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기행] ‘병어의 계절’이 다 지나간다. 몸 값하는 여름 생선, ‘병어’ 게시기간 : 2023-07-28 07:00부터 2030-12-16 21:21까지 등록일 : 2023-07-19 13:52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맛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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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님, 오늘 병어가 싸게 나왔어요. 한 상자 들여놔요. 물때가 좋아서 남편이 평소보다 많이 받았어요. 단골집에서 이런 전화가 오면 무조건 구입을 한다. 그냥 단골이 아니다. 20년 넘게 믿고 거래하는 집이다. 사실 거래라고 할 것도 없다. 궁금한 것 있으면 시도때도 없이 물어보고, 지나다 들리고 마음이 허할 때 나왔다가 거쳐가기도 하는 집이다. 40미에 30여만 원이면 크기도 가격도 좋은 편이다. 매년 한 상자씩 사서 손질해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그냥 썰어 먹고, 조림해서 먹고, 구워도 먹는다. 선어로 썰어 먹을 것은 머리를 떼어 내고, 내장도 꺼낸다. 하지만 조림으로 먹을 것이라면 비늘과 지느러미만 제거한다. 크지는 않지만 머리와 내장에 있어야 입에 달라붙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병어는 늦봄부터 여름철까지 서해에서 잡히지만 전라도를 대표하는 생선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임자도와 허사도 일대의 우리나라 최고 품질의 병어어장이 있는 탓이다. 칠산바다가 있는 탓이다. 이곳은 병어만 아니라 민어의 주산지이기도 하다. 그런 탓에 신안군 지도읍 송도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병어 위판장인 ‘송도위판장’이 있다. 특별한 인연으로 단골가게가 된 어머니에게서 물 좋은 값싼 병어가 나왔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송도위판장에는 손암 정약전의 동상이 있다. 나주 율정에서 헤어져 육로로 이곳까지 와서 배를 타고 흑산을 향했을 것으로 비정하는 것이다. 손암의 배를 타고 건넜을 그 길이 여름에는 병어와 민어가 산란을 하는 갯골이다. 주민들은 바다라고 부르지 않고 ‘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섬과 섬 사이 갯골은 흑산바다로 가는 길과 달리 파도가 높지 않고 잔잔하지만 조류소통이 좋다. 갯벌이 만들어지기 좋은 환경이다. 이곳에 젓새우가 많아 민어나 병어가 산란하고 어린 새끼들이 자리기 좋다. 병어가 귀한 흑산에서 손암은 그 맛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반면에 율정에서 헤어져 강진으로 유배된 다산은 도암만에서 올라온 병어를 즐겨 먹었던지 그 맛을 극찬했다. * 손암은 병어를 기록하고, 다산은 맛을 보다. 고려나 조선시대 문헌에 병어를 '축항어'(縮項魚), 축경편(縮頸鯿)이라고 해다. 살펴보면 머리가 작아 목덜미가 없거나 움추린 모양이니 그리 불렀던 것 같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경기도와 전라도 연안의 몇몇 지방의 토산물로 병어(兵魚)가 기록되어 있다. 《난호어목지( 蘭湖漁牧志)》에도 서남해, 특히 호서 도리해(桃里海)에서 많이 난다고 했다. 《자산어보》에는 ‘편어(扁魚)라 하고 속명은 병어(甁魚)’라 했다. 병어는 ‘맛이 좋고 뼈가 물러서 회·구이·국에 좋다’고 소개했다. 큰 놈은 2척 정도다. 머리가 작고 목이 움츠러들어 있으며, 꼬리는 짧고, 등이 볼록하고, 배는 튀어나왔다. 편어의 모양은 사방으로 나와 있어서 길이와 높이가 대략 같다. 입이 매우 작다. 몸 빛깔은 청백이고, 맛은 달다. 뼈가 물러서 회나 구이 및 국에 모두 좋다. 흑산도에 간혹 있다.
손암이 병어를 요리조리저리 살피고 어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을 남겼다면, 동생 다산(茶山)은 병어의 맛을 알았던 것 같다. 그가 남긴 시(詩) ‘여름에 읍청루에서 목 정자 조영 등 제공을 모시고 술을 마시며’에서 ‘저 뱃길로 옛적에는 장요미라는 쌀을 바쳤는데(湖漕舊貢長腰米), 갯가 저자 오늘날 축항어(縮項魚)를 사온다오(浦市新賖縮項魚)’라고 병어를 예찬했다.
조선시대에는 병어보다는 민어(民魚)ㆍ조기(石首魚)ㆍ밴댕이(蘇魚)ㆍ낙지(絡締)ㆍ준치(眞魚)등이 환영을 받았다. 허균(許筠 1569~1618)는 《성소부부고》 ‘설부(說部)’에는 ‘병어(甁魚)’는 맛이 좋은 것도 있고 좋지 않는 것도 있다며 민어나 조기나 준치처럼 주목하지 않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수원도호부, 인천도호부, 안산군, 김해도호부, 순천도호부, 낙안군, 보성군, 광양현, 흥양현의 토산품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 일본에 통신사로 갔다온 것을 기록으로 남긴 《해사록》, 《문견잡록》에도 일본의 해산으로 농어, 방어, 홍어, 전어 등과 함께 병어를 기록했다.
