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시초대석] 바닷가 언덕 달빛 아래 그대 소를 타고서 게시기간 : 2019-10-22 07:00부터 2030-02-01 04:00까지 등록일 : 2019-10-21 09:56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명시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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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정반대인 일들이 부지기수다. 게다가 즉각적인 선택이 최상의 결과로 이어지는가 하면, 숙고를 거듭한 선택이 패착을 낳기도 한다. 당시의 선택이 적절했느냐는, 숲을 벗어나서야 숲의 모양을 볼 수 있듯, 시간이 지난 다음에 제대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때로는 불편과 위난(危難)이 보이는데도 선택을 결행(決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선택이 지향이나 가치의 문제와 결부될 때 나타나는 것으로, 전통 시대의 유자(儒者)의 삶에서 종종 목격된다. ‘현명한 선택’이라는 말이 선택의 결과가 삶의 안정성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갈림길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던 선인의 삶 한복판에 함께 서 보자. 이 시는 여말선초에 활동했던 권근(權近, 1352∼1409)이 지은 것이다. 권근의 자는 가원(可遠), 사숙(思叔)이며, 호는 양촌(陽村)이다. 권보(權溥)의 증손이자 검교정승 권희(權僖)의 아들이다. 그는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 문인으로 정도전, 이숭인 등과 교유했다. 공민왕이 죽고 우왕이 즉위하자 정몽주, 정도전 등과 함께 배원친명(排元親明)을 주장했으며, 1390년에는 윤이(尹彝)·이초(李初)의 옥사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해배(解配) 이후 조선의 개국을 맞았다. 1393년 왕의 부름을 받은 이후 예문관대학사, 중추원사, 대사헌 등을 지냈고, 1401년(태종 1년)에는 좌명공신 4등으로 길창군(吉昌君)에 봉군되기도 했다. 이 시의 제목에 나오는 ‘기우도인’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기우자(騎牛子) 이행(李行, 1352∼1432)이다. 이행의 부친은 충주목사를 지낸 이천백(李天白), 어머니는 평해 황씨이다. 이천백은 홍건적이 침입했을 때 충주목사로 맞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었는데, 이 무렵 이행은 외가가 있는 평해(平海)로 피신하기도 했다. 1371년(공민왕 20년)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원 수찬을 지냈고, 우왕 초 원 사신 영접 문제에 있어서는 정몽주의 편에 선다. 이후 우왕모(禑王母)의 신주(神主)를 서서히 철거하자는 이색의 주장을 변호하다가 청주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1392년(공양왕 4년) 예문관 대제학으로 있으면서, 정몽주를 살해한 조영규의 죄를 논하였고, 고려가 망하자 예천동에 은거하였다. 태조 2년(1393)에는 고려의 사관(史官)으로 있을 때, 사초(史草)에 우(禑)ㆍ창왕(昌王)과 변안렬(邊安烈)을 태조가 죽인 것으로 썼다는 이유로 직첩을 빼앗기고 국문 당했으며 평해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유배에서 사면된 이후에는 전라도 관찰사, 형조판서, 예문관 대제학을 지냈다. 이 시는 우왕 1년(1375)의 정국 상황을 배경에 두고 있다. 이때 원나라에서 고려에 사신을 보내는데, 우왕은 대신들을 내보내어 영접하게 하려 한다. 인의예악을 중시하는 명(明)의 편에 섰던 정몽주 등은 원 사신 영접을 반대한다. 이는 결국 이인임(李仁任) 등 친원 세력에 의한 정치적 반격으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신진사류(新進士類) 여러 인물이 고문을 당하고 유배를 당하는데, 이행은 돌연 평해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떠나는 이행을 전송한 시가 바로 이 작품이다. 이 시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는 도시에 살면서도 은자(隱者) 같은 삶을 즐기는 이행의 모습이다. 집은 분망(奔忙)한 도회의 갈림길 언저리에 있지만, 그는 자연의 정취를 느끼며 산다. 정원에는 아름다운 화초가 자라고 집 아래에서는 차가운 샘물이 솟아난다. 삶의 태도에서도 공명(功名)과는 거리가 멀다. 문을 닫은 채 마음의 평정을 추구하고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도 편안하게 느낀다. 때로는 술을 사다가 한 잔 걸치기도 하고, 평상에 누워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졸기도 한다. 