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초대석] 눈보라 치는 날, 술 한 병 손에 들고서 게시기간 : 2023-12-14 07:00부터 2030-12-17 21:21까지 등록일 : 2023-12-11 15:19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명시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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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차다. 눈발도 날린다. 한 해를 돌아본다. 즐거웠던 장면 아쉬웠던 장면들이 머릿속에 스친다. 무엇을 위해 시간 따라 여기에 와 있을까. 무엇을 향해 시간 따라 갈 것인가. 이맘때면 답도 없는 여러 생각들이 든다. 그래도 무탈했던 한 해에 안도한다. 그리고 적당히 부담스런 과제가 남아있음에 감사한다. 긴장을 놓을 때는 아니지만 잠시 일에서 벗어나고픈 욕구가 생긴다. 12월은 한 번 쯤 호사(豪奢)를 부려 볼 만한 때다.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한 호사의 기획(企劃). 집단 속에서 움츠리고 관계에서 주저하던 나를 풀어놓고, 절제와 양보를 미덕이라 되뇌던 자아에게 자유를 줄 시간이다. 조선 중기의 시 한 편을 소개한다. 리듬을 따라 나를 나의 울타리 밖으로 한껏 밀어내보자. <漁舟圖>
갈대밭에 바람 불어 눈발이 허공에 날리는데 술을 사서 돌아와 배를 묶어 두었네 몇 가락 피리소리, 강 위의 달은 밝은데 자던 새 푸드득 날아 안개 속으로 사라지네 蘆洲風颭雪漫空 沽酒歸來繫短蓬 橫笛數聲江月白 宿禽飛起渚烟中 -『霽峯續集』 <어주도(漁舟圖)>라는 제목의 시이다. 작은 고기잡이 배 그림에 붙인 것이다. 시를 쓴 사람은 고경명(高敬命, 1533~1592).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義兵將)으로 알려져 있지만 호남에서 제일가는 시인의 한 사람이기도 했다. 내용을 보기로 한다.
시인은 그림을 보고 있다. 빛바랜 화폭이 시인의 마음속에 생동(生動)하는 장면이 되어간다. 계절은 겨울. 거센 바람에 마른 갈대들이 흔들리고 허공에는 방향 없는 눈발이 날린다. 흐릿한 풍경, 가장자리 강가에 보이는 모습. 일을 마친 어부는 배를 묶는다. 그리고 총총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손에 쥔 술병이 걸음 따라 흔들린다. 그 술은 낮에 강에서 잡은 고기를 팔아 산 것이리라. 하루의 고단함을 이렇게 술 한 잔의 기대와 바꾸며 어부의 하루는 저물어간다. 어둠이 내렸다. 눈이 그치더니 하늘엔 밝은 달이 떴다. 이 때 어디선가 구슬픈 피리 소리가 들려온다. 반대의 순서일까 생각도 해본다. 울려 퍼지는 피리의 가락이 휘영청한 하늘의 달을 뜨게 한 것은 아닐까. 어느 것일 수도 있고 어느 것도 아닐 수 있다. 겨울밤의 감흥(感興)이 고조된다. 나도 모르게 상상의 테두리가 확장된다. 그 순간, 갈대숲에서 자던 새가 푸드득 허공을 향해 날아오른다. 새의 비상(飛翔)은 무엇인가. 나의 상상의 테두리를 좇아가는 것일까. 상상의 테두리를 초월한 무한(無限)으로의 질주일까. 있는 그대로의 정경으로 해석하기에는 언외(言外)의 여백이 너무 넓다. 시인은 그림을 보며 자신만의 상상의 색(色)을 입혔다. 이 시를 쓴 고경명은 어떤 사람일까. 고경명의 본관은 장흥(長興)이고 자는 이순(而順), 호는 제봉(霽峰)이다. 광주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호랑이 그림으로 유명했던 고운(高雲)이다. 고운은 1519년 기묘년(己卯年) 별시에 합격했으나 조광조(趙光祖) 등과 가까이 지냈다는 이유로 사화(士禍) 이후 한직(閑職)에 머물렀다. 부친은 고맹영(高孟英, 1502~1565)이었는데 사돈 김백균과 함께 권신(權臣) 이량(李樑)의 일파였다. 이량은 명종(明宗)이 윤원형(尹元衡)을 견제하기 위해 중용한 인물이었다. 이량이 여러 해 전횡을 하다가 1563년에 쫓겨나는데, 이때 고맹영도 함께 몰락한다. 이 사건은 아들 고경명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고경명은 26세에 문과에 장원 급제한 뒤 사가독서를 거쳐 홍문관에 재직하였다. 그는 촉망받는 인재로 명종의 사랑을 받았다. 