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의 재발견] 진도의 상장례 다시 읽기 02 게시기간 : 2023-05-19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3-05-15 14:43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민속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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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같은 나뭇가지’와 누이 죽고 사는 길이
여기 있으니 두려워하고 그대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낙엽처럼 같은 나뭇가지에서 나고 가는 곳 모두어지누나 아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는 길 닦으며 기다리리 -제망매가 전문- (기왕의 번역을 이윤선이 일부 수정함) 제망매가만큼 사랑받는 향가는 없을 것이다. 숱한 사람들이 애송하였고 숱한 연구자들이 해석하였다. 충담사의 찬기파랑가와 더불어 우리 문학의 정수라 아니할 수 없으니, 어떤 한두 가지 말로 온전히 형용할 수 있으며 어떤 한가지 이론만으로 해명할 수 있겠는가. 문구마다 해석이 다르고 글자마다 낱말을 달리 번역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함에도 제망매가를 거듭 말하려는 것은 논란을 부추켜 학문의 세계를 어지럽히려 함이 아니다. 허튼 꾀를 낸다고 나무라는 이들을 환영하며, 활발한 논쟁의 자리가 마련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삼국유사』 「월명사 도솔가」조의 내용이 대강 이러하다. 월명사가 「도솔가」조를 짓기 전에 죽은 누이를 위하여 사십구재(四十九齋)를 올리면서 「제망매가」를 지어 불렀다. 불교적으로 재(齋)이니 풀어 말하면 제(祭)이다. 제망매가(祭亡妹歌)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가 이것이다. 노래를 부르던 중이었던가 아니면 다 부르고 나서던가 갑자기 바람이 불어 지전(紙錢)이 서쪽으로 날아갔다. 이를 두고 여러 연구자가 말하기를 신비스런 주술의 현상이라 했다. 서쪽으로 날아간 것을 극락이나 중천(中千) 등의 이상적인 세계로 나아간 것으로 보고 어떤 신비스런 힘이 지전을 날게 하여 그 이면을 실천했다는 뜻일 것이다. 지전이 날아간 주요한 원인은 월명사가 지어 부른 「제망매가」라는 노래이다. 이 노래가 천도(薦度)에 대한 노래라는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듯하다. 월명사의 신이한 행적으로 이를 설명해왔다. “경덕왕 19년 사월 초하룻날에 두 해가 나타나서 열흘 동안이나 없어지지 않았다. 일관(日官)이 아뢰었다. 인연 있는 스님을 청해서 공양하며 공덕을 닦으면 재앙이 물러날 것이다. 조원전(朝元殿)에 단(壇)을 설치하고 인연 있는 스님을 기다렸다. 때마침 월명사가 밭 사이를 지나 남쪽 길로 가고 있었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불러오게 하고 단을 열어 기도문을 짓도록 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월명사는 항시 사천왕사에 머물러 지냈는데 피리를 잘 불었다. 어느 달밤에 피리를 불면서 대문 앞의 큰길을 지나치는데 달이 그를 위해 운행을 멈추었다. 이 인연으로 하여 그 길을 월명리(月明里)라 했고 그의 이름을 월명사라 했다.” 월명사는 예(羿)처럼 해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달의 운행을 중지시키기도 했다. 이런 영력이 있으니 누이의 죽음에 노래를 불러 극락왕생시키는 일은 예사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당장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퍼뜩 떠오르는 게 아니라 매우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풍경이다. 진도 혹은 남도 전역의 상장례 풍경이다. 나는 이 풍경에서 노래(呪文)와 지전(紙錢)과 길(道)을 핵심 코드로 뽑아내고 근자의 풍속으로 옮겨 설명한다. 할 이야기가 수두룩하므로 지전(紙錢) 이야기는 다음 차에 따로 풀어 쓴다. <신재홍, 『향가의 해석』, 집문당, 2000, 209~222쪽>의 논의에 의하면, “ᄒᆞᄃᆞᆫ 가자 나고/ 가논 곧 모다온뎌!”로 풀이한다. 