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초대석] 작법으로 읽는 한시 절구(8) 이상해라[却怪] 게시기간 : 2020-07-09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0-07-0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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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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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작자는 신광한(申光漢, 1484~1555)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자는 한지(漢之) 또는 시회(時晦), 호는 낙봉(駱峰)·기재(企齋)·석선재(石仙齋)·청성동주(靑城洞主)이며,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영의정 신숙주(申叔舟)의 손자이다. 1507년(중종 2) 사마시에 합격하고, 1510년에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호당(湖堂)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 하였다. 이후 승승장구하여 대사성에 올랐으나, 기묘사화가 발발하자 조광조(趙光祖)의 일파로 몰려 파직을 당하였다. 여주에서 약 14년 동안 은거하다가 다시 서용되어, 이조판서, 좌찬성 등을 지내고 1553년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었다. 시문에 능하여 문형(文衡)을 지냈으며, 대사성으로 있을 때는 학문을 진작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저서로 『기재집(企齋集)』, 『기재기이(企齋奇異)』가 있으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저자도는 압구정동과 옥수동 사이 한강 속에 있었던 섬이다. 압구정동 아파트 건축 때 이곳에서 골재를 채취하는 바람에 아쉽게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저자도라는 이름은 닥나무[楮]가 많이 자란 것에서 유래하였는데, 도성에서 접근성이 좋고 경치가 수려하였다. 그래서 조선 전기에는 임금도 종종 행차하여 휴식을 취하였고, 중국 사신이 내왕할 때는 이곳에서 뱃놀이를 즐기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많은 명사들이 이곳에 별장을 짓고 풍류를 즐겼다. 넓은 백사장이 형성되어 있어서 공식적으로 기우제나 출정식을 치르던 장소이기도 했다. 이 시는 신광한이 여주에서 은거하던 도중 잠시 서울로 나들이하여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이별한 뒤 저자도에 묵으면서 지은 시이다. 문집에 실린 시들의 연대순 차례를 감안할 때 1532년 경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첫 구절에서 자신이 벼슬을 떠나 초야에서 지내고 있는 현실을 소개하고, 다음 구절에서 다시 속세로 돌아온 뒤의 서글픈 심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가독서는 국가에서 인재를 육성하던 정책이다. 자질이 뛰어난 초급 관료를 선발하여 일정 기간 동안 유급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하게 하던 제도로서, 여기에 선발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공인받은 인재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였다. 이후로도 대사성에 오르는 등 전도가 양양하던 그가 갑자기 기묘사화로 인해 삭탈관직을 당하고 은거하고 있을 때의 심정이야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제3구에서부터 반전이 일어난다. 이처럼 슬픈 마음만 있을 줄 알았는데, 이내 다시 초연한 자신으로 돌아가 있음을 발견한다. 요즘 도시 생활에서는 달을 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지만, 옛날 사람들에게는 고향을 떠올리게 하고,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게 하여 위안을 주었던 대상이었다. 때로는 어머니의 미소와 같은 따스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기도 하였다. 그런 달, 그것도 환히 밝은 달을 제시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 편안함을 은연중에 표현한 것이다. 배는 물 위에 떠서 바람에 흔들리고 정처 없이 흘러가는 존재로, 초야에서 전전하는 자신의 신세를 비유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시는 기존의 한시에서 흔히 접하던 것과는 전체적으로 다른 면이 있다. 일단 벼슬에 있는 관료들이 휴식을 갈망하며 짓는 시와는 진정성이 다르다. 당(唐)나라의 승려 영철(靈澈)이 위단(韋丹)에게 지어 준 시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벼슬을 쉬고 간다지만, 숲속에서 언제고 만나본 적 있던가?[相逢盡道休官去 林下何曾見一人]” 라고 일침한 것처럼, 전원 회귀를 갈망하는 관료들의 시는 언어 유희적, 가식적인 면들이 보여 감동이 크지 않다. 또 처음부터 초야에서 지내는 사람들의 유유자적하는 시는 그저 음풍농월에 가까울 것이 대부분이다. 반면에 이 시는 타의에 의해 조정의 중심에서 하루 아침에 초야로 밀려나 지내다가 다시 속세로 들어오면서 느끼는 회한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다시 그것을 넘어 이미 체화된 자연 동화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 독자들의 동조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제3구의 ‘괴(怪)’는 ‘괴이하다’, ‘기괴하다’는 의미이지만, 시에서는 그보다 완화된 의미로 많이 쓰인다. ‘의아하다’, ‘갸우뚱하다’ 정도로 가볍게 보는 것이 좋다. ‘청(淸)’이라는 글자는 이 시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강력한 시어이다. 단순히 맑은 새벽 공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강호에 묻혀서 속세의 영화에 초연해진 자신의 맑은 마음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조선조에서는 역대 한시를 정선한 시선집이 몇 차례 간행되었다. 그 중에서 허균(許筠)의 『국조시산(國朝詩刪)』은 진작부터 문단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책이다. 시인으로서의 재능과 안목을 바탕으로 정선한 데다, 각각의 시에 비평을 달았기 때문이다. 신광한의 이 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시평을 달았다. “맑은 시상이 다른 사람에게 강하게 전해진다.[淸思逼人]” 청(淸)자가 단순히 맑은 기운을 뜻하는 것만이 아님을 이 시평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이후로 간행되었던 시선집에도 빠짐없이 이 시가 신광한의 대표작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제3구와 제4구의 절묘한 반전을 높이 산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반전의 효과를 확실하게 해주는 시어가 바로 ‘각(却)’이다. ‘도리어’라는 대표 훈(訓)으로 많이 쓰이는 이 글자는, 글자 자체로 반전의 의미가 있다. 기존의 예상이나 상황과 다른 내용을 표현할 때 즐겨 사용하는 시어이다. 이 시어를 번역할 때는 굳이 ‘도리어’라는 말을 넣지 않고 다른 표현 속에 녹여서 담아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주로 절구시의 제3구 첫머리에서 많이 사용하는데, 뒤에는 감정을 나타내는 글자가 늘 함께 한다. 예를 들어 ‘각경(却驚, 놀라워라)’, ‘각선(却羨, 부러워라)’, ‘각청(却聽, 들려온다, 듣다)’, ‘각한(却恨, 한스러워라, 후회스럽다)’, ‘각혐(却嫌, 달갑지 않다, 밉다)’, ‘각회(却懷, 그리워라)’, ‘각희(却喜, 즐거워라)’가 동일한 용법의 시어들이다. 어느 시대인들 그렇지 않았으랴만, 요즘 들어 예상하지 못했던 사회적 현상이 유독 더 많이 일어나는 느낌이다. 건전한 상식에 기초한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들을 자주 접하면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변해가도 되는 것인지 당혹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는 인생의 반전처럼 희망적인 방향으로의 반전은 이제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글쓴이 권경열 한국고전번역원 기획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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