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의병] 남도 의병 역사박물관 소식 게시기간 : 2021-06-29 17:00부터 2030-12-24 13:21까지 등록일 : 2021-06-23 13:37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남도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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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도민 염원 ‘남도 의병 역사박물관’ 건립 청신호
남도 의병 역사박물관 사업 계획 부지 전남도가 200만 도민의 염원을 담아추진한 ‘남도 의병 역사박물관’ 건립사업이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립박물관 설립타당성 사전평가를 통과했다. 문체부 사전평가는 공립박물관의 부실 운영을 차단하기 위해 건립 계획의 적정성, 전문성 확보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절차로 박물관 건립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절차다. 13일 전남도에 따르면 남도 의병 역사박물관은 영산강이 인접한 나주시 공산면 신곡리 23-3 일원 36만㎡에 사업비 440억 원(국비 169)을 들여 연면적 8300㎡ 규모로 의병과 의병정신에 대한 전시, 교육, 추모, 체험을 위한 복합공간으로 들어설 예정이다. 문체부의 사전평가 통과율은 27%로 극히 낮고, 처음 신청해서 통과되는 사례가 거의 없었으나 전남도가 면밀한 준비 끝에 사전평가를 한 번에 통과하면서 2025년 개관이 가능해졌다. 사전평가는 3차례에 걸쳐 서면평가, 현장평가, 최종평가로 진행됐다. 그동안 전남도는 박물관 건립계획을 꼼꼼하게 준비하고 다듬었다. 의병사, 건축, 전시 등 분야별 전문가 자문과 토론을 통해 박물관 설립 필요성과 타당성을 확보하고, 관람객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전시계획을 마련하는데 주력해왔다. 또 박물관에서 전시, 연구할 소중한 의병유물 확보를 위해 전국 의병도시와 충의사현창회, 의병문중과 후손, 광복회 등을 찾아가 유물의 기증과 기탁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국립광주박물관, 전남도도서관, 순천대박물관 등 15개 기관과 유물 공유 협약도 체결하고, 소개 영상도 제작해 국민적 관심과 공감대 확산에 노력했다.
황현 선생 초상화 현재까지 692점의 의병 유물을 확보했고, 한말 애국지사인 매천 황현선생의 유물(보물 제1494호인 황현선생 초상과 문화재 91점)도 기탁받았다. 최종평가에서 전남도는 전국에서 활동했던 무명의 의병인 농민, 승려, 여성들을 테마로 이름 없이 조국을 위해 헌신한 이름 없는 의병들을 소개하고, 영웅적 전투 상황 등을 유물과 기록 그리고 최신의 디지털콘텐츠를 첨가해 주목 받았다. 전남도는 앞으로 문체부 최종평가 시 제시된 학예인력 및 유물 위주의 전시계획을 마련하여 보완서류를 제출하고, 행정안전부의 지방재정 투자심사, 자체적인 공유재산관리계획 등 행정절차를 올해 말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이후 2022년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역사테마 박물관 조성을 위해 국제현상공모에 나설 방침이다. 김병주 전남도 관광문화체육국장은 “남도 의병 역사박물관 사전평가 통과는 200만 도민의 관심과 성원 덕분이며, 앞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의병박물관으로, 자랑스런 의병정신을 세계인들과 소통하는 공간, 그리고 매력적인 생태 경관을 품은 에코 뮤지엄으로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 고 말했다. ■ 을묘왜변 양달수 양달사 의병 형제, 백성 구한 관련 통문 기증
