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공모전 수상작] 조선을 세계에 알린 푸른 눈의 이방인 게시기간 : 2024-07-19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4-07-16 14:06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원고 공모전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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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말 겨우내 말랐던 나무에서 움이 트는 것을 보며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오후다. 듣고 싶은 말만 가려듣는 현대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쉼 없이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주말여행을 떠난다. 오늘의 목적지는 강진군 병영면에 있는 전라병영성지다.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리며 가려진 시간을 열어 줄 누군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봄처럼 설레었다. 길가엔 겨울을 이겨낸 나무들이 저마다 빛을 내고 있었다. 마치 그것은 등불로 걸어 나오는 요정들 같았다. 혹한의 시간을 견뎌온 나무가 빛을 드러내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시간을 살짝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길옆으로 늘어선 가로수에는 아직 몇 송이 붙어 있지 않은 벚나무 꽃잎이 간간이 날리고 있었다. 흩날리는 꽃잎이 이름 모를 병사가 띄우는 편지같다는 생각을 했다. 성을 쌓고 성읍을 지키느라 정작 자신은 지키지 못하고 떠나간 병사들의 애달픈 편지, 어딘가에 닿지 못하고 바람에 흩날리는 꽃편지를 읽다 보니 어느새 전라병영성에 도착해 있었다.
전라병영성 남문 진남루
전라병영성 서문 Ⅱ. 가려진 시간의 문을 열고 곡선의 병영성에 들었다. 먼 곳의 시간을 향하여 길을 내주고 있는 듯한 굽이진 성벽길, 틈 없이 쌓아 올린 돌덩이 하나하나에 배어 있을 누군가의 땀방울을 훔치듯 성돌을 어루만져본다. 땅속 깊이 묻힌 돌을 캐내어 정으로 쪼깨고 다듬어서 깎여나간 면을 맞물려 벽을 이룬 돌과 돌, 그 틈 사이로 머금은 이끼 같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데 정수리가 뜨거워지는 오후의 햇살로 푸른 눈의 이방인이 끼어든다. 이곳은‘하멜표류기’를 쓴 헨드릭 하멜과도 연관이 깊은 곳이다. 그는 1656년에 유배되어 이곳 병영에서 7년 동안 노역을 하며 보냈다. 나중에 하멜은 고향으로 돌아가 ‘하멜표류기’를 쓰게 되는데 그 책을 통해서 당시 존재도 없던 동방의 작은 나라가 서양에 처음으로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머나먼 이국땅에 억류되어 노역을 하는 동안에도 이 땅의 생활상을 세세히 기록해 나갔던 사내, 흐르는 시간이 야속했을 그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만 봐도 고향의 가족들 얼굴이 떠올라 눈물을 지었을 것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에 자신이 믿는 신을 원망도 했겠지, 절망의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던 그는 결국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의 신념처럼 성벽을 따라 담쟁이덩굴들이 뻗어가고 있다. 안과 밖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푸른 줄기들이 고국을 향해 희망의 싹을 틔웠을 푸른 눈의 사내로 읽혀졌다. 전라병영성은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에 있는 성곽이다. 송곽은 성벽의 안쪽과 바깥쪽을 모두 돌로 쌓는 협축기법을 사용하였는데 이 기법은 돌을 불규칙하게 층층이 쌓고 작은 돌로 틈을 막았으며 줄눈이 서로 맞물려 있어 견고한 것이 특징이다. 병영성은 조선의 초대 병마절도사였던 마천목(馬天牧)이 축조(1895년 고종 32년)하여 갑오경장까지 조선 왕조 500년간 조선의 국방을 담당했다. 이 성은 정방형의 성으로 4개 문과 4개 옹성, 8개의 치성(雉城)으로 구성돼 있고 성 내부에는 동헌과 객사, 내아 등이 있다. 성곽 외부는 해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위로 둘러서 판 못) 시설이 있고 함정을 파서 적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함정 유구들이 있었다. 남문 일대의 해자 바깥에서 64기의 함정 유구들이 발견되었는데 국내 성곽 방어시설에서 함정 유적이 대거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병영성 남문지 해자
병영성 해자 아래 파인 함정 유구들 예로부터 북쪽에는 개성상인, 남쪽에는 병영상인이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강진은 상업이 발달한 곳이었다. 배들이 울돌목을 거치지 않고 편안하게 제주를 갈 수 있다고 해서 이름도 편안할 ‘강(康)’에 나루 ‘진’을 붙인 강진(康津)은 서해안과 남해안이 만나는 지점이며 중국과 일본의 중간거점으로 국제 무역의 중심지였다. 이곳엔 재미있는 속담들이 전해져 오는데 “산모가 진통을 할 때 아기가 잘 나오지 않으면 ‘옛다, 저울,’하면 아이가 금방 나온다.”“병영 상인들은 말꼬리로 만든 붓 12자루만 있으면 밖에 나가 1년 먹을 것을 벌어온다.” 등 전해져 오는 속담들을 봐도 얼마나 상업이 발달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때의 명성과 사람들은 사라졌지만 당시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느티나무 몇 그루는 지금도 여전히 우뚝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나는 가려진 시간속을 느릿느릿 걸으며 성곽의 침묵에 귀를 기울였지만 600년이 넘는 시간은 쉬이 그 틈을 내어주려 하지 않아 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저 멀리로 바람의 손 같은 풍차가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Ⅲ. 푸른 눈의 이방인과 돌담길을 걷다 하멜 기념관은 병영성 동문 맞은편에 있었다. 입구엔 네덜란드의 상징인 풍차가 우뚝 서서 오는 이들을 반겨 주었다. 기념관 내부에는 전라병영성의 출토 유물들과 17~18세기 네덜란드에서 사용되었던 생활용품들, 그리고 조선이라는 동방의 작은 나라를 세상에 소개하는 최초의 저서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은 ‘하멜표류기’ 사본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병영군과 자매도시인 네덜란드 호르큼 시에서 기증한 전통의상과 나막신 등이 전시되어 있어 역사문화 유적지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었다.