신재홍은 이를 「<유리창>과 <제망매가>의 비교 고찰>」(독서연구, 제34호, 2015)에서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은 사방팔방이구나!”로 풀이했다. 기왕의 “한 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류의 해석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나는 이를 “같은 나뭇가지에서 나고/ 가는 곳 모두어지는데”로 고쳐 풀이한다. 바로 잇는 노랫말이 “아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는~”이라는 점에서 이 풀이가 유효하다. “(죽은 누이가) 가는 곳을 모르는 것”과 이어지는 “미타찰에서 만날 나”의 목적과 행방이 충돌한다는 점을 상기한다. 다음 행에 이미 서방정토인 미타찰(彌陀刹)이란 만날 장소가 적시되어있는데, 바로 앞 행에서 왜 가는 곳을 모른다고 풀이했을까? 신재홍이 인용한 “가는 곧 모다온뎌!”는 그런 점에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향가 원문을 향찰 방식으로 읽어보고 ‘모으다’의 남도말이 ‘모태다’인 것을 상고한다. 내 방식으로 풀어 말하면 “같은 나뭇가지에서 나고/ 가는 곳 모태지는데”이다. 그래야 사후에 이른다고 하는 불교적 천계의 설정이 유효하게 된다. 마치 우리 민족이 한뿌리라는 언설과 내통한다고나 할까. 죽은 너와 나는 같은 뿌리, 같은 가지에서 태어났으며 가는 곳이 미타찰이라는 목적지로 매양 한가지라는 고백이다. 하지만 무엇이 그리 바쁘길래 가을이 채 무르익기도 전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낙엽처럼 먼저 가버린단 말인가 하고 토로하고 있다. 또 하나는 ‘누이’의 설정이다. 이것이 형제간의 누이만을 말하는 것인가? 누이(妹)와 ‘한 가지’라는 형용 때문에 대부분 형제로 풀이하거나 근친의 은유로 풀이한다. 이 논의를 그대로 수용해야 할까? 박형준의 글 <「제망매가에 형상화된 ‘나뭇가지’ 이미지의 현대적 변용」(한국문예비평연구 제49집), 2016>을 참고한다. 기형도의 시편을 분석했다. 감당하기 벅찬 나날들은 이미 다 지나갔다.
그 긴 겨울을 견뎌낸 나뭇가지들은 봄빛이 닿는 곳마다 기다렸다는 듯 목을 분지르며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내 나이와는 거리가 먼 슬픔들을 나는 느낀다. 그리고 그 슬픔들은 내 몫이 아니어서 고통스럽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 -기형도, 「노인들」 전문(『기형도전집』, 문학과지성사, 1999) 기형도의 나뭇가지들은 제목에서 드러낸 것처럼 노인들 전반에 대한 형용이다. 박형준은 이를 ‘산나뭇가지’와 ‘죽은 나뭇가지’의 은유를 통해 죽은 누이의 서방정토 왕생을 형상화했다고 풀이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기형도의 다른 시에 나타나는 나뭇가지는 누이와 나와의 관계랄 수 있지만 「노인들」의 나뭇가지는 그렇지 않다. 제망매가의 가지와 견주니 사람의 갈래를 나타내는 기호라고 말해도 과하지 않다. 오히려 한용운의 ‘님’이나 수많은 시인이 노래한 ‘연인’에 가깝다. 내가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을 ‘누이’로 호명하는 것일 뿐이다. 손아래 동생, 나이 어린 동생, 누이(妹)의 호명 방식을 더 깊이 추적해야 한다. 기형도가 말하는 ‘목을 분지르며 떨어져 나간 나뭇가지’와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을, ‘죽은 자’와 ‘살아 있으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자’의 대칭으로 읽는 시선이 필요하다. 나의 사랑하던 그대 ‘누이’는 미처 가을이 깊기도 전에 ‘목을 분지르며 떨어져’ 나갔는데, 살아남은 나는 추악하게도 ‘부러지지 않고’ 연명하고 있다. 그러하니 어찌 애가(哀歌)와 비가(悲歌)를 불러주어 그대 내 사랑하는 이가 왕생극락하기를 주문(呪文)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형도는 비록 노인에 빗대었으나 제망매가에 다시 견줄 기회를 내게 제공해주었다. 장차 ‘누이’를 보통의 나이 어린 여자, 내가 죽도록 사랑했던 ‘그대’의 기호로 읽어낼 수 있게 해주었다. 「제망매가」는 적어도 이런 시선으로 읽어야 불교적 세계관도 해명할 수 있고 무엇보다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남도의 씻김굿, 그중에서도 길닦음 거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명할 수 있다.
