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서와 옛편지] 선비에게 가장 핍근한 것, 『유자최근(儒者最近)』 게시기간 : 2019-11-14 07:00부터 2030-04-04 03:03까지 등록일 : 2019-11-1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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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와 옛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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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최근(儒者最近)’이라는 말은 ‘선비들에게 가장 핍근한 것’이라는 뜻이다. 성리학의 비조(鼻祖)인 정호(程顥, 字 明道)의 「유서(遺書)」에 나오는 말이다. 정명도는 “자제들이 빠져서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심지(心志)를 빼앗는 것이다. 서찰은 선비의 일에 있어서 가장 핍근한 것이다. 그러나 너무 좋아하게 되면 심지를 상하게 된다.(子弟凡百玩好 皆奪志 至於書札 於儒者事最近 然一向好著 亦自喪志)”고 하였다. 이 귀절은 『소학(小學)』이나 『근사록(近思錄)』에 인용되어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은 잘 알고 있는 글귀이다. 원래 이 말을 쓴 의도는 너무 한 가지 기예(技藝)에 빠지게 되면 지기(志氣)를 잃게 되어 도(道)를 알 수가 없게 되니 자제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 나오는 ‘서찰’은 그냥 ‘간찰’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근사록』에 주석을 붙인 진순(陳淳, 1159~1223)은 ‘서찰’은 ‘글씨와 간찰’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위 문장에 이어지는 구절에서 왕희지(王羲之)나 우세남(虞世南), 안진경(顏眞卿), 류공권(柳公權)과 같은 사람들은 모두 서찰에 능하였고 풍도와 절개가 있어서 당세에 표준이 되었지만 그들이 도를 알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대개 한 가지 기예에 전공하게 되면 다만 시일만 소비하게 되고 학문에는 방해가 되고 이것에 뜻이 국한되어 조존(操存)의 본령(本領)을 잃게 된다고 하여 젊은이들이 경계해야 할 것으로 글씨에 빠지는 것을 들었다. 따라서 정명도가 말한 ‘유자최근’이라는 말을 ‘선비들에게 가장 핍근한 글씨나 간찰’을 말한다. 선비들에게 가장 중요한 소통 수단인 간찰은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역사적인 유물들은 보통 글씨나 그림으로 남아있어서 이를 소장한 각 가문에서는 이를 보배로 여겼다. 성호 이익의 여주이씨 가에서는 선조의 글씨를 『천금물전(千金勿傳)』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10책으로 장책하여 보전하였다.1) 필적은 그 사람의 성정(性情)이 나타나는 ‘심화(心畫)’이기 때문에 명가(名家)에서는 보통 자신들의 선조의 유묵을 모아서 『선조유묵(先祖遺墨)』이나 『선조유필(先祖遺筆)』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간직하며 보배로 여겼다. 이렇게 각 가문에서 선조의 유묵을 모아 장첩한 것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선조는 아니지만 명현이나 선배 명필들의 간찰이나 시고와 같은 유묵(遺墨)을 모아서 첩장(帖裝)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근대 시기에 들어와서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에 의하여 집성이 되었다. 오세창은 선인들의 유묵을 모아서 『근역서휘(槿域書彙)』와 『근묵(槿墨)』으로 편집, 장책하였다. 『근역서휘』에는 1119건의 유묵이 수록되어 있고 『근묵』에는 1136건의 유묵이 수록되어 있다. 『근역서휘』는 그 자매편으로 그림 67건을 모은 『근역화휘(槿域畵彙)』가 있다. 이후에도 위창은 『근역서휘 별집(別集)』으로 141건의 유묵을 더 모았다.2) 『근역서휘』는 고려말에서 대한제국말까지 선인들의 필적을 모아 엮은 35책으로 된 서첩이다. 위창이 수집 첩장하여 일제시기 고서화 수집가인 다산(多山) 박영철(朴榮喆)에게 들어갔다가 1939년에 경성제국대학에 기증한 것으로 지금은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수록된 필적은 거의 600여년에 걸치는 것으로, 국왕의 어필에서부터 여러 명현들의 간찰이나 시고 등 광범위하게 수집되어 있다. 『근역서휘 별집』은 4책으로 18세기 초 백하(白下) 윤순(尹淳)의 서간에서부터 근대시기 안종원(安鍾元)의 유묵까지 모두 137인의 유묵 141건이 수록되어 있다. 『근묵』은 고려 말의 정몽주(鄭夢周)로부터 근대의 이도영(李道榮)에 이르기까지 명사 1136명의 글씨를 각 한 점씩 모아 모두 34책에 수록하였다. 