전남도는 남도의병 역사박물관에 소장할 의병자료인 ‘을묘왜변 양달사 의병장 관련 통문’을 기증받았다고 8일 밝혔다. 조선 최초 의병장 양달사는 1555년 을묘왜변 당시 전라도 10여개 성이 함락되고, 영암성이 포위당했을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구를 격퇴하고 영암군민을 살린 역사적인 인물이다. 그와 관련된 전설은 영암군청 앞 장독샘에 남아 있고, 조선왕조실록과 여지도서, 호남읍지, 호남절의록 등에 당시의 공적이 기록돼 있다. 을묘왜변 때 활약한 양달사 의병장의 포상을 올린 통문으로 영암의 제주양씨 주부공파 후손인 양진근씨가 기증했다. 통문은 “을묘년 왜구가 창궐했을 때 수령들이 도망가고 성을 버리고 제 몸만 보전한 사람도 있었지만, 영암군 참봉 양달수와 해남현감 양달사 두 형제가 몸을 돌보지 않고 기발한 계책을 내 적을 격파해 팔도 백성이 도륙을 면하게 돼 포상을 올린다”는 내용이다. 전주향교에서 1842년 작성했다. 이후 헌종 13년(1847년) 승정원일기에는 ‘양달사는 통정대부 좌승지에 양달수는 사헌부 지평에 추증하라’는 기록이 있다. 유영광 전남도 문화자원과장은 “남도의병 역사박물관이 문화체육관광부의 박물관 타당성 사전평가를 통과함에 따라 이제부터는 유물을 찾아야 하는 시기다”며 “양달사와 관련한 통문을 기증받아 을묘왜변을 알리는 소중한 자료로 전시하게 됐다”며 “의병자료 소장자들의 적극적인 기증과 기탁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기증·기탁 등으로 수집한 자료는 항온·항습 등이 잘 유지되는 한국학호남진흥원에서 일시 보관 후 박물관 완공시 이관할 예정이다. ■ 의병장들 생생한 유배생활 담긴 ‘마도일기’ 찾았다
충남 홍성군이 홍주의병의 역사적 의의를 조명하고 호국정신을 되새기고자 병오 홍주의병에 참여했던 의병장들의 유배생활이 담긴 문석환 선생의 ‘마도일기<사진>’(馬島日記)를 유물공개구입을 통해 수집했다. 13일 군에 따르면 홍주역사관은 유물공개구입을 통해 지역의 역사문화와 관련한 55점의 유물을 수집한 가운데 1906년 병오 홍주의병 당시 의병지도부에 있던 문석환(1870~1925년) 선생이 일제에 체포돼 대마도로 유배를 떠났을 당시 작성된 것으로, 의병장들의 유배생활을 자세히 담고 있다. 앞서 독립기념관이 문 선생과 같이 대마도 유배를 갔던 유준근 선생 후손이 소장하고 있던 것을 공개했었지만, 대마도에서 순국한 최익현 선생의 유해가 귀환한 직후인 1907년 1월부터 문 선생이 석방돼 귀국하는 1908년 10월까지만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번 수집된 자료는 1905년 음력 10월 21일 을사늑약 체결부터 1906년 지티(현 부여군 내산면 지티리)재 봉기를 거쳐 같은 해 9월 5일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어 홍주의병에 참여했던 의병장들의 유배생활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마도일기 수집은 홍주역사관이 유물공개구입을 통해 지역의 역사문화와 관련한 55점의 유물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수집됐다. 유대근 역사시설관리사업소장은 “(이번 마도일기 수집은)홍주의병의 역사적 의의를 조명하고 호국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병오 홍주의병에 참여했던 국난극복의 상징인 홍주의병과 관련한 유물수집과 활발한 연구로 홍주의병의 역사적 의미를 널리 알리는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 조선 최초 홍일점 의병 양방매 재조명 전남 영암군의 조선 최초 홍일점 의병 양방매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영암 학회 회원들은 최근 영암군의 역사와 문화를 바로 세우자는 명목으로 이영현 양달사 현창사업회 사무국장, 송성수 금정면 문체위원장 등과 함께 양방매 의병의 유적을 찾았다. 