흥(興)이 일 때면 집을 나서, 졸졸 물이 흐르는 시내를 찾아 바람을 쐬기도 한다. 평온하기만 한 개경(開京)에서의 삶은 어떤 계기에 의해 변화를 맞는다. “머리 돌려 인간 세상을 탄식”한다는 말은, 바로 이인임 일파에 의해 정국이 요동치던 상황에 대한 이행의 판단을 보여준다. 후반부는 선택과 실행에 관한 내용이다. 이행은 신진사류로서 가졌던 정국 개선의 희망을 접고, 고향과도 같은 평해로 갈 것을 결심한다. 탐욕과 기득권에 집착하는 무리로 가득한 개성(開城)과 달리, 그곳에는 자신을 맞아줄 무욕의 자연이 있기 때문이다. 권근은 다른 글 「기우설 騎牛說」에서 낙향 이전 시기, 평해에서 생활하던 이행의 모습을 묘사한 바 있다. 나의 벗 이주도(李周道)는 평해에 살았다. 달밤이면 술을 가지고 소를 타고서 산수 사이에 노닐었다. 평해는 명승지로 불리는데, 그 유람하는 즐거움에 있어서 이군은 옛 사람이 알지 못한 오묘함을 다 얻을 수 있었다.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빠르면 정밀하지 못하고, 더디면 그 오묘함을 다 얻는다. 말은 빠르고 소는 더디니, 소를 타는 것은 곧 더디 가고자 하는 것이다. 생각건대 저 밝은 달이 하늘에 있으면, 높은 산과 넓은 물이 위아래로 한 빛이어서 굽어보나 우러러 보나 끝이 없다. 만사를 뜬구름처럼 여기고 맑은 바람결에 긴 휘파람을 보내며, 소가 가는 대로 맡기고 마음 가는 대로 스스로 술을 마시면, 마음속이 유연(悠然)하여 스스로 그 즐거움이 있으니, 이 어찌 사심(私心)에 구속된 자가 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友人李公周道 家居平海 每月夜携酒騎牛 遊於山水之間 平海號稱形勝 其遊觀之樂 李君能盡得古人所不知之妙也 凡寓目於物者 疾則粗 遅則盡得其妙 馬疾牛遅 騎牛欲其遅也 想夫明月在天 山高水闊 上下一色 俯仰無垠 等萬事於浮雲 寄高嘯於淸風 縱牛所如 隨意自酌 胷次悠然 自有其樂 此豈拘於私累者 所能爲也” 權近, 『陽村先生文集』 제21권 이행은 달밤이면 소를 타고 바닷가 언덕길을 다녔다. 높은 산도 너른 바다도 달빛 아래서는 검푸른 하나의 빛깔인데, 바다와 산을 가르는 길을 그는 목적 없이 갔다. 소의 더딘 걸음은 넓은 시야를 열어주고, 천지 가득한 달빛 아래 술잔을 기울이노라면, 마음속의 속기(俗氣)가 사라지고 즐거움이 가득했다. 천지가 가슴에 들어오는 듯한 그 순간에 세상의 명리(名利)와 이욕(利慾)이 어디에 깃들 것인가? 위 시의 “멀리 소 타던 곳을 생각하니 밝은 달빛 바다 언덕에 가득했지.”라는 내용은 옛날 평해에서의 생활이자 그곳에서 보낼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다. 권근은 이행의 결행(決行)이 출처(出處)의 명분에 부합함을 강조하면서 부러움의 표현으로 시를 맺고 있다. 통시대 유자들이 이상적 모델로 삼은 인물 중의 하나가 도연명(陶淵明)이다. 먹고 사는 문제로 벼슬길에 나갔지만, 돌연히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삶은, 그들이 동경하는 삶의 형태였고, 귀향의 흥(興)을 담은 「귀거래사 歸去來辭」는 그들이 가장 애호하는 작품이었다. 누구의 문집을 펼치든, 도연명의 귀거래와 담박한 삶을 끌어들이지 않는 시문이 없을 정도다. 그렇지만 귀거래는 따라야 할 처세의 모범이라기보다는 관념적인 위안의 형태로 존재했다. 누구나 귀거래를 말하지만 실제로 귀거래한 사람이 없다는 말처럼, 대부분 사람은 가급적 벼슬살이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권근(權近)이 부러워하는 낙향의 선택과 실천은 사실 쉽지 않은 것이었다. 더구나 이행의 생애를 볼 때, 이때는 벼슬한 지 4, 5년 된 무렵으로 앞날에 대한 희망에 가득 차 있을 시기이다. 그러나 그는 불의와 부정이 횡행하는 정국(政局)을 보며 과감하게 초야(草野)로 발길을 돌렸다. 관료로서의 앞날을 포기하는 대신, 풍월주인(風月主人)의 삶을 선택했던 것이다. 달빛 가득한 밤, 소의 걸음에 몸을 맡긴 채, 몇 잔 술을 걸치고 바라보는 아득한 산과 바다는, 관료로서의 미래를 내려놓는 대신 그에게 주어지는 무진장(無盡藏)의 선물이었던 셈이다. 이 사건 이후 이행의 삶이 다시 굴곡과 파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이 순간에서의 ‘선택’은 그의 삶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임은 틀림없다. 삶은 선택의 과정이면서 동시에 유예(猶豫)의 과정이기도 하다. 과감하게 선택하고 싶은 욕구와 차마 놓지 못하는 마음 사이에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 범인(凡人)의 인생이 아닌가? 기로(岐路)에서 드러나는 선택의 ‘과단성’은 참으로 멋진 모습이다. 그러나 과단성은 뚜렷한 자기 주관과 열망에 기초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선택의 본질은 선택이라는 행위를 이끌어내는 ‘진정성’이라는 삶의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김창호 원광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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