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서와 옛편지] 개인별 맞춤 연하장을 게시기간 : 2022-11-30 17:00부터 2030-12-17 21:21까지 등록일 : 2022-11-30 10:44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고문서와 옛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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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해에는 날로 새로워지기를 새해가 벌써 열흘이나 지났네. 당연히 소식이 있을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지금 종이 가득히 써서 나를 일깨워주고 도소주(屠蘇酒) 또한 지극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어진 자네가 아니면 어떻게 이것들을 얻을 수 있겠나. 더구나 지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때에 날마다 학문에 더 힘을 쓴다니 매우 다행일세. 나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으니 달리 할 말이 있겠나. 차근차근 깨우쳐주는 자네의 뜻은 이치가 있고 옛 사람의 풍도가 있으니 요즘 세상에서 어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겠나. 졸렬한 내가 자네 앞에서 옷깃을 여미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네. …(중략)…이리저리 생각해봐도 날로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지면서 나이가 부족하다는 것을 잊고 사는 일은 아우의 일일세. 내 일은 다만 사탕을 입에 물고 손자들의 재롱을 보고, 흐려진 눈으로 꽃이나 보면서 남은 생애를 보내는 것일세. 그 일의 높고 낮음이 서로 같지 않으니 각각 그 즐거움이 없이 않을걸세.
이제 곧 한 해의 끄트머리, 연말이 된다. 한 해 끝 뒤에는 새로운 해의 첫 머리, 연시(年始)가 잇닿아 있다, 둘을 합쳐 연말연시(年末年始)라고 한다. 이때가 되면 많은 이들의 마음이 바빠진다. 막 끝나가려는 해를 되돌아보고 한편으로 다가오고 있는 새해에 무엇을 할지 계획한다. 한 해 동안 만나고, 대화하고, 마음을 주고 받았던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인사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는 일도 이 즈음에 하는 일 중 하나이다. 가는 해를 함께 아쉬워하면서 새해에 모두 함께 복을 받고 좋은 일만 있기를 마음 속으로 빈다. 그 마음을 곡진하게 전한다. 위 편지는 기정진(奇正鎭, 1798년~1879년)이 재종동생인 기익진(奇益鎭, 1801~1856)에게 보낸 편지이다. 새해를 맞이하며 기익진은 재종형님에게 새해 인사와 도소주(屠蘇酒)를 보냈다. 아마 그 편지에는 형님인 기정진이 학문을 일삼는 삶과 그 학문이 날로 진보하는 데 대한 찬탄도 들어 있었을 것이다. 연말연시인만큼 새해를 맞이하며 형님의 건강과 학문의 발전을 기원하는 마음도 담았을 터이다. 기정진은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자신을 일깨워주어 감사하다고 했다. 또 도소주를 준 그 마음도 헤아렸다. 설날 아침에 술을 마시면 사악한 기운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여 새해 첫날에 술을 마시기도 했다. 기익진은 형님에게서 나쁜 기운들이 떨어져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도소주에 담았다. 평범한 술이 아니라 형님의 강건함과 장수를 바라는 동생의 마음이다. 기정진은 그래서 ‘지극한 마음’에서 나왔다고 고마워했다. 이렇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새해를 맞이하는 동생에게 신년 축하말을 건넨다. 해가 바뀌는 중에도 열심히 학문에 열중하는 일을 칭찬하고, 이런 마음을 더 굳게 먹고 잘 실천하라고 당부한다. 그래서 ‘날로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지기’를 기원한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노력을 더하고 더해 지난 해보다 새해에 학문 수준이 더 높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기익진은 30대에 생원시에 합격했다. 기정진이 편지에서 ‘손자들의 재롱이나 보면서’라고 말한 것을 생각하면 적어도 이 편지는 50대가 넘어서 쓴 것으로 보인다. 기정익의 나이도 이와 비슷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정진은 동생이 학문을 계속하여 더 높은 수준에 이르기를 기원하였다. 新年已過一旬 此際固知當/有便信 而若惠以好音 則未敢必也/今乃有此滿紙勤喩 屠蘇一斗 又/ 出情念 非吾賢從 何以得此 感復/以過 老眼頓明 況審餞迓之交/ 學履日懋 尤慰尤慰 從 尙保形骸 他/無可言者 見喩縷縷 備悉雅意 此/ 是理到之論 古人之風 今世豈聞此語/老拙尋常所以爲賢弟斂袵者 固/在於此 而賢弟揣我志氣 看我精/力 果可以自力於古紙堆中乎 知其/必不能爲 而姑且爲此兩箇話頭 被之/於奄奄欲盡之人 則無乃太不着題/乎 念玆釋玆 日新又新 不知年數/之不足者 吾弟之事也 含飴弄孫 霧/中看花 以送桑楡之殘年者 吾之事/也 所業之高低 固不同 而未嘗不各有/其樂 賢弟以爲如何 이미지출처 : 한국학자료센터 호남권역http://hnkostma.org/emuseum 기정진이 쓴 새해맞이 축하글은 이랬다. 답장이지만 상대방이 그 동안 해준 일에 대해 고마워하며 상대방의 건강과 발전을 기원하는 마음을 곡진하게 담았다. 해가 저물어가니 그리운 마음이 몇 배로 더 간절합니다. 어느 산에서 어떤 글을 읽으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아마도 새로운 것을 얻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듣지 못하는 게 한스럽습니다. 저는 작년처럼 성묘하며 보내려합니다만, 마침 미천한 제 이름이 사람들 사이에 오르내려 감히 서울행을 하지 못하니 마음이 서글프기만 합니다. 바쁜 중에 쓰느라 이만 줄입니다만, 아모쪼록 새해에도 날마다 덕망과 학문이 새로워지기를 기원합니다.