이들은 양방매 의병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진 금정면 청룡리 분토동마을과 양 의병이 사망하기 전까지 살았다는 금정면 남송리 집터를 찾았다. 금정면 출신 김오준 시인이 주도했다. 양방매 의병은 1890년 금정면 청룡리에서 태어났다. 1908년 4월 7일 강진 오치동 전투에서 100여 명의 왜병과 일제 앞잡이들을 사살한 한말 호남 의병 강무경 선봉장의 부인이다. 1908년 가을 왜군들과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몸으로 집으로 피신한 강무경을 치료하다가 결혼까지 하게 된 양 의병은 이듬해 3월부터 심남일 의병장의 선봉장인 남편을 따라 금정, 장흥, 화순, 강진 등 수많은 전투에 참가했다. 1909년 10월 9일 화순 풍치의 동굴에 숨어있다가 심남일, 강무경과 함께 체포됐다. 이듬해 10월 4일 심남일과 강무경이 대구에서 사형을 당한 뒤, 그녀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훈방돼 70여 년을 금정에서 숨어 살다가 1984년에야 비로소 그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자식 하나 없이 그렇게 쓸쓸히 살다가 지난 1986년 세상을 뜬 후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의 남편 옆에 안장되었으며, 2005년에 건국포장이 수여 되었다. 김오준 선생은 “항일 의병 운동을 한 분이 등록된 분만 금정면에 47명이다. 그중 의병장만 다섯분으로 전국 면 단위에서 가장 많은 고장이다. 그런데도 양방매 의병을 비롯한 영암군 금정면 출신의 한말 의병들이 변변찮은 안내판 하나 없이 지금까지 방치된 데 대해 심히 유감이다” 며 “지금이라도 이렇게 민간단체지만지역의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 찾아주셔서 감사하다“ 고 소감을 전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일제시대나 군사독재 시대에는 항일운동을 했다는 것이 자랑거리가 아니라 목숨을 잃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숨겼겠지만, 그 후에라도 국가에서 이 역사적인 사실을 발굴하고 보존했어야 했다”면서 “우리라도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서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등 우리의 소중한 역사를 바로 잡아가자“고 주장했다. ■ 의병청 조직적 거병, 군수 조율.. 논개는 초대 의병청장 부인 바다 건너 왜적이든 육지의 적이든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호남에서 의병 궐기가 많았던 것은 농민, 어민, 중인, 노비, 사림, 퇴직 관료·장병 등 다양한 계층을 조직적으로 편성하고 전략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민간 중심기관 ‘의병청’ 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순 의병청지(해주최씨 종가) 전전남 화순 만연산 자락 화순천 앞에는 호남 의병군 본부였던 ‘의병청’의 터(화순읍 상삼2길 31)가 있다. 다양한 계층의 장병과 각지에서 답지한 군수물자를 모아, 훈련, 군수, 출전, 치료 등을 담당했다. 금산, 진주 등지의 승전을 이끈 곳이다. 