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의 재발견] 진도의 상장례 다시 읽기 06 게시기간 : 2023-10-10 07:00부터 2030-12-16 21:21까지 등록일 : 2023-10-05 14:17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민속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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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도 씻김굿의 갈무리조 경상도는 대풀이요
전라도는 중천의 풀이란다 잔도 잔도 새로 속잎이 났네 에라 만수야 에라 대신이야 많이 흠향하고 평안히 돌아가소서 진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도 씻김굿의 과장 마무리곡이다. 시나위나 굿거리 연주를 하다가 당골 혹은 징을 담당하는 악사 등 음악의 리더격인 누군가가 이 노래를 꺼내면 모두 합창하며 해당 거리를 끝내게 된다. 후렴의 ‘에라 만수야 에야 대신이야~’는 전형적인 성주풀이 후렴이다. 남도 씻김굿에서 이 곡조가 중요하다. 매 과장을 마무리하는 종지곡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노래이지만 이를 추적하고 톺아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곡을 꼭 집어 이름을 붙인 예는 없다. 어떤 굿거리를 마무리하는 곡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나는 ‘갈무리조’란 이름을 쓴다. ‘갈무리’는 일을 처리하여 마무리한다는 뜻의 순우리말이고 ‘조(調)’는 시가나 노래의 음수에 의한 리듬 단위라는 의미로 차용한 것이다. 한 시기, 일정한 곡조를 끝맺는 악구라는 뜻으로 ‘코다’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서양음악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므로 굳이 따라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장차 이 ‘갈무리조’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지난 8월 전남일보 연재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311회차에서 이 갈무리조를 재해석하였다. 씻김굿뿐만 아니라 상장례 전반을 다시 읽기 하며 기왕의 해석을 뒤집거나 새롭게 재구성하는 까닭은 의례에 나타난 표면과 이면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자는 취지다. 조만간 판소리의 표면과 이면을 풀어 읽는 작업도 해나갈 예정이다. 위 노래의 곡조는 성주풀이라는 남도민요로 잘 알려져 있다. 일반인들은 아마 남도민요 성주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씻김굿에서 과장의 마무리곡으로 사용되는 곡이라니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대개의 연구자들은 무가에서 민요로 전이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꼭 그렇다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관련한 이야기들을 좀 더 풀어 본다.
내가 글을 어렵게 쓰는 탓이겠지만 기껏 풀어 설명한다고 해도 어렵다는 반응이 되돌아온다. 불과 백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일상적이던 풍경이 이제는 설명을 곁들여야만 이해하는 특수한 풍경이 되어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민속 음악이나 풍속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그러할 것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 지면을 활용해 좀 더 쉽게 설명해보고자 하는데 그게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학계뿐만 아니라 강호 고수들의 질정 바란다. 갈무리조를 설명하기 위해 지난 설명을 간략하게 리뷰한다. 모든 굿에는 하나의 굿판을 이루는 십수 개의 하위 굿거리들이 있다. 남도 씻김굿에는 대개 열두 개 정도의 하위 굿거리들이 있다. 그 중 핵심적인 굿거리가 ‘씻김거리’이기 때문에 굿 전반을 통칭해 ‘씻김굿’이라 한다는 점 여러 차례 밝혀두었다. 씻김굿은 남도문화권에서 통용되는 이름이다. 기능은 비슷해도 예컨대 오구굿이니 별신굿이니 하는 등 지역적으로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씻김굿의 음악을 언제 누가 시작했는지, 전승해왔는지 혹은 채록하여 굳어진 노랫말인지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흔히 당골이라 호명되는 남도지역의 무속인들에 의해 불려지고 전승되었다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 갈무리조도 마찬가지다. 난감한 것은 연행이나 실행의 현장에 있는 이들은 물론 여러 연주가나 연구자들마저 내게 질문하곤 한다는 점이다. 아마 내가 이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론과 실기를 두루 섭렵했다고는 하지만 통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르는 것들은 더 공부하고 분석하여 글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어떤 때는 심사숙고하여 내놓은 글이, 이미 어떤 연구자들에 의해 발설된 것이라는 점을 알아차릴 때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역량이 그만치이니 차후 보완하고 수정할 수밖에. 더구나 내가 대학에 있지 않은 관계로 학생들에게 피드백할 기회가 없어 중요한 논의들이 재생산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어쨌든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일반 애호가들은 내가 내놓는 테마 하나하나를 눈여겨 살펴봐도 좋을 것이다. 크고 작은 테마 혹은 메시지들이 각편의 논문감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오늘 다루는 남도 씻김굿의 갈무리조도 그런 점에서 주목할 수 있다.
