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보] 호남누정원림 - 전남 (15) 나주 기오정
벌써 11월이다. 새달이 시작된 지 사나흘이 흘렀다. 올해도 두어 달 남짓 남았다. 옛 어르신들은 이맘때면 “세월 참 빠르다”고 했다.
세월만 빠른 것이랴. 세상의 변화도 빠르고 삶의 양태도 급변한다. 무엇이든 절정은 순간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소소하기는 나이 먹고 흰머리 늘어나는 것도 예전과 비교가 안 된다. 무엇인가 변하고 있다고 감지하는 순간, 변화는 이미 삶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기 마련이다.
이제 시간은 화살처럼 흘러갈 것이다. 반환점을 돌고 나면, 왔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법이다. 아니 밀려갈 것이다. 올해 남은 날들은 지금과는 다른 빠르기로 저편으로 내달릴 것이다. 밀리고 흘러 시간이 도달할 궁극은 어디인가.
올해 마지막 누정을 찾아가는 길이다. 간밤에 내린 비로 다소 쌀쌀한 기운이 느껴진다. 가을은 고운님 떠나듯 이편의 마음만 설레게 하다 사라질 것이다. 온전히 느낄 새도 없이 떠나버릴 가을이 얄밉기만 한 것이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다녔던 누정들이 하나 둘 스쳐 지나간다. 고려 망국의 설움이 깃든 독수정, 배롱나무 군락에 물소리 그윽한 명옥헌, 조선 대학자 하서의 학문과 충절이 깃든 백화정, 벗을 잃은 울분을 달래고자 선비들이 찾았던 영벽정 등 저마다 정자에는 역사와 사연이 깃들어 있었다.
지나왔던 누정들을 떠올리며 나주 다시로 달린다. 추수가 끝난 다시 들녘은 평화롭다. 침묵 같은 적막이 늦가을 들녘 위로 내린다. 한때는 황금빛으로 물들던 풍요의 들판은 이제 곧 동면의 시간 속으로 흘러들 것이다. 11월의 쓸쓸함은 마지막 남은 12월이라는 한 장의 달력에서 연유한다. 마지막 남은 잎새의 이미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오늘 행선지는 나주 기오정(寄傲亭). 다시면 회진리 동촌마을에 자리한 기오정은 반남 박씨 박세해가 55세 되던 1669년(현종10) 건립한 것으로 돼 있다. 전남도 문화재자료 제266호로 지정돼 있다.
정내 설치된 안내판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박세해는 1615년(광해군 7) 첨지중추부사 박호(남평현감 역임)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4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23세 때 불행하게 중병을 얻어 벼슬길에 나아갈 수 없어 세거지인 양주를 떠나 요양 차 나주 회진으로 이주하여 정자를 짓고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정자는 반남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정자의 명칭이 예사롭지 않다. 필시 정명의 사연이 있을 터였다. ‘기오’(寄傲)는 세속을 떠나 자유롭게 펼치는 기운을 말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출처로 본다. “倚南窓以寄傲(의남창이기오), 審容膝之易安(심용슬지이안)” 즉 ‘남쪽 창에 기대어 흐드러져 있으니 무릎 하나 들어갈 작은 집일망정 편안하지 않겠는가’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이곳에 있으면 한자락 근심 걱정은 들어설 틈이 없을 것 같다. 들려오는 건 바람 소리 물소리뿐이다. 이따금씩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과 구름 지나는 가벼운 사르락 소리만 밀려온다.
누정 앞으로는 영산강이 흐른다. 실팍하지 않고 몸피가 불은 강물이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운치가 느껴진다. 혹여 안개라도 내리면 운산에 자욱한 물안개로 정취를 더할 것 같다. 방문한 문사들이 시문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정내 현판은 이광사의 친필로 전해진다. 조선 후기 서예가로 시·서·화에 능했다. 독특한 서체인 원교체를 창안했으며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글씨에 힘이 있고 다소 비스듬한 글씨가 저편 흘러가는 강물의 이미지를 닮았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경지를 품고 있다.
정자는 여느 곳과 달리 석축 위에 살포시 얹힌 형국이다. 적당한 높이의 석축은 건물을 위엄있게 보이게 한다. 정면 4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 형태다. 서쪽 2칸은 마루로, 동쪽 2칸은 방과 툇마루로 돼 있다. 석축에서 바라보면 저편의 영산강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옛적 주인장은 강을 굽어보며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무심의 경지를 다짐했을 것이다.
“4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23세 때 불행하게 중병”이 든 박세해가 은거지로 이곳을 택한 이유가 가늠이 된다. 영산강과 벗한 야트막한 산자락에 얹힌 정자는 결코 폐쇄적인 이미지는 아니다. 강호의 맑은 풍경을 사시사철 볼 수 있는 구조다. 시를 짓고, 선비들과 교유하며, 후학을 양성했을 것이다.