2. 씻김굿의 길닦음 월명사는 미타찰에서의 재회를 기다리며 길(道)을 닦는다고 했다. 대개 연구자들은 원문의 머리맡에 노래한 길이 길(路)이고 뒤 끝에 노래한 길은 수련(修練)이나 종교적 도(道)라고 해석했다. 미타찰에서 만날 내가 닦는 신비스럽고 영적인 도닦음의 맹세 같은 것 말이다. 서쪽으로 날아간 지전의 풍경에서 엿볼 수 있듯이, 흰 베를 길게 늘어뜨리고 넋당삭 혹은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는 혼그릇을 그 위에 태워 길을 닦는 씻김굿의 의례는 「제망매가」의 재현이라 할 만큼 낯익다. 「제망매가」를 사회극으로 꾸며놓은 것은 아닐까? 씻김굿 중에 12개가 넘는 거리가 있는데 그 중 끄트머리에 설정한 의례가 바로 이 ‘길닦음’이다. 저승길을 깨끗이 닦는다는 의미가 가장 두드러진다. 그래서다. 흰 베를 길게 펼쳐 표면적으로 연출한 길(路)이 저승이나 극락에 이르는 길(road)만을 상징하는지 다시 생각을 모아봐야 한다. 동서남북 간데 마다
형제같이 화목할거나 오영방에 깊이 들어 형제투쟁을 마다하였네 여래연불(염불)로 길이나 닦세 남무야 남무여 냄무아미탈 길이나 닦세 여비 옥여갖춰 출사성연 뭉연대리 이프거던 자야수는 마호밭을 매로가세 끝없는 호무를 가지고 이리 매고 저리 매자 새왕극락으로 드러나 매자 -씻김굿 길닦음 거리 중에서- 위 노랫말에서는 형제의 사랑과 애증을 직설적으로 늘어놨다. 예컨대 죽은 누이와 살아 있는 나와의 관계나 다름없다. 한 가지에서 난 형제이고 서방정토라는 사후를 공유할 사랑하는 사람이다. 불교 용어와 고사성어가 구전되면서 대개 와음의 형태로 정착되거나 수시로 재구성되기는 했지만 이런 맥락은 길닦음 거리뿐 아니라 씻김굿 전반을 횡단한다. 사랑하는 사람이란 전제는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를 포괄한다.
