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기억] 높은 문화의 힘, 전라남도의 세계유산 게시기간 : 2024-07-17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4-07-16 10:40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풍경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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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가유산청의 출범 기존 문화재 관련 법령을 문화유산, 무형유산, 자연유산으로 재편한 「국가유산기본법」이 2023년 4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고, 2024년 5월 17일부터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이름을 바꿔 새롭게 출범했다. 지난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지 62년 만의 일이다. 이번 법률 개정은 국가유산 보호 정책의 최상위 기본법인 「국가유산기본법」 아래 문화재청 소관 10개 법률을 유형별로 문화유산법, 무형유산법, 자연유산법 세 가지로 새롭게 재편하고, 매장문화재법 등 문화재청 소관 8개 법령의 '문화재' 용어를 '국가유산'으로 일괄 정비하기 위한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문화재’라는 용어가 유네스코의 미래지향적 유산(Heritage) 개념을 담은 ‘국가유산(National Heritage)’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그림 1】「국가유산기본법」 국회 통과의 의미를 홍보하는 문화재청의 카드뉴스 ‘문화재’라는 용어는 일본의 문화재보호법(1950년 제정)에서 인용한 것인데 그동안 문화재 정책 환경도 달라졌고, 또 특히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1972년) 제정 이래 ‘유산(Heritage)’ 이란 개념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에도 맞지 않아 바꿔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 지는 이미 오래였다. 이 때문에 세계유산 등재·관리 등에도 어려움이 컸다. 따라서 「국가유산기본법」의 시행과 그에 따른 국가유산청의 출범은 만시지탄으로 진정 축하할 일이다. 「국가유산기본법」의 국회 통과를 홍보하는 문화재청의 카드뉴스를 보면, “재화적 성격의 문화재 체제에서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문화·자연·무형의 국가유산 체제로 전환”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국가유산을 지향함으로써 단순 재화적 인식의 수준에서 벗어난다는 뜻을 강조하고 있다. 거기에는 과거로부터 내려온 고정된 가치가 아니라 현재를 사는 국민의 참여로 새로운 미래 가치를 만드는 ‘국가유산’이란 개념을 담고 있다. 이처럼 미래 그리고 세계를 향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재화적 가치에서 벗어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국가유산청의 정책 비전을 보면, 오히려 산업과 자본에 더 갇힌 인상을 준다고 비판하기도 한다.1) 하지만 ‘과거의 보존’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과거 지향’이나 ‘지역개발의 걸림돌’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활용에 방점을 두고 있는 점은 오히려 지금 적절한 방향이라 여겨진다. 「국가유산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가칭)」을 제정하겠다는 데서 경제적 산업적 관점의 지향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국가유산기본법」 제27조(산업 육성)에 “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유산을 매개로 하는 콘텐츠나 상품의 개발ㆍ제작ㆍ유통 등을 통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국가유산을 활용한 산업을 장려하여야 한다. ②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유산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위하여 취업ㆍ창업 등을 촉진시키고 국가유산분야 종사자의 고용 안정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에서 이런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지금 국가브랜드로서 K-컬처의 역할을 본다면 K-헤리티지 시스템의 활약도 기대해 볼 만하다. 그런 점에서 유네스코 등재유산의 현황과 함께 등재효과에 대해 눈여겨 볼 필요가 있겠다. 다만 국가유산 활용 프로그램 등이 급증하는 데 따른 국가유산의 훼손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대비도 철저히 해아 할 것이다. 문화에 등급을 매긴다는 것이 어이없는 일이기도 하다. 하찮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각각의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세계유산급의 국가유산이 문화관광의 매력포인트가 된다는 것은 너무 분명하다. 우리는 우리 지역의 국가유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하 우리나라 유네스코 등재유산의 현황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 이어서 전라남도의 세계유산을 소개하면서, 그 가치와 활용방안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세계유산과 우리나라 세계유산 현재 우리나라에는 부속국가유산을 포함하여 총 15,417건의 국가유산이 있다. 그중 유네스코 등재유산은 1995년 12월 6일 석굴암·불국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세계유산은 16건, 인류무형문화유산 22건, 세계기록유산 18건이 있다. 유네스코 등재유산의 등재 순위를 보면, 이미 세계 10권에 드는 유산강국이다.2) 1972년 11월 1일 제17차 유네스코 정기총회에서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 인간의 부주의로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이 체결되었다. 이를 통상 「세계유산협약(TheWorldHeritageConvention)」이라 한다. 이 협약은 1975년 공식 발효되었으며 협약가입국은 현재 142개국이다. 우리나라는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에 102번째로 가입하였다. 꽤 늦은 편이었다. 