쁜 자질로 곡식 세계를 속여서 궁핍해 하는 백성들 사이 식량에 참여하였다.
위백규는 수백 가지의 곡식 중에서 보리만 미움을 받고 있다 하였다. 그리고 보리는 타고난 본래 나쁜 자질로 수백 가지의 곡식들을 속여 궁핍한 백성들의 식량에 참여했다고 하였다. 여기서 잠깐 작품 원문에 나온 한자 ‘증(憎)’과 ‘중악질(衆惡質)’의 의미를 새길 필요가 있다. 이 두 한자를 통해 위백규의 평소 보리 인식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증(憎)’은 “미움을 받는다”는 뜻이고, ‘중악질(衆惡質)’은 “온갖 나쁜 자질”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이러한 한자를 사용한 것을 보면, 위백규는 평소 보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리고 그 마음을 토로한 시가 「죄맥」이라 할 수 있다.
2. 왜, 보리가 죄를 지었다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위백규는 어떤 점에서 보리가 죄를 지었다고 말한 것인가? 다음의 「죄맥」 일부분을 읽어보자.
보리밥을 먹은 다음에 일어나는 생리적인 형상을 재미있게 나타내었다. 보리밥은 쌀밥에 비할 때 겉이 까칠까칠하여 입에 넣어 오물오물 씹으면, 쉽게 씹어지지 않는다. 위 시의 처음 부분에서 “입에서 이미 감내하기 어려웠으나”라고 말한 것은 입에 들어간 보리밥이 쉽게 씹히지 않은 것을 뜻한다. 입에서 씹힌 보리밥은 점점 가슴 아래 부분으로 내려가는데, 아래 부분으로 내려갈수록 사특함을 드러낸다고 하였다. 바로 위장으로 내려갈수록 소화가 안 되는 모습을 “사특함을 드러내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 소화가 안 되어 마침내 설사를 하기에 이르고, 또한 방귀 되어 악취를 뿜어내니 마치 썩은 듯한 냄새가 발동해 얼굴을 뒤덮는다라고 하였다. 이어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묽은 설사를 하러 급히 변소로 향하는데, 이때 노인이라면 다리가 저려 마비되고, 건강한 아이라도 수척해져서 결국 뼈만 앙상하게 남는다 하였다. 다시 말해 「죄맥」 시에 나온 내용대로라면, 보리를 밥으로 지어 먹었는데, 소화가 잘 안 되어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니, 이것이 보리의 죄가 된 셈이다. 「죄맥」 시는 보리밥을 먹은 다음의 일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나타내었다. 곧, 표현이 사실적(寫實的)이라 말할 수 있다. 사실적이란 사물이나 현상을 실제로 있는 그대로 그려 내는 것을 말한다. 즉, 위백규는 장흥의 향촌 사족이기는 했으나 직접 농사를 지어야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가난한 삶을 살았다. 따라서 쌀밥보다는 보리밥을 더 자주 먹었을 것인데, 이로써 「죄맥」을 통해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
3. 보리는 죄 없다 스스로 항변하는데 이렇듯 「죄맥」에서 보리는 완전히 죄를 지은 물건 취급을 당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고도 죄를 지은 물건 취급을 당했으니, 보리는 억울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위백규는 「죄맥」을 이어 146구로 이루어진 「맥대(麥對)」라는 작품을 지었는데, 시 제목을 풀어본다면 “보리의 대답”이다. 「죄맥」을 통해 보리를 죄 지은 물건 취급을 한 위백규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일까? 이번에는 「맥대」에서 180도 태도를 바꾸어 보리의 항변을 전달하고 있다. 다음 내용을 읽어보자.
2장에서 인용한 「죄맥」 시 부분을 읽고, 곧바로 이 「맥대」 시를 읽어보면, 내용이 바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보리는 말하기를 “사람들은 모두 청결하지 못해 더러운 찌꺼기를 쌓다 보니 병이 들었을 뿐 내가 병이 들게 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노인이 마비되고, 건강한 아이가 수척해진 것은 모두 찌는 듯한 더위 때문이다. 설사로 인해 내장이 젖어 노인이 마비되고 건강한 아이가 수척해진 것이 아니며, 고황에 병든 사람을 자주 보겠다.”라고 하였다. 「죄맥」 시의 보리는 일방적으로 당하는 처지에 있었다면, 「맥대」 시에 등장한 보리는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을 열심히 말하고 있다. 곧, 작자 위백규는 「맥대」 시에서 보리를 의인화시켰는데, 우화적(寓話的) 수사법을 활용한 것이다. 마치 보리를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생각하여 인간과 대화를 나누는 듯이 나타내었다. 마지막 부분에서 말한 ‘고황’은 생체적으로는 심장의 아래쪽과 횡격막의 윗부분 사이를 가리킨다. 그런데 작자는 “고황에 병든 사람 자주 보겠소”라고 하였다. 원래 “병이 고황 사이에 들어가면 치료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즉, 가난에 찌들어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다 보니, 고황에 병든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와 같이 위백규는 당시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직접 말하지 않고, 보리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렸다.
4. 위백규, 보리를 통해 소신을 밝히다 「맥대」 시를 조금 더 인용해보겠다. 다음의 「맥대」 시를 읽어봐야 위백규가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한 내용을 진정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보리는 말하기를 “고금의 일을 보면, 뜻밖에 일어난 화는 고량진미에서 생겼다. 쌀밥 먹는 것 매우 아름다운 일이기는 하나 사치에 길들여지면 결국 재앙을 만난다. 그러니 그대는 거친 밥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선을 위해 더욱더 힘을 쏟아라. 이미 성현 무리에 들어간 그대는 스스로의 처지를 왜 생각하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보리밥이 아닌 쌀밥을 먹는 일은 좋은 일이기는 하나 그러다보면, 결국 재앙을 만날 수 있다 하였다. 다시 말해 음식에 신경 쓰지 말고, 성인의 무리에 든 사람으로서 선을 위해 힘을 더욱더 쏟아라 말하였다. 이는 보리가 한 말이기는 하나 사실 작자 위백규가 스스로에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보리 스스로 죄 짓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내용으로 시작한 「맥대」. 위백규는 이 「맥대」 시를 통해 보리의 항변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겠다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보리는 같은 농작물이지만 벼에 비할 때 통상 천하게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주로 일반 서민들이 부르는 노동요 중의 하나인 보리타작 소리와 같은 민요에 주로 쓰였다. 그런데 위백규는 그러한 보리를 소재 삼아 「죄맥」, 「맥대」, 「청맥행(靑麥行)」 등의 작품을 지었다. 유학자의 입장에서 보리를 소재로 시를 짓는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닌데, 사실 위백규 삶 자체가 농사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기에 이러한 점을 따져보면 그리 낯설지 않은 모습이기는 하다.
<참고 자료> 『장자』
위백규, 『존재전서』 위백규, 『존재집』 김석회, 『존재 위백규 문학 연구 -18세기 향촌사족층의 삶과 문학-』, 이화문화사, 1995. 글쓴이 박명희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의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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