갈무리조와 성주풀이는 노래의 연원이 같은 이유가 무엇일까? 성주풀이는 남도민요의 하나로 정착하였는데 성주받이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여 붙인 제목이다. 성주받이란 집의 수호신으로 성주를 새로 모시는 굿을 말한다. 주로 새로 집을 지을 때 하는데, 이사를 하거나 또는 남자 주인인 대주(大主)의 나이가 17세, 27세, 37세 따위와 같이 ‘7’자가 되는 해의 10월에 날을 가려 하기도 한다. 집을 새로 지었다라는 말을 ‘성주 올렸다’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갈무리조는 성주받이할 때 복을 빌기 위하여 부르는 노래에 그 연원을 둔다. 다만 성주받이할 때의 무가 연창과 지금 말하는 갈무리조는 그 기능이 다르다. 갈무리조는 앞서 말한 ‘코다’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각편 굿거리의 종지곡으로 사용할 뿐이다. 왜 이 곡조가 남도 씻김굿의 각편 종지곡으로 사용되었을까? 지난 4월 27일 영호남문화교류전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제목을 성주풀이 여행이라고 정하고, 안동 제비원에서 진도 잔등까지라는 부제를 달았다. 오늘 이야기할 주제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 소개해둔다. 다음 차에 이를 풀어 설명하는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2. 무가(巫歌) 성조가(成造歌)와 민요 성주풀이의 교섭 성주야 성주로구나
성주 근본이 어드메뇨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 솔씨 받어 봄동산에 던졌더니만은 그 솔이 점점 자라나서 황장목이 되었구나 도리 기둥이 되었네 낙랑장송이 쩍 벌어졌구나 대활련으로 설설이 나리소서 민요 성주풀이 가사다. 이본들이 많아 가사를 통일할 수는 없다. 대개 위와 같은 유형의 가사가 보편적이다. 동리 신재효가 정리한 가사집에도 상이한 대목들이 나온다. 정병헌이 ‘김삼불본’과 ‘청계본’을 대조 분석하여 정리한 『신재효의 가사』라는 책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성조(成造)는 일반적으로 성주(城主)라 부른다. 집을 짓는 행위의 과정이나 결과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무가에서 민요로 확대 재생산되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정설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씻김굿에서 먼저 불리고 남도민요 성주풀이로 불렸는지, 혹은 그 반대인지 아니면 또 다른 경로나 내력이 있는 것인지 좀 더 알아본다. 최은숙은 「성주풀이 민요의 형성과 전개」(한국민요학 9집, 2001)라는 연구를 통해 이 교섭관계를 주목한 바 있다. 결론의 일부를 인용해둔다. 현재 전승되는 성주풀이 민요의 텍스트를 분석해 본 결과 그것은 크게 ‘제비원본풀이’ 내용이 핵심적 어구로 나타나는 ‘제비원본풀이’ 계열과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라는 후렴이 핵심적 어구로 나타나는 ‘에라만수’ 계열로 대별되었다. 이들은 각각 무가와 공유하는 부분과 변이되는 부분을 가지며 변이를 확장함으로써 민요로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민요로 형성될 수 있었던 요인을 사설의 측면, 민속적인 측면, 연행적 측면으로 나누어 살폈다. 사설의 측면에서는 민요 가창자들이 자신들의 희망과 욕구를 직접적으로 토로할 수 있는 기화가 되는 ‘축원과 치레’의 사설이 전환의 핵심이 됨을 보았고, 민속적 측면에서는 성주신이 가지는 특성과 농경 정착 사회에서 집이 가지는 중요성을 살폈으며, 연행적 측면에서는 연행자와 연행목적의 변이 가능성의 용이와 창우집단의 역할을 주목해보았다. 이러한 무가에서 민요로의 형성과정은 바로 성주풀이 민요가 무가에서 벗어나 민요로의 독자성을 확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주풀이가 무가에서 시작하여 민요로 이행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이보형은 「통속민요 성주풀이 발생에 대한 고찰」(한국민요학 34집, 2012)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한국의 각 지역 무당굿 성주굿의 청신 절차 무가의 음악적 특징을 살펴보니, 동해안 무당굿 성주굿 청신 절차 무가는 청보 장단, 메나리토리, 통절형식으로 되었고, 충청도 무당굿 성주굿 청신 절차 무가는 살풀이장단, 육자배기토리, 통절형식으로 된 것처럼 어느 지역 무가에도 통속민요 성주풀이와 같은 음악특성으로 된 무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통속민요 성주풀이 원류가 무당굿 성주굿 청신 절차 무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다. 성주풀이라는 이름으로 된 소리가 집집마다 들려서 고사 지내고 돈과 쌀을 걷는 걸립패의 의식에 있으니 통속민요 성주풀이의 원류가 여기에 있을 것으로 보고 각종 걸립패의 걸립 의식에서 불려지는 고사 소리의 음악적 특징을 살펴보니 창우집단(倡優集團)의 광대 고사 뒷 고사 소리에 통속민요 성주풀이처럼 굿거리장단, 성주풀이토리, 장절형식으로 되고 곡조도 꼭 같은 음악적 특성으로 된 것을 찾아내어 이것이 그 원류라는 것을 밝혀내었다.