그만큼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도 낮았고, 국제적인 감각도 떨어졌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후 신속히 만회하면서 적극 참여하여 2006년 10월부터는 위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유산은 이 「세계유산협약」에 의거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되어야 할 뛰어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가 있다고 인정하여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한 유산으로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 자연유산(Natural Heritage), 복합유산(Mixed Heritage)으로 분류한다. 이 협약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고대 이집트 누비아 유적의 수몰 위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림 2】 세계유산 상징 도안은 세계유산협약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는 유산이나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유산, 세계유산협약이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다. 벨기에 예술가 미쉘 올리프(Michel Olyff)가 만든 작품으로 1978년 채택되었다. 1959년 이집트는 전력사정 개선과 안정적인 수자원 확보를 위해 나일강 유역에 아스완 하이 댐을 건설하기로 하였는데, 이로 인해 고대 이집트 문명인 누비아 유적이 수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람세스 2세가 세운 아부심벨 대신전과 소신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 세운 필레 신전 등이 있었다. 이에 이집트와 수단 정부는 유적을 보호하고자 유네스코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유네스코는 세계적으로 누비아 유적 구제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 1964년부터 1972년까지 8년 동안 세계 50여 개국에서 3,600만 달러라는 거액의 자금이 원조 형태로 모금되었다. 이렇게 모인 자금으로 신전을 원래 위치보다 약 70미터 높은 곳으로 이전하여 수몰 위기에서 벗어났다.3) 이런 경험을 겪고 난 1972년에 유네스코는 「세계유산협약」을 채택하게 되었다. 협약에 가입한 나라 중 21개국의 대표가 세계유산위원회를 구성하여 매년 새로운 유산의 등재를 최종 승인한다. 세계유산위원회는 1977년 파리에서 1차 회의를 열었다. 우리나라가 유네스코 등재유산에 처음 이름을 올리게 된 때는 1995년 12월 9일이었다. 베를린에서 열린 제19차 총회에서였다. 여기서 석굴암(국보 제24호)·불국사(사적 제502호), 해인사 장경판전(국보 제52호), 그리고 종묘(사적 제125호) 등 문화유산 3건이 한꺼번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이번 「국가유산기본법」에서 매년 12월 9일을 국가유산의 날로 정하였다. 현재 한국의 세계유산은 총 16건으로 위 3건 외에 창덕궁(1997년), 화성(1997년), 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고창ㆍ화순ㆍ강화 고인돌 유적(2000년),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2007년), 조선왕릉(2009년),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2010년), 남한산성(2014년), 백제역사유적지구(2015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2018년), 한국의 서원(2019년), 한국의 갯벌(2021년), 가야고분군(2023년) 등이 올라 있다. 유네스코에서 내세운 등재 의의와 효과를 보면, ①해당 유산이 어느 특정 국가 또는 민족의 유산을 떠나 인류가 공동으로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유산임을 증명하는 셈이 되고, ②저개발국의 경우, 유산 보호에 필요한 재정 및 기술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포함되기 때문에 재정 지원보다 오히려 유네스코 신탁기금 등을 통해 저개발국 유산 보존에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③국제적인 지명도가 높아지면서 관광객 증가와 이에 따른 고용기회, 수입 증가 등을 기대할 수 있고, 정부의 추가적인 관심과 지원을 받을 수 있으므로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④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유산이 소재한 지역 공동체 및 국가의 자긍심이 고취되고, 자신들이 보유한 유산의 가치를 재인식함으로써, 더 이상 유산이 훼손되는 것을 막고, 가능한 원 상태로 보존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들도 포함된다.이런 등재 의의와 효과는 지금 충분히 발휘되고 있다. 특히 관광을 통해 지역경제를 살리려는 대부분의 지방정부에서는 여기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세계유산으로 인해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되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등재유산에는 세계유산 외에도 인류무형문화유산(2003년)과 세계기록유산(1992년)이 있다. 3. 전라남도의 세계유산 전남에는 우리나라 16건의 세계유산 중 4건이 해당된다. 등재순으로 보면, <고창ㆍ화순ㆍ강화 고인돌 유적>(2000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2018년), <한국의 서원>(2019년), <한국의 갯벌>(2021년) 등으로 모두 연속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제 전라남도에 해당하는 세계유산에 대해 알아보자.4) 1)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중 화순 고인돌 유적 고인돌[Dolmen]은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 거석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피라미드(Pyramid), 오벨리스크(Obelisk) 등 이집트나 아프리카 대륙의 각종 석조물과 영국의 스톤헨지, 프랑스 카르낙의 열석(列石) 등이 모두 거석문화의 산물이다. 고인돌은 주로 무덤이지만 일부는 공동체집단의 특정 행위를 위한 의례용으로 축조되기도 하였다. 2000년 12월 화순 고인돌 유적은 고창, 강화의 고인돌 유적과 함께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유산”으로 전인류를 위하여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탁월한 문화유산임을 세계에서 널리 인정받았다. 동북아시아 지역이 세계에서도 가장 밀집된 지역인데, 그중에서도 우리나라가 그 중심 지역이다. 또 전라도 지역에는 전국 35,966기 중 24,529기가 있어 전국 고인돌의 약 68%가 집중되어 있다. 그중에서 다시 전라남도만 보면 63%에 이른다. 따라서 고인돌이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한 지역은 전라도, 그중에서도 전라남도임을 알 수 있다.