문헌에 따르면 현재 정자는 1745년, 1934년경, 1981년경에 중수했다. 정내에는 모두 13개 현판이 있는데 중수기문 4편을 비롯해 ‘중뢰연’이라는 연회와 관련된 편액이 9개가 그것이다.
1745년 후손 박사신(朴師莘)이 쓴 ‘기오정중수기’(寄傲亭重修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돼 있다.
“1669년 영산강 상류 동촌에 그의 내사를 건립하고 그 후 1670년 내사의 서편에 10칸에 이르는 외사를 지어 ‘기오’라는 명칭을 붙였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있는 ‘남창기오’(南窓寄傲)’라는 글귀의 줄임말이다. 속세를 떠나 강호의 경치를 감상하며 즐긴다는 의미를 담은 명칭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박사신은 정자의 중건을 선조에 대한 자신의 도리로 생각했다. 10여 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중수를 했다고 한다. 다음은 중수기 말미에 첨부된 시다.
“강변에 대대로 기거한지 얼마이던가/ 회상해보니 전성했던 그 뜻이 처연하구나/ 당시의 중뢰연은 보기 좋은 경사였으며/ 과거급제 영탄까지 누대로 전하였네/ 건립했던 옛적의 정자를 새로 고치니/ 옛 섬돌 늙은 소나무는 다시 푸르네/ 짓는 책임 무거워 마음이 괴로운 것은/ 선조 계승에 능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지”시의 ‘중뢰연’은 회혼연을 말한다. 혼인한 지 60주년을 맞아 벌이는 연회를 말한다. 젊은 시절 몸이 아팠던 박세해가 결혼 후 회혼연을 맞이했다는 것은 건강의 회복을 넘어 다복했음을 보여준다. 강호의 정취가 베푼 은전이 아닐지.정자의 옆에는 흰색의 ‘기오정박공유허비’(寄傲亭朴公遺墟碑)가 있다. 박세해 행적, 기오정의 건립 내력 등이 기록돼 있다. 바탕이 흰색이라 멀리서도 눈에 띈다.
정자를 둘러보다 말고 저 멀리 흘러가는 강물을 본다. 옛 사람의 심상을 가늠해본다. 흐르는 것이 비단 강물뿐이랴. 이맘때면 지나쳐왔던 것, 흘려보냈던 것을 생각하게 된다. 탐욕과 아귀 다툼이 일상으로 일어나는 세상이다.
권세와 탐욕의 시간은 달콤함에 드리워진 치명적인 독을 간과하게 만든다. 그러나 강물이 전하는 것은 부질없음이며 덧없음이다. 허공을 선회하며 날아가는 새가 그렇게 말하여 준다. <끝>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세월만 빠른 것이랴. 세상의 변화도 빠르고 삶의 양태도 급변한다. 무엇이든 절정은 순간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소소하기는 나이 먹고 흰머리 늘어나는 것도 예전과 비교가 안 된다. 무엇인가 변하고 있다고 감지하는 순간, 변화는 이미 삶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기 마련이다.
이제 시간은 화살처럼 흘러갈 것이다. 반환점을 돌고 나면, 왔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법이다. 아니 밀려갈 것이다. 올해 남은 날들은 지금과는 다른 빠르기로 저편으로 내달릴 것이다. 밀리고 흘러 시간이 도달할 궁극은 어디인가.
올해 마지막 누정을 찾아가는 길이다. 간밤에 내린 비로 다소 쌀쌀한 기운이 느껴진다. 가을은 고운님 떠나듯 이편의 마음만 설레게 하다 사라질 것이다. 온전히 느낄 새도 없이 떠나버릴 가을이 얄밉기만 한 것이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다녔던 누정들이 하나 둘 스쳐 지나간다. 고려 망국의 설움이 깃든 독수정, 배롱나무 군락에 물소리 그윽한 명옥헌, 조선 대학자 하서의 학문과 충절이 깃든 백화정, 벗을 잃은 울분을 달래고자 선비들이 찾았던 영벽정 등 저마다 정자에는 역사와 사연이 깃들어 있었다.
지나왔던 누정들을 떠올리며 나주 다시로 달린다. 추수가 끝난 다시 들녘은 평화롭다. 침묵 같은 적막이 늦가을 들녘 위로 내린다. 한때는 황금빛으로 물들던 풍요의 들판은 이제 곧 동면의 시간 속으로 흘러들 것이다. 11월의 쓸쓸함은 마지막 남은 12월이라는 한 장의 달력에서 연유한다. 마지막 남은 잎새의 이미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오늘 행선지는 나주 기오정(寄傲亭). 다시면 회진리 동촌마을에 자리한 기오정은 반남 박씨 박세해가 55세 되던 1669년(현종10) 건립한 것으로 돼 있다. 전남도 문화재자료 제266호로 지정돼 있다.