새해를 맞으며 임영(林泳, 1666~1693)이 쓴 편지이다. 임영은 나주사람으로 호는 창계(滄溪)이며 자는 덕함(德涵)이다. 임일유(林一儒)와 조씨 곧 조석형(趙錫馨)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단상(李端相)과 박세채(朴世采)를 사사했고 전라도관찰사, 개성부유수 등을 지냈다. 관직 생활을 하면서 이희조(李喜朝), 김창협(金昌協), 최석정(崔錫鼎) 등과 친하게 지냈다. 40대 초반에는 잠시 나주 회진강 부근에 내려와 살기도 했다. 그에 대해 『숙종실록』에서는 ‘훈척들을 비판하고 청의(淸議)를 주장했으며 품성이 순후(醇厚)했다. 학식이 평실(平實)하고 언의(言議)가 공정함에 있어서는 임영이 으뜸이었다.’고 평했다. 세속의 영화에 마음 쓰지 않고 강직했던 그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 임영은 한 해를 보내는 세밑 즈음에 상대방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진솔하게 토로했다. 편지를 받는 이가 어디에서, 무슨 글을 읽는지 궁금해하며 그가 도달했을 새로운 경지를 상상하고 있다. 그 경지를 듣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고 하면서 부러움과 칭송을 모두 드러냈다. 그리고 새해에도 덕과 학문이 더 나아가고 더 높은 곳에 도달하기를 기원했다.
歲晏馳仰倍切此時不審 1679년 12월 23일에 임영이 쓴 편지. 수신자는 알 수 없다. 현재 나주임씨창계종가에서 소장하고 있다. 글을 받은 상대방이 내게 해준 일에 대한 감사, 그들의 덕행이나 학문, 삶에 대한 격려와 칭송, 새해에는 지난 해보다 더 좋아지고 발전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는 일. 이것이 연말연시에 연하장을 보내는 진심이리라. 기정진이나 임영은 그 마음을 짧지 않은 글에 담았다. ‘근하신년’ ‘송구영신’을 미뤄두고 해 끝과 해 첫머리에 인사말을 보낼 때 쓰는 것이 이른바 연하장이다. 연하장에 쓰여진 글귀는 다양하겠지만 아마도 ‘근하신년(謹賀新年)’이란 말이 가장 많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연하장’을 검색하면 ‘근하신년’ 글자가 박힌 이미지들이 화면에 무수히 출현한다. ‘삼가 새해를 축하한다.’한다는 말인데, ‘조심스럽게 말씀 드립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여 모든 일들이 더 나아지고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라는 정도의 뜻이다. 지금은 많이 쓰이지만 우리 생활 속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겨우 100여년 전 즈음이다. 그 이전에는 ‘아신(迓新)’ ‘전아(餞迓)’ ‘전아다복(餞迓多福)’ ‘축전아납지(祝餞迓納祉)’ 등의 글귀를 썼다. 새해를 맞이하는 것, 지난 해를 보내고 새해 맞이하는 것, 새해 맞아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이다. 물론 이 글자만 써서 보낸 것이 아니고 새해를 맞으며 쓴 편지에서 사용했다. ‘근하신년’이란 네 글자는 쓰지 않았다. ‘근하신년’은 1910년경부터 신문 광고에서 이 글귀가 쓰였고 이후에는 새해마다 광고 글귀로 올랐다. 일본에서 연하장을 보낼 때 쓰던 글귀였다. 일제강점기에 ‘근하신년’이란 글귀가 쓰여진 연하장을 주고 받았고 해방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1957년 12월에 우체국에서 연하엽서를 발행했는데 그때도 ‘근하신년’을 그대로 박았다. 해가 가면서 학, 소나무 등의 그림도 넣었다. 2022년 지금까지도 이 문구는 종이 연하장이나 인터넷에서 오가는 연하장에도 쓰여 있다. 물론 그 사이에 다양한 글귀들도 새로 생겨났지만 이 글귀만큼 오랫동안 쓰인 것은 없을 것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이란 말도 많이 쓰인다. 원래는 ‘송구관영신관(送舊官迎新官)’으로 임기가 끝난 옛 관리는 보내고 새로 부임하는 관리를 맞이한다는 말이다. 이익(李瀷, 1681~1763)은 『성호사설』에서 <송구영신>이란 항목을 따로 설정하고 관리들이 교체할 때의 일에 대해 서술했다. 한편으로 상촌 신흠(申欽, 1566~1628)의 <묘 아랫마을에 도착해서(到墓下村舍)>라는 시에 ‘집집마다 설 술 담근 항아리를 비로소 열고, 새해 맞고 묵은 해 보낸다(家家臘酒初開甕迎得新年送舊年)’라고 한 것을 보면 해 바뀔 때에도 쓰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거의 완전히 새해맞이 인사말이란 의미가 더 크게 되었다. ‘근하신년’ ‘송구영신’은 새해 인사 상투어가 되어 버렸다. 