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공모전 수상작] 은유의 도시, 목포 게시기간 : 2023-12-20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3-12-22 13:45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원고 공모전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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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장소가 낯이 익으면 눈이 동그래진다. 그러다 동그란 눈이 점점 작아지면서 눈을 감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혼잣말하거나,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곤 한다. 말은 그 장소에 대해 줄줄이 새어 나오는 기억이다. 영상의 여운이 내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기 전에 발길이 닿았던 곳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곤 한다. 내내 잠잠했던 마음이 요동치는 것은 무언가를 추억하고 싶은 마음이다. 목포도 그런 곳이다. 그곳에서 느꼈던 마음은 사진첩 들추듯, 시간의 오솔길을 걷듯, 생각나는 것을 하나, 둘, … 열거하게 한다. 목포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TV 프로그램, ‘박종인의 땅의 역사’를 보고 나서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유달산 이야기를 듣고는 역사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역사를 곁눈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자문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사람이 죽는 이유와 사연이 시대를 말한다. 지독한 현실은 죽음에 매몰차다. 사람이 사람을 죽일 만큼 끔찍한 만행은 절대로 우연한 이야기가 아니다. 복잡한 실핏줄처럼 연결된 사회, 경제, 문화, 인간 심리를 생각하면서, 죽었으나 죽음으로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헤적이고 싶었다. 목포는 지정학적으로 수탈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풍부한 자원과 항구를 품고 있는 목포의 운명은 남의 것을 욕심내는 무리가 빚은 수탈의 처연함을 고스란히 담당해야 했다. 그것이 일제강점기의 목포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정유재란의 이순신 장군과 동학농민혁명으로 시작된 의병 활동, 4.8 만세운동과 노동자투쟁,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은 목포의 자주성을 엿볼 수 있는 영웅들의 장소다. 그중에서 영웅의 정신을 와해하기 위해 일본이 욕심을 냈던 장소가 유달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선의 신념과 대한민국의 민족정신 씨앗이 오롯이 유달산에 심겨 있었으니…. 그들은 겁이 났을 것이다. 목포 근대역사관(1관)에 전시된 자료에서 역사의 가치를 느끼던 중, 눈에 확연히 들어오는 사진을 무심히 스칠 수 없었다. 유달산의 능선을 끊어 그 사이사이에 일본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세운 불상들과 신사. 사진은 역사관 입구 초입에 전시되어 있었다. 해설사는 목포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살고 있는 역사의 증인이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고 말속에 뼈가 있을 뿐 아니라 분노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분노에 억울함이 녹아있지만, 흐지부지 흩어질 것 같은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신념이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점점 커질 때, 그의 손짓도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그의 손짓과 몸짓, 언어와 표정은 토설해야만 하는 역사의 흔적이었다. 시선을 사로잡은 흑백사진은 세월의 흔적이 깊었다. 사진은 흐릿했지만, 역사의 진실은 투명했다. 그 진실이 사진 앞에 오랫동안 머물게 했다. 몰랐던 것을 모르고 지나갈 수 없는 이유는 역사의 시진할 수 없는 힘이다. 그러니 아직도 남아있는 역사의 상흔을 맨눈으로 확인할 수밖에. 우련하게 보이는 사진의 특별함은 부글부글 부대끼는 마음과 희미한 정신에 뚜렷한 의식으로 녹아들었다. 일본영사관이었던 목포근대역사관 뒷길을 오르니 노적봉예술공원에 위치한 김암기미술관이 발길을 반겼다. 목포의 예술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 출입문을 여니 예술의 향기가 훅, 몸과 마음을 휘감았다. 목포항구의 정취와 자연에 대한 경외와 인간 존엄에 대한 철학으로 붓질 된 목포 화가의 그림은 소박한 항구를 닮았고 자존심이 우뚝한 유달산을 닮았다. 사소한 사물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화가의 마음을 먹빛과 은은한 색채의 그림으로 만나니 언젠가 만났던 사람 같았다. 