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窓] 우리나라 가장 이른 시기의 괘불- 나주 죽림사 세존괘불탱 게시기간 : 2019-10-19 07:00부터 2030-01-02 00:00까지 등록일 : 2019-10-1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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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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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남평 죽림사는 17세기 초반 괘불을 소장하고 있다. 이 괘불은 처음 다른 절에 봉안되었으나,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현재는 죽림사에서 보관하고 있다. 문화재명으로 죽림사세존괘불탱(보물 제1279호)은 1622년 조성된 불화이다. 이는 현존 가장 이른 시기의 괘불탱으로서 우리나라 괘불의 시원을 밝히는데 중요한 근거자료가 되고 있다. 족자 형태로 되어 있는데, 족자의 총 높이가 5.13m, 가로 폭이 2.75m이다. 석가모니불을 그린 화면은 세로 4.36m, 가로 2.40m로 조선후기 괘불탱 가운데 가장 크기가 작다. 불화의 바탕천은 6폭을 연결하여 만들어졌고, 중간의 두 폭은 견직물이고 좌우의 네 폭은 마직물이다. 바탕천에 존상을 그리기 위해 붉은색 테두리로 크게 구획한 후에 그 안에 커다란 광배를 등에 진 석가모니불이 단아한 자세로 앉아있다. 청색의 연화대좌에 결가부좌하고 있는 석가모니불은 수행을 방해하는 모든 마귀를 항복 받고 정각을 성취하였을 때의 수인인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의 상호는 원만하면서도 덕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석가모니불의 광배는 두광, 신광 모두 키 모양으로 내부는 녹색으로 채색하고 색감이 다른 문양대를 둔 후 테두리를 붉은색의 화염문으로 장식하였다.
화염문은 붉은색 위에 묵선으로 묘사하였다. 두광의 내부는 장식을 하지 않은 녹색으로 채색되었으나 신광의 내부는 화려한 연화당초문으로 시문되어 있다. 괘불의 화기에 첫 봉안 사찰이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검게 뭉개져 있어 확인할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뭉갠 자리 옆에 지금은 죽림사(竹林寺)라 쓰여 있다. 우선 궁금한 괘불의 조성연대와 불화를 그린 사람, 그리고 시주자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화기를 살펴보아야 한다. 나주 죽림사 소장 괘불의 화기는 화면의 하단 중심부에 묵서로 쓰여 있다. 괘불의 조성과 관련된 화기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天啓三年壬戌十一月十七日□□寺 庭中掛佛世尊幀 基布大施主 高任吉兩主 供養大施主 僉知高龍兩主 饌物大施主 至善 比丘 施主 勝言 比丘 韓夢義 兩主 鄭仁□ □□ 圭□□ 證明 愼受 畵士 首印 信軒 別座 一元 比丘 □燐 比丘 敬連 比丘 大功德主 慧恩 比丘 조성연대는 화기에 ‘천계삼년 임술(天啓三年壬戌)·····’이라 기록되어 있다. 천계삼년은 서기 1623년이다. 임술년은 서기로 1622년으로 1년이 차이가 난다. 이럴 경우 간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괘불의 조성연대는 1622년으로 광해군 말년에 만들어져 사찰에 봉안되었다. 우리나라에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괘불이 이 불화인 것이다. 이 괘불이 처음 봉안되었던 사찰이 어느 곳에 있는 절인지는 검게 뭉개져 있어 확인할 수 없다. 첫 봉안 사찰에서 어떤 용도였을지를 살필 수 있는 내용도 화기에서 확인할 수 있어 주목된다. 화기에 ‘정중괘불세존탱(庭中掛佛世尊幀)’으로 적혀있다. 사찰의 중정(庭中)에서 행해지는 야외법회에 걸기 위해 석가세존불화로 조성된 것이다. 석가모니불이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불화로서 야외법회용 영산회괘불탱으로 조성해 봉안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괘불의 시원은 영산회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시주자 명단은 괘불의 크기가 가장 작은 만큼 매우 간단하게 기록하였다. 기포대시주자는 고임길 부부(高任吉兩主)인데, 괘불의 바탕천인 비단과 삼베를 시주한 인물로 보인다. 이 밖에도 공양미를 시주한 공양대시주 고용 부부(高龍兩主), 반찬을 시주한 찬물대시주 지선 스님(至善 比丘), 또 승언 스님(勝言 比丘), 한몽의 부부(韓夢義 兩主), 정인□부부(鄭仁□ □□), 규□□시주자로 기록되어 있다. 증명사 스님은 신수 스님(證明 愼受)으로 이 괘불의 첫 봉안 사찰과 관련된 큰 스님으로 여겨진다. 죽림사 소장 석가세존탱을 그린 화가는 화사 수인(畵士 首印)과 신헌(信軒) 스님 두 분이다. 이 괘불이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불화 때문인지 다른 불화의 화기에 전혀 보이지 않아 어느 절 스님인지도 알 수 없다. 불화를 그리는 스님을 불모(佛母), 금어(金魚), 화사(畵師), 편수(片手)라고도 한다. 나주 남평 죽림사 소장 세존괘불탱은 임진왜란(1592∼1598년)으로 전국토가 초토화된 이후 얼마 되지 않은 시기인 1622년(광해군 말년)에 조성된 불화로서 가장 이른 시기 괘불이다. 석가모니불이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 괘불로서 사찰의 중정에서 괘불대에 걸고 야회법회를 할 때 사용된 불화인 것이다. 글쓴이 이계표 (사)호남불교문화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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