길을 닦는 것은 극락왕생(새왕극락)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위해서다. 농사일에 비유하는 것은 길을 닦는 것뿐 아니라 어쩌면 잡초 무성할 어떤 공간을 매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호밭을 매기도 하고 끝없는 호미(호무)를 가지고 이리 매고 저리 매 나간다. ‘끝없는’ 호미는 ‘날카로운 호미끝’이라야 맬 수 있는 땅이 아니라 무딘 날로도 맬 수 있는 무형의 공간 곧 종교적 세계다. 왕생극락의 들이나(드러나) 매자는 청유도 그러하다. 노랫말의 용언(用言)과 행간을 살피면, 극락 혹은 씻김굿 전반을 관통하는 중천(中千)이 들판으로 묘사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월명사가 피리를 불며 지나가던 ‘대문 앞의 큰길’이고 이 길을 이름한 ‘월명리’이기도 하다. 죽은 너와 산 내가 궁극에 이르러야 할 목적지이기에 호미로 매고 물로 닦아 깨끗이 하는 것이다. 길놔라 배띄여라 새왕가자
배띄어라 극락가자 배놓아라 길매기는 어데 가고 배뜨는 줄 모르는가 사공은 어데가 배질할줄 모르는가 그 배 이름이 무엇인고 반야용선 분명코나 그 배 사공이 누이련가 인노왕 분명하오 팔보살이 호위하고 인노왕이 노를 젓어 장안바다 건너가서 김씨망제 신에성방 술법맏어 환생극락 가옵사네~ -씻김굿 길닦음 거리 중에서- 여기서 노래하는 길은 길(路)이 아니고 강(江) 혹은 바다(海)다. 길을 놓자고 노래해두고 다시 배를 띄우자고 노래한다. 왕생(새왕)이나 극락은 길(路)을 걸어서 갈 수도 있고 배(江/海)를 타고도 갈 수 있다. 길닦음 거리의 흰 베를 길베(질베)라고 부르는 것은 마치 물 위를 떠가는 배와 중첩되기도 해서 길배(路船)와 중의적이고 다의적이다. 뭍길(道路)이 물길이고 물길이 뭍길이다. 월명사의 ‘큰 길’이고 미타찰의 해후를 기다리며 닦는 길(道)이다. 흔히 길베를 하나 펼쳐두고 의례를 하는 것으로들 생각하지만 두 개의 길베를 한꺼번에 늘여두고 의례를 행한 사례들을 주목할 수 있어야 한다. 서방정토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 사랑하는 ‘그대’와 ‘나’의 사이에 놓인 두 개의 길이 있다.
3. 애인(愛人)을 향한 엘레지, 길닦음의 속내 엘레게이아, 그리스어로 시형(詩形)을 말한다. 피리를 반주 삼아 노래한 애도와 조위(弔慰)의 율격이었는데, 이것이 훗날 엘레지가 된다. 엘레지는 애가(哀歌)나 비가(悲歌)로 번역되지만, 훨씬 넓은 범주를 포괄하는 이름이다. 오히려 탄가(嘆歌)라고 해야 본뜻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개의 거시기를 말한다는 순 우리말 엘리지는 이 맥락과 다르므로 논외다. 이것은 얼레리 꼴레리와 엮어 나중에 따로 풀이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제망매가」는 조선의 엘레게이아요, 씻김굿의 길닦음은 조선의 엘레지다. 피리를 잘 불었던 월명사는 지금의 당골에 가깝다. 당골 중에서도 피리 젓대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화랭이’에 가깝다. 화랭이가 지금은 경상도 지역의 무당을 이르는 지역말로 남아 있지만 그 출처는 화랑(花郞)에 있다. 남도의 당골 또한 그 친연성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월명사는 해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달을 중지시키기도 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궁극에 만날 미타찰의 길을 닦아준다. 남도의 당골이나 경상도의 화랭이는 해나 달을 움직이는 것같지는 않지만, 길맞이(길매기)가 되기도 하고 사공이 도기도 하며 반야용선을 운행하는 인로왕이 되기도 한다. 이들의 인도에 따라 길을 걷고 다리를 건너고 배를 타고 건너는 그 어디쯤에 중천(中千)이 있다. 힌두교로 말하면 갠지스강 너머이고 기독교로 말하면 요단강 건너이다. 길을 걸어서 가는 곳은 피안(彼岸)의 언덕이요,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반야(般若)의 세계다. 그래서 종이로 오려 만든 넋(혼+백) 당삭(광주리)이야말로 반야용선(般若龍船)이 분명하다고 노래한다. 길매기나 사공은 그래서 인로왕(引路王)보살이다. 죽은 사람의 넋을 맞아 극락으로 인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랫동안 진도의 상장례를 통해 내가 주장해온 재생 관련 코드들이다(졸저, 『산자와 죽은자의 축제, 민속원). 얼마 전 김지하 1주기 생명 포럼에서 발표하면서 시김새와 흰그늘을 풀어 ‘다시나기’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꿔다가도 하는 지랄론, 갱번론, 물골론 등 십 수 개에 이르는 내 이론의 근거와 내력을 싸목싸목 풀어 쓴다.
