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초대석] 보게나, 골짜기의 푸르고 푸른 저 나무를 게시기간 : 2019-08-12 07:00부터 2030-02-01 17:00까지 등록일 : 2019-08-09 17:24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명시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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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老年)에는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뀐다고 한다. ‘몇 년을 살았는가’에서 ‘몇 년을 더 살 것인가’로 생각이 옮겨가게 된다는 것이다. 노년의 삶이 자칫 쓸쓸함이나 허무의 정서로 기울기 쉬운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노년은 물리적 시간의 면에서 절대 짧지가 않다. 청ㆍ장년기의 한 시기에 버금갈 정도이며, 인생의 3분의 1 또는 4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신체적인 강건함이나 경제적 여유 이상으로, 준비하고 다져야 할 것이 노년의 마음가짐이자 정신적 설계이다. 어떻게 늙음을 맞이할 것인가? 노년을 지탱할 정신적인 축은 무엇일까? 선인의 시에서 생각의 실마리를 찾아본다. 이 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에 걸쳐 활동했던 송기면(宋基冕, 1882∼1956)이 지었다. 송기면은 전북 김제 출생으로 본관은 여산이며, 자는 군장(君章), 호는 유재(裕齋)이다. 15세 무렵부터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 1841∼1910)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석정이 세상을 떠난 뒤 39세 무렵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를 배알하고 성리학을 배웠다. 그는 간재의 ‘성존심비(性尊心卑)’와 ‘성사심제(性師心弟)’의 설을 계승하였다. 서예가로 명망이 높았고, 시에도 뛰어나 내면 정서를 품격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한편, 국권을 상실한 시대의 아픔과 쇠락해 가는 사도(斯道)에 대한 우려를 깊이 있게 담아내기도 하였다. 이 시는 유재의 말년인 1948년 무렵에 쓰인 것이다. 먼저 창작의 배경을 살펴보기로 한다. 간재의 문인이자 동학인 양재(陽齋) 권순명(權純命, 1891∼1974)과 비천(飛泉) 전기진(田璣鎭1889∼1963)이 어느 날 유재를 찾아온다. 약속된 만남인지, 일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무척 오랜만의 만남이었던 것 같다. 당시 권순명은 정읍(井邑), 전기진은 경상도 의령(宜寧)에 살고 있었다. 각자의 거주지가 먼 만큼 만나기가 쉽지 않았고 이들도 벌써 예순을 전후한 나이였다. 어쩌면 이날 이후로 다시 얼굴을 본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일 수도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이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많았던 듯하다. 대화는 자연스레 과거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승 간재는 전통적 도학의 중흥만이 국권 회복의 길이라 생각했고 이들도 이것을 학문의 기본방향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러한 학문 태도는 국가의 위난에 어떻게 도학군자만을 자부할 수 있느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 현실에서 모진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1937년 권순명은 간재의 척독(尺牘)을 편집하기 위해 전국에 통문을 발송하는데, 이 일로 일경(日警)에 잡혀갔다. 이때 삭발을 강요당하자 장도(粧刀)로 목을 찔러 피가 낭자하게 흐르기도 했다. 전통 유학을 견지하는 처지에서 의관문물(衣冠文物)을 지켜나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소식을 들은 유재는 「무계정사 오권고경 문성보역지(武溪精舍 晤權顧卿 文聖甫亦至)」라는 시에서 “친구의 머리에 가위 대지 못했지만, 두 눈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네. 剃鋒不上故人頭, 爲拭雙眸淚自流.”(『裕齋集』 권1)라 하며 울분을 표한 바 있다. “우리 같은 유자로 같은 곤액 당했는데”라는 5구의 내용은, 이러한 과거의 회억(回憶)에서 나온 것이다. 한편 세 사람이 함께한 이 날은 광복 몇 년이 지난 무렵이다. 당시는 국가의 재건을 위한 이런저런 움직임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그런데 사회적 활기와 달리, 이들이 평생 전심한 유학 정신이나 한학 지식은 역사적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3ㆍ4구에서 말하는 ‘헛된 늙음’, ‘마음속의 불편함’은 그러한 무력감의 우회적 표현이다. 이들은 씁쓸함을 삼키며, 오래간만에 만난 벗에게 그저 술잔을 건넨다. 오가는 잔에 취기(醉氣)가 오르는데, 이야기를 시작할 때 내리던 세찬 비가 그치고, 저 하늘에는 맑은 은하수(銀河水)가 펼쳐있다. 이 밤이 지나면, 각자 길을 떠나고 이생에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순간 시인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서글픔을 느낀다. 그렇지만 이내 서글픔을 머금고는 그들이 공유하던 기상(氣像)의 환기로 이별의 말을 대신한다. 엄혹한 추위에도 변함없는 송백(松柏)과 같이, 격변의 시기에 태어나 성현(聖賢)의 학문을 지켜나가던 마음을 새기며 남은 생을 마치자는 것이다. 젊은 시절 서로를 권계하던 항용어(恒用語)를, 마지막일지도 모를 순간에 다시 필생의 한 마디로 건네는 것을 볼 수 있다. 시인은 시를 통해, 평생 추구한 가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념을 보여준다. 여생에서도 그것이 중요한 지지대가 될 것을 확언하고 있다. 이 시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보편적인 울림은 무엇일까? 그것은 특정 사상에 관한 것보다는 인생을 마주하는 총체적 태도의 면이라 생각된다. 누구에게나 수용 가능한 표현으로 말한다면, 삶에 대한 지속적인 ‘긴장’이라 할 수 있다. 스스로 마음먹었던 자기 원칙, 자기 상식에 대한 자연스러운 자기 점검의 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인은 이 틀을 통해 죽는 날까지 자신의 가치를 지켜나가려 한 것이다. 노년의 삶에 있어서 지속적인 긴장이란 어떤 것일까? 이것은 나를 우선시하는 자기 고착화와 방향을 달리한다. 오히려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수반한다. 삶의 끝은 완성이 아니며, 노년 역시 경험의 오류가 존재하는 한 시기라는 것을 인정하게 한다. 그럼으로써 타인과 세계에 대해 너그럽고 유연하며 개방적인 태도로 나가게 한다. 지금에도, 진지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누군가의 노년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닌가? 설계하기에 따라 노년은 젊음도 생각하지 못한 색채의 멋진 시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김창호 원광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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