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서와 옛편지] 선물? 단순한 선물이 아니다 게시기간 : 2023-06-16 07:00부터 2030-12-17 16:16까지 등록일 : 2023-06-13 10:22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고문서와 옛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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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도 얻고 과거에도 합격했다니 축하한다! 황진(黃進)은 아침부터 서둘렀다. 외할머니가 부른 까닭이다. 무슨 일로 불렀는지 알 수 없었다. 도착하니 집안 어르신인 방응남(房應男) 방덕준(房德駿) 방덕린(房德麟) 등이 이미 와 기다리고 있었다. 외할머니 표정이 무척 즐거워보였다. 외할머니 소씨가 황진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내용을 본 황진은 깜짝 놀랐다. 네가 지난 해 가을 무과(武科) 병과(丙科)에 입격하였으니 집안 경사로 이보다 더 큰 것은 없어 매우 기뻤다. 그래서 여종 세덕(世德), 사내종 수성(守成) 등과 주포에 있는 땅 열 마지기를 네게 준다.
1577년 2월 23일에 남원에 사는 방응성의 부인 소씨가 외손자 황진에게 준 별급문기. 여자종 1구, 사내종 1구와 땅 10마지기를 준다는 내용이다.
1575년(선조 8)에 방응성의 부인 소씨가 외손자 황진의 득남을 축하하며 작성해준 별급문기. 여종 수금, 사내종 윤세 그리고 논밭을 준다는 내용이다. 전혀 생각지 못한 선물이었다. 지난 해 무과를 잘 통과했다. 황진은 1576년(선조 9)에 무과 병과에 입격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외할머니 소씨는 무척 기뻐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외손자가 벼슬길에 오른 것이 대견하다고 무수히 칭찬했었다. 황진도 외할머니가 기뻐하니 덩달아 즐거웠다. 함께 기쁨을 나눈 것만으로도 흡족했다. 소씨는 외손자인 황진을 데려다 옆에 두고 키웠다. 둘 사이는 모자의 정에 가까울 만큼 친밀했다. 황진은 외할머니가 기뻐하는 것은 당연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선물까지 주실 줄 몰랐다. 시험에 합격했을 때 아무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2년 전 아들 정직(廷稷)이 태어났을 때에 종 2구(口)와 땅을 주지 않았던가. 그때 외할머니가 보여준 기쁜 표정이 아직도 생생했다. 외할머니는 황진이 20대 중반이 넘도록 자식이 없어 황씨 집안 대가 끊어질지 모른다고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 중에 아들을 낳았으니 외할머니가 얼마나 기뻤을까. 황진은 자신을 향한 외할머니의 애정이 두텁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황진을 향한 소씨의 애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황진은 무관으로 벼슬살이를 했다. 1590년 황윤길, 김성일 등이 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될 때 군관으로서 동행했다. 김성일이 돌아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기미가 없다고 보고하자 그것은 거짓 보고이니 김성일을 벌주라는 상소문을 작성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말려 상소를 못했지만 일본의 침략 야욕을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일본에서 돌아올 때 보검 2자루만 샀는데 ‘일본은 반드시 조선을 침략’할 것이며 그때에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93년 김천일, 최경회, 고종후 등과 함께 진주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결국 유탄을 맞아 전사했다. 소씨는 황진의 아들이 아버지를 잃은 것을 슬퍼하며 외증손자인 황정직에게 위로하는 마음을 전하면서 종과 땅을 주기도 했던 것이다. 김명열은 1651년(효종 2) 문과에 병과 13등으로 합격했다. 조선시대 문과는 과거 시험 최종 단계다. 합격하면 벼슬살이를 곧 할 수 있었다. 과거 합격은 개인의 영광을 넘어서 가문의 영광이었다. ‘과거 방목이 이르면 죽은 부모의 관이 석 자나 들썩인다.’는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였다. 김명열이 문과에 합격하여 가문을 빛내자 이성(異姓) 삼촌인 홍세형(弘世亨)은 축하와 격려하는 차원에서 특별히 노비 1구를 주었다.
