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유학문선] 껍데기 개화는 가라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근대유학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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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시인 신동엽의 시는 유명하다. 이것은 4.19 이후 한국 사회에서 피어나는 어떤 자각의 표현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오래된 껍데기가 있다. 그보다 더 오래된 자각이 있다. 한국 근대 호남 지식인 정일우가 전하는 껍데기 개화, 그는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을까? [번역] 근래 어떤 화가가 「여산폭포도(廬山瀑布圖)」를 그렸는데 푸른 산에서 흰 폭포가 쏟아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그림 옆에서 동자 한 명이 향로를 받들고 있었는데 자욱한 보랏빛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태백(李太白)의 시를 보지 못했소? ‘햇빛은 향로를 비추니 보랏빛 연기가 생기네’가 이것이오.” 듣는 사람이 코를 가리고 말했다. “이 향로는 산봉우리 이름이오. 진짜 그런 그릇이 있는 게 아니오. 그대는 잘못 생각했소.” 또 「적벽범주도(赤壁泛舟圖)」를 그렸는데, 기다란 선이 몇 폭을 가로질러 가면서 끊기고 이어지고 하기를 들쭉날쭉 계속하였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소동파(蘇東坡)의 부를 보지 못했소? ‘강물은 소리내어 흐르고 끊긴 언덕이 천 척이나 되네’가 이것이오.” 듣는 사람이 시구를 풀이해 주었다. “그런 뜻이 아니오. 가을 강물에 저녁놀이 지자 강안이 굽이굽이 솟아서 마치 천 척이나 끊긴 것 같다는 것이지 실제로 강안이 끊기고 이어지고 하며 길게 가로질러 가는 것이 아니오. 그대는 잘못 생각했소.” 이에 그 그림은 잘 그리긴 했지만 쓸모가 없어 버려지고 말았다. 아, 지금의 이른바 ‘어칭개화(語稱開化)’라는 게 이와 무엇이 다른가. 개화란 ‘개물성무(開物成務)’와 ‘화민성속(化民成俗)’을 이르는 말이다. 정교와 명령에 확고하게 힘써서 번쇄하고 진부한 정치를 없애 한결같이 편리하고 간단한 일을 따르며 고금을 참작하고 장단을 취사하여 지식의 발달에 힘써서 날로 문명에 나아간다면 이것이 진정 개화를 잘 하는 것이다. 만약 실제에 힘쓰지는 않고 한갓 민첩하고 경박한 태도로 개명의 말단이 되는 일을 억지로 흉내내서 분분하게 겉모습을 꾸몄으나 그 속을 보면 한 가지 일도 개명한 사람과 실제 비슷한 데가 없다면 이것은 개화를 해치는 것이다. 어찌 개화라고 이를 수 있겠는가. 대개 보기 좋고 듣기 좋은 도구나 몸에 편리한 일이 있으면 신기하다고 과장하는 버릇을 붙여 기뻐하면서도, 정성껏 노력하고 피폐하게 몸을 수고해야 하는 일이나 애간장을 태워 가며 지혜를 짜내고 정신을 다해야 하는 술법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모두 가차하고 모방하여 능히 진상을 행하고 실지를 얻지 못해 마침내 호랑이를 그리다 만 것으로 귀결한다. 더러 혼잣속으로 그림을 잘 그린다고 자만하는 사람도 필경 향로를 그리고 끊어진 강안을 그려서 버려진 그림과 같은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오호라. 