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기행] 춤추는 게가 멋있고 맛있다 칠게 게시기간 : 2024-08-16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4-08-12 10:26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맛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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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빠진 갯벌, 그곳 주인은 누구일까. 낙지를 잡는 어민일까, 먹이를 찾아 2만여 키로를 쉬지 않고 비행한 뒷부리도요일까, 갯벌에 구멍을 뚫고 사는 칠게일까. 갯벌은 육지의 땅처럼 금을 긋고 번호를 붙여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주인이 누구라고, 어떤 생물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러한 개념을 들이대는 것 자체가 인간중심의 잣대다. 인간을 포함한 네 종의 생물 중 주인을 찾으라면 칠게다. 갯벌은 칠게의 서식지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나 도요새는 식량이나 먹이를 찾아 갯벌을 왔을 뿐이다.
* 춤추는 게, 칠게 칠게는 펄갯벌에 서식하는 칠게과 갑각류다. 눈자루가 길고 가늘며, 너비 3-4 센티미터까지 자란다. 수컷이 암컷보다 너비가 길고, 집게발이 크다. 바닷물이 빠졌을 때 물이 자박자박 남아 있는 갯벌을 좋아한다. 일본인 학자 카미타(Kamita)는 1936년 ‘한국의 갯벌에서 춤추는 게’라고 소개했다. 이보다 훨씬 앞서 우리나라 최초 체계와 형식을 갖춘 어류도감인 <자산어보>에도 칠게를 ‘춤추는 게’라는 의미로 ‘화랑해’라고 기록했다. 서해에서 칠게를 화랑게라 부르는 어민들도 만날 수 있다. 이외에도 칙게, 찔그미라고도 불렀다. 칠게는 서해갯벌에서 가장 흔하게 많이 만날 수 있는 깃대종이다. 조간대나 만 하구 갯벌에 밀집해서 서식한다. 바닷물이 빠지면 서식굴에서 나와 먹이활동을 하고 햇볕에 몸을 말리기도 한다. 이때 집게발을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고 춤추는 게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서 하는 구애행동이다. <자산어보>에는 칠게를 ‘화랑해’(花郞蟹)라 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렇다. 크기는 농해(농게)과 같고, 몸통을 누렇고 짧으며, 눈은 가늘면서 길다. 왼쪽 집게발이 유달리 크지만 무뎌서 사람을 물 수 없다. 기어 다닐 때면 집게발을 펼쳐서 형상이 마치 춤을 추는 듯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름을 붙였다. 민간에서는 춤추는 남자를 화랑이라 한다.
갯벌에서 먹이활동을 하던 칠게 수컷들은 종종 집게발을 높이 쳐들곤 한다. 마치 사람이 만세를 부르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그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것과 같다고 느낀 것 같다. 특히 칠게들이 집단으로 모여서 먹이활동을 하다가 집게발을 올리는 것을 보면 마치 군무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자산어보>에 왼쪽 집게발이 유달리 크다고 기록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 칠게 수컷의 집게발은 좌우 똑같다. 다만 칠게 암컷의 집게발보다는 크다. 다만 한쪽 집게발이 떨어져 새로 자라면서 크기의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한편 손암 정약전이 <자산어보>에 기록한 226종의 해양생물 중 게를 포함해 바다거북, 새우, 가재는 물론 전복, 조개, 꼬막, 굴, 따개비, 거북손, 말미잘, 고둥, 성게, 군부 등 12류 66종을 개류(介類)로 분류하였다. 단단한 껍데기를 가지고 있는 종을 같은 범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또 자산어보를 보완한 다산의 제자 이청은 중국의 고문헌들을 인용하여 게를 옆으로 기어다니는 ‘방해(螃蟹)’, 횡행개사(橫行介士), 뱃속이 비어 무복공자(無腹公子)라 했다. 또 암수를 구별할 때 배꼽이 뾰족하게 생긴 게가 수컷, 동글게 생긴 게는 암컷이라 했다. 또 집게발이 큰 놈이 수컷이고 작은 놈이 암컷이라 했다.
* 낙지도 도요새도 인간도 칠게를 좋아한다 어민들은 칠게를 그물을 이용하거나 맨손으로 잡는다. 표준 명칭은 건강망이나 각망이다. 순천만이나 보성벌교갯벌에서는 작은 기둥을 꽂아 그물을 매서 잡는데, 이를 ‘꼬쟁이그물’이라고도 한다. 바닷물이 빠지면 뻘배를 타고 나가서 그물을 털기도 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벌교시장에 가면 여자만에서 잡은 칠게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뻘배를 이용한 어업활동은 2015년 12월 ‘보성 뻘배어업’으로 국가중요어업유산에 지정되었다.