많은 이들이 이런 글귀가 적힌 카드?를 서로 보내고 받는다. 종이로 된 연하장을 사서 보내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연하장 이미지를 검색한다.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내려받아 인사하고 싶은 사람에게 전송한다. 연말이 다가오면 여러 곳에서 인터넷을 통해 전송할 수 있는 연하장을 제공한다. 카카오톡은 연말연시 인사용 카드를 만들어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또 카드 안에 짧막한 글을 입력할 수 있게 만들어 제공한다. 연하장 형태도 다양해졌다. 글자와 이미지는 물론이거니와 음악 넣은 연하장, 동영상 연하장도 있다. 음악이 흐르고 영상이 나오면서 화면 위로 글자들이 흘러 나와 화면을 지나쳐 흘러 사라진다. 받는 이의 시각과 청각을 잠시나마 깨운다. 볼거리와 들을 거리가 있다.
왼쪽: <매일신보> 1924년 1월 1일. 오른쪽:<대한매일신보> 1910년 1월 1일 이미지출처: https://www.nl.go.kr/newspaper/keyword_search.do 이 연하장들은 내려받기, 복사하기, 공유하기, 전달하기 등에 의해 사람들에게 보내진다. 내 마음에 꼭 맞는 이미지가 있는 카드, 내 마음과의 근사치가 가장 높은 글이 적힌 카드, 새해에 대한 희망을 상징하고 그 희망을 상대방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동어린? 동영상 카드 등을 검색한다. 그리고 내려받거나 복사한다. 그 다음에 다시 확인하고 전송한다. 누구에게로부터 받은 카드가 맘에 들면 공유하기나 전달하기로 전송한다. 사람들은 모두 같지 않고 저마다의 개성이 있다. 나와의 관계나 그 의미도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보내지는 연하장은 똑같다. 글귀도 내용도 동일하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그들과 지냈던 시간을 되돌아보고, 그들의 새해에 각각 알맞은 말이 무엇인지 숙고하는 시간은 없어졌다. 대신 검색과 내려받기, 전달하기가 들어섰다. 기정진, 임영이 연초, 연말에 쓴 새해 인사 편지는 내려 받아 전달하는 연하장 배달과는 반대 지점에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도 ‘아신(迓新)’ ‘전아(餞迓)’ ‘전아다복(餞迓多福)’와 같은 낱말을 공통적으로 쓰기는 했다. 하지만 새해 인사 내용은 오직 그 인사를 받는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문에 매진하는 이라면 학문의 발전을, 건강하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건강하기를, 어렵게 살아갔던 사람이라면 새해에는 형편이 좀 나아지기를 기원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정황을 그려보면서 어떤 말이 가장 적합한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 속에서 그와의 정이 두터워지고 이해가 깊어지고 상호 믿음이 견고해질 수 있다. 지금의 시간 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삶의 안도감도 커질 수 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새해 맞이 글귀를 보내기보다, 그 사람과 나 사이에만 알맞은 말을 찾아 보는 일은 어떨까. ‘근하신년’ ‘송구영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등의 상투어 투성인 기성품 연하장을 잠시 밀쳐두고, 대신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나만의 독창적인 연하장을 써보는 일도 좋을 터이다. <도움 받은 글들> 한국고전종합 DB https://db.itkc.or.kr
국립중앙도서관 신문검색 https://www.nl.go.kr/newspaper/keyword_search.do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고문서자료관 http://archive.aks.ac.kr 김병희(2022), 「연하장으로 본 새해 인사의 변화」, 『민속소식』 281,(11월), 국립민속박물관. 연하장으로 본 새해 인사의 변화 | 국립민속박물관 (nfm.go.kr) 글쓴이 김기림 조선대학교 기초교육대학 부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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