화순 고인돌 유적은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 일대의 계곡을 따라 약 10㎞에 걸쳐 596기(고인돌 287기, 추정고인돌 309기)의 고인돌이 군집을 이루어 집중분포하고 있으며 최근에 발견되어 보존상태가 좋다. 또 덮개돌의 무게가 100톤 이상 되는 커다란 고인돌 수십 기와 200톤이 넘는 핑매바위 고인돌이 있고, 고인돌의 축조과정을 보여주는 채석장이 여러 곳 발견되어 당시의 석재를 다루는 기술, 축조와 운반방법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2)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중 선암사와 대흥사 산사는 한반도 남쪽 지방에 위치한 7개 불교 산지 승원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仙巖寺), 대흥사(大興寺)- 으로 이루어져 있다. 7세기에서 9세기에 창건된 이들 7개 사찰은 신앙과 영적 수행, 승려 공동체 생활의 중심지로 한국 불교의 역사적인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역사적인 구조물과 전각, 유물, 문서 등에 잘 남아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도시 사찰의 대부분은 강제로 폐사되었지만, ‘산사’를 포함한 산지사찰들은 현재까지도 승려들의 신앙과 정신 수행, 일상생활을 위한 승원으로서의 본래의 기능과 특징을 지속하여 왔다. 이중 전라남도에는 선암사와 대흥사가 있다. 각각의 특징을 간단히 정리해 보자.
먼저 순천 선암사는 한국불교 태고종을 대표하는 태고종찰로 송광사와 더불어 조계산의 양대 명찰이다. 선암사는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침굉 현변(枕肱懸辯), 상월 새봉(霜月璽封) 등 여러 고승들이 머물렀던 수행처로, 9세기 후반(861년?)에 도선(827~898)이 창건한 선종사찰로 알려져 있다.
이후 의천(1055~1101)이 중창, 1597년 정유재란으로 소실, 17세기 말 4차 중창, 1759년 대화재로 소실, 1760년 5차 중창, 1823년 대화재로 소실, 1824년 이후 6차 중창 등 거듭된 소실과 복원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5) 선암사의 중심 불전 지역은 창건 이래로 원지형을 유지하면서 신앙과 수행을 지속하고 있다. 승선교와 강선루가 유명하다. 조선 정조대에 선암사는 순조의 탄생기도처로 역할한 데 이어 왕실의 원당(願堂)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다음 대흥사는 “태고 보우 화상이 중국에 들어가서 임제종 정맥을 얻었으며, 여섯 번 그 등불이 전래되어 서산대사에게 이르고 의발(衣鉢)이 대둔사에 전해지니, 대둔사가 우리나라 선교의 종원이다”라 하듯이 조선 후기 불교계의 근본사원[宗院]이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금당천을 사이에 두고 북원(北院)과 남원(南院)으로 나뉘어 조성되었다. 북원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응진전, 명부전, 산신각, 침계루, 백설당 등 사찰의 근간을 구성하는 주요 불전과 요사채가 있으며,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봉향각, 가허루 등이 있다. 거기에 더해 별원으로 사찰 남쪽에 표충사 구역과 대광명전 구역이 따로 있다.
