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기행] 가을맞이를 위한 몸살림 고흥 갯장어 게시기간 : 2023-09-06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3-08-30 10:21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맛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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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처서를 무렵 자주 가는 횟집에서 갯장어를 주문했다. 역시 맛있다. 주인에게 갯장어의 출처를 물으니 ‘고흥’이라고 한다. 고흥산 갯장어라면 물어볼 필요가 없다. 1930년대 갯장어의 주산지는 전남과 경남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고흥과 여수 사이 봇돌만과 고성과 통영 사이 자란만은 갯장어가 여름을 나는 어장이다. 제주 남쪽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면 올라와 여름과 가을까지 머물다 내려간다. 산란하기 전에 잡은 갯장어는 여름은 물론 가을 일을 준비하는 인간에게 몸을 살리는 귀하고 고마운 존재다. * 사람도 능히 물어 삼킬 수 있다 갯장어는 붕장어, 뱀장어와 함께 뱀장어목에 속하는 어류이며, 입이 눈 뒤에까지 갈라져 크고, 주둥이는 삼각형 모양이다. 아래턱보다 위턱이 길며 양턱에 2-3줄의 날카로운 이빨이 있고 앞쪽에 크고 억센 송곳니가 있다. 어부들이 갯장어에 물리면 위험하다고 하는 이유다. <자산어보>와 <동의보감>에도 견아리(犬牙鱺)라고 하여 개의 이빨을 가진 장어라고 했다. 별칭으로는 참장어, 갯붕장어, 이장어, 이빨장어, 해장어 로 부르기도 하며, 한자로는 해만리(海鰻鱺), 자만리(慈鰻鱺) 또는 구어(狗魚), 개장어(介長魚)라고도 한다. 중국에는 해만(海鰻), 영어로 ‘purple pike conger’라고 한다. ‘conger’는 그리스어의 ‘구멍을 뚫는 고기’란 뜻의 gongros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하모(Hamo, はも)도 ‘물다’라는 뜻의 하무(Hamu, はむ)에서 온 것이다. <자산어보>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견아려 犬牙鱺(속명 俗名, 개장어 介長魚)
입은 돼지같이 길고 이는 개와 같아서 고르지 못하다. 이빨과 뼈가 단단해 능히 사람을 물어 삼킬 수 있다. 해리(海鱺)는 사철 볼 수가 있다.(그러나 깊은 겨울에는 낚이지 않고 석굴(石窟)에 겨울잠을 자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말하기를 알을 배거나 새끼를 낳는 물고기라고 한다. 혹은 뱀이 변한 물고기라고도 한다( 본 사람이 매우 많다.) 그만큼 이 물고기는 매우 번성한다. 대개 석굴 안에서는 수 없이 무리지어 뱀으로 변한다고 하나 반드시 다 그렇다고는 볼 수 없다. 창대는 지난 날 태사도(신안군 흑산면 태도) 사람이 해리의 배 안에 알이 있었는데, 그 알이 구슬과 같고, 뱀의 알을 닮은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으나 아직 확인하지는 못했다. <조벽공잡록>에는 만리어는 수컷만 있고 암컷이 없으므로 예어(鱧魚, 가물치)가 비치면 그 새끼를 곧 예어의 지느러미에 부착하여 낳는다고 했다. 이런 까닭에 만리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러나 유수(민물)에서는 낳는 놈은 그렇다고 하더라고 바다에서 낳는 놈은 바다에 예어가 없으니 어느 곳에서 퍼져 부식할 수 있는지, 아직은 다 밝혀지지 않았다.
