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기행] 낚시하는 물고기가 ‘아귀’ 게시기간 : 2024-02-20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4-02-14 15:50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맛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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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에는 아귀를 조사어(釣絲漁), 속명은 아구어(餓口魚)라 했다. 날이 추워지면 스멀스멀 생각나는 바닷물고기이다. 아귀가 도감에 소개된 어명이지만 ‘아구’로 많이 불려진다. 지역에 따라 물텀벙, 망청어, 물꿩, 아꾸, 귀임이 등 다양하게 불린다. 서해와 남해에 많이 서식하지만, 부산과 기장과 구룡포에서도 제법 잡힌다. 겨울철 아삭한 콩나물과 향이 좋은 미나리와 잘 어울린다. 여기에 진해만에서 건져 올린 오만둥이까지 올리면 그만이다. 큰 놈은 2척 정도다. 형상은 올챙이와 유사하다. 입이 매우 커서 일을 벌리면 남는 곳이 없다. 색은 홍색이다. 입술 끝에는 낚싯대 두 개가 있는데, 의료용 침만큼 커서 길이가 0.4~0.5척이다. 낚싯대 머리에는 낚싯줄(釣絲)이 있는데, 말꼬리만큼 크다. 줄 끝에는 밥알 같은 흰 미끼가 있다. 조사어의 낚싯줄에 달린 미끼를 살랑거릴 때 다른 물고기가 이를 먹잇감이라 여기고 그쪽으로 다가오면 물고기를 낚아채서 먹는다.
‘자산어보’에는 아귀를 식용으로 이용했다는 내용은 없다. 아귀가 위판장에 등장하고 시장에 유통된 것은 ‘마산아구찜’이 큰 역할을 했다. 어류도감에 올린 ‘아귀’라는 어명보다 ‘아구’가 더 친근한 것도 이런 이유다. 마산 어느 식당도 아귀라 하지 않는다. 아구찜이라 맛이 난다.
* 지역에 따라 다른 아귀잡이 아귀는 12월부터 2월, 그러니까 겨울철이 제철이다. 아귀가 서식하기 좋은 수온은 10~12도 정도다. 그렇다고 겨울에만 잡히지는 않는다. 어획량의 차이는 있지만 사철 잡히는 어류다. 4월 무렵 봄철 산란을 앞두고 연안으로 올라오는 아귀가 그물로 잡기 좋고 살이 올라 맛이 좋다. 서해에서는 안강망 자루그물로, 남해와 동해는 자망으로 잡는다. 보통 그물을 미리 넣어 둔 후에 다음 날 걷지만, 부산처럼 당일바리로 그물을 끌어 잡기도 한다. 당일바리는 우선 조류를 따라 그물을 내린 후 기다렸다, 지그재그로 이동하기를 두어 차례 반복해 아귀를 걸어 잡는다. 자루그물이 아니라 자망에 걸어 잡는 아귀는 대부분 이빨이나 지느러미 등이 그물을 물고 있다. 아귀의 이빨은 날카롭고 강해서 한번 문 먹잇감은 죽지 않고는 놓지 않는다. 그물을 물고 있는 아귀를 떼어 낼 때는 엄지와 검지로 두 눈을 꼭 눌러 잡으면 입을 벌린다. 밤늦게 시작해 아침 해가 오르면 경매시간에 맞춰 항구로 돌아온다. 부산 다대포는 아귀 전문 위판장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아귀잡이 전문 배들이 30여 척에 이른다. 여수는 금오열도나 진도의 조도 인근, 신안의 다도해 주변에서는 자망으로 아귀를 잡는다. 미리 그물을 넣어다가 다음날 건진다. 영광과 군산 그리고 충청과 인천 일대에서는 안강망을 이용한다. 아귀만 잡으려는 것은 아니지만 겨울철 숭어 등 어류와 함께 잡히기도 한다. 서해에서 많이 이용하는 그물인 안강망 안강(鮟鱇, あんこう)은 아귀를 의미한다. 그물 입구가 아귀 입처럼 크고, 조류를 따라 들어오는 어류를 가두어 잡는다. 그 모양이 아귀가 입을 벌리고 먹이를 사냥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안강망은 1900년 전후 조기잡이 어업을 위해 일본에서 들어온 어구어법이다. 마치 우리나라 전통 고기잡이 어선이 중선망과 비슷해 일중선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 안강망은 조기잡이로 시작해서 젓새우, 꽃게, 주꾸미 등 서해로 회유하는 어류를 그물코 크기가 다른 그물로 바꿔가며 철철이 조류를 이용해 잡는다. 1990년대 이전까지는 안강망보다는 고대구리라 알려진 저인망을 이용했다. 특히 여수, 고흥, 목포, 군산 등 전라도 인근에서는 저인망어선으로 많이 잡았다.