《자산어보》에는 편어(扁魚) 속명 병어(甁魚)라고 했다. 도드라진 특징으로 목이 짧고 입이 작는 점과 뼈가 물러서 회나 구이로 좋다고 했다. 또 ‘큰놈은 2척 정도다. 머리가 작고, 목이 움트려 있으며, 꼬리는 짧고, 등은 볼록하고, 배는 튀어 나왔다. 편어의 모양은 사방으로 나와 있어 길이와 높이가 대략 같다. 입은 지극히 작다. 색은 청백이고 맛은 달디. 뼈가 물러서 회나 구이로 및 국에 좋다. 흑산에 간혹 있다고 기록했다. 《난호어목지》에는 병어를 ‘창(鯧)’이라 했다. 그리고 ‘창은 서해와 남해에서 난다. 지금 민간에서 말하는 병어다’라고 했다. 또 ‘본초강목’은 아래와 같이 ‘병어가 다닐 때에 반드시 무리를 짓는다. 그 대열을 이루는 모양이 마치 병졸과 같아서 병어라 부른다’고 기록했다. 今兵魚亦行必成群, 土人以其群行作隊如兵卒然, 故呼爲 兵魚.
* 병어가 맺어준 인연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때 한 해에 100만명의 여행객이 다녀갔던 신안군 증도로 가는 길목에 송도위판장이 있다. 당시에는 증도에 다리가 놓이기 전이다. 염전조사를 마치고 막배를 타고 지신개 선착장에 도착하니 날이 어두워졌다. 지금은 섬에 펜션도 많고 식당도 있지만 그때는 변변치 않았다. 겨우 마지막 배를 타고 나와 송도에 접어들자 심한 허기를 느꼈다. 광주까지 한 시간 정도를 운전하고 갈 여력이 없었다. 혹시나 해서 지도읍내로 들어섰다. 대부분 식당은 문을 닫았고, 불 켜진 식당도 영업이 끝났다며 문을 닫았다. 그럴수록 허기는 심해졌다. 마지막다 싶은 심정으로 반쯤 문이 열린 식당에 들어서며 조심스럽게 혼자인데 배가 너무 고파서 그런데 요기를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작은 키의 다부진 안주인도 영업을 끝내고, 가족들이 식사를 하려 한다고 했다. 돌아서려는데, ‘우리 먹는 대로 차려줄 테니 먹으려면 앉으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받은 밥상이 ‘병어백반’이다. 싱싱한 병어를 선어로 썰어내고 흰쌀밥에 된장국과 반찬이 더해졋다. 밥을 상추에 얹고 병어 한 점 된장을 올리고 고추를 넣고 입안에 몰아넣으니 그 행복감이란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으로 여름에는 민어를, 가을에는 젓갈이나 꽃게를 주문했다. 이것만 아니다. 중매인인 남편에게도 수시로 전화를 해서 서남해의 바다 사정과 시세를 묻곤 한다. 필자가 얻은 바다의 지식이나 삶의 지혜는 대부분 이렇게 얻은 것이다. 아마도 손암도 흑산도와 우이도에서 이렇게 공부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 인연으로 철철이 나는 생선의 값이나 물때에 맞춰 가격이 다르기에 구입하시 좋은 때가 되면 알려주신다.
*병어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병어는 투명한 색으로 그물코를 만든 자망 그물로 잡는다. 이런 그물을 닻자망이라 한다. 바닷물이 흐르는 길목에 수직으로 세워 드는 물과 나는 물에 두 번씩 그물을 턴다. 그러니까 병어철이면 하루에 네 번 쪽잠을 자며 병어그물을 털어야 한다. 병어는 남쪽에 머물다 봄이면 풀등(모래밭)으로 산란을 위해 이동한다. 모래와 펄이 섞인 갯벌은 산란을 하기 좋지만, 병어가 좋아하는 새우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곳이 임자도를 포함한 칠산어장과 인천 섬 주변이다. 바람이 많이 불어야 병어가 잡힌다. 병어가 잡히면 다른 고기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30여년 전만 해도 세상에 흔한 생선이 병어였다. 팔기 보다는 토박이들이 즐겨 먹었던 생선이었다. 서울에서 병어회는 전라도에서 올라간 사람들이 먹었다. 임자도에서 하우리 선착장에서 병어그물을 손질하던 주민에 따르면 요즘은 그때에 어획량의 1/10도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허새에서 많이 나온디. 하루에 많이 잡을 때는 20, 30짝을 잡아라’라며 그물코를 손질하며 허사도 쪽을 가르켰다. 임자도 서쪽에 있는 작은 섬 ‘허사도’를 말한다. 어획량은 크게 줄었지만 먹고 싶어하는 사람은 늘었다. 심지어 중국에서도 신안 병어를 수입해가다 보니 값은 물때와 관계없이 늘 비싸다.여름 생선인 민어가 비싸서 병어가 선어로 큰 인기를 얻었지만 이젠 병어값도 민어 못지 않게 비싸다. 지난 30년 사이에 몸값이 가장 많이 오른 생선이다. 병어는 나무상자에 들어가는 마릿수에 따라 크기를 가늠한다. 보통 20미, 30미, 40미로 구분한다. 20미나 30미는 구이나 찜으로 좋고, 40미는 막 썰어 먹기 좋다. 40미의 크기는 20미에 비해 뼈가 부드럽다. 좋은 병어는 겉으로 볼 때 윤기가 있고 눈이 맑고 깨끗하고 살이 단단하다. 아주 작은 병어는 ‘자랭이’라고 하는데 젓갈이나 튀김으로 이용한다. 병어를 가장 많이 먹는 방법은 선어를 뼈째로 썰어 먹는 것이다. 큰 병어는 포를 뜨기도 하지만 병어 뼈는 무르고, 선어로 숙성되면 더욱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전라도에서는 다른 생선도 마찬가지지만 병어는 반드시 막된장이나 양념된장을 얹어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 채소를 곁들일 때는 상추보다는 깻잎이 좋다. 깻잎의 향과 병어의 기름진 고소함이 조화롭다. 몇 차례 먹다가 물리면 따뜻한 밥 위에 얹어 깻잎에 말아 먹어도 좋다.
글쓴이 김준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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