『근역서휘』를 박영철에게 넘기고 오세창은 다시 유묵을 수집하여 80세 되던 1943년에 『근묵』으로 첩장하였다. 『근역서휘』와 『근묵』 두 자료 집성과 함께 위창 오세창은 우리나라 서화가 인명사전인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 또 서화가들의 인장을 모은 『근역인수(槿域印藪)』도 간행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우리나라 문화사, 서화사 연구의 기초가 되고 있다. 위창의 작업 이후 그러한 방대한 작업은 더 이상 없었으나 동아대 석당학술원에 소장된 『선현필적집』이 792건의 간찰을 수록하고 있다. 여기에 새로 소개하는 ‘선비에게 가장 핍근한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 『유자최근(儒者最近)』 6책이 최근에 주목되고 있다. 임란 전후의 명필들에서부터 주로 17~18세기의 명현 175인의 간찰과 글씨 201점을 모아 장첩한 것이다. 이 간찰첩은 퇴계에서부터 『대전통편(大典通編)』을 편찬한 김치인(金致仁, 1716~1790)까지의 인물이 수록되어 있다. 김치인은 수록된 인물 중에서는 가장 늦은 시기의 인물이다. 175명의 인물 중 남인 인물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모두 노론, 소론 등 서인 계열의 인물들이다. 파평윤씨인 윤봉오(尹鳳五), 윤봉구(尹鳳九), 윤봉조(尹鳳朝), 윤심형(尹心衡) 등의 간찰에서는 이름에 첨지를 붙여서 가린 것으로 보아 파평윤씨 윤봉구 후손가의 누군가가 장첩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수록 인물이 18세기 말의 인물이므로 이 서첩은 늦어도 순조 대, 빠르면 정조 대에 수집되어 장첩된 것으로 생각된다. 『유자최근』은 6책 201건의 유묵첩으로 『근역서휘 별집』을 약간 넘는 정도의 컬렉션이다. 1책은 13건으로 가장 볼륨이 작지만 퇴계(退溪), 율곡(栗谷)을 비롯하여 명필인 한호(韓濩), 오준(吳竣), 백진남(白振南), 조속(趙涑), 신익성(申翊聖) 등이 수록되어 있다. 2책에는 이정귀(李廷龜), 이명한(李明漢), 이일상(李一相) 등 연안이씨 8건, 이단하(李端夏)와 이여(李畬) 등 덕수이씨 2건, 서종태(徐宗泰), 서명균(徐命均) 등 대구서씨 2건, 이이명(李頤命), 이건명(李健命), 이관명(李觀命) 등 전주이씨 3건, 김수흥(金壽興), 김수항(金壽恒), 김창집(金昌集), 김창협(金昌協) 등 안동김씨 5건, 민진원(閔鎭遠), 민진후(閔鎭厚), 민진장(閔鎭長), 민응수(閔應洙) 등 여흥민씨 6건, 윤세기(尹世紀), 윤순(尹淳), 윤급(尹汲) 등 해평윤씨 7건, 오준(吳竣), 홍처량(洪處亮) 등 40건의 간찰이 수록되어 있다. 3책에는 윤근수(尹根壽), 홍주원(洪柱元), 윤심(尹深) 등 29건, 4책에는 김상헌(金尙憲), 신익성(申翊聖), 이경석(李景奭), 성혼(成渾), 조상우(趙相愚), 강현(姜鋧) 등 45건, 5책 윤양래(尹陽來), 윤헌주(尹憲柱), 홍봉조(洪鳳祚) 등 41건, 마지막 6책에는 여이재(呂爾載), 이덕성(李德成), 윤봉구(尹鳳九) 등 33건의 간찰이 수록되어 있다. 이렇게 하여 총 175명 201건의 간찰이나 시고, 문장 등이 수록되어 있다. 『유자최근』의 특징은 이미 18세기 말에 선현들의 유묵을 수집하여 첩장하는 전통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자료라는 것이다. 대개 자신의 선조의 유필을 모아 『선조(先祖)...』식의 제목으로 첩장을 하는데, 『유자최근』은 1책의 명필첩, 2~6책의 선현의 필적을 모은 컬렉션인 셈이다. 『유자최근』은 윤봉구, 윤봉오, 윤심형 등 파평윤씨 선조의 간찰에 첨지를 붙여서 피휘(避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이 컬렉션이 파평윤씨 집안에서 수집, 편찬되었거나 그 집안에 전래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18세기 말에 이미 이러한 컬렉션이 이루어졌고, 그때에 수집, 첩장된 것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으로서 근대 초기에 위창에 의하여 집성된 『근역서휘』나 『근묵』 컬렉션의 선편(先鞭)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림1 이황, 신익성 유묵(『유자최근』 1책)
그림2 이이 유묵(『유자최근』 1책)
그림3 한호 유묵(『유자최근』 1책)
그림4 성혼, 심지원 간찰(『유자최근』 4책) 1) 경기도 안산시 성호박물관 소장. 2010년에 보물 1673호로 지정되었다. 『천금물전』은 ‘천금을 주어도 다른 곳에 주지 말라’ 또는 ‘자손에게 천금을 전하지 말고 학문과 덕망을 전하라’는 의미가 되겠다.
2) 『근역서휘』와 『근역화휘』, 『근역서휘 별집』은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근묵』은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글쓴이 김현영(金炫榮) 한국고문서학회 명예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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