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窓] 신석기시대의 광양 벚굴과 고려시대의 벌교 꼬막 게시기간 : 2021-11-29 1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1-11-29 10:47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문화재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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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년의 역사, 광양 돈탁 패총의 벚굴 2011년 1월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현장에서 여러 유물이 출토되었다. 어느 유적이건 조사를 하면 당시대의 유물들이 출토된다. 유독 눈이 가는 유물이 있었다. “벚굴” 패각이다. “갓굴”이라고도 한다. 광양 오사리 돈탁 패총유적이다. 광양시 지원으로 목포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하였다. 2012년 보고서가 간행되었다. 광양은 지금도 “벚굴”이 지역의 명품 특산물이다. 섬진강 기수역의 특성이라 할 것이다. 패총유적이 신석기시대라 하니 “광양 벚굴”의 역사성이 1만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신석기시대의 패총 가운데 신안 가거도와 완도 여서도, 여수 안도패총에서는 외양암초성 패류인 두드럭고둥, 소라, 삿갓조개, 홍합류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군산 가도와 광양 돈탁, 광양 의암패총에서는 내만성패류인 참굴이 주를 이루고 있다. 패총유적에서 출토된 패류는 52종인데 앞의 6종이 주를 이루므로 이들이 선사시대 우리 지역의 특산물이라 하겠다. 갓굴(벚굴)은 지금도 광양의 특산물로 널리 알려져 있어 그 오랜 역사성을 가늠할 수 있다. 홍합의 경우도 『세종실록지리지』 전라도 공물조에 올라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강진, 고흥, 광양, 보성, 순천, 영암, 진도, 장흥의 토산조에 기록되어 있어 선사시대 이후 지역 특산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어류는 모두 42종인데 군산 노래섬과 완도 여서도패총에서 출토된 어류는 전체 어류 가운데 참돔이 50% 가량을 차지한다. 또한 노래섬 패총에서 민어가 10%를 점하고 있어 서해안의 대표적인 어종인 점과 연관된다 하겠다. 광양 의암과 돈탁패총에서는 내만성 어종인 감성돔, 숭어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군산 노래섬패과 완도 여서도패총에서는 복어가 상당량 점하고 있다. 출토유물 가운데 점유빈도가 높은 이들 어종이 당시의 특산물이라 하겠다.
광양 오사리 돈탁패총 출토 갓굴[벚굴] 광양 벚굴 보성 호동유적의 고려시대 패총유적과 벌교 꼬막 고려시대의 패총유적에서 주로 확인되는 것은 꼬막이다. 이는 마한문화연구원에서 2008년에 발굴 조사한 보성 호동유적의 2개소 패총을 통해 알 수 있다. 패각의 범위는 11m에서 20m, 최대 두께 100㎝로 층위는 8개층인데 꼬막의 비율이 87%에 이른다. 사례가 드문 역사시대 패총유적으로 주 구성층이 꼬막인 고려시대 패총 유적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호동 유적은 보성군 벌교읍에 속하는데 벌교 꼬막 산지와 바로 이웃한 곳이다. 꼬막은 고려시대 후기의 물산을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 『세종실록지리지』 전라도 공물조에 감합(甘蛤)으로 올라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고흥, 보성, 장흥, 해남의 토산조에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 이후 지역 토산물임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역사성이 이어져 보성·벌교 꼬막은 2009년 2월 25일 수산물 지리적표시 제1호로 등록되었다. 보성 벌교-순천 갯벌은 2021년에 신안 갯벌, 고창 갯벌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보성 호동 유적 패총 단면. 고려시대 패총유적으로 꼬막이 87%를 차지한다. 호동 유적 패총 출토 꼬막의 각장(殼長).