살아가는 사람들의 유형이나 무형의 흔적이 시대를 형성하듯, 그 흔적을 상상력으로 가미해 형상화하는 이들이 예술가일 것이다. 암울한 순간에도 상상력은 죽을 수 없는 인간의 세포가 아니던가. 다양한 구도와 색채로 기교 너머의 아름다움과 고단한 삶의 주름 사이에 켜켜이 빛을 내는 환희를 발견하고 표현했던 사람. 세상사란, 겹겹이 싸인 은유의 비밀을 만들고 해석하는 일이니, 지역의 특성을 세밀하게 표현하는데 은유가 빠질 수 있겠는가. 그의 예술 중심에는 유달산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유달산은 생생한 자태로 그림이 되고, 그림 속의 유달산도 생생한 삶을 불러오는 힘이 되니, 초능력의 산이라고 말한들, 그 누가 거부감을 표할까. 미술관을 나오니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산바람 되어 얼굴을 스쳤다. 일등바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 이거구나. 그들의 믿음은 조악한 그림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었구나. 바위에 새겨진 그림은 권위 의식에 힘입어 큰소리치는 표정과 부릅뜬 눈이 곧 터져버릴 것 같은 얼굴이다. 울퉁불퉁한 형상은 일상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괴물 모습이다. 저급함과 저열함이 특별함이라고 착각하는 우매한 자들의 천양지판 해석의 오류 덩어리다. 언감생심, 감히 그 형상을 신적인 존재라고 우기려 들다니.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힘 가진 자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금지된 것을 신성한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신성함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스토리는 인간 영역 바깥에 있는, 인간이 상상하는 그 이상을 상상하게 한다. 그러니 놀라운 능력일 수밖에. 어쩌면 초능력이란 우주의 은밀한 비밀일진대, 그 비밀을 발설하지 않으면서 발설하지 않은 욕망과 함께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능력의 무한함을 과장한다. (김병호의 ‘초능력 시인’/ 파란) 서사는 형상을 만들고 형상이 빚어내는 능력에 능력을 입히면서 보통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게 한다. 공포심은 개인의 척박한 삶의 형태와 결합하여 두려움이라는 문양을 만든다. 그 문양에 물든 마음은 안전한 것을 찾아 헤맨다. 그때 나타나는 것이 신과 같은 존재일 터. 믿음은 없는 것도 있다고 만들고 있는 것도 없다고 만든다. 그 믿음의 주체가 무형의 존재이거나, 유형의 인물이거나, 권력이거나, 언어이거나, 자본이 될 수도 있다. 믿음은 초능력의 존재를 만드는 뿌리가 되기도 한다.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무기력함에 저항하기 위해, 믿음의 주체를 의지하게 된다. 무기력은 무의미를 닮아간다. 어쩌면, 무의미란 의미가 아닌 모든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의미를 찾기 위해 주술 같은 무형이나 유형의 형상을 찾아 헤맨다. 우리를 속박하려는 믿음에서 우리가 해방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구축하는 것이다. 의미는 존재 가치를 매개하는 일이다. 그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다른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어쩌면 예술 세계와 다르지 않은 또 다른 우주론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들의 놀이에서 벗어나 우리의 놀이를 만드는 것이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다. 일본제국주의 잔재를 허무는 것과 남기는 것의 차이는 바로 이런 의식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불편한 역사라 할지라도 끔쩍하지 않는 유달산의 정신으로 우리의 정신세계를 추상하고 있지 않은가. 여러 요소를 모아 좋은 상황으로 만들어 나가는 우리는 유달산의 신비하고 푸른빛을, 먼저 간 영혼을 회억하는 초능력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깟, 정체를 알 수 없는 우락부락한 불상쯤이야. 어리석은 자들의 낙서쯤이야. 분분히 떠들어대는 어수선한 이론쯤이야. 속악한 흔적은 맨망스러울 뿐이다. 유달산으로 오르는 계단이 순례길이었다고 한다. 광복 후, 그 흔적이 정리되었다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곳이 있다. 괴상한 종교적 색채가 우리의 민족정신을 와해하고 유달산의 자존심을 건드리려 했지만, 자존심은 변형이 되거나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목포의 유달산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무너지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자존심은 차곡차곡 받은 상처들을, 자존감은 차곡차곡 받은 애정을 밑천으로 한다’ (김소연의‘마음 사전’/ 마음산책)는 시인의 말을 빌려 생각한다. 