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His Story >"고향집에 묵혀있는 옛서책, 값나가지 않는다고 버릴 권리 없다"
- 첨부파일 20180110112026983hotl.jpg (275.89 KB) 미리보기 다운로드
이종범 한국학 호남진흥원 원장이 지난 8일 개인 서재가 있는 광주 동구 산수동의 한 아파트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나와 인근 주택 담벼락에 쓰인 시 ‘무등산’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이 원장은 “이 시는 광주시민들이 해맞이 등을 할 때 자주 읊는 시”라며 “시를 쓴 김규동(1925∼2011) 시인은 생명과 자유정신을 포기하지 않고 올곧게 살았던 분”이라고 소개했다. 광주=신창섭 기자 bluesky@
이종범 한국학 호남진흥원 초대 원장
호남지역 한국학 기록문화
고문서 등 100만점 이상 추정
문헌독해능력 갖춘 연구직 임용
학술행정 새 모범 세우고 싶어
3년과정 한학연수원 과정 운영
차세대 ‘한국학 연구자’ 양성
전통 재발견·法古創新 학술로
새로운 시대 문화 마중물 될터
‘개인이나 문중, 기관들이 소장 중인 호남지역의 옛 책·문서·문집 등이 멸실·훼손 위기에 있는 만큼 하루바삐 수집·보존·연구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이런 지적이 호남지역에서 강도 높게 제기된 것이 지난 2007년쯤이다. 그러나 전남도청 이전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 등 대형 현안에 밀려 추진속도는 다소 더뎠다. 우여곡절 끝에 2014년 10월 광주시와 전남도가 상생 과제로 채택한 재단법인 한국학 호남진흥원 설립이 지난해 말 매듭지어지면서 지역의 숙원이 비로소 ‘동력’을 얻었다. 한국학 호남진흥원 초대 원장으로 지난해 12월 임명돼 오는 3월 개원 준비를 위해 바삐 뛰고 있는 이종범(65) 전 조선대 사학과 교수로부터 진흥원의 역할과 운영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업무 공간이 마련될 광주 광산구 옛 광주발전연구원 건물은 현재 리모델링 중이어서 이 원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8일 그의 개인 서재가 있는 광주 동구 산수동의 한 아파트에서 진행됐다.
평생을 역사 연구에 몰두해온 이 원장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자기 전통을 무시하면 내부의 힘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며 “한국학 호남진흥원은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의 학술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꿈꾸게 하는 ‘문화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이 서재로 쓰는 아파트에 들어서니 현관 옆에 ‘景陽齋(경양재)’라는 목판 편액이 걸려 있었다. 관심을 보이자 이 원장의 설명이 이어진다.
“지금은 작고하고 안 계신, 친구의 어머니가 써주신 휘호를 가지고 만들었습니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계림동)에 1960년대 말 완전히 매립된 인공호수 ‘경양호’가 있었는데, ‘경양’이라는 말은 그 호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직역하면 ‘햇빛을 우러러본다’는 뜻으로, 밝은 세상에 대한 염원이 들어 있습니다.”
이 원장은 당초 오는 8월 말 조선대에서 정년퇴직한 후 공부할 장소로 삼기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 서재를 꾸며왔다고 한다. 거실과 방들의 벽면에는 500여 권에 달하는 ‘한국문집총간’을 비롯해 하서집, 불교전서 영인본 등 한국학 관련 서적과 자료 수천 권이 빼곡히 차 있었다. 그는 지난해 12월 임기 3년의 호남진흥원장으로 임명되자마자 명예퇴직을 신청해 조선대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한국학 호남진흥원은 어떤 일을 하는 기관인지를 먼저 물었다.
“크게 세 가지입니다. 호남 지역의 한국학 기록문화유산의 발굴·보존 연구를 하고, 호남 지역 한국학 연구 활성화를 위한 지원, 그리고 차세대 한국학 연구자 양성을 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호남 지역 한국학 연구 진흥의 허브(Hub)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진흥원의 조직과 인력, 시설물은 어떤 규모로 갖추게 됩니까. 정식 개원은 언제 합니까.
“초창기 원내 연구인력은 9명입니다. 행정·관리직까지 합치면 원장을 제외하고 모두 17명입니다. 연구 인력은 전통 문집 및 고문서를 전공한 사상 문화사, 생활사, 사회사 분야 연구자들로 채워집니다. 행정·관리직은 1월 말, 연구직은 2월 말에 선발될 예정입니다. 옛 광주발전연구원에 리모델링 중인 사무실도 1월 중순이면 입주가 가능합니다. 수장고 등 공간은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지만, 중장기 청사진을 수립해 확보하겠습니다. 3월 중에는 한국학 학술대회를 개최해서 정식 개원을 알릴 것입니다.”
―진흥원 설립까지 다소 많은 시일이 소요된 듯합니다.
“경북 안동에서 한국국학진흥원이 출범한 직후인 1996년쯤 학계 전문가들 사이에 호남의 기록문화유산 보존에 관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광주시와 전남도가 관심을 보였지만 도청 이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 현안에 묻혔습니다. 참여정부 들어 산발적 건의가 있다가 급기야 민간추진체가 결성됐고, 호남권 교수·연구자의 집단 건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산 마련과 공간 확보를 위해서는 지방정부가 나서야 하는데, 광주시와 전남도가 어떻게 힘을 합할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하다가 2014년 하반기에 윤장현 시장과 현 국무총리인 이낙연 전 지사가 광주·전남 상생 과제로 합의하면서 급물살을 탔습니다. 전북도에 동참을 제의했으나 허락을 얻어내지 못한 과정에서 1년이 경과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광주시와 전남도가 출연해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광주발전연구원과 전남발전연구원을 통합한 광주전남연구원이 나주 빛가람혁신도시로 가고, 한국학 호남진흥원은 옛 광주발전연구원에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호남에서 수집·보존해야 할 자료는 어느 정도이며, 조사된 적이 있나요.