하멜표류기 사본
호르큼 시에서 기증한 네덜란드 전통의상 헨드릭 하멜은 네덜란드의 소도시 호르큼에서 태어났다. 하멜은 ‘하멜표류기’를 써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서양에 처음 알려준 장본인이다. 그는 책에서 조선의 여러 분야에 대한 것들을 언급했으며 특히 조선의 문자는 어떤 사물이든지 쓸 수 있는 글자라며 한글의 우수성을 언급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하멜은 1653년 동인도 회사 소속의 선박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일본의 나가사키로 가던 중 폭풍을 만나 제주도에 표류하게 된다. 제주 목사 이원진은 하멜 일행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자 서울로 호송한다. 그에게 낯선 이국 생활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선 조정은 당시 청나라의 간섭을 받고 있었던 때라 하멜 일행의 존재를 들키지 않으려고 청나라 사신이 올 때면 그들을 잠시 남한산성으로 이송시켰다. 그런데 일행 중 일부가 청나라 사신이 지나가는 길목에 뛰어들어 자신들을 고향에 보내달라고 소란을 일으키고 이를 계기로 하멜 일행은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어 전라병영에서 1656년 3월부터 1663년 3월까지 생활하게 된다. 약 7년간 이곳에 억류되어 생활을 하게 된 하멜 일행은 이곳에 있는 동안 전라병영성에 노역을 나가기도 하였고 생계를 위해 잡역을 하거나 나막신 등을 만들어 팔기도 하였다. 병영성 해자 내부에서 발굴된 나막신들도 이때 하멜 일행이 만들어 보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6분의 1이 바다보다 낮은 땅이라 질컥거려 굽이 있는 나막신을 즐겨 신었다고 한다. 하멜은 고국에서 신고 다녔던 나막신을 오동나무로 만들어 병영 사람들에게 팔았던 것이다. 자매결연을 맺은 호르큼시에서 보내왔다는 나막신과 해자 안에서 발굴된 나막신 모양이 흡사한 것만 봐도 그것을 잘 증명해주고 있다.
네덜란드의 나막신
해자 안에서 나온 조선시대 나막신 나막신 이외에도 푸른 눈의 이방인이 남긴 흔적으로 병영마을의 돌담을 들 수 있다. 이 마을의 빗살무늬 돌담은 하멜 일행인 남긴 흔적이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하멜 일행은 노역으로 담을 쌓고 돈을 받아 생활했는데 지금도 그들이 쌓아 놓은 방식이 그대로 유지 보수 되고 있다. 병영마을 한골목 옛담장은 전체적으로 돌과 흙을 번갈아 쌓은 토석담으로, 하부는 큰 화강석으로 쌓고 중간에는 얇은 돌로 15도 정도 촘촘하게 눕히고 그 위로 다시 엇갈려 쌓는 ‘엇쌓기’로 만들어졌다. 이는 하멜이 살던 네덜란드가 해수면 보다 낮아 지반이 약하다 보니 이러한 방식으로 담을 쌓는다는데 하멜은 그것을 응용한 것이리라. 덕분에 독특한 이 골목 돌담은 오늘날 병영 마을의 특별한 명소가 되었다. 골목을 천천히 거닐다 이 지역이 낳은 대표적인 시인 영랑의 시가 떠올랐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김영랑) 문득, 영랑도 봄 햇살 가득한 병영의 돌담길을 걸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햇빛이 비치는 돌담 사이를 걸으며 세상에서 요동치는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곤 했을까, 고운 봄길 같은 삶이 되고자 하늘을 우러러 다짐했을 시인의 마음이 골목 사이로 순하게 전해져 왔다, 푸른 눈의 이방인은 떠나고 없지만, 그가 남긴 돌담길은 걷는 이로 하여금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 같은 마음을 갖게 했다.