슬프도다. [원문] 近有一畵師, 畵廬山瀑布圖, 爲靑山白練之勢, 而傍畵一童子, 奉香爐, 噴霏霏紫焰之烟. 問其故, 曰不見李太白之詩乎? 日照香爐生紫烟是也. 聞者掩鼻, 曰是香爐峯名也, 非眞有其器也, 子誤矣. 又畵赤壁泛舟圖, 爲長線橫拖數幅, 或斷或續, 連絡參差. 問其故, 則曰不見蘇東坡之賦乎? 江流有聲斷岸千尺是也. 聞者解之, 曰非是之謂也, 秋水旣落, 江岸迴峙, 故有若千尺之斗絶也, 非實有斷續之岸橫拖其長也, 子誤矣. 於是其畵雖工, 卒無用而棄之. 噫! 今之所謂語稱開化者, 亦何以異是? 夫開化者, 開物成務化民成俗之謂也. 凡政敎命令確然奮勵, 去其煩碎陳弊之政, 而一從便利簡易之務, 叅古酌今, 捨短取長, 務人智發達日就文明, 則是眞開化之善者也. 如其不務實際, 而徒爲儇捷輕薄之態, 强欲摸効開明之末事, 紛紛然梔蠟其貌, 而叩其中, 無一事實類開明之人, 然則是開化之賊也, 惡得謂開化也哉? 盖其耳目玩好之具, 身體便利之事, 爲其新奇誇張之習而悅之, 至於殫誠勞力疲精役體之事, 與熏心焦肝鍊智究神之術, 一皆假借依倣, 未能做其眞象得其實地, 終乃歸之於畵號之不成矣. 其或囂囂然自謂工於摸繪者, 亦必未免於畵香爐畵斷岸之棄物矣. 嗚呼悲夫! [출처] 정일우(丁日宇), 『율헌집(栗軒集)』 「개화(開化)」 1) 이태백(李太白)의 시 : 이백이 지은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이다.
2) 햇빛은 향로를 비추니 보랏빛 연기가 생기네 : 본래는 ‘햇빛은 향로봉을 비추니 붉은 노을이 지네’라는 뜻이다. 3) 소동파(蘇東坡)의 부 : 소식이 지은 「후적벽부(後赤壁賦)」이다. 4) 가을 강물 : 소식의 「후적벽부」에서 묘사되고 있는 적벽은 음력 10월 보름, 곧 초겨울의 적벽이므로 가을 강물이란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5) 개물성무(開物成務) : 『역(易)․계사(繫辭)』에 ‘역(易)은 사물을 열어주고 일을 이루어 천하의 도를 포괄한다’(夫易, 開物成務, 冒天下之道)는 구절이 있다. 주희(朱熹)는 ‘개물성무는 점을 쳐서 길흉을 알아 사업을 이루는 것’(開物成務, 謂使人卜筮, 以知吉凶而成事業)으로 풀이했다. 6) 화민성속(化民成俗) : 『예기(禮記)․학기(學記)』에 ‘군자가 백성을 교화해 풍속을 이루고자 한다면 반드시 학문을 통해야 한다’(君子如欲化民成俗, 其必由學乎)는 구절이 있다. [해설] 전라도 곡성의 정일우(丁日宇)는 근대 장서가로 유명하다. 그가 사는 묵용실(默容室)에는 7대에 걸쳐 수집된 ‘만권서사(萬卷書史)’가 있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고을의 향리 가문에서 만 권 책을 지켜온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고려 국왕 충선왕이 세운 만권당(萬卷堂)도 역사의 뒤안길이 되고 말았다. 조선 선비 이하곤이 세운 만권루(萬卷樓)도 필경은 책이 흩어졌다. 도둑맞지 말고 탕진하지 말고 꼭 세간의 ‘독서종자(讀書種子)’를 위한 공공재가 되도록 해라. 1923년 병석에서 남긴 말을 명심한 그의 아들 정봉태(丁鳳泰)는 9년 후 묵용실의 고서 728종 9458책을 연희전문학교에 기증했다. 다시 37년 후 정봉태의 아들 중문학자 정래동(丁來東)도 고서 106종 1475책을 성균관대학교에 기증했다. 한국 대학 도서관의 고문헌 수집의 역사에서 묵용실 고서의 행방은 중요한 토픽의 하나이다. 묵용실의 집안 도서가 대학 도서관의 공공 도서로 변화한 것은 사회의 공공 이익을 위한 일종의 도서 ‘공 개념’이 출현 했음을 알려 주는 사건인데, 이는 역사의 흐름에서 나온 것이었다. 정일우가 살았던 시기는 조선 왕국이 대한 제국으로 국체를 변경하고 근대 국가 건설을 추진하다 일본에 국권이 피탈되어 끝내 망국의 고통을 겪었던 혼란스런 때. 