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서와 옛편지] 현란한 문장,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 게시기간 : 2020-10-29 07:00부터 2030-12-16 21:21까지 등록일 : 2020-10-28 11:14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고문서와 옛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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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를 말할 때 흔히 우리는 그의 글씨만 말하지만, 좀더 깊이 그의 글을 읽어보면 탁월한 은유의 표현력과 철학적 사유가 배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그의 간찰은 문학 표현의 면에 있어서 현란하다 할 정도의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 『완당집(阮堂集)』 에는 초의(艸衣) 선사, 이재(彛齋) 권돈인(權敦仁) 등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가 100여 점이 실려 있다. 실제 김정희가 평생 동안 쓴 편지는 이보다 백배 천배는 많았을 것이다. 남병철이 문집을 편찬하면서 거두어 수록한 편지이다. 수록된 추사의 편지는 초의에게 보낸 편지가 38통으로 가장 많이 남아있고 이재 권돈인에게 보낸 것이 34통이다. 그런데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 「나가묵연」이라고 표제를 한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간찰 16통을 장첩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나가(那伽)는 범어로 용이라는 말이고 묵연(墨緣)은 필묵연(筆墨緣) 즉 글의 인연이라는 말이다. 추사는 제주 유배 시기에 ‘나수(那叟)’라고 서명을 하기도 했다. 모두 16통의 편지가 실려 있고 10건은 『완당집』 에 수록되어 있지만 6건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다산의 간찰과 비교해보면 추사의 간찰은 한편의 현란한 문학 작품이다. 문학 작품일 뿐만 아니라 불가어(佛家語)가 난무하는 철학서이기도 하다. 제주에 유배 중인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간찰(『완당집』 「여초의」28, 그림1)을 한번 살펴본다.
스님의 편지 세 통이 연이어 날아드니 적막했던 바닷가에 마치 하늘 꽃이 어지럽게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어디든지 모두 기쁜 인연입니다. 포갈(蒲褐)과 향등(香燈)의 공양이 청정하여 가는 곳마다 자재하시니 이러한 경계에서 게 굴이나 우렁이 집의 열뇌업(熱惱業)과 비교하면 한갓 속된 세상의 한 경계로 삼는 것에 그칠 뿐입니다.
진묵대사의 행록은 바로 남아있는 옛사람의 은혜와 향기로운 흔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조그만 것 하나하나에도 향기가 있으나 진실로 이것으로서 진묵대사의 행록을 다했다고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겨자씨가 수미산을 받아들인다 했으니 진묵대사도 기껍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전후의 기(記), 서(敍)의 글이 너무 좋아서 다시 정정할 것이 없을 듯하지만 더욱 세세히 살피고 헤아려서 다시 속된 것과 바른 것을 바로잡기 바랍니다. 이선(二禪)의 살활(殺活) 등의 글은 진실로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이 마땅한데, 이리저리 얽힌 것을 어찌 하겠습니까. 근래 어둠과 막힌 것을 바로잡은 것은 아주 잘한 일입니다. 다만 살활의 체용(體用)을 헤아림이 조금 부족합니다. 살활은 모두 용(用)일 뿐입니다. 박 선비는 다섯 가지 탁한 나쁜 세상에서 쉽지 않은 선근(善根)을 지녔습니다. 가장 진실하고 거짓이 없는 사람입니다. 서도에서도 매듭을 지을 만하고 또 지혜로운 기질을 갖춘 데다가 정진하여 향상하려고 하니 막거나 당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후일을 기약하고 돌아갔습니다. 잠시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나머지는 모두 남겨두고 이만 줄입니다. 나수. 법구경의 니원품을 등초해 부치니 거두어 주십시오. 여기에 하나의 큰 일이 있어서 이번 돌아가는 길에는 끝내서 보낼 수 없으니 다시 천천히 해보겠습니다. 