처음 보는 며느리여, 널 어여삐 여기노라 기처겸(奇處謙)은 며느리를 맞이할 준비로 몸과 마음이 바빴다. 아들 진탁(震鐸)이 혼인식을 했었는데 드디어 며느리가 처음으로 집안사람들에게 인사하러 오게 된 것이다. 그는 새며느리를 위해 선물 꾸러미인 종이 한 장을 준비해 놓았다. 선물 내용은 종이에 쓰여져 있는데 대략 이렇다. 아들 진탁(震鐸)의 처는 맏며느리로서 용모가 단아하다. 오늘에야 비로소 보게 되니 감격스럽다. 이에 여종 연화(延化), 봉심(奉心), 사내종 순성(順性)을 주고 또 논 15마지기와 밭 2마지기를 준다.
1622년(광해군 14) 기처겸은 며느리 나씨를 맞이했다. 그녀는 나무춘(羅茂春) 딸인데 기씨 집안으로 들어와 총부(冢婦)가 되었다. 총부는 적장자(嫡長子) 곧 적처가 낳은 맏아들의 배우자로서 집안에서는 맏며느리다. 『소학(집주)』를 보면 ‘시아버가 죽으면 시어머니는 맏며느리에게 모든 일을 맡기니, 맏며느리가 집안의 제사를 받들고 손님들도 접대한다. 다만 이 모든 일에 대해 시어머니께 묻고 청해야 한다.’고 했다. 맏며느리의 권한으로서 제사 주관 및 손님 접대를 명시해 놓았다. 조선시대에 총부의 위상도 『소학(집주)』에서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편이 자식 없이 사망했을 경우 주제권(主祭權) 곧 집안 제사를 주관하는 권리, 입후권(立後權) 즉 계후자(繼後子)를 지명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시아버지나 남편이 살아 있다면 이러한 권한들을 행하기 어렵겠지만 그만큼 한 집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았다. 기처겸은 나씨를 집안 총부로 맞이하면서 나름대로 인정(人情)을 낸 것이다. 나씨는 시부모와 시가 사람들을 처음으로 뵙고 인사하러 온 때에 시아버지로부터 큰 선물을 받았다. 나씨처럼 혼인 후 여성이 처음으로 시부모 및 시집 쪽 사람들을 뵙는 일 즉 초알(初謁)할 때에 시집 쪽 사람들이 며느리에게 선물을 주는 일이 종종 있었다. 보통 문서에 ‘초알일별급(初謁日別給)’ ‘취부지일(取婦之日)’ ‘신부초알지일(新婦初謁之日)’이라는 어구를 특별히 넣기도 한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꾸준히 행해졌다. 주로 신부의 집에서 혼인식을 거행했고 신부는 얼마 동안 친정에서 살다가 나중에 시집으로 인사를 오거나 이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집 사람들이 신부를 정식으로 맞이하는 때는 초알일이었다. 그날은 특별하므로 신부를 위한 선물을 마련했던 것이다. 1716년 강여민(姜汝敏)은 맏아들 강필성의 아내인 오씨가 처음 온 초알일(初謁日)에 땅과 말 2마리를 선사했다. 또 강여흥(姜汝興)은 강필성의 5촌 당숙인데 같은 날 5촌 조카며느리인 오씨에게 땅을 선물로 주었다.