호남의병의 중심엔 해주최씨 집안과 최경회 장군이 있다. 해주최씨 승지공파 고사정종가에는 지금도 커다란 의병청 표지석이 있다. 주논개 열사가 그의 부인이다. 논개 열사는 살림살이는 어려웠지만 주희의 후예인 신안 주씨 양반가 딸로, 최경회 장군이 첫 부인과 사별할 때, 집안 일을 도와주던 논개의 품격과 됨됨이를 알아본 부인의 유언에 따라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 몇몇 야화(野話)에 주논개 열사를 관기로 잘못 표현된 것은 이미 200여년전 바로잡았음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 여전히 잘못된 정보가 남아 있는데, 이번 기회에 주논개 열사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코리아헤럴드 사장과 성균관대 교수를 지낸 문인 변영로가 추모시에서 표현한 ‘강낭콩꽃 보다 붉은’ 구국의 열정을 모든 국민이 정확히 조명했으면 한다. 신라 개국의 주역 중 한 집안으로 알려진 최씨가 해주를 본관으로 둔 것은 고려 초기 해주 토호였던 최온(?~?)으로부터 비롯됐고, 그의 아들이 바로 ‘해동공자’ 최충(984~1068)이다. 총리격인 문하시중에 오르고 국내 최초의 사립대 ‘9제학당’을 설립했다. 학제와 교수법 등에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1088년 체계화되지 않은 고등교육집단으로 만들어졌다가 1156년에야 대학교로서의 면모를 갖춘 최초의 서양 사립대 볼로냐대 보다 빠르다. 최온의 15세손 진사 최윤범(?~?)이 영암에서 화순에 입향해 승지공파 종가를 열었다. 최윤범의 손자 최경운(?~1596), 최경장(1529~1601), 최경회(1532~1593) 삼형제가 의병청을 세운 주역들이다. 이들 3형제는 학포 양팽손의 아들 양응정(1519~1581)과 외종형제 간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삼형제는 화순 삼천리에 의병청을 설치하고 격문을 내서 전라도 일대에서 병사·전마·군량을 모아 전열을 정비했다. 최경운의 아들 최홍재(1560~1614)가 금산전투에 출병하는 고경명 의진에 지원군을 이끌고 출병했다. 비슷한 시기 의병대장으로 추대된 최경회는 전북 장수로 출전해 왜군을 격퇴시키고, 무주전투에서는 도요토미히데요시의 부하 적장을 활로 쏜 뒤 ‘언월도’를 전리품으로 노획했다. 최경회는 영남으로 물러난 왜적을 진주성에서 크게 이겨 공포에 떨게 했다. 경상 병력을 모아 총력으로 공격하는 왜군에 맞선 2차 진주성 전투에서 김천일, 황진, 고종후 등과 함께 9일 밤낮을 항전했다. 원군은 없고 병기와 군량이 다하자, 북향재배하고 ‘형세가 궁하고 다하여 한 번 죽음으로 보답합니다’ 라며 촉석루 남강에 투신, 의연히 목숨을 바쳤다. 포위된 진주성 수성 과정에서 지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김제 출신 정평구라는 군사과학자가 만든 비행물체 ‘비거(飛車)’를 외곽으로 날렸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진주시가 추가고증작업과 함께 기념공원 조성에 착수했다. 동생 최경회 장군이 순절했다는 소식을 종군하던 장남 최홍우에게 들은 최경장은 의병대장 직을 이어받아 전쟁을 수행했다. 공조하는 과정에서 의병청의 존재를 잘 하는 권율이 임금에게 그들의 활약상을 전하자, 선조는 최경장을 ‘계의병대장(繼義兵大將)’으로 임명했다. 광해군 때엔 의병청에서 훈련시킨 의병군을 김덕령 휘하에 편입시켜 권율의 지휘에 따르도록 했다. 삼형제의 장남 최경운은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고을 사람 500여명과 함께 오성산성(전남기념물 제193호)을 지키다 순국했다. 1782년 정조의 명에 따라 화순 현감은 ‘오성산 최경운 전망 유허도(烏城山崔慶雲戰亡遺墟圖)’를 올렸다.