梵椷三度 鱗次飛至 寂寞之濱 如天花亂墜 在在是喜歡緣 藉悉蒲褐香燈 供養淸淨 隨順自在 以此蟹宕蝸殼 熱惱業較對 不止一界以塵凡而已 震師行錄 卽不過殘膏剩馥 然寸寸皆香 固不足以此盡震師 須彌納芬子 震師亦當肯受 前後記敍甚好 似無更加點定 又當熟看爛商 再請塵正 二禪殺活等文 固當如是說去 何庸千藤百葛 廓掃近日霧窟茆障 善哉善哉 但殺活之一體一用 稍欠商量 殺活俱是用耳 朴雅 五濁惡世不易有之善根 最其眞實無虛僞者 可䙡於書道 亦俱慧性 重之精進 欲得向上一竅 有不可禁當耳 留後期而歸 暫申如此 都留不宣 那叟 泥洹抄寄 亦領收 此有一大案 今回無以卒之奉及 且在緩圖耳 추사의 간찰을 쉽게 말할 수는 없으나, 다른 어떤 편지글보다도 어지러울 만큼 현란하게 꾸미고 승려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불가어가 으레 사용되어 무척 어렵다. 앞에 시작되는 구절에서 보듯이 ‘스님의 편지 세 통이 연이어 날아드니 적막했던 바닷가에 마치 하늘 꽃이 어지럽게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는 표현은 무척 아름답다. 추사와 초의는 동갑내기 친구로서 신분과 사상을 뛰어넘어 마치 연애 편지를 보내는 듯한 추사의 편지는 그들이 오랜 브로맨스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용성 뿐만 아니라 문학성, 철학성을 가지고 있다. 시후 인사를 마친 추사는 본론으로 들어가 초의가 정리하고 있는 진묵대사 행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남아있는 진묵대사의 기서문들을 통하여 마치 겨자씨 하나로 수미산을 알 수 있듯이 그의 생각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하였다. 나아가 살활과 체용에 대한 추사의 견해를 말하였다. 다음으로는 자신을 찾아온 박가 선비에 대해서 극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추사를 찾아온 박가 선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다음은 유배에서 풀려 용산 마포 강상으로 돌아와 있을 때에 초의에게 보낸 편지이다.(『완당집』 「여초의」31, 그림2)
[초의 보십시오 승연노인 씀]
일체 소식이 없으니 부처가 사시는 맑은 정계(淨界)와 속인이 사는 범로(凡路)가 이와 같이 동떨어져 있는 것인가요. 이건 사람이 스스로 막은 것이지 산이나 강이 능히 사람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이 때문에 대숲 소리와 시냇물 흐르는 곳이 그립습니다. 선사와 같은 이가 열 자나 되는 더운 세속 먼지 속에 생각을 맺을 까닭이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요. 근일의 추위에 지내시는 자리는 다습고 편안한지요. 생각이 간절합니다. 이곳은 완악하고 어리석은 것이 예전 그대로인데, 강상에 와 머물고 미처 산에 돌아가지 못하니 이게 모두 열뇌업일 것입니다. 다만 『법원주림』 일백 책을 얻어서 좋은 소일거리가 되고 있습니다만, 선사 같은 이가 옆에 있어 입증을 못해주니 한탄스럽습니다. 나머지는 인편으로 대략 알립니다. 이만 줄입니다. 승연노인. [艸衣法鑒 勝蓮老人書] 一切聲聞不及 淨界凡路 如是懸絶歟 抑人之自阻 山河非能阻人 以此懸懸於竹籟石淙之間 知師無庸結想於十尺熱塵中 固宜矣 近寒 團蒲暖安 念切 此頑癡如昔 來留江上 未及歸山 到底惱業 但得法苑珠林一百𢎥 好作消遣 恨未使師旁證耳 餘凴便畧申 不宣 勝蓮老人 유배에서 풀려나 용산 마포 강상으로 돌아온 추사는 초의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자 무척 그리워하며 산중의 정토 세계와 열 자나 되는 뜨거운 풍진 세속 사이에 소식이 없는 건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소식이 없는 것은 산하가 가로막혀 그런 것이 아니고 스스로 세속과 인연을 끊으려하기 때문이리라. 추사 자신은 뜨거운 업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뇌업(惱業)은 열뇌업(熱惱業)이라는 말로 과거의 숙업(宿業), 현재의 현업(現業)을 모두 말한다. 강상에서 추사는 당 나라 승려 도세(道世)가 편찬한 120책의 불경 『법원주림』을 읽고 쓰면서 소일하고 있다. 초의와 같이 읽지 못하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다. 추사의 편지의 문학적 현란함은 불가어를 섞어가면서 깊은 삶과 인생의 문제를 표현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된다. ‘이건 사람이 스스로 막은 것이지 산이나 강이 능히 람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일상의 용어도 깊은 사유를 반영하는 문장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에 비해서 다산의 간찰은 무척 실용적이고 실무적이다. 추사 보다는 한 세대 앞선 인물이다. 다산의 간찰과 비교해본다. 간찰은 실용문이다. 실용을 우선시하는 실학자 다산에게 딱 맞는 문체이다. 오랜 유배 생활을 하였고 차를 좋아했고 많은 승려들과도 교유하였으며 저술과 예술 활동을 하였던 추사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가 된다. 