통속민요 성주풀이 원류가 창우집단의 광대고사 뒷 고사소리에 있다는 주장이다. 즉 조선왕조 말기에 도시 상공업의 발달로 도시 대중문화가 형성되고 도시 대중을 위한 통속민요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창우집단 출신 ‘잡가 광대’라는 성악 집단이 형성되고 이들이 그 동류집단의 의식음악인 성주풀이를 대중의 향수를 위한 통속민요 부문으로 기능을 바꿔 공연한 데서 통속민요 성주풀이가 형성되었다는 주장이다. 성주풀이가 무가에서도 불려지지만 세시의식과 결합한 신민요(통속민요)로 불려지며 급속하게 확산된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실제 성주풀이는 무가의 성주받이에서 불려진 것보다 통속민요로 불려진 경우가 많았다. 이윤정은 「유성기 음반을 통해서 본 경서도 명창들의 남도음악 수용 양상-성주풀이를 중심으로」(한국문화기술 통권 23호, 2017)에서 경서도 명창들이 녹음한 남도음악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경서도 명창들조차 앞다투어 녹음할 정도로 그 유행이랄까 확산이 컸다는 점을 확인해주는 셈이다. 이때 녹음 장르는 대개 민요, 잡가, 판소리 등이었는데 가장 많은 음반을 남긴 것이 잡가 계열이고 그중에서도 성주풀이가 가장 많은 음반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난달 국악학회 전국대회에서 「남도음악의 쟁패와 시김새의 정초」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바 있다. 본 연재와 관련된 것들은 따로 떼어 소개해나갈 예정이지만, 결론만을 말한다면 왜 판소리와 산조, 병창, 심지어는 통속민요로 분류되는 남도잡가 등이 지난 1세기 한반도를 석권하였는가에 대한 분석이었다. 이 과정 중에 잡가 성주풀이와 남도 씻김굿의 갈무리조가 생성되거나 전승되고 혹은 창발되었다고 나는 보고 있다. 3. 안동 제비원, 성주풀이의 성주에 대하여 성주는 한자말로 성조(成造)라고 한다. 사전적 풀이는 가정에서 모시는 신(神)의 하나로 집의 건물을 수호하며, 가신(家神) 가운데 맨 윗자리를 차지한다. 집의 건물을 수호하는 신격이므로 상량신, 성주대신이라고도 한다. 집 안에 있는 신격 중 가장 대장격이라는 뜻인데 주로 조상과 관련지어 해석된다. 참고로 집안에는 성조신 외에 부엌과 불을 관장하는 조왕신(竈王神), 곡식을 관장하는 곡간신, 장독대를 관장하는 철륭신, 터를 관장하는 터주신 등이 있고, 화장실, 대문간의 문신, 외양간신, 재물을 담당하는 업신(주로 구렁이 등으로 표상된다) 등 모든 공간에 신격들을 배치해두었다.
성주풀이 무가는 성주굿 일환으로 불린다. 가신신앙 중에서 으뜸이 성주신이다. 조상신과 연결된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 ‘제석오가리’를 검색해보면 내가 집필한 항목들이 나오니 참고 가능하다. 남도에서 성주신을 중심으로 하는 조상신, 농신이 제석오가리다. 제석단지, 성주오가리, 성줏단지, 조상단지, 신줏단지 등으로 불린다. 제석(帝釋)은 불교 전래 후 토착 신앙과 교섭되면서 구성된 신격이다. 자손의 점지나 출산을 도와주고 자손의 명과 복을 관장한다고 관념되는 가신(家神) 중 하나다. 바리데기 신화와 쌍벽을 이루는 당금애기 신화가 제석굿의 토대다. 하지만 진도씻김굿의 하위굿인 제석거리에서는 당금애기 서사는 생략되고 성주 청하여 집터 잡고 지경 다구고 재목 구하여 기둥, 서까래 집칸 등을 지어 산자들에게 벼슬과 재화 등의 복락을 주는 서사로 재편성되었다.