* 아귀먹고 가자미 먹고 ‘아귀는 먹성이 좋고 포악한 것이 특징이다. 바다세계에서 먹방을 촬영한다면 단연 섭외 1순위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많은 좋은 이름을 두고서 굶주리는 귀신을 의미하는 아귀가 되었을까. 불교계에서 식탐이 많은 사람은 죽어서 아귀로 태어난다고 한다. 아귀는 몸은 태산만하고 목구멍은 바늘구멍만 하다. 큰 몸을 유지하기 위해 많이 먹어야 하는데, 목구멍이 바늘구멍 크기이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머리와 입은 아귀와 다른 모양인데 식탐은 꼭닮았다. 어떤 속설에는 아귀가 먹잇감에 손을 대면 순식간에 불로 변한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래서 아귀로 태어난 중생은 늘 배고픈 고통 속에 살아야 할 운명이다. 아귀는 입을 벌리고 다가오는 것을 모두 삼키는 대식가다. 아귀의 커다란 위 안에 바다 저층에 생활하는 가자미는 물론 새우, 청어 등도 들어 있다. 특히 청어는 아귀가 좋아하는 먹잇감이다. ‘아구 먹고 가재미 먹고’ 라는 말이 있다. 아귀조업을 마치고 뭍으로 올라오는 아귀들을 보면 입안에 생선 한 마리씩 물고 있는 모습을 곧잘 볼 수 있다. 아귀가 잡히면 버렸다는 말은 옛말이다. 이제 어물전 상석에 앉아 대접을 받는다.
* 병 주고 약 주는 아귀탕과 아귀찜 아귀는 물메기와 곰치와 같이 물텀벙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그물에 걸리면 버려질 만큼 천대를 받았던 어류였지만 가난한 어민들에게는 요긴한 식량이었다. 다만 그물을 물고 늘어지는 아귀가 곱지는 않았을 터다. 더구나 찾는 사람이 적어 어가가 높지 않았던 시절에 그물값도 건질 수 없는 아귀에 화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1960년대 초반쯤 마산에 아구찜이 자리를 잡은 후 사정은 달라졌다. 마산에서는 12월부터 4월까지 아귀를 말려 아구찜을 만들었다. 이후 항만이 개발되면서 지금은 부산이나 구룡포, 인천이나 군산 등에서 말린 아귀를 가져오고 있다. 마산 아구찜은 피난민과 실향민이 모여들면서 먹을거리를 찾던 중 개발된 음식이라는 설이 있다. 이후 항만노동자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다. 값이 싸고, 푸짐하게 부산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아구찜이 등장한다. 그 맛이 좋고 양도 많아 서민들이나 군산, 목포, 인천 등 아귀가 많이 유통되는 항만도시를 중심으로 확대되었다. 이후 식재료의 이동이 편리해진 뒤에는 서울, 광주 등 수도권과 내륙의 도시로 확산되었다. 전라도 아귀찜이 유명한 것은 아귀의 특성과 연관이 있다. 아귀는 깊은 맛을 가지고 있는 어류가 아니다. 아귀 자체는 슴슴하다. 그래서 양념이 그 맛을 결정한다. 광주, 목포, 여수 등에 맛이 좋은 아귀 음식점이 많은 것은 갖은 양념과 손맛이 좋은 탓이다. 아귀찜이 술을 부른다면, 아귀탕을 해장에 좋다. 이래서 술꾼들은 아귀를 일컬어 ‘병주고 약 주는 생선’이라 했던 모양이다. 비린내를 막기 위해 방앗잎이나 고춧가루를 이용한다. 몸 전체의 2/3가 머리지만 연골이라 탕이나 찜으로 조리하면 뼈를 섭취할 수 있다. 아귀찜을 가장 맛있게 먹었던 곳은 광주이고, 아귀탕으로 기억나는 곳은 여수다. 아귀는 살이 단단하고 검은빛을 띠는 것이 좋다. 장기 보관하려면 내장과 지느러미를 제거한 후 냉동보관 하면 좋다.
글쓴이 김준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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