Ⅳ. 팔백 년 침묵의 소리를 듣다 돌담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을 중간쯤 큰 어른의 위엄을 가진 은행나무 한그루를 만나게 된다. 팔백 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기 벅찬지 나무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팔백 년이라는 그 많은 시간 동안 그늘을 넓히며 한 자리를 지키는 일은 얼마나 거룩하고 위대한 일인가, 이 은행나무는 숫컷이라 열매 대신 꽃을 피우고 있었다. 하멜도 이곳을 자주 찾았다는데 이 은행나무에는 한 가지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 전라 병마절도사로 부임한 관리가 이 나무로 만든 목침을 베고 잠을 잔 뒤에 병이 났는데, 백약이 무효하였다. 그때 한 노인이 은행나무에 제사를 지내고 목침을 나무에 붙이면 병이 낫는다 하여 그대로 했더니 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있다. 이후로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2월 15일 자정에 은행나무에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전설이라고 하지만 한낱 말 못하는 나무도 떨어져 나간 분신을 그토록 찾길 원했다는데 고국과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푸른 눈의 이방인도 그런 마음이 들었으리라, 깊어지는 향수병에 매년 음력 이월 보름이 되면 주민들과 함께 고인돌 위에 작은 돌 하나 얹으며 소원을 빌었을 것만 같았다.
팔백 년이라는 세월을 먹고 선 은행나무는 그 존재만으로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거대한 침묵의 소리를 한마디라도 듣고 싶어 주변을 서성이는데 은행나무 바로 앞집에 사시는 어르신이 곁으로 다가오셨다. 낯선 여행자에게 물 한 잔 건네주시는 어르신의 친절에 이끌려 집으로 들어갔다. 어르신의 집은 그야말로 정갈함 자체였다. 모든 것은 자기 자리가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어르신의 집엔 농기구며 집안의 모든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렬돼 있었다. 마을 이장을 오래하셨다는 어르신에게 병영에서 회자가 되는 푸른 눈의 이방인에 대한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하멜이 머물던 당시 이 은행나무 아래 놓인 고인돌에 앉아 고향을 그리워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 지명을 본관으로 한 병영 남씨가 있는데, 그것이 헨드릭 하멜 일행 후손의 성씨라는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하멜은 강진에 마련한 집에서 네델란드풍 정원을 가꾸며 향수를 달랬다고 한다. 조선에 닥친 기근으로 인해 분산수용되어 떠날 때 집과 정원을 두고 가야 했던 점을 무척이나 아쉬워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나가는 여행자에게 작년 가을 수확한 감으로 만든 곶감이라며 내어주시는 어르신의 모습이 일생 한 자리에서 마을을 지킨 은행나무처럼 병영을 지키는 노병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며 집을 나왔다.
Ⅴ. 나가는 말 사람들은 그늘보다 빛을 추구한다. 사람과는 달리 나무는 그늘을 추구하며 산다. 한 뼘 그늘을 만들기 위해 전(全) 생을 소모한다. 그늘진 곳에 깃드는 것들을 눈여겨보라고 제 품을 늘려 그늘을 키우는데 일생을 건다. 팔백 년 동안 만든 그늘이 나그네를 품고 있다. 은행나무 아래는 수만 개의 꽃송이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팔백 년 동안 목격했던 수많은 일들을 꽃으로 피워 내보내며 나무는 스스로를 비워가고 있는 것이다. 제 속을 꽃으로 비워가는 나무, 나무는 시나브로 나(我), 무(無),에 이르고 있다. 결국 무에 이르게 될 인생들. 무엇인가를 지키려고 날마다 높은 성을 쌓고 있지만 그 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눈에 보이는 적이 아닌 보이지 않는 시간일 것이다. 봄날 한때 끼어든 푸른 눈의 이방인이 내게 묻는다. 무엇을 지키려고 성을 쌓고 있는지, 이 봄, 깊은 곳에 쌓인 것들을 꽃으로 피워내고 있는지, 가려진 시간 속에서 들리는 침묵의 소리가 잠자던 세포를 깨운다. 햇살은 어느새 돌담 너머로 기울고, 나는 선 채로 결국 무에 이르게 될 은행나무를 뒤로한 채 병영마을 빠져나왔다. * 참고 자료 : 1.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사전 2. 문화재청 국가문화 유산 포털 3. 강진 병영면 하멜 기념관 4. 언론매체 기사 5. 하멜 표류기 2020. 스타북스 집필자 김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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