주논개(1574~1593) 열사는 진주성에 종군하던중 남편 최경회의 순절 소식을 듣고 복수를 계획한다. 왜장을 유인해 굵은 가락지를 열 손가락에 끼고 껴안은 손가락이 풀리지 않도록 한뒤 적장과 함께 진주 남강에 투신함으로써 일본군의 사기를 급전직하시켰다. 420여년을 지켜온 종가의 보물은 전시관을 지어 보관하고 있고, ‘고사정’과 안채, 우물터 등이 의병청지에 있다. 유물 중에는 임진왜란때 침략해온 일본군으로부터 노획한 일본 보물 문화재도 있다. 일제때 순사들이 이를 탈취하려고 했지만 종가의 지혜롭고 끈질긴 은닉, 보존 때문에 실패했다. 420여년을 지켜온 종가의 보물은 전시관을 지어 보관하고 있고, ‘고사정’과 안채, 우물터 등이 의병청지에 있다. 유물 중에는 임진왜란때 침략해온 일본군으로부터 노획한 일본 보물 문화재도 있다. 일제때 순사들이 이를 탈취하려고 했지만 종가의 지혜롭고 끈질긴 은닉, 보존 때문에 실패했다. 의병청지 겸 종가 입구 회화나무는 일제 헌병이 언월도를 빼앗아가기 위해 종가 사람의 상투를 매달아 고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지금은 주인과 손님의 더위를 식혀주는 그늘쉼터이다. 회화나무 앞에는 수천 장병의 식수를 조달한 우물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만 전해진다. ■ 전남도, 제11회 의병의 날 기념식 개최
호국보훈의 달 6월의 첫 날 구국 의병의 충혼을 기리기 위한 행사가 ‘호남의 의향’ 나주시에서 개최됐다. ‘의병의 날’은 구국에 앞장섰던 의병의 역사적 가치를 일깨워 애국정신을 계승하고자 지난 2010년 법정 기념일로 지정된 이래 매년 개최도시를 공모, 선정해 6월 1일 기념식을 개최한다. 나주시는 본 기념식 앞서 지난 5월 16일부터 6월 1일(17일 간)을 의병 기념 주간으로 정하고 금성관 일원에서 ‘의병의 날’ 의미와 의병의 삶을 조명하기 위한 각종 체험과 교육, 전시, 홍보 부스를 운영했다. 총 3부에 걸쳐 진행된 이날 기념행사는 유튜브 생중계와 병행해 시민 대표 35명으로 구성된 시민의병단의 ‘우리 모두 의병 출정식’과 가수 장사익 씨의 초청공연, 의병 선조에게 띄우는 편지 낭독 등으로 막을 열었다. 의병 선조들의 애국충절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편지는 ‘나라 사랑 마음’을 주제로 진행됐던 제5회 백호임제 어린이 글짓기 대회 수상자 빛누리초 6학년 박소영 학생이 낭독했으며 나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 김예하 단원의 애국가 독창으로 감동을 더했다. 2부 기념식은 의병의 날 기념식 주제(우리 모두 의병) 영상, 나주시장 환영사, 행정안전부의 유공자 표창과 기념사, 추모사(전남도 행정부지사·국회의원)로 진행됐다. 이어 3부 기념공연은 임진왜란 7년의 전쟁을 지탱했던 의병군량미의 운송로인 영산강을 테마로 국악과 재즈를 결합한 총체극 ‘타오르는 강’(제목)을 선보이며 참석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편 기념식장에는 이재영 행정안전부 차관, 송상락 전라남도 행정부지사, 신정훈 국회의원, 장석웅 전라남도 교육감, 이규진 의병기념사업총연합회 수석부회장, 김원웅 광복회장, 김남전 나주의병문중 대표를 비롯해 코로나19로 인한 100명 미만 인원 제한에 따라 의병문중 등 유관 기관·단체 관계자 99명이 참석했다. 강인규 나주시장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호남 최초의 의병장 김천일 선생의 의병부대가 죽음을 각오하고 창의했던 금성관에서 의병의 날을 기념하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선조들의 의로운 정신과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나주는 호남을 대표하는 의향이 됐다”고 말했다. ■ 의병장 신돌석장군 순국113주기 숭모제향 봉행 영덕군(군수 이희진)은 장산 신돌석장군 숭모위원회(위원장 김부일)와 함께 주최·주관한 ‘의병장 장산 신돌석장군 순국 113주기 숭모제향’ 이 지난 13일 신돌석장군 유적지 충의사에서 신돌석장군의 후손, 숭모위원회 회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됐다고 밝혔다. 이번 숭모제향은 초헌관 이희진 영덕군수, 아헌관 김유문 경북남부보훈지청장, 종헌관 남광희 광복회장이 제관으로 참여해 장군과 영릉의병진의 호국 정신을 기렸다. 