성주굿의 맥락은 전국에 널리 분포해있다. 동해안의 별신굿이나 제주도의 성주굿 등의 묘사가 비교적 섬세하다. 남도의 ‘갈무리조’가 제석굿에 포함된 성주무가에서 비롯된 노래임은 불문가지다. 다만 주목할 것은 성주 근본을 안동땅 제비원으로 설정하고 솔씨 하나 심어 장목으로 자라게 하여 집을 짓는다는 서사의 맥락이다. 왜 안동을 우리나라 성주의 근본이자 본향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일까? 어라 만세 어라 대신이로다
대활전으로 성주를 지워 보세 성주로다 성주로다 성주 근본이 어디맨고 경상도 안동 땅에 제비원에 파른 솔씨는 돌안에다 던졌더니 그 솔이 점점 자라나야 밤으로는 이실을 맞고 낮이로는 벹낼 쐬야 청장목 황장목 다 되얐네 두리지둥이 다 되얏네 김태곤이 1966년 전남 목포에서, 어려서부터 모친으로부터 무가를 배웠던 이점덕 무녀(46세)로부터 채록한 성주굿 무가다. 김태곤이 쓴 『한국무가집』2(집문당, 1971),에 나온다. 조현설은 『제비원』(민속원, 2021)에서 이 무가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성주굿 축원무가와 통속민요(잡가), 그리고 일반민요(토속민요)에서 똑같이 확인되는 제비원 본향 코드는 20세기 들어와서야 ‘성주의 본향은 안동 땅 제비원’이 일반화되었다는 확실한 좌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라고 말이다. 물론 앞선 최은숙의 논의를 빌려 한 말이다.
조현설의 논의들을 둘러보면 성주목의 출처가 다양하게 나온다. 예컨대 부산 동래의 최순도본은 ‘지하궁의 여기저기’로, 영일지역의 김석출본은 ‘안동땅 제비원’으로, 하지만 정작 안동의 송희식본은 ‘전라도 해남땅’으로 노래한다. 성주의 본향 문제가 ‘천상의 성주신 본향-지상의 성주목 본향’이라는 이원성에서 ‘성주 본향은 제비원’으로 일원화되고 솔씨가 성주목의 근원이므로 제비원 솔씨라는 일원성으로 수렴되었다고 주장한다. 안동시 이천동의 제비원 미륵불 뒤쪽에 있는 연미사(鷰尾寺)라는 사찰이 그 중심에 서게 된 것은 매우 후대의 일이다. 이렇게 보면 남도 씻김굿의 갈무리조도 조선후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유행한 잡가류의 유행과 궤적을 같이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분석했던 지난 1세기 남도음악의 쟁패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조현설은 위 책에서 이렇게 결론짓는다. 축제를 통해 안동 제비원이 성주신앙의 중심지라고 자랑하는 것이 무익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더 긴요한 일은 제비원솔씨공원과 제비원문화축제를 만들어낸 ‘제비원 미륵불’과 ‘성주본향 제비원’의 숨은 뜻이 무엇인지,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성찰하는 것이다라고. 지면상 중간 설명들을 생략하였지만, 조현설의 주장은 미륵하생과 무속문화의 결합이 미륵불이 있는 안동땅 제비원을 성주신의 본향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탠다. 퇴계 이황과 유교적 이데올로기 특히 안동 김씨의 전횡과 조선 후기의 정치력과 이른바 헤게모니가 이를 추동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에 재창조된 진도아리랑의 첫 사설에 문경새재가 등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하고 있다. 기회가 되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내 생각을 말할 예정이다. 도식하면 성주-성황당-불교 미륵불-제비원 정도로 압축할 수 있겠다. ‘갈무리조’의 배경이 제비원의 솔씨라는 점, 경상도와 전라도를 댓구로 비교하고 있다는 점 등 행간이 풍부하다.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는 구술문화는 본래 창작자의 의도와 다르게 와전된다. ‘갈무리조’도 다르지 않다. 늘 견강부회를 의심하고 조심해야 하지만, 용어 자체보다 그 행간과 맥락을 좇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4. 경상도는 제비풀이요 전라도는 중천의 풀이란다 이상의 내용들을 토대로 현재 진도씻김굿에서 사용하고 있는 ‘갈무리조’의 사설을 재구성한다. 사설의 내드름이 ‘경상도는 대풀이요’다. ‘대풀이’가 뭘까? 경상도가 강신무(降神巫)권이라면 대잡이를 통해 강신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경상도 또한 전라도와 마찬가지로 세습무권이다. 전형적인 세습무(世襲巫)권인 전라도 당골도 손대잡이(일반 굿 전반)와 왕대잡이(혼건짐굿 등)를 한다. 이것 또한 대풀이다. 그런데 경상도를 꼭 집어서 대풀이를 한다는 사설은 와전되거나 앞뒤가 통하지 않는 말이다. 다시 사설을 놓아두고 얘기를 마무리한다. 경상도는 대풀이요