1123년(인종 1) 고려를 다녀간 서긍(徐兢, 1091~1153)의 사행보고서인 『선화봉사고려도경』[제23권 잡속(雜俗)] 토산조의 기록은 중국에까지 알려진 전라도 토산에 대한 내용이다. 나주도(羅州道)의 소나무가 과실과 안주, 국과 적에 쓰인다는 기록이다. 이 기록에 이어서 “나주에서는 백부자(白附子)ㆍ황칠(黃漆)이 나는데 모두 조공품[土貢]이다.”는 내용이 있다. 백부자는 관백부(關白附), 노랑돌쩌귀라고 하며 진통작용이 있어 약재로 쓴다. 황칠나무의 황금색 수액은 고급 칠의 재료로 뛰어나고 귀하여 왕실에서 사용하였다. 중국 당나라 재상 두우(杜佑, 735∼812)가 편찬한 『통전(通典)』에 “백제의 황칠수(黃漆樹)는 6월에 진액을 취해서 기물(器物)에 칠하는데 황금같이 그 빛이 번쩍번쩍 빛나서 안광을 빼앗는다.”고 하였다. 백제 때부터 특산물로 중국의 사서에 올라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은 황칠이라는 시에서 ‘궁복산에 가득한 황칠나무를 그대 보지 않았던가(君不見弓福山中滿山黃)’라 하여 완도에 황칠나무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완도 정자리 황칠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이다. 1271년(원종 12) 6월 23일조의 『고려사』 기록에 몽골에서 고려 조정에 희귀한 물품을 요구한다는 내용이 있다. 진도에서 남해와 함께 ‘청등(靑藤)’, ‘팔랑충(八郞虫)’, ‘비자나무 열매[榧實]’, ‘동백 열매[冬栢實]’가 난다고 하였다. 이 시기에 중국까지 알려진 전라도의 특산물인 셈이다. 청등과 팔랑충은 약재로 알려졌다. 진도군 조도면에 속한 청등도(靑藤島)라는 섬 이름이 지금도 보인다. 천연기념물인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는 수령 600년이 넘는데 고려시대의 임회현이 있던 곳이다. 고려 조정을 통하여 몽골에 보내진 ‘비자나무 열매’를 땄던 나무일 성싶다. 수중문화재 출수 고려 목간을 통해 본 특산물 고려시대 목간을 통해서도 특산물의 내용과 유통을 알 수 있다. 1131년(인종 9)의 태안선은 탐진현(耽津縣)의 도자기 운반선이다. 탐진현은 지금의 강진군 남부에 있던 고려시대 고을명이다. 1208년(희종 4)의 마도 1호선은 회진현(會津縣, 나주), 죽산현(竹山縣, 해남), 수령현(遂寧縣, 장흥), 안노현(安老縣, 영암)의 곡물[백미, 중미, 콩[太, 豆], 벼[租], 조[粟]]과 발효식품[젓갈[魚醢], 고등어 젓갈[古道醢], 게 젓갈[蟹醢], 메주[末醬], 알젓갈[卵醢]]등을 운반하였다. 1197년(신종 1)~1213년(강종 2)의 마도 2호선은 장사현(長沙縣, 고창), 무장현(茂松縣, 고창), 고부군(古阜郡, 정읍), 고창현(高敞縣, 고창)의 백미[白米], 중미[中米], 콩[太, 豆] 등 미곡류, 메주[末醬], 누룩, 알젓갈[卵醢], 꿀[精蜜], 참기름[眞] 따위를 실어 날랐다. 1265년(원종 6)~1268년(원종 9)의 마도 3호선에는 여수현(呂水縣, 여수)의 생전복[生鮑], 전복젓갈[生鮑醢], 마른 홍합[乾䗊], 홍합젓갈[䗊醢], 물고기기름[魚油], 육포[개고기포], 상어[沙魚], 직물, 겉보리[皮麥]]이 실려 있었다. 전라도의 각 군현에서 개경의 세력가에게 보낸 점을 보면 품질이 뛰어난 지역 특산물이다. 고려시대의 전라도 특산물 가운데 손꼽히는 것은 고려 청자이다. 강진 대구면 일대에 188개소, 해남 산이면 진산리와 화원면 신덕리 일원에 227개소, 부안 진서면 진서리와 보안면 유천리 일원에 77개소의 청자 요지가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을 보면 자기소(磁器所)는 전국 120개 군현에 139개소가, 도기소(陶器所)는 152개 군현에 185개소가 있었다. 이중 전라도에는 30개 군현에 31개의 자기소, 29개 군현에 39개의 도기소, 모두 70개소가 있었다. 중국 북송의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이나 태평노인의 『수중금(袖中錦)』에 고려의 비색청자(翡色靑瓷)를 천하제일로 기록하고 있다. 고려시대 내내 전라도는 청자 생산의 중심지로 천하제일이라 할 것이다. 천하에 소문난 삼향(三鄕)의 대화살(竹箭) 고려 후기 조선시대 전기의 특산물은 『세종실록지리지』(1454, 단종 2)와 『신증동국여지승람』(1481, 성종 12/신증본 1530, 중종 25)을 통해 알 수 있다. 제철 수공업 특산물을 생산했을 철장(鐵場)은 6개 군현에 7곳이 있고 연철과 정철을 생산하였다. 