장차 큰 화두를 밝힐 예정이지만, 씻김굿의 길닦음 절차는 향가 「제망매가」에 핍진(逼眞)한 의례이자 노래이며 신화적 결과물이다. 과연 천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월명사의 의례 맥락이 오늘날의 씻김굿의 길닦음 절차로 이어졌는지 의심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그 닮은꼴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데도 거론하지 않는 것은 연구자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내 풀이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마땅하지 않다면 논쟁하면 될 일이다. 씻김굿의 길닦음 의례가 가진 의미에 대해 상고할 것들이 수두룩하다. 그중 하나가 단지 저승에 가는 길을 깨끗하고 곱게 닦는다는 표면적 해석이다. 나는 이에 대해 줄곧 질문해왔다. 그것이 학문(學問)이라 여겨왔기 때문이다. 도를 닦는다는 것을 길 닦는 것과 애써 구분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행자승이 빗자루로 마당을 쓰는 일은 그저 길을 닦는 것이요, 면벽 수행 등의 고행이야말로 도닦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십우도(十牛圖) 중 마지막 그림은 소를 찾아 피리를 불던 목동이 소도 초월하고 나도 초월하여 마침내 저자거리에 스며드는 풍경이다. 왜 이 그림으로 깨달음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였겠는가. 도가 높은 분들은 산중에 앉아 면벽수행으로 일생을 마칠지 모르겠지만, 씻김굿의 당골과 별신굿의 화랭이들은 끊임없이 저자에 나앉아 미타찰의 오고 갈 길을 노래한다. 못다 한 사랑에 울고 이른 가을 낙엽처럼 떠난 ‘그대’를 노래하며 피리를 분다. 노랫말의 행간을 살피면, 먼 곳으로 좋은 곳으로 가시라는 염원 만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에서 더 고운 모습으로 탄생(往生, 還生)하라는 주문이 마치 마루 틈에 흩어져 박힌 쌀알처럼 촘촘하다. 길닦음은 가시는 님의 길에 뿌려진 진달래이며 다시 그 님이 즈려밟고 올 진달래이다. 씻김굿의 길닦음을 허투루 하지 않고 그 의미를 좀 더 내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우리 문학의 정수라고 일컫는 「제망매가」의 내력을 거울처럼 반영하거나 혹은 행간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으니 이를 도닦음이라 이르지 않으면 그 어떤 고상한 행위가 도닦음이란 말인가. 길닦음에는 두 가지의 행로가 있다. 하나는 빗자루로 마당을 쓰는 닦음이요 다른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왕생을 비는 닦음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한 길닦음은 곧 미타찰에서 만날 나의 길을 닦는 일이기도 하다. 앞에 말한 닦음이 단순히 마당 쓸기에 지나지 않고 뒤에 말한 닦음이 도(道)를 닦는 일이라 말할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모두 도(道)를 실천하는 행위라고 말해야 옳다. 이른 가을 무엇이 바빠 여기저기 흩어지는 낙엽처럼 그리도 총총 떠나셨나. 그대 내 사랑하는 이의 왕생(往生)을 주문하는 노래이자, 기형도의 고백처럼 ‘추악하게’ 이승에 남겨진 나를 다듬는 도(道)닦기이다. 길닦음의 길베가 두 개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현전하는 한 개의 길 베는 그 의미가 축소되었거나 아니면 하나의 길 베에 미타찰에 오고 가는 의미를 중첩해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오늘도 날 없이 무딘 호미와 허름한 피리 하나 들고 심중의 마당을 쓸고 맨다. 오뉴월 마당에 잡초가 지천이다.
글쓴이 이윤선 진도학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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