남원의 중심에 위치한 천불전은 현재세인 현겁(賢劫)의 천불을 봉안한 전각이다. 이 천불에는 이송과정에 있었던 표류에도 불구하고 기적같이 무사 귀환한 극적 사연이 있어 더욱 특별하다.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의 의발이 전해지는 대흥사는 ①서산유의(西山遺意)의 발현, ②표충사의 사액=공인, ③『대둔사지』 편찬, ④『동사열전』의 편찬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종원으로서의 위상을 갖춰나갔다. 3) <한국의 서원> 중 필암서원 2019년 7월 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이름을 올렸다.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에 걸쳐 건립된 ‘한국의 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과 관련된 한국의 문화적 전통의 탁월한 증거로 그 교육과 사회적 관습은 많은 부분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 등 9개 서원으로 이루어진 연속유산이다.
【그림 8】 하서 김인후 초상. [출처] 순창군 공식블로그 서원은 중국에서 들어온 성리학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형되고 그 결과 기능과 배치, 건축적인 면에서 변화를 겪고 토착화되는 역사적 과정에 대한 특출한 증거이다. 장성의 필암서원(사적 제242호)은 장성 출신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를 기리기 위해 1590년 기산리에 건립됐다. 하서 선생의 탄생지인 황룡면 맥동 입구에 있는 바위는 ‘붓바위[筆巖]'로 붓끝의 모양처럼 생겼는데, 이 바위의 기운을 받아 하서가 태어났다고 한다. 서원의 이름도 여기서 따왔다. 1540년 문과에 합격한 하서는 인종의 세자 시절 스승이었다. 인종은 스승인 하서에게 묵죽도를 선물할 만큼 존경하고 아꼈다. 그러나 인종이 1545년 즉위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사화가 발발하자, 하서는 장성으로 낙향해 후학 양성에 힘썼다. 필암서원은 정유재란 시기인 1597년 건물이 전소됐지만 1624년 지역 유림이 재건했다. 1659년(효종 10) 3월 '필암'(筆巖)이라 사액(賜額)이 내려졌다. 1662년(현종 3) 2월 현종이 어필로 '필암서원'(筆巖書院)이라 선액(宣額)하고, 예조정랑 윤형계(尹衡啓)를 예관(禮官)으로 보내 사제(賜祭)하였다. 1672년(현종 13) 3월 서원을 현재의 위치(필암리)로 이건하고, 마을 이름도 해타리(海打里)에서 필암리(筆岩里)로 바꿨다. 제향공간인 우동사(祐東祠)에는 하서를 주향으로, 고암(鼓巖) 양자징(梁子澂, 1523∼1594)을 종향으로 제향했다. 고암은 하서의 사위이자 수제자다. 하서는 호남에서 유일하게 문묘 18현에 배향된 인물이다. 문묘에 배향된 동방 18현(東方 十八賢)은 신라·고려·조선을 거치면서 나라의 최고 정신적 지주에 올라 문묘에 종사(從祀)된 18명의 대표적인 유학자들을 말한다.
흥선대원군은 전라도를 돌아다니면서 아름다운 인정과 풍요로운 자연을 보고 팔불여(八不如)를 말했다. 그중 하나가 문불여장성(文不如長成)이다. 이는 “문장가는 장성만한 곳이 없다”는 뜻으로 지역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말이다. 장성이 ‘문필(文筆)의 고장’으로 명성을 얻은 데는 호남 유림들이 세운 필암서원의 영향이 크다. 장성은 하서 김인후는 물론, 고봉 기대승, 노사 기정진 등 거물들을 배출하는 등 학문의 기상이 높은 곳이다. 4) <한국의 갯벌> 중 신안·보성-순천 갯벌 우리나라의 서남해안에 걸쳐 있는 ①서천·②고창·③신안·④보성-순천 등 4곳의 갯벌이 세계자연유산이 됐다. 2021년 7월 26일 제44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갯벌(Getbol, Korean Tidal Flats)’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할 것을 최종 결정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갯벌이 지구 생물 다양성의 보존을 위해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서식지 중 하나이며 특히, 멸종위기 철새의 기착지로서 가치가 크므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가 인정된다”고 평가했다. 서남해안의 갯벌은 와덴해(Wadden Sea)와는 달리 퇴적층 내에 산소가 풍부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해양생물다양성을 보여주며, 수많은 철새의 기착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멸종위기종 철새를 비롯해 2,169종의 동식물이 보고될 정도로 높은 수준의 생물다양성을 보유하고 있다. 이렇듯 한국의 갯벌은 생물다양성과 생산성 측면에서 세계 굴지의 생태계이며, 주요한 문화자원이다. 또한 자연환경에 의존하는 인간활동과 문화다양성도 보여주고 있다. 전남의 갯벌은 남한 전체 갯벌 면적의 42.5%를 점할 정도로 단연 넓다. 이와 같은 갯벌의 또 다른 가치가 주목되고 있다. 즉 탄소흡수원으로서의 가치이다. 2020년 제26차 당사국총회(COP26)에서는 블루카본을 온실가스 흡수원으로 심도있게 논의하였다. 