정내 설치된 안내판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박세해는 1615년(광해군 7) 첨지중추부사 박호(남평현감 역임)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4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23세 때 불행하게 중병을 얻어 벼슬길에 나아갈 수 없어 세거지인 양주를 떠나 요양 차 나주 회진으로 이주하여 정자를 짓고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정자는 반남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정자의 명칭이 예사롭지 않다. 필시 정명의 사연이 있을 터였다. ‘기오’(寄傲)는 세속을 떠나 자유롭게 펼치는 기운을 말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출처로 본다. “倚南窓以寄傲(의남창이기오), 審容膝之易安(심용슬지이안)” 즉 ‘남쪽 창에 기대어 흐드러져 있으니 무릎 하나 들어갈 작은 집일망정 편안하지 않겠는가’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이곳에 있으면 한자락 근심 걱정은 들어설 틈이 없을 것 같다. 들려오는 건 바람 소리 물소리뿐이다. 이따금씩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과 구름 지나는 가벼운 사르락 소리만 밀려온다.
누정 앞으로는 영산강이 흐른다. 실팍하지 않고 몸피가 불은 강물이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운치가 느껴진다. 혹여 안개라도 내리면 운산에 자욱한 물안개로 정취를 더할 것 같다. 방문한 문사들이 시문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정내 현판은 이광사의 친필로 전해진다. 조선 후기 서예가로 시·서·화에 능했다. 독특한 서체인 원교체를 창안했으며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글씨에 힘이 있고 다소 비스듬한 글씨가 저편 흘러가는 강물의 이미지를 닮았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경지를 품고 있다.
정자는 여느 곳과 달리 석축 위에 살포시 얹힌 형국이다. 적당한 높이의 석축은 건물을 위엄있게 보이게 한다. 정면 4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 형태다. 서쪽 2칸은 마루로, 동쪽 2칸은 방과 툇마루로 돼 있다. 석축에서 바라보면 저편의 영산강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옛적 주인장은 강을 굽어보며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무심의 경지를 다짐했을 것이다.
“4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23세 때 불행하게 중병”이 든 박세해가 은거지로 이곳을 택한 이유가 가늠이 된다. 영산강과 벗한 야트막한 산자락에 얹힌 정자는 결코 폐쇄적인 이미지는 아니다. 강호의 맑은 풍경을 사시사철 볼 수 있는 구조다. 시를 짓고, 선비들과 교유하며, 후학을 양성했을 것이다.
문헌에 따르면 현재 정자는 1745년, 1934년경, 1981년경에 중수했다. 정내에는 모두 13개 현판이 있는데 중수기문 4편을 비롯해 ‘중뢰연’이라는 연회와 관련된 편액이 9개가 그것이다.
1745년 후손 박사신(朴師莘)이 쓴 ‘기오정중수기’(寄傲亭重修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돼 있다.
“1669년 영산강 상류 동촌에 그의 내사를 건립하고 그 후 1670년 내사의 서편에 10칸에 이르는 외사를 지어 ‘기오’라는 명칭을 붙였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있는 ‘남창기오’(南窓寄傲)’라는 글귀의 줄임말이다. 속세를 떠나 강호의 경치를 감상하며 즐긴다는 의미를 담은 명칭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박사신은 정자의 중건을 선조에 대한 자신의 도리로 생각했다. 10여 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중수를 했다고 한다. 다음은 중수기 말미에 첨부된 시다.
“강변에 대대로 기거한지 얼마이던가/ 회상해보니 전성했던 그 뜻이 처연하구나/ 당시의 중뢰연은 보기 좋은 경사였으며/ 과거급제 영탄까지 누대로 전하였네/ 건립했던 옛적의 정자를 새로 고치니/ 옛 섬돌 늙은 소나무는 다시 푸르네/ 짓는 책임 무거워 마음이 괴로운 것은/ 선조 계승에 능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지”시의 ‘중뢰연’은 회혼연을 말한다. 혼인한 지 60주년을 맞아 벌이는 연회를 말한다. 젊은 시절 몸이 아팠던 박세해가 결혼 후 회혼연을 맞이했다는 것은 건강의 회복을 넘어 다복했음을 보여준다. 강호의 정취가 베푼 은전이 아닐지.정자의 옆에는 흰색의 ‘기오정박공유허비’(寄傲亭朴公遺墟碑)가 있다. 박세해 행적, 기오정의 건립 내력 등이 기록돼 있다. 바탕이 흰색이라 멀리서도 눈에 띈다.
정자를 둘러보다 말고 저 멀리 흘러가는 강물을 본다. 옛 사람의 심상을 가늠해본다. 흐르는 것이 비단 강물뿐이랴. 이맘때면 지나쳐왔던 것, 흘려보냈던 것을 생각하게 된다. 탐욕과 아귀 다툼이 일상으로 일어나는 세상이다.
권세와 탐욕의 시간은 달콤함에 드리워진 치명적인 독을 간과하게 만든다. 그러나 강물이 전하는 것은 부질없음이며 덧없음이다. 허공을 선회하며 날아가는 새가 그렇게 말하여 준다. <끝>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