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기행] 말은 제주로 보내고, 홍어는 전라도로 보내라 게시기간 : 2022-12-16 07:00부터 2030-12-17 21:21까지 등록일 : 2022-12-14 10:57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맛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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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고기 중에도 간혹 서식지와 소비지에 따라 맛과 가격이 매겨지는 종이 있다. 서대라면 여수로 가야하고, 민어라면 신안으로 가야 한다. 아귀는 마산에 가야 대접을 받고, 고등어는 부산으로 가야 제값을 받는다. 이렇게 지역성과 장소성이 강한 어류를 대표하는 종의 으뜸은 홍어다. 홍어하면 흑산도를 꼽고, 최소한 목포나 영산포 언저리에 머물러야 대접을 받는다. 그렇다고 홍어가 흑산도에서만 잡히는 것은 아니다. 연평도 등 서해5도의 어획량이 만만치 않으며, 울릉도와 동해안에서 잡히는 홍어도 분석결과 흑산도 참홍어와 같은 종임이 밝혀졌다. 찬바람이 불면 홍어는 흑산면 태도 서남쪽 바다로 온다. 산란을 위해서다. 이때 잡은 홍어가 찰지고, 부드럽고 맛이 좋아 으뜸으로 쳤다. 전라도의 홍어 식문화는 인간의 식탐과 홍어 생태습성이 어우러진 음식문화의 전형이다. 지역명이 어명과 궁합을 이루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찰떡궁합이다. 이런 대접을 받는 바닷물고기가 또 있을까.
* 만만하게 홍어 거시기 홍어는 홍어목 가오리과에 속하며 수심이 깊은 저층에서 생활하는 바닷물고기이다. 난생으로 봄에 산란을 하며 서남해 바다와 인천의 서해5도의 수심 80미터 내외의 깊은 곳에 산다. 홍어는 해요어(海鷂魚), 태양어(邰陽魚)라 했고, 『동의보감』에는 홍어라고 했다. 이 외에도 간재미, 홍애, 홍해, 홍에 등으로 불린다. 《자산어보》에는 ‘분어(鱝魚)’라 하고, 속어로 ‘홍어’라 불렀다. ‘분어’는 중국사전에 등장하지만 홍어는 우리만 사용했다. 특히 흑산도에서는 ‘홍애’라고 한다. 홍어류에 속하는 종으로 가오리, 간재미, 참홍어 등이 있다. 흑산홍어는 ‘참홍어’로 주둥이가 튀어나와 뾰족하고 몸은 마름모꼴이다. 가오리는 주둥이 부분이 둥글다. ‘날 따뜻하면 굴비생각, 찬바람 나면 홍애생각’이라 한다. 눈물과 콧물을 쏙 빼놓는 강한 삭힌 맛도 좋고, 붉은빛이 선연한 찰진맛도 좋다. 계절만은 겨울이 좋다. 이때가 맛이 강렬하다. 홍어는 겨울에 수컷 홍어의 두 날개에 돋은 가시로 암놈을 붙잡고 짝짓기를 한다. 《자산어보》에 ‘암놈은 식탐으로 죽고, 수컷은 색욕 때문에 죽었으니, 색욕을 탐하는 자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라고 적었다. 그탓에 종족번식 대신 인간의 밥상에 오르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흑산도 홍어 위판장에 가보면, 경매를 기다리는 홍어는 죄다 뒤집어져 있다. 암컷과 수컷을 가리기 위해서다. 경매에서 암컷이 더 대우를 받는다. 맛이 좋기 때문이다. 암수 구별은 생각보다 쉽다. 수컷은 꼬리 양쪽에 두 개의 생식기가 있지만 암컷은 없다. 그래서 수컷 생식기를 잘라내고 암컷으로 팔기도 했다. ‘만만한 게 홍어 좃’이라는 속어가 나온 배경이다.
*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된 ‘흑산 홍어잡이 어업’ 한때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던 흑산도 홍어잡이는 지자체의 지원과 어족자원 보존노력으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2021년 ‘신안 흑산 홍어잡이 어업’이 국가중요어업유산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이 유산은 신안군 흑산 일대 연근해 어장 6901.4㎢ 지역에서 ‘미끼를 사용하지 않는 주낙을 홍어가 다니는 길목에 설치하여 잡는 어업’이다. 이를 주민들은 ‘걸낙’이라 부른다. 연승어업의 일종으로 긴 줄에 많은 낚시를 매달아 홍어가 서식하는 바다에 투승한 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양승하는 어법이다. 이는 황해도 일대에서 노랑가오리를 잡던 어법으로 어장확대와 분단 등으로 대청도를 거쳐 서해 남쪽으로 홍어잡이가 확산되면서 흑산도에 전해졌다. 홍어는 바다 저층에 생활하기 때문에 어탐기로 식별할 수 없다. 오직 어민의 경험과 감각에 의존한다. 홍어잡이 배 한 척이 놓는 걸낙은 수 백 고리(고리는 45개 낚시를 매단 80매 낚시줄을 담은 그릇)에 이르기에 미끼를 감당할 수도 없고 끼워 넣는 것도 수월치 않다. 옛날에는 다물도, 태도, 흑산도 주변에서 노를 젓는 작은 배를 이용해 미끼를 넣은 주낙으로 잡았다. 그래도 먹고 사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홍어가 잡혔다.