이때 한국의 갯벌이 주요 블루카본으로 소개되었다. 전남의 갯벌에 탄소 저장 및 격리 기능이 있음이 인정되면서, 아직은 낯선 용어이겠지만, ‘블루카본’의 최적지로 부상하고 있다. ‘갯벌’로 기후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갯벌이 약 1,300만t 규모의 탄소를 저장하고 있으며 연간 26만t의 이산화탄소를 자연적으로 흡수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이는 연간 승용차 11만 대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량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갯벌이 탄소 저장고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4. 문화가 돈이 되는 세상, K-Culture의 역할 앞서 보았던 유네스코 등재유산의 등재효과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세 번째로 “국제적인 지명도가 높아지면서 관광객 증가와 이에 따른 고용기회, 수입 증가 등을 기대할 수 있고, 정부의 추가적인 관심과 지원을 받을 수 있으므로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부분이다. 그래서 국가유산청 출범을 맞아 일부 언론에서 자본주의 냄새가 난다는 등, 문화보다 돈이 앞설까 봐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제 그 부분을 놓쳐서는 오히려 안 될 것이다. 문화가 돈이 되는 세상은 이미 와있다. 그런 연유로 세계유산이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수단이 되고 있다. 활용에 따른 훼손의 우려는 물론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만, 그렇다고 활용을 포기할 수는 없다. 활용을 통해 보존하는 편이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 나라 저 나라, 이곳저곳, 그야말로 너도나도 등재유산 확보를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음에서 활용이 답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전라남도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유네스코 등재유산에 선정되기 위한 전단계로 ‘잠정목록(Tentative Lists)’이란 것이 있다. 잠정목록이란 유네스코 세계유산등재를 희망하는 회원국에서 자체적으로 작성하는 자국의 세계유산 후보 목록이다. 세계유산 심사는 잠정목록을 대상으로 하므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려면 반드시 잠정목록을 거쳐야 한다. 2023년 5월 25일 현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세계유산 잠정목록에는 설악산 천연 보호구역(1994.9.), 강진 고려청자 요지[확대추진1](1994.9.), 남해안 일대 공룡 화석지(2002.1.), 중부내륙 산성군(2010.1.), 대곡천 암각화군(2010.1.), 염전(2010.1.), 우포늪(2011.1.), 외암마을[재추진](2011.3.), 낙안읍성[확대추진2](2011.3.), 조선 수도성곽과 방어산성(2012.11.),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2017.1.), 양주 회암사지(2022.7.),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2023.5.), 여수/고흥/무안 갯벌[추가등재](2023.5.) 등 14건이 올라가 있다. 이런 잠정목록 14건 중 6건이 전남에 있다. 여기에 “나주-신안-목포, ‘홍어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협력한다”(2024.6.14.)는 뉴스도 들린다. 지금 우리나라의 기세가 드높다. 2024년 6월 5일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해 1인당 GNI(국민총소득)6)이 3만6194달러를 기록했다고 한다. 인구 5,000만 명을 넘는 국가 중에서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여섯 번째 높다고 한다. 그러니까 수치상으로만 보면, 1인당 GNI가 일본의 3만5793달러를 추월했다는 말이다. 기록적 ‘엔저’의 영향이 크지만, 그렇긴 해도 일본을 꺾었다는 그 자체는, 반세기 전만 해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결과이다. 거기에다 문화 내지 문화산업의 성장은 더욱 괄목할 만하다. 세계문화콘텐츠시장 규모를 보더라도 한국문화콘텐츠 시장 규모는 약 709억 달러(2023년 전망치)로 세계 7위 수준이다. 이른바 ‘한류’의 기원을 연 김대중 정부의 문화정책이 1998년에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전벽해라 할 만하다.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문화산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정책의지를 명백하게 선언하였다. 