* 부부가 갯장어 잡이에 나서는 이유 갯장어는 겨우내 제주 남쪽에서 지내다 봄이면 연안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여름이 시작되는 유월부터 팔월까지 최고의 몸값을 자랑한다. 짝짓기 위한 노력이 때로는 인간에게는 최고의 보양식이 되어 상에 오르기도 한다. 입이 크고 먹이를 잘 물는 특성 때문에 낚시 바늘에 끼워진 전어를 한입에 삼키는 것이 화근이다. 1930년도 갯장어(해장어) 어획량을 보면, 4,984,000 톤(瓲), 763,000원이다. 주요 산지로는 경남, 전남이 소개되어 있다(1939.4.23 동아). 지금도 이곳에 우리나라 최대의 갯장어 어장이다. 여름이면 그늘에 앉아 장여주낙 바구니에 낚시를 꼽고 있는 노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갯장어 잡이는 크게 바구니에 낚시를 끼우는 일(주낙작업), 미끼를 끼우는 일, 바다로 나가 낚시 던지기(어장넣기), 낚시 건지기(어장빼기), 크기 선별하기, 판매 순으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주낙 한 통(바구니)에 100여 개의 낚시가 달린다. 이를 연승어업이라 하는데 어민들은 ‘장어주낙’이라 부른다. 몸줄에 5미터 간격으로 낚시가 달린 줄을 매달고 미끼를 끼워 잡는다. 이러한 바구니를 조업을 나갈 때 40여 통을 가지고 나간다. 이것을 모두 연결하면 주낙의 길이가 약 2킬로미터 쯤 된다. 지역에 따라 채비가 조금씩 다르지만, 고흥 포두면 오취도 일대의 어민들의 경우다. 밤에 먹이활동을 하는 장어의 습성을 이용해 오후 늦게 조업을 나가서 어장을 넣는다. 그리고 배에서 저녁을 해결한 후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어장을 빼기 시작한다. 넓은 바다지만 여수와 고흥에 많은 어민들이 장어잡이 주낙을 놓기 때문에 서로 겹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어장을 넣을 때 배의 속도에 맞춰 수천 개의 낚시를 던지고 빼내야 하니 손발이 잘 맞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새벽이 되어야 조업이 끝나고 낮에는 농사일이나 가정을 돌봐야 한다. 또 계절적으로 여름철에만 조업이 집중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고용할 수도 없다. 부부노동이 갯장어 잡이에 최적인 이유다. 미끼를 끼우는 일부터 어장넣고 빼기까지 손발이 척척 맞아야 한다. * 고흥산이라 일본에서 팔린다 일제강점기에도 외나로도도 일대에는 수 많은 일본 어선들이 들어와 장어와 고등어와 삼치를 잡아갔다. 어기가 되면 일본 유곽이 들어설 정도였다. 당시 새조개와 함께 갯장어는 총독부가 ‘수산통제어종’으로 관리하기까지 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우리 수산물을 대표하는 넙치, 도미, 우럭, 능성어 등과 함께 장어류의 삼총사인 붕장어, 뱀장어, 갯장어가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특히 갯장어는 여름철이면 값이 좋아 어민들도 돈을 만질 욕심으로 맛도 볼 수 없었다. 갯장어와 소라와 넙치, 도미, 복 등이 수산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오히려 우리 연안의 어류자원이 고갈되면서 횟감용 일본산 양식활어가 대량을 들어오기 시작했다. 갯장어는 신선과 냉장 모두 1991년 개방품목에 포함되었다. 덕분에 국내시장에 갯장어를 만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고흥산 갯장어는 꾸준하게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이보다 앞서 1970년대에는 뱀장어를 비롯한 갯장어와 붕장어 껍질을 이용한 가죽제품이 일본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합성이나 원피제품에 비해 유연한 것이 특징이었다. 부산을 중심으로 곰장어 껍질도 이용해 가죽제품을 만들었다. 1960년대 말, 여름철에는 봇돌바다에서 잡은 활어 갯장어는 여수 사도 인근에서 기다리는 무역선에 실려 일본 세도내해 오카야마현으로 이틀에 걸쳐 운반하기도 했다. 그리고 냉동차로 오사카와 교토로 운반되었다. 고흥산이라 해야 높은 값을 받았다고 한다.
조선연안 수산동향보고서인 <조선통어사정(朝鮮通漁事情>(1893)에는 갯장어는 경상도의 도처에서 서식하는데 사람들이 잘 잡지 않고, 또 잡더라도 뱀을 닮은 모양 때문에 먹기를 꺼려하여 일본인에게만 판매하였다고 한다. 일본어민의 한국해역어로상황보고서인 <한해통어지침(韓海通漁指針)>(1903)에는 ‘남해안과 서해안에 많이 잡히며 전라도에서는 판로가 넓으나, 경상도에서는 잘 팔리지 않고 값도 싸다’고 했다. 전국연안 수산실태조사서인 <한국수산지(韓國水産志)>(1908)에는 ‘어획하는 사람이 적으나 도미 잡이 하는 사람들이 일본인을 본떠 도미가 잡히지 않을 때 갯장어를 잡는다’고 했다. 지금은 찾는 사람이 많아 연승어업만 아니라 통발, 정치망, 저층트롤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갯장어를 잡고 있다. 확실한 것은 조선시대 궁궐이나 양반들은 갯장어나 뱀장어 등 장어류를 즐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궁궐이나 반가에서는 장어의 모양이 임금을 상징하는 용을 닮고, 뱀처럼 생겨 가까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의보감>에는 갯장어(海鰻)는 ‘치질과 피부 헌곳, 악창, 외음부 소양증을 다스리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또 결핵을 오래 오래 앓았을 때 끓여 먹거나 말려서 구워 먹으면 효과가 좋다‘고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운기회복에 좋다고도 전한다. 궁궐이나 반가와 달리 민초들은 갯장어를 오히려 찾았던 것은 아닐까. 명확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지만 동의보감에서 밝힌 효능들로 보아 짐작해본다.
글쓴이 김준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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