다산이나 추사의 간찰은 둘 다 하나하나가 작품에 가깝다. 멋을 내는 예술가 추사는 시후(時候) 인사나 사물에 사변적(思辨的) 의미 부여를 하여 간찰 하나가 하나의 작품이다. 실용 학자 다산에게, 간찰은 실용문이기 때문에 직설적이고 꼭 필요한 말만을 쓴다. 군더더기 말이 거의 없다. 글씨체도 역시 알아보기 쉬운 행서로 일필휘지 한 번에 내리쓰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멋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정약용이 역시 장흥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같은 처지의 이관기(李寬基)에게 보낸 편지이다.(그림3 참조. 『다산간찰첩』 198쪽) 피봉에 수신자가 ‘관성(冠城)’으로 되어 있어 장흥에 있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산의 편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문학적 표현이 이 편지에는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산초당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글[書史]를 읽고 있다는 것, 요즈음은 겨울이어서 바위의 설색이 매우 청아하다는 것, 창문을 열고 마음을 푼다는 것, 당신의 아우가 약방문을 묻는데 자신은 이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 보내주신 것에 고맙다는 것, 차를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는 것 등 유배객의 사소한 일상을 적고 있다. 모두 실제의 일들을 서술한 것이지만 유일하게 겨울에 눈 내린 주변의 풍치에 차마 어쩔 수 없이 “근래에 바위에 쌓인 눈 색갈이 매우 청아합니다. 때때로 문을 열고 즐거움을 드러내니 이것이 행복입니다.” 라고 만덕산의 설경을 만끽하고 있다.
[冠城 回敬 茶山 謝帖 謹封]
伏承/手存 恭審/棣履佳勝 深慰/想念 累人閉門冒/衾 唯以書史遣日 近/者 巖阿雪色甚淸/ 有時開戶 足以怡暢/ 是可幸也/ 季方所敎 今玆撿方/謄去 本無所知 謬/爲人所困如此 自笑而/已 此後 幸勿相慁 受/賜厚矣 盧仝七碗/ 此是夸談 李供奉/未必日飮三百 爲我/傳語 愼勿過啜也/ 窄屋茶囊 礙於起居/ 可苦之甚 而不敢奉/獻 庶諒衷悃 不宣 十二月四日 累人 拜謝 [관성에 답장을 보냄. 다산의 답장 편지. 근봉] 편지를 받고 형제가 다 좋다는 것을 알아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유배객인 저는 문을 닫아걸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오직 글 읽는 것[書史]으로 소일하고 있습니다. 근래에 바위에 쌓인 눈 색갈이 매우 청아하여 때때로 문을 열고 즐거움을 드러내니 이것이 행복입니다. 아우가 말씀하신 것은 지금 여기에 약방을 검색하여 베껴 보냅니다. 본래 아는 것이 없는데 잘못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 곤란하게 하는 것이 이와 같아서 혼자 웃을 뿐입니다. 앞으로는 제발 서로 욕보게 하지 마십시오. 내려주신 것이 넉넉합니다. 노동(盧仝)의 일곱 잔[七碗]이라는 것은 과장된 말이고 이공봉도 꼭 하루에 삼백 잔을 마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를 위하여 전하는 말이니 삼가 너무 많이 먹지 말기 바랍니다. 좁은 집에서 차주머니는 기거하는데 장애가 되니 고생이 심합니다. 감히 봉헌하지 못하니 널리 나의 마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12월 4일 유배온 사람 절하고 답장함 차에 관한 이야기 중, 당 시인 노동의 「차가(茶歌)」에 나오는 “다섯째 잔은 기골을 맑게 해 주고, 여섯째 잔은 선령을 통하게 해 주고, 일곱째 잔은 다 마시기도 전에 두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 맑은 바람이 솔솔 이는 걸 깨닫겠네.[五椀肌骨淸 六椀通仙靈 七椀喫不得 也唯覺兩腋習習淸風生]”라는 말, 또 이태백(이공봉은 이태백이다)이 하루 삼백 잔을 마셨다는 설화를 인용하여 차를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고 충고한 것이다. 전에 다산이 완호 스님에게 보낸 편지를 살펴본 적이 있는데, 이 편지는 다산이 같은 유배객의 처지인 이관기에게 보낸 편지이다. 다산의 글씨는 빠르고 명쾌하다. 특히 이 간찰의 글씨는 맑고 투명하다. 당시 정조가 애호하였던 송하 조윤형과 다산은 동시대 사람으로서 정조와 송하의 글씨체와 많이 닮아서 빠르고 거침이 없어 보인다. 글쓴이 김현영(金炫榮) 한국고문서학회 명예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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