그는 “21세기 한국에서 신기술과 문화산업이 나라의 근간이 될 것이다”라고 언급하며 정식으로 ‘문화 건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리고 문화산업 진흥을 위한 법과 제도 등을 정비함으로써 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를 발판으로 문화산업은 괄목할 성장을 이루어 불과 10여 년 만에 핵심 생산국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출발은 늦었지만, 우리나라는 유네스코 등재유산의 순위로 보면, 이미 세계 10권에 드는 유산강국이 되었다. 전라남도도 ‘문화관광산업의 육성’을 주된 발전전략으로 택하고 있다. 전남을 글로벌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한 3년 프로젝트, ‘2024~2026 전남 세계관광문화대전’을 지난 6월 17일부터 선포식을 개최하면서 시작했다. 전남이 오염되지 않은 수려한 자연환경과 각종 유형·무형의 문화유산이 풍부하며 남도의 맛 등이 있어 문화관광산업의 최적지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때 세계유산의 역할은 분명하다. 이미 선정된 4건의 세계유산은 물론, 잠정목록에 오른 6건도 하루빨리 등재유산에 올려 문화관광산업의 활성화에 활용하기 바란다. 이는 동시에 우리 지역 공동체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5.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그림 12】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김구(1876∼1949년)는 처음부터 끝까지 임시정부와 함께 운명을 같이하였다. 끝내 진정으로 원했던 세상을 보지 못한 채 단정수립 세력에 의해 암살당하였다. 미래사회는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다. 문화의 시대란 사람들의 삶의 목표가 ‘일의 성취’에서 ‘문화의 향유’로 옮겨져 간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따라 문화와 관련된 산업, 즉 문화산업은 21세기 가장 중요한 산업분야의 하나가 되고 있다. 문화산업은 또한 유네스코 등재유산 등의 경우처럼 국가유산산업과 함께 관광산업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를 통해 문화강국의 꿈을 이루어 내자.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7) 중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오직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나의 소원’으로 70 평생을 살아왔던 김구 선생이 원하는 우리나라는 “오직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을 갖는 나라이다. 읽을 때마다 그 반전에 놀라며 기막힌 승화의 기품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원하는 우리나라가 이제 조금이나마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정치·경제·사회·문화라는 통상적인 분류 순서 때문에 늘 밀려있던 문화가 이제 선두에 설 때가 되었다. 그리하여 문화로 빛나는 우리나라, 전라남도가 되기를 바란다. 1) [손영옥의 컬처 아이] 「국가유산청 시대, 안 보이는 비전」, 「국민일보」, 2024-05-23.
2) 세계유산과 우리나라 세계유산에 대한 이 절의 구체적인 내용은 ‘유네스코와 유산’(https://heritage.unesco.or.kr/)을 참조하여 작성하였다. 3) 이배용, 『역사에서 길을 찾다 – 우리가 꼭 살려야 할 전통유산』(도서출판 행복에너지, 2021. 3.), 352~357쪽. 4) 전라남도의 세계유산 중 화순 고인돌 유적, 대흥사, 갯벌 등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한국학호남진흥원의 「호남학 산책」에 연재 중인 ‘풍경의 기억’에서 「전라남도-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이 있는 곳-(2023.04.03.)」, 「조선 후기 불교계의 근본사원[宗院] 대흥사와 천불(千佛)(2024.02.26.)」, 「전국 1위의 섬, 해안선, 갯벌을 가진 전남(2023.07.03.)」 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5) 김경미, 「산지 승원 선암사의 세계유산 가치 연구」(『남도문화연구』제36권, 2019) 참조 6) 1인당 GNI는 GDP(국내총생산)에 국민의 해외 소득을 더하고 외국인의 국내소득을 뺀 값을 인구수로 나눈 값이다. GDP에 기반을 둔 만큼 가계 뿐 아니라 기업이나 정부가 번 돈까지 포함한 소득을 따진다. 7) 「나의 소원」은 1947년 12월 ‘국사원본’이 간행될 때 처음 수록된 것으로 당시 백범의 사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도진순 주해, 『백범일지 –백범 김구 자서전』(돌베개1997. 8), 423~433쪽 참조. 글쓴이 고석규 목포대학교 前 총장, 사학과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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