김부일 신돌석장군숭모위원회 위원장은 “매년 진행하고 있는 제향을 통해 신돌석장군의 숭고한 뜻과 역사적 가치가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말했다. 신돌석장군 숭모제향 행사는 동해안 일대를 누비며 항일구국활동을 위해 젊은 청춘을 바친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 장군을 기리고 장군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용맹한 기상을 선양하기 위해 영덕군과 신돌석장군숭모위원회가 주최·주관하고 경북남부보훈지청 후원으로 매년 호국보훈의 달인 6월 신돌석장군 유적지에서 개최되고 있다. ■ 의병자료 구입 7차 공고 전라남도에서 2025년 개관을 목표로 추진중인 남도 의병 역사박물관에 전시, 교육, 연구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의병 관련 자료 구입 공고를 아래와 같이 안내합니다. 소장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바랍니다. □ 구입대상 ㅇ 의병에 관한 역사적 조사·연구, 전시, 교육·교류, 선양활동을 위해 수집, 보존하고 후대에 전승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일체의 물품 * 대상기간 : 을묘왜변, 임진왜란 ~ 3.1운동(1919년) 이전
□ 참여자격 : 개인(종중 포함), 문화재 매매업자, 법인 등 * 도굴품, 장물 등 불법 자료는 불가 □ 접수기간 및 방법 ㅇ 접수기간 : 2021. 6. 16.(수) ~ 2021. 7. 15.(목)〈1개월간〉 ㅇ 접수방법 : 전자우편 접수(Lhs0003@korea.kr) - 우편 접수 : 전남 무안군 삼향읍 오룡길 1 전라남도청 문화자원과 귀중 (겉봉투 상단에 ‘의병자료 매도’ 라고 표기 / 당일 소인분까지 유효) □ 제출서류 ㅇ 자료매도 신청서 1부 ㅇ 매도 대상 자료명세서 각 자료별 1부 ㅇ 소장 내력 확인서 1부 ㅇ 문화재매매업 허가증 사본 1부(문화재 매매업자의 경우만 해당됨) ㅇ 신분증명서(주민등록증, 여권, 운전면허증 중 하나) 사본 1부 * 한글문서로 작성하고 신분증명서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가리고 복사 제출 □ 자료 매도(구입)절차 ① 매도신청서 등 서류 제출(매도신청자) ② 자료구입선별위원회의 평가·심의에 의해 구입 대상 선별 ③ 자료평가위원회에서 자료의 진위·구입 여부 및 가격 평가 ④ 선정 자료에 대한 공개를 통해 자료의 진위·구입 여부 및 가격 평가 ⑤ 최종 평가금액에 매도신청자가 동의할 경우 매매계약 체결 ⑥ 약정 체결 후 대금을 지급하고 자료 소유권은 전라남도로 귀속됨 □ 자료 매도시 유의사항 ㅇ 상태가 양호하고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은 자료를 우선 수집함 ㅇ 출처 등이 분명하지 않거나, 소장자의 소유관계가 불분명한 유물, 도굴 등 불법으로 취득한 자료는 매도 대상이 될 수 없음(매도인을 관계기관에 고발) ㅇ 감정결과는 합당한 이유 없이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음 ㅇ 구입대상에서 제외된 자료는 신청자에게 알리고 반환됨 ㅇ 제출된 서류는 일체 반환하지 않음 ㅇ 기타 궁금한 사항은 전화(061-286-5341) 또는 전자우편(Lhs0003@korea.kr)으로 문의 바람 ㅇ 구입공고 바로가기 https://www.jeonnam.go.kr/J0203/boardList.do?menuId=jeonnam0203000000 ㅇ 남도 의병 역사박물관 기증 기탁에 대한 안내와 홍보영상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aWqos35Eooc&t=17s □ 유물 기증·기탁에 대한 예우 ㅇ 기증·기탁 협약서 및 감사패 증정 ㅇ 전라남도 누리집, 남도 의병 역사박물관 누리집에 기증자 정보 공개 ㅇ 남도 의병 역사박물관 내 기증자 명단 전시 ㅇ 남도 의병 역사박물관 개관식, 전시 등 무료 초대 ㅇ 다량 기탁의 경우 자료집 발간 또는 학술행사 개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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