일본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실력을 양성해야 하고 그러자면 교육과 실업을 강화해서 공공의 이익을 증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솟구쳤다. 이런 분위기에서 정일우는 세계 만국의 경제를 이어주는 상업을 자기 시대의 급선무로 보았다. 상업의 발달을 위해서는 상업의 원리와 현실을 이해하는 실용 학문을 제대로 배워야 하고 시장 경제에서 상품 가치가 정직하게 구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세상의 상인이 소리를 탐내 사기 치는 것이 상업의 대도를 모르는 큰 문제라고 경계했는데, 이는 그의 절친한 벗 장지연(張志淵)이 사부(私富)가 아닌 공부(公富)의 축적을 외치면서, 당시 면화를 적셔 무게를 속이거나 부실 공사를 해서 사고를 내거나 외국인에게 토지를 불법으로 팔거나 해서 부정한 사리를 얻는 세태를 비판했던 것과 일치하는 관점이었다. 상업의 대도가 무엇인지 아는 상인과 상업의 소리에 매몰된 상인은 같을 수가 없다. 상업을 잘 하는 상인과 상업을 해치는 상인이 같을 수는 없다. 개화 역시 마찬가지의 문제였다. 개화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화를 잘 하느냐 아니면 개화를 해치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개화의 이치도 모르면서 개화의 겉치장으로 자기 한 몸 번드르르하게 꾸미는 개화쟁이와 개화의 대도를 알아 개화의 참뜻으로 자기 한 몸 치열하게 수고하는 개화의 일군이 같을 수는 없었다. 내가 이래 봐도 이태백의 여산폭포를 그리는 사람이야 하며 이태백의 뜻과 다르게 보랏빛 향로를 꾸며대는 태도, 내가 이래 봐도 소동파의 적벽을 그리는 사람이야 하며 소동파의 뜻과 다르게 끊어진 강안을 꾸며대는 태도, 이런 태도에서 그려진 그림이 폐기 처분될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 그것이 껍데기 개화의 말로가 아닐까? 1906년 7월 6일자 『황성신문』 논설은「껍데기 개화의 커다란 폐해[皮開化之大弊]」를 논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한국 사회는 개화, 개화 하며 제도를 개혁하고 학교를 설립하며 개화에 노력했지만 어째서 나라가 쇠망에 빠졌는가? 대충 보고 들은 설익은 지식으로 개화를 치장하고 개화를 행세한 구이(口耳)의 개화, 그 껍데기 개화 때문이었다. 같은 해 『대한매일신보』는 공부해서 속에 든 것도 없고 그저 양복, 외투, 모자, 안경, 궐련, 시계, 죽장으로 치장한 껍데기 개화의 풍속도를 전하고 있다. 만 권 책의 장서가 정일우가 비판한 한국의 껍데기 개화,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과연 껍데기 개화에서 완전히 벗어났는가? [참고문헌] 丁日宇, 『栗軒集』 「商賈」 張志淵, 『韋菴文稿』 「栗軒集序」 『皇城新聞』 1906년 7월 6일, 논설 「皮開化之大弊」 『大韓每日申報』 1906년 1월 10일, 「皮開化」 김정희, 「정봉태 구장본 중국 관련 문헌에 대한 시탐」 『중국어문논총』 23, 2002 노관범, 「대한제국기 장지연의 자강사상 연구」 『한국근현대사연구』 47, 2008 글쓴이 노관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부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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