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공모전 수상작] 해시태그와 라임(Rhyme), 조선의 힙합 전사 선비들 게시기간 : 2023-11-10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3-11-06 17:54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원고 공모전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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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SNS의 활용을 보면, 핵심 단어를 깔끔하게 해시태그로 제시하고 사진과 함께 간단한 소회를 남기는 문화가 널리 확산되어 있다. 아울러 유행하는 노래들은 힙합 감성을 라임(운율)에 맞춰 제시하여 리듬감 있게 들썩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풍속도가 이전에도 닮은꼴로 존재했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조선 선비들의 누정 제영시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누정(樓亭)이란 누각과 정자의 줄임말로, 산수 감상과 유희, 수양과 학문 강론, 씨족 모임을 비롯해 활쏘기나 방어 등이 이루어졌던 조선 선비들의 ‘선비문화 산실’이었다. 그리고 제영시(題詠詩)란 제목을 붙여가며 지은 시를 뜻하는데, 특정한 장소와 풍경을 시제로 하여 창작한 시를 말한다. 주로 누정과 그 풍광을 한시로 읊었다. 이런 풍속도 속에 어떻게 해시태그와 라임의 요소가 들어있는지 각각의 누정 제영시를 살펴보며 소개하도록 하겠다. 다만 지면 관계상 순천의 조선대 누정 제영시 몇 편으로 한정하여 살펴보겠다. 순천의 누정은 꽤 많았던 것 같다. 산수가 수려하고 큰 고을이었던 때문이다. 1924년 순천향교에서 간행한 『승평지』에 약 40여 개가 실려 있으며, 최근 연구인 「전남지역의 누정 조사보고(Ⅲ)-순천·승주지역」에 122개, 진인호·남호현 역주의 『순천누정』(순천문화원, 2006)에는 81개, 『호남누정 기초목록』(2015)에는 144개가 수록되어 있다. 1. 강남 순천의 연자루 순천의 연자루는 줄곧 중국 강남 서주의 연자루에 비견되곤 했다. 아울러 연자루를 둘러싼 손랑과 호호 이야기는 연자루 제영시의 단골 주제였다. 아마 연자루에 해시태그를 단다면 ‘#강남 #서주 #손랑(손억)과 호호 #우리사랑 영원히’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는 운촌(雲邨) 양홍묵(梁鉷默)의 「연자루」 시다. 양홍묵은 손랑과 호호의 이별을 ‘천 줄기 눈물’로 묘사하면서 옥천과 연자루를 연결하는 시를 지었다. 한시에서의 라임(Rhyme-운율)은 각운(脚韻)을 잘 살펴보면 된다. 1연의 누(樓)부터 시작해서 주(州), 주(洲), 수(愁), 루(淚)가 다 라임으로 맞아떨어진다. 양홍묵의 이 시는 각 행당 7글자씩 총 8행을 이루고 있으므로 칠언율시이다. 칠언율시에는 제1·2·4·6·8구에 각각 각운(脚韻)을 다는 규칙이 있는데, 1·2·4·6·7구에 운을 맞추고 있으니 제법 그 규칙을 잘 따른 축에 속한다. 다른 시도 한번 살펴보자.
이는 신영휴(申永休, 1891-?)의 「연자루」 시이다. 그는 연자루에서 노닐던 주인공인 손랑과 호호는 가고 없음을 언급하며, 이에 대비해 옥천은 밤낮으로 그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자연의 영원함과 유한한 인간의 삶을 대비하며 인생무상의 감회를 서술하고 있다. 각 행당 5글자씩 총 4행을 이루는 이 시의 포맷은 오언절구라고 부르는데, 오언절구는 2행과 4행에 각운을 다는 것이 규칙이다. 즉 2행의 유(遊)와, 4행의 류(流)가 라임을 맞추고 있다. 2. 선향 순천의 환선정 순천에는 환선정도 있다. 순천에서 활동하던 호족 김총, 박영규, 박난봉은 죽은 뒤 각각 진례산, 해룡산, 인제산의 산신이 됨으로써, 삼산과 삼신의 고을이 되었으며, 이에 순천은 오래도록 ‘신선의 고장’이라는 아이덴티티가 있었다. 선암사의 선 또한 신선 선이며, 유몽인 또한 순천을 신선이 머물기 좋은 곳으로 인식하였다. 환선정의 이름 또한 이 ‘신선’의 뉘앙스가 짙게 배어 있다. 환선정은 1544년 순천부사 심통원(沈通源)이 읍성 동문 밖 동천 가에 완공하였는데, 환선정 제영시는 순천부사를 비롯한 관료 및 유배인, 지역 유림 등 82명 작가의 137수가 있다. 그 중 조시일과 이수광의 시를 살펴보자.
이는 조시일(趙時一, 1606-?)의 「환선정차운」 시이다. 조시일은 1653년 이율(李嵂) 등과 함께 옥천서원을 중수한 인물이다. 버들이 꽃처럼 흩날리는 어느 날 저물녘 환선정 앞 동천에서 뱃놀이 하던 조시일은, 자신을 세속의 번다함이 사라진 신선으로 일컬으며 선계에서 노니는 흥취를 표출한다. 무하향은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으로 장자가 노래하던 이상향이었다. 유토피아(Utopia)와 뜻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전율이 돋는 대목이다.
이는 순천부사 이수광(1563-1628)의 「환선정차운」 시이다. 바람 불고 달 뜬 가을밤에 환선정을 찾은 이수광은 귀양 온 인간세상에서 신선을 찾기 위해 환선정을 찾았다고 설명한다. 탈속에서 환속으로, 다시 속세에서 탈속으로의 지향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신선’이라는 키워드는 같으나 작품에 따라 결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조시일의 칠언 율시에서는 선(船), 현(賢), 전(前), 견(牽), 선(仙)이 받침 니은으로 끝나는 라임을 보여주며, 이수광의 칠언 율시에서는 홍(紅), 공(功), 옹(翁), 풍(風), 중(中)이 받침 이응으로 끝나는 라임을 시전하고 있다. 환선정 시의 내용으로 해시태그를 달아보자면 ‘#내가_바로_신선 #유토피아는_바로여기?’ 쯤이 되지 않을까 한다. 3. 초연정원림 순천의 누정 중 원림으로 일컫는 것은 ‘순천 초연정 원림’이다. 문화재청 명승 제25호(2007.12.7.)로 지정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은 공간이다. 송병선은 63세 때인 1898년 윤3월 27일[양력 5월 7일] 문인들 70여 명과 함께 순천 초연정을 방문한 흥취를 「초연정운」에서 이렇게 담아내고 있다.
5글자로 된 행이 총 8개 있으므로 오언율시이다. 처(處), 거(居), 어(魚), 서(書), 허(虛)의 끝글자가 라임이다. ‘집에 딸린 숲’을 의미하는 원림답게 정자를 둘러싼 자연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초연정으로 해시태그를 달아보면 송병선의 시 끝구절을 따서 ‘#초연해지니_초연정일까?’이라고 달아보아도 재미있을 것 같다.
지면과 필자의 부족한 여력으로 더 많은 시와 흥취를 담아내지 못해 아쉽다. 하지만 고루하고 딱딱해 보이는 한시에 오늘날 랩(rap)의 라임(rhyme)의 요소가 놀랍도록 세련되게 구현되어 있음을, 어쩌면 조선의 선비들은 스웨그(swag) 넘치는 ‘현대판 힙합 전사’로도 재해석될 수 있음을 이 글을 통해 느낄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집필자 박희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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