폭력으로 피고름 난 상처를 치료하지 못하는 유달산이 아니며, 오히려 또렷한 눈동자로 현실을 직시하는 애정으로 목포의 자존감을 지켜왔다는 것을. 우꾼한 마음으로 유달산을 내려오니 서산동 시화 골목이 나왔다. 누군가는 시를 인간 특유의 허황기라고 하고 누군가는 안개로 막힌 흐린 시야라고 한다. 시는 은유와 역설이라고 하고 기쁨과 눈물 근처에 흐르는 심상이라고 한다. 그렇다. 흐린 시야이지만, 눈을 뜨고 보일 때까지 집중이 필요한, 스스로 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삶이 시가 아닐까. 눈을 감으면 펼쳐지는 심상이 매양 다르듯이, 시를 해석하는 것도 매번 다른 세계를 만나는 일이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일이기도 하고 손끝이 아리기도 하며 온몸이 오그라들기도 하는 것. 기쁨과 눈물로 다른 세계를 들락거리게 하는 것이 시의 역할이다. 시를 머물게 하는 골목은 길섶의 그림자 같은 일상이 오롯이 삶이 되는 곳이다. 그러다 만나게 된 구멍가게 연희네 슈퍼. 영화 ‘1987’의 촬영 장소였던 구멍가게에 발길을 멈추었다. 집이 가게고 가게가 집인 공간. 개인과 집단의 웅성거림이 아우러지는 공간. 지금은 영화에서 보았던 장소를 구경하기 위해 관광객이 오지만, 구멍가게는 실재하는 존재들의 웃음이 넘치는 공간이다. 시대의 온전한 정신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몸부림은 그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이다. 집은 몸을 뉘고, 밥을 먹고, 가족의 행복의 기원이 되는 곳이며 불행을 이겨내는 곳이다. 공간에 비치는 햇살로 방향을 찾고 시선을 옮기며 몸을 부린다. 몸이 움직이기까지 생사화복의 정신은 바쁘다. 이 작은 집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 산자락의 우연함을 보존하기 위해, 이 산의 정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절대로 죽을 수 없는 정신을 삶으로 표현하기 위해 생존하는 사람들. 그런 이들이 이 세상 어느 변방에서 숨을 쉬고 있다가 슈퍼에 모여 손을 잡는다. 슈퍼 앞에서 조금 멀리 눈길을 던지니, 산자락에 나란히, 어슷하게 지어진 집 지붕들의 존재가 다정하게 이웃한 사람 이미지로 다가왔다. 산 중턱에 다닥다닥 붙은 집이라는 공간에서 폭염의 순간을, 얼음장 같은 추위를 자존심과 자존감으로 은유하며 더위와 추위에 푹 빠지는 경험을 했던 이들. 물을 길어 언덕을 오르내렸을 사람들. 공동화장실을 차지하기 위해 재빠른 생각과 몸짓이 필요했을 이웃. 그럼에도 해학적인 눈짓을 주고받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했던 가족. 쓸쓸했을 삶조차도 이 모든 일상의 순간이 재해석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흘렀고 또 흐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의 징표가 산이기에 유달산은 목포의 정신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몸도 척추를 중심으로 얼마나 많은 뼈로 구성되어 있는가. 마디와 마디의 연결이 느슨해지거나 생략되면 움직일 수 없듯이, 유달산은 목포의 등뼈라는 생각이 든다. 산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진 집과 길과 항구를 오가는 사람의 발길에서 울리는 이야기는 산속으로 스며든다. 야트막한 산 같지만, 날카로운 첫 키스(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처럼 바위의 선이 살아있다. 스치며 지나가는 발걸음을 잡아당기는 힘이 느껴진다. 그 힘이 신령함이라면, 그것은 산의 정기일 터. 역사의 궤적을 살펴보면, 그 힘을 누르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 있었겠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이 악의 한 형태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또 하나의 악이지만. 목포는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사랑이다. 애향심이 항구에서 수평선으로 이어진다. 떠나는 이가 있으면 돌아오는 이가 있다. 떠나고 돌아오지 않은 이가 있다면 떠난 적이 없거나, 떠났던 사람이 돌아오면서 한데 어울린다. 목포의 항구는 동서남북으로 움직인다. 바라보던 수평선을 등지고 유달산으로 방향을 바꿀 때, 자존감을 추스른다. 유달산은 흙 속에서 그 옛날에 묻어두었던 자존심을 찾아 항구로 보낸다. 유달산의 흙과 바위, 나무와 풀, 새와 사람들은 환호한다. 산의 모든 생명은 끄덕끄덕 수긍했던 이들의 마음이다. 무언가 숙연하게 만드는 서사의 주인공이다. 그들은 새살 돋은 곳에 삶을 새기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유달산과 항구는 목포의 자웅동체다. 드라마나 영화, 누군가의 이야기로 전해지는 장소가 기시감으로 다가오는 감동은 특별한 일이다. 다분히 무언가를 장악하면서 꿈결 같은, 처음이지만 거북함 없는 느낌이 드는 장소는 사람을 이끄는 힘의 응집이다. 그 힘은 의지이며 믿음이다. 거짓이 아닌 삶에서 나오는 생명의 몸짓이다. 시적인 은유를 곁들여 눈으로 확인했던 목포는 그것으로 흠쾌하다. 수다한 목포의 이야기는 손편지처럼 따뜻하다. 집필자 조남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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