* 조선시대 홍어 주산지는 어딜까 조선중기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을 보면, 홍어 산출지로 황해도(14)와 평안도(14)가 모두 28곳으로 많고, 이어 경상도(17) 지역이다. 반면에 전라도는 부안현과 옥구현과 무장현 등 3곳이 산출지로 기록되어 있다. 『동국여지지』(1656)에 비로소 순천도호부에가 포함되어 있다. 오늘날 흑산도나 목포 등 홍어의 주 소비지를 고려하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당시 황해도와 평안도 등 서해에서 잡힌 홍어는 참홍어로 추정되고, 경상도에서 잡힌 홍어는 가오리일 가능성이 크다. 흑산바다를 세심하게 살핀 『자산어보』는 ‘비늘이 없는 어류(무린류)’의 첫 어종으로 鱝魚를 상세하게 기록했다. 분어는 참홍어를 말한다. 이외에도 간재미인 小鱝과 가오리류인 瘦鲼, 靑鲼, 黑鲼, 黃鲼, 螺鲼, 鷹鲼 등으로 분류하였다. 반면에 진해만을 관찰한 『우해이어보』는 우해이어보는 홍어와 가오리를 같은 것으로 설명했다. 청가오리는 홍어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 길이는 1척 반이며, 넓이는 2장으로 말 한 마리에 실을 수 있다. 등은 짙은 청색이며, 맛이 아주 좋다. 가오리는 방언으로 홍어이다. 䱋之最⼤者 ⾧⼀拓半 廣⼆丈 可駄⼀⾺ 背深⾭⾊ 味極佳 家鰞鯉者 ⽅⾔䱋⿂也 <牛海異魚譜, 靑家鰞鯉.> 조선조에 왕실에서 신하게 선물을 주면서 기록한 문서를 은사문이라 한다. 정조가 퇴임한 좌의정 채제공(1720~1799)에게 큰 홍어 한 마리를 선물한 은사문이 남아 있다. 또 홍어장수 문순득(1777~ 1847)은 1801년 흑산바다에서 홍어를 수집해 유통하는 과정에서 표류해 류큐(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 중국을 거쳐 3년 2개월 동안 각국의 문물을 접하고 조선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의 여정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기도 했다. 홍어는 왕실은 물론 반가와 민가에서 귀하게 여겼던 음식이었다. 지금도 홍어가 많이 잡히는 곳은 인천·경기지역이다. 물론 어획량이 다른 것은 어업조건을 살펴야 한다. 흑산도에서는 참홍어의 어족자원을 보전하는 지속가능한 어업을 위해 크기와 시기와 어법 등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반면에 다른 지역은 이러한 규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최근 흑산도 참홍어와 연평도에서 잡히는 홍어와 심지어는 울릉도 근해에서 포획한 홍어도 같은 유전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물론 같은 홍어라도 서식 환경과 숙성 조건 에 따라 다른 음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식문화다. 조기나 명태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교통이 편리해지고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가격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흑산어장에서만 홍어잡이에 지나친 규제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이다.
* 찬바람이 나야 맛있어 『자산어보』에 홍어는 ‘동지 뒤에야 분어를 비로소 잡기 시작한다. 입춘 전후가 되어 살지고 커져서 맛이 좋다가, 3-4월이 되면 몸통이 야위어져서 맛이 떨어진다’고 했다. 흑산주민들도 10월 넘어 11월에 들어서야 ‘홍애는 찬바람이 나야 물이 안 나고 찰지고 만나’라고 한다. 생물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세포와 세포 사이에는 세포막이 있다. 세포막을 통해 물은 염분농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홍어는 자신의 몸에 염도를 높이는 생존전략을 택했다. 깊은 심해(80m)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이다. 흑산도에서 맛본 싱싱한 홍어회는 심해에 적응하기 위한 요소가 아직 암모니아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영산포에서 맛본 입천장이 벗겨졌다는 강한 숙성된 맛은 홍어 몸속의 요소가 암모니아로 분해된 것이다. 영산포의 홍어맛을 두고 여말선초 홍어잡이 중심이었던 흑산도 사람들이 공도정책으로 나주 영산포로 이주해 생활하면서 만들어진 맛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중선배 시절에 흑산도 홍어잡이는 예리가 아니라 다물도나 심리나 사리 주민들이 중심이었다. 당시에는 홍어를 잡으면 잡히는 대로 어창에 넣어 두었다 가득 차면 영산포나 함평으로 팔러 나갔다. 홍어 맛을 아는 사람들은 어창에서 새어 나오는 홍어 썩는 냄새만 맡고도 마른 침을 삼켰다. 오죽했으면 ‘명주옷 입고도 홍어 칸에 들어가 앉는다’고 했겠는가. 도로와 철길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영산포는 흑산의 섬과 뭍을 연결하는 중심포구였다. 그 포구가 목포로 옮겨진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 일이다. 홍어의 주산지인 흑산바다 태도에서 잡은 홍어가 영산포에 다다르면 독 안에서 썩어 자연발효가 되어 만들어진 음식문화였다. 『자산어보』에 ‘나주와 가까운 고을 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즐겨 먹으니, 보통 사람들과는 기호가 같지 않다’고 했다. 가장 잊지 못한 홍어음식은 흑산도 뒷골목에서 보리가 아니라 시래기를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인 홍어탕이다. 깊은 바다에서 적응해 살기 위한 홍어의 생존법을 남도사람들은 음식문화로 승화시켰다.
글쓴이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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