“전적 10만여 종, 고문서 27만여 점, 기타 목판·서화 등을 합쳐서 100만 점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실수 조사가 된 적이 없기에 종합 목록이 없습니다. 개인·문중·대학 도서관 등에 산재돼 있고, 아직 공개되지 않은 문서와 전적이 많습니다. 고려 중기 불교개혁 운동 이래 한국 불교에서 그 비중과 역할이 남달랐던 호남의 불교 문헌은 거의 사장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수집·보존이 시급한 대표적 자료를 예로 들면.
“해남 녹우당, 구례 운조루, 영암 남평 문씨, 영광 영성 신씨, 남원·구례 삭녕 최씨 등 집안에 고문서가 다량 소장돼 있습니다. 타 지역과 비교해보아도 결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수준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장성의 행주 기씨 집안에는 그동안 일부 조사된 것만 해도 간찰 등 3000점이 훨씬 넘습니다. 보성의 죽산 안씨 집안에도 간찰·일기·상서·통문·소지(소송 서류) 등 다양한 고문서가 있습니다. 이들은 교수나 전문연구자가 관심을 갖고 추적하면서 찾아낸 것으로, 연구자의 견문에 들어오지 않은 문헌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상당량이 역외 유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원장은 이 대목에서 “우리 고향 집 한쪽에 묵혀 있는 이들 기록유산을 값이 나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버릴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며 “후손들에게 기록 보존의 짐까지 지워서는 안 되기에 영구임차(수탁) 등의 방법으로 수집·보존하는 일을 호남진흥원이 하려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호남진흥원은 고문서·전적을 대대적으로 조사해 그 성과를 ‘한국학호남자료총서’(가칭)로 묶어내려 한다”며 “영인(影印)한 자료에 표점을 찍어 읽기 쉽고 해석에 도움을 주도록 만든 ‘표점 영인 한국근대문집총서’와 중요 문헌을 한글로 번역한 ‘호남권 문집 국역 총서’도 발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지역 유사 기관에 비해 후발주자로서 각오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호남진흥원은 한국학중앙연구원(경기 성남), 한국국학진흥원(경북 안동)의 경험과 성과를 배울 것입니다. 후발 기관이라는 이유로 우리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엄격한 조사 연구, 지원이라는 본령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선 공동학술회의 개최 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보여주기식 성과에 집착하지 않겠지만, 기본 연구성과를 대중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전시·교육 프로그램을 놓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국립광주박물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문화재단, 전라남도문화관광재단, 각급 박물관·미술관·평생교육원 등과 협력하고 공조하겠습니다.”
―진흥원을 운영하면서 특별히 중점을 둘 사항은 무엇입니까.
“전국적 수준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연구역량, 문헌 독해 능력을 갖춘 연구직을 임용 초빙함으로써 ‘현능(賢能)한 인재들이 조화를 이루는 한국학 호남진흥원’이라는 신뢰를 쌓도록 하겠습니다. 또 학술행정의 새로운 모범을 세우고 싶습니다. 이야말로 뒤늦은 출발을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만드는 길이며, 선행 기관과의 협력 연대의 조건이 될 것입니다.”
―한국학 연구 활성화 지원은 어떤 방식으로 하게 됩니까.
“몇몇 종합대학에는 한국학 연구기관이 있어도 예산이 부족합니다. 또 개인 연구자 중에는 실력 있는 분이 많지만 맡은 연구과제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에게 과제를 위탁하면 한국학 분야 연구가 활성화될 것입니다. 호남진흥원이 초기에 자리를 잡는 데 핵심 관건은 대학, 개인 연구자들과 어느 정도 협력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내 정식 연구원은 9명이지만, 실력 있는 분들을 객원 연구원으로 모실 계획입니다. 전북지역 연구자들도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지원을 통해서 한국학에 뜻을 둔 후속 세대의 공부 분위기가 살아났으면 합니다.”
―차세대 한국학 연구자 양성 부문에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실 계획인지요.
“올해부터 3년 과정의 한학 연수원(가칭)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직장인들이 다닐 수 있게 야간에만 운영합니다. 전 과정을 이수하면 옛글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한학연수원을 마친 후 더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한국고전번역원이 앞으로 개설할 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면 되겠지요.”
―국민, 특히 호남인들에게 더 하고 싶은 말씀은.
“프랑스혁명이 계몽주의 백과사전파의 활동에 힘입었듯이 학술사업·운동이 시대와 역사를 바꾼 사례는 많습니다. 비근한 예로 20세기 ‘팍스 아메리카나’는 유럽 지성의 미국 이주 집결 그리고 연방 및 주 정부의 지원이라는 사실을 빼놓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구상도 전통문화·사상에 대한 학술사업과 궤를 같이합니다. 어느 시대 어떠한 나라에서도 전통을 무시하고 외부의 시선 개념에 의존해서는 주체적 성찰이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내부의 자발적 동력을 이끌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따라서 호남진흥원은 전통의 재발견과 법고창신의 학술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소망하게 하는 ‘문화 마중물’이 되고자 합니다. 앞으로 호남진흥원이 여러 기관과 함께 진행할 프로그램에 많이 참여해 주시길 바랍니다.”
인터뷰 = 정우천 부장(전국부) sunshin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