명종의 62폭 병풍에 시를 지어 올리는 영예를 누렸고, 술과 은촉(銀燭)을 하사받는 연회에 참여했으며, 관서(關西)에 공무로 오가며 지은 시를 올려 호피(虎皮), 황모필(黃毛筆) 등을 하사받았다. 밝은 앞날만이 기대될 무렵, 그는 타의에 의해 낙향하게 된다. 1563년 삼사(三司)에서 이조판서 이량의 죄를 논할 때, 그 내용을 장인 김백균에게 몰래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파직을 당한 그는 정치적 금고(禁錮) 상태로 19년을 보낸다. 고향에서 독서도 하고 지역 인물들과 교유하며 지내지만, 마음속에는 늘 명예롭지 못한 퇴진에서 오는 괴로움이 있었다. 49세에 복권(復權)이 되어 다시 벼슬길에 나서지만 서산군수, 한산군수 등 외직을 전전했다. 중간에 종계변무사 김계휘(金繼輝)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하고, 원접사 이이(李珥)의 종사관이 되기도 했다. 1590년이 되어서야 당상관인 동래부사에 부임하지만 정철(鄭澈)의 추천에 의한 것이라는 이유로 파직을 당하고 고향에 돌아온다. 이듬해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두 아들을 이끌고 김천일(金千鎰), 유팽로(柳彭老) 등과 의병을 일으킨다. 이후 금산에서 전투를 벌이다 둘째 아들 인후(因厚)와 함께 전사한다.
고경명은 후세에 의병장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렇지만 당대에는 굴곡진 인생에서 삶의 비애를 가슴에 담고 산 시인이었다. 허균은 『성수시화(惺叟詩話)』에서 그의 고뇌의 시간이 시적 성취로 이어졌음[而高霽峯詩, 亦於閑廢中, 方覺大進]을 말한 바 있다. 위 시의 창작 시기는 분명치 않다. 낙향 이전의 것일 수도 있고 이후의 것일 수도 있지만 특유의 감흥과 삶에 대한 통찰력이 겸비된 작품이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간다. 고즈넉한 그림에 상상력을 더한 이 시는 고경명의 대표작이다. 그림에 상상력이 더해져 아름다운 시가 되었지만, 또 다른 구성물로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만큼 이 시는 독자에게 열려있고, 우리는 각자의 삶을 대입하고픈 충동을 느낀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 것이 귀갓길 어부의 손에 있던 술[酒]이다. 집에 간 어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강가의 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저무는 강을 바라보았을까. 호롱불 깜박이는 방 안에서 지난 삶을 떠올리며 취기(醉氣)를 재촉했을까. 어떻든 몇 잔 술은 시름을 잊게 하고 도도한 취흥(醉興)의 세계를 열었으리라. 3,4구는 그림에 몰입한 시인의 상상이 더해진 것이지만, 취기 오른 어부의 감흥의 영역이기도 하다. 고단한 하루 끝의 취흥과 가없는 서정의 세계. 시인은 이것을 시의 언어로 끌어내었고, 오늘의 우리에게도 멋스러움을 전이(轉移)하고 있다. 한 해가 가고 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한 해이다. 그럼에도 아슬아슬하게 삶의 균형을 잡으며 지금에 왔다. 어느 해가 이렇지 않았을까마는 조심스런 걸음의 밑장에는 벌써 피로의 에너지가 쌓여있다. 해가 넘어가는 이 무렵에는 한 번 쯤 생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오차(誤差)에 불편함을 느끼고 무엇이든 잘 하려던 관성(慣性)에서 벗어나보자. 과하게 표현하고 격하게 행동하는 것 쯤 어떠랴. 그 매개는 어부처럼 술이어도 좋고 술 대신 다른 것이어도 좋다. 어깨 움츠리고 찬바람 볼에 맞으며 귀가하던 밤의 골목길. 취흥에 비틀거릴지라도 한껏 상상하고 호기를 부려보자. 감흥의 영역에서는 피리 소리 몇 가락이 저 하늘의 달도 뜨게 할 수 있지 않은가. 일상의 논리와 질서에 매어있는 나에게 활로를 열어주자. 천 년이면 모르지만, 백 년도 못되는 인생에 우리는 머뭇거림이 너무 많지 않은가. 글쓴이 김창호 원광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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