생산량은 5,404근 12냥쭝이고 군기감, 선공감, 전주 등에 바쳤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토산조에 철이 기록된 곳은 무주(대덕산), 금산, 진산[월외리(月外里)], 광양[목곡(木谷)], 광산[장불동(長佛洞)], 동복(무등산), 무안[철소리(鐵所里)], 창평(무등산), 함평[사내포(沙乃浦), 옹암포(甕巖浦)], 화순(냉천)이다. 주철[水鐵]은 무안[해제리(海際里)], 동(銅)은 진산[달왕산(達往山)], 자석(磁石)은 진산[암정리(巖井里)]에서 나왔다. 자연동(自然銅)은 순창, 강진, 고흥, 영광, 창평, 해남[황원리 망포(芒浦)]에서 나왔다. 소금을 생산했던 염소(鹽所)는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12개 군현에 60개소, 가마 수는 2개 군현에 143개소가 실려 있다. 특히 나주목은 염소가 35개소, 영광군은 가마가 113개소가 있었다. 염창(鹽倉)은 9개 군현에 있었는데 염간(鹽干)은 1,725명, 소금 생산량은 5,771석이었다. 나주목은 오늘날의 신안군 섬 지역을 관할하고 있었으므로, 이 기록은 신안 지역에 있었던 염소, 염창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나주목 염창조에는 “나주 판관(判官)이 주장하여 민간의 면포(綿布)와 무역해서 국용(國用)에 이바지한다.”라는 기록이 있어 염창의 관리를 나주목의 판관이 했고 면포와 무역하여 국용으로 썼음을 알 수 있다. 영암 염창조에는 “고려 공양왕 원년(1389) 기사에 해진(海珍) 백야포(白也浦)의 염간을 옮겨 붙여서 군에게 창고를 설치하고 인하여 해남창(海南倉)이라 하고, 군사(郡事)로 하여금 주장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다소(茶所)는 무장현 2곳[용산(龍山)·재역(梓亦)], 장흥도호부 13곳[요량(饒良)·수태(守太)·칠백유(七百乳)·정산(井山)·가을평(加乙坪)·운고(雲高)·정화(丁火)·창거(昌居)·향여(香餘)·웅점(熊岾)·가좌(加佐)·거개(居開)·안칙곡(安則谷)]이 있다.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비(보물)에는 859년에 국왕이 차와 약을 내린다는 내용이 있는데, 차 관련 금석문 기록으로는 가장 오래되었다. 토산으로 차(茶)가 기록된 곳은 고부, 고창, 무장, 부안, 순창, 옥구, 정읍, 태인, 흥덕, 강진, 고흥, 광양, 광산, 구례, 나주, 남평, 능성, 동복, 담양, 무안, 보성, 순천, 낙안, 영광, 영암, 장성, 장흥, 진원, 함평, 해남, 화순이다. 보성 전통차 농업시스템과 장흥 발효차 청태전 농업시스템은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죽전(竹箭)은 『신증동국여지승람』 토산조에 6도 63개 고을 94곳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전라도가 24개 군현에 47개소로 가장 많다. 광주 1개소, 전북 5개 군현에 7개소, 전남 19개 군현에 32개소이다. 특히 나주의 삼향죽은 천하에 제일이라고 알려졌다. 전라도관찰사 김종직이 지은 「금성곡(錦城曲)」12수 가운데 7수에서 읊은 내용을 텅해 일 수 있다. 전라도 관찰사 부임은 1487년 5월 27일이다. 이무렵 나주 순행길에 삼향죽을 보았을법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삼향 전죽(三鄕箭竹)”을 궁궐의 후원에 심기 위해 전라도 관찰사에게 50포기씩 캐어 보내도록 하고, 어통개전(御筒介箭)과 어시(御矢)를 만드는 데 쓰이고, 궁중에서 각종 행사 때 상품으로 하사되고, 가장 굳세고 강하여 온 나라에서 쓰는 화살대가 모두 삼향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점필재집』』) 목포대학교박물관·광양시, 『광양 오사리 돈탁패총』, 2012. 목포대학교박물관·전라남도·완도군, 『완도 여서도 패총』, 2007. 립광주박물관, 『광주 신창동 유적 사적 지정 20주년 기념 특별전 2,000년 전의 타임캡슐』, 2012. 재단법인 마한문화연구원·한국도로공사, 『보성 호동·고흥 신촌유적』, 2011., 239~240쪽. 김희태 이명헌 외, 「삼향 죽전(三鄕 竹箭) 향토지명과 토산물의 문화자원화 방안」『향토문화』34, 향토문화개별협의회, 2015. 글쓴이 김희태 전라남도 문화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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