별급(別給) : 바로 ‘너’만을 위한 선물이지 황진, 김명열, 기처겸 며느리인 나씨, 강여민의 며느리 오씨 등은 땅과 노비를 선물로 받았다. 땅과 노비는 조선시대 재산 목록 중 가장 값비싸고 유용한 것들이다. 그것들을 외할머니나 시아버지 등에게서 받아냈다. 이는 선물이라기보다 오히려 재산을 떼어 준 것에 가깝다. 정식으로 재산을 상속한 것이 아니고 특정한 사람에게 경제적으로 혜택을 준 셈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사람들은 여기에 ‘별급’이라는 명목을 붙였다. 별급(別給)은 ‘특별히 준다.’ ‘따로 떼어 준다.’ ‘특정한 사람에게 특정한 이유로 인해 특별히 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재물을 갖고 있는 사람이 원하는 대상이나 원하는 때에 ‘따로’ 주는 것이다. 그 대상은 자식과 손자들, 며느리나 사위, 집안의 조카까지 꽤 범위가 넓었다. 그리고 ‘특별’한 동기가 있거나 ‘특별’한 때에 별급한다. 이를 테면 남들보다 뛰어난 효도를 했거나 과거 시험 합격했다거나 오랫동안 아들을 기다렸다가 득남했다든가, 며느리가 처음으로 시집에 들어오는 것 등은 일상적이지 않고 ‘특별’한 일이다. 그리하여 별급하는 문서를 작성할 때에는 따로 주어야 할 마땅한 명분이나 이유를 반드시 써 넣었다. 재산에 속하는 것을 정식으로 상속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대상에게 주는 것이었으므로 별급은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성격을 띠었다. 그래서 문서 말미에 ‘혹시 따지는 이가 있으면 이 문서’로 증명하라는 내용도 써 넣는다. 오로지 그 사람만의 소유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선물의 힘 : 인정하기와 기대 걸기 선물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남에게 인사나 정을 표현하기 위해 주는 물건’이라고 써 있다. 선물과 비슷한 말로 선사(膳賜)라는 말도 있다. 사전에 의하면 ‘존경, 친근, 애정의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남에게 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별급하는 문서에는 ‘정을 드러내기 위해(表情)’ ‘총애(寵愛)’ 등의 표현이 많다. 그런데 별급한 내역을 보면 단순한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그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경제적 가치가 크다. 노비 가격이 쌀 25~30여 섬 정도였으니 노비 1구만 받아도 값비싼 선물을 받은 셈이다. 여종일 경우 자식 생산력이 있고 그 자식들 또한 노비로 부릴 수 있었다. 여종 1구는 미래 재산 형성 가능성이 높은 재산이었다. ‘특별’한 이유로 준다고 해도 경제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들을 선사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터이다. 선물은 주고받는 사람 사이의 긴밀도를 강화시켜준다. 선물이 가진 힘이다. 선물로 가는 물건 속에는 주는 이의 마음과 애정 등이 실려 있다. 받은 이는 마음과 애정을 받아들이며 감사해 한다. 선물을 줌은 ‘나’를 기억하고 인정한 것이다. 그만큼 선물은 두 사람을 더욱 가깝게 만드는 효험 좋은 약이다. 한편으로 선물은 치명적인 것도 품고 있다. 알게 모르게 받는 사람에게 ‘책무’를 부여하기도 한다. 황진의 외할머니 소씨가 왜 선물을 했을까. 황진이 소씨를 잘 봉양하고 아들도 낳았다고 하면서 선물을 주었다. 선물을 준 동기가 받는 이에게는 ‘앞으로 해야할 어떤 책무’일 수도 있다. 앞으로 황진이 외할머니인 자신을 더욱더 잘 봉양하라는 바람을 넌지시 표현한 것은 아닐까. 기처겸이나 강여민은 ‘훌륭한 며느리’를 맞이한 일을 기뻐하면서 나씨와 오씨에게 선물을 건넸다. 조선후기에 나온 여성 교훈서를 보면 시집 어른들을 잘 봉양할 것, 시집 가족 및 친족들과 화목하게 지낼 것, 집안 살림을 잘 꾸려 나갈 것 등을 써 놓았다. 당시 사회에서 며느리에게 요구하는 내용이다. 처음 인사하러 오는 날 나씨와 오씨에게 선물을 한 사람들도 며느리의 책무를 다해야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한 것은 아닐까. 선물 속에 감춰진 또 하나의 힘이다. <도움 받은 글들> 고전번역원 DB
한국학자료포털 http://hnkostma.org/emuseum/service/ 박경(2011), 「16세기 유교적 친족질서 정착 과정에서의 冢婦權 논의」, 『조선시대사학보』 59, 조선시대사학회. 이숙인(2022), 「조선후기 제례 담론의 몇 가지 특징」, 『율곡학연구』 48, 율곡학회. 이옥부(2022), 「조선후기 제주도 초알일 별급과 상속문화의 지역적 특성」, 『사회와역사』 135, 한국사회사학회. 이옥부(2018), 「조선후기 제주도 지역의 별급관행과 그 특성- 구좌읍 김해 김씨 가문의 별급문기를 중심으로」, 『역사학보』 238, 역사학회. 정긍식(2004), 「16세기 재산상속과 제사계승의 실태」, 『고문서연구』 24, 한국고문서학회. 손계영(2019), 「조선시대 별급 분재의 사유와 변화 양상」, 『국학연구』 39, 한국국학진흥원. 글쓴이 김기림 조선대학교 기초교육대학 부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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