전라도는 중천의 풀이란다 잔도 잔도 새로 속잎이 났네 에라 만수야 에라 대신이야 많이 흠향하고 평안히 돌아가소서 전라도의 세습 당골은 강신무처럼 본인이 직접 공수하지 않고 다른 이 예컨대 망자의 가족이나 친구 등을 활용할 뿐이다. 잇는 사설이 ‘전라도는 중천의 풀이’다. 댓구 형식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대나무를 대입하는 것은 댓구에 어울리지 않는다. 다시 성주풀이로 돌아가 생각해본다. 민요 성주풀이는 물론 경상, 강원의 무가들을 종합해 결론을 말하면, 경상도는 제비풀이다. 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상도는 제비원의 제비 풀이를 통해 성주를 푼다고 전제할 수 있다. 성주 노래 자체가 제비원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안동 제비원과 강남 제비의 서사들이 교섭되어 오늘날의 노랫말을 낳았다. 따라서 맥락과 배경의 행간을 읽으면, ‘대풀이’가 ‘제(비)풀이’임을 알 수 있다. 후대에 와전하여 ‘제(비)’자가 강조되고 ‘비’가 곁음화 되었을 뿐이다. 경상도의 제비풀이와 전라도의 중천풀이를 상호 댓구로 배열한 것이 본래 작자의 의도로 보인다. 그렇다면 전라도의 중천(重泉)은 무엇인가? 중천은 땅속 깊은 곳에서 솟는 샘이다.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저세상을 말한다. 불교적으로는 삼천 대천세계로 확장하여 해석할 수 있다. ‘잔도 잔도’는 무엇일까? 진도 출신 신영희 국창의 남도민요 사설집을 보면, ‘잔등 잔등’으로 나온다. 잔등은 언덕의 남도말이다. 이승의 번뇌를 벗고 도달하는 피안(彼岸)의 본뜻이 언덕이고 강이다. 후대에 와전되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피안의 언덕 혹은 천도(薦度)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속잎은 발음 그대로 의미가 있지만, 성주를 노래하는 굿거리라는 점에서 ‘솔잎(松잎)’으로 봐야 한다. 제비원에 솔씨 심어 황장목 만드는 서사가 배경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씻김거리에서 지금은 풀비(빗자루)를 쓰지만, 본래 영돈마리 씻는 도구는 솔가지다. ‘갈무리조’ 자체가 성주풀이의 소나무와 친연성이 매우 높거나 후대에 그 빛이 바랬을 개연성을 말해준다. 솔씨로부터 성장하여 ‘집(成造는 몸의 확장이기도 하다)’을 이루는 서사를 나는 늘 주목하고 있다. 만수(萬壽)와 대신(大神)은 영생 혹은 재생을 희구하던 우리네 대표 캐릭터다. 만세받이, 대신맥이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나는 ‘갈무리조’를 이렇게 해석한다. 경상도는 제(비)풀이요
전라도는 중천의 풀이란다. 잔등 잔등에 새로 솔잎이 났네. 에라 만수야 에라 대신이야. 많이 흠향하고 평안히 돌아가소서 피안의 언덕에 새로 솔씨 뿌려 황장목으로 거듭나는 재생의 장치가 행간에 녹아 있다. 눈치 빠른 이들은 짐작하겠지만 이 풀이를 통해 남도씻김굿의 마지막 거리인 종천(종천맥이)과 ‘등잔가세’의 ‘등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길을 열게 되었다. 내가 오래전 새롭게 해석했던 ‘다시래기’는 물론 씻김굿의 ‘갈무리조’ 해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는 늘 당대의 해석에 의지해 재구성된다. 글쓴이 이윤선 진도학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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