칠게가 활발하게 활동하기 이른 봄에 맨손으로 칠게구멍을 파서 잡기도 한다. 고흥군 우도 갯벌에서 3월에 맨손으로 칠게를 잡는 어머니를 만났다. 무안이나 신안에서는 낙지를 잡는 미끼로 이용하려고 칠게를 잡기도 했다. 지금은 수입을 한다. 칠게가 상인을 통해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갯벌에 플라스틱 통을 묻어 잡는 불법어업도 성행을 하기도 했다. 정말 칠게잡이 선수는 어민들이 아니다. 마도요, 알락꼬리마도요, 뒷부리도요 등 구부러진 긴 부리를 가진 도요새들이다. 이들은 호주와 알래스카 툰드라 지역으로 오가며 중간에 우리 갯벌에 쉬어간다.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칠게다. 인천 여자만갯벌, 신안갯벌, 고창갯벌, 서천갯벌, 강화갯벌 등 서해 갯벌에서 중간기착을 하며 먹이활동을 한다. 서해갯벌은 칠게만 아니라 갯지렁이류, 조개류 등 물새들이 좋아하는 먹이가 풍부한 갯벌이다. 유네스코는 순천만갯벌, 보성벌교갯벌, 신안갯벌, 고창갯벌, 서천갯벌을 세계자연유산 ‘한국의 갯벌’로 지정했다. 그런데 진정한 칠게포식자는 인간도 도요새도 아니다. 낙지다. 칠게가 많은 곳은 반드시 낙지가 있다. 낙지가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이다. 낙지 서식지 주변을 잘 살펴보면 칠게 껍질이나 사체들이 흩어져 있다. 삽으로 갯벌을 파내 낙지를 잡는 어민들은 서식굴을 찾아 낙지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때 칠게 사체를 보고 판단한다.
* 칠게장이면 여름이 두렵지 않다 여름이면 입맛이 떨어진다. 음식을 조리하고 반찬을 만들기도 두렵다. 좋은 식재료를 얻기도 쉽지 않지만 불을 지펴 조리하는 것도 귀찮다. 삼복은 견디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럴 때 찬물에 만 밥에 오이장아찌나 무짠지를 올려 먹으며 버텼다. 바닷마을에서는 칠게장이나 농게장으로 대신했다. 무안에서는 돼지고기를 구워 먹을 때 칠게를 갈아서 쌈장처럼 올려 먹기도 했다. 그렇게 썬 삼겹살을 짚불에 구워서 칠게장에 싸서 먹는 독특한 식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향토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짚불구이도 흉내내기 어렵지만 손쉽게 내놓을 수 있는 칠게를 잡아 깨끗하게 씻은 후 소금을 뿌려서 하루정도 숙성한 후 다시 씻어낸다. 이때 칠게가 뱉어낸 뻘을 깨끗하게 씻어낸다. 그리고 칠게를 믹서기에 간 후 마늘과 고추와 양파 간 것고 넣고 다시 간다. 여기에 고춧가루나 액젓이나 맛술 등을 넣어 잘 섞은 후 냉동숙성시킨다. 먹을 때는 참기름, 파, 깨 등을 더해서 먹으면 좋다. 입맛이 없을 때 따뜻한 밥에 비벼 먹으면 좋다. 칠게젓이라고도 불렀다.
칠게를 가지고 가장 많이 조리하는 음식은 간장에 넣어 숙성시킨 칠게간장게장이다. 이것도 줄여서 칠게장이라고도 한다. 칠게가 많이 잡히는 여름철에 만들어 먹기 좋다. 소금물에 칠게를 담가서 해감을 시킨다. 칠게장을 만들 때와 같은 방법이다. 그리고 간장에 마늘, 생강, 대파, 양파 등을 넣고 끓인 후 장만 걸러 칠게가 자박자박 잠길 만큼 담는다. 여기에 걸러낸 마늘이나 양파를 넣고 썬 고추를 넣고 냉장숙성을 시킨다. 또 멸치볶음처럼 칠게볶음을 만들기도 한다. 특별한 날에는 칠게에 밀가루나 튀김 옷을 입혀 칠게튀김을 만들어 내놓기도 했다.
글쓴이 김준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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