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기행] 비를 기다리는 것은 농민만 아니다 굴 게시기간 : 2023-01-20 07:00부터 2030-12-17 21:21까지 등록일 : 2023-01-17 16:24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맛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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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비를 기다리는 겨울이 있었던가. 인간만 아니라 온갖 생명들이 다가올 봄을 걱정한다. 가뭄은 뭍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갯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비가 많이 와도 걱정이지만 김 양식이나, 굴 양식이나 가뭄이 심해지면 흉년이 든다. 이런 날씨가 계속된다면 봄이 제철인 조개의 생산량은 물론 시원하고 달짝지근한 맛을 기대하기 어렵다. 당장 갯벌에서 굴을 키우는 양식어민들이 울상이다. 이들에게 겨울 굴 농사가 일 년 농사다. 굴 소비가 제일 많을 설 명절을 앞두고 하늘만 쳐다보는 굴밭 주인의 마음은 모종을 옮겨놓고 비를 기다리는 농민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 청산별곡, 구조개랑 먹고 살으리랏다 굴은 조개류와 함께 가장 오래된 인류의 식량자원이었다. 부산의 영도, 경상도 통영, 전라도 여수, 태안 안면도, 시흥 오이도 등 서해와 남해 연안과 섬 곳곳의 ‘패총’에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굴껍질이 유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조선조에는 공물을 위해 양식했다는 기록도 있다. 지금은 대규모로 양식을 하기도 하지만 갯바위나 뻘밭에서 굴을 채취할 때는 선사시대와 별 차이 없다. <고려도경>에 고려에는 왕공이나 귀인이 아니면 양과 돼지를 먹지 못하며, 가난한 백성들은 해산물을 많이 먹는다고 했다. 해산물 중에서 얻기 쉬운 것이 굴조개라 했다. <청산별곡>에 나오는 ‘ᄂᆞᄆᆞ자기 구조개랑 먹고, 바ᄅᆞ래 살어리랏다’라는 대목의 ‘구조개’는 ‘굴조개’라고 한다. <자산어보>에는 굴을 단단한 껍데기가 있는 개류(介類)의 호류(蠔類)로 분류했다. 호류에는 모려(牡蠣, 굴), 소려(小蠣, 가시굴), 홍려(紅蠣), 석화(石華) 외에 통호(桶蠔, 검은따개비), 오봉호(五峯蠔, 거북손) 등을 포함시켰다. 모두 바위에 부착해 생활하는 바다생물이다. 그리고 모려(牡礪)의 속명은 굴(掘)이며, ‘모양이 일정하지 않는 조각구름 같다. 껍질의 겉은 거칠고 속은 매끄럽다. 색은 눈 같이 희다. 껍질의 하나는 돌에 붙고 다른 하나는 그 위를 덮고 있다. 갯벌에 있는 놈은 붙지 않고 펄 속을 표류해 돌아다닌다. 맛은 달고 좋다. 껍데기는 갈아서 바둑돌을 만든다.’고 했다. 조선시대 식객 허균은 <도문대작>에 ‘동해안에서 나는 굴은 크고 좋은데, 맛은 서해안에서 나는 것보다 못하다’라고 했다.
* 가뭄으로 갯밭도 흉년이다. 근대적인 양식어업은 김과 굴 양식에서 시작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굴이나 김 양식을 했다는 기록은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어민들의 생계용 보다는 왕실에 보내는 공물용이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굴은 원산의 영흥만과 고흥의 해창만이 최적지였다.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맛은 해창만 굴을 더 꼽았던 것 같다.(동아. 1932.1.19.) 당시 굴 양식은 나무 가지를 갯벌에 꽂아 유생을 붙여 양식하는 방법이다. 지금도 고흥의 득량만이나 태안의 일부 지역에서는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굴 양식의 중심은 통영이다. 우리나라 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다음은 전라남도는 여수와 고흥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옛날 화려했던 굴양식의 최적지 해창만은 1960년대 시작된 간척사업으로 농지로 변했다. 대신에 해창만 방조제 밖으로 수하식 굴양식장이 펼쳐져 있다. 굴은 우리나라 모든 연안에서 생산되는 이매패류이다. 굴 산지는 낙동강하구, 광양만, 해창만, 영상강하구 등 기수지역이다. 북한도 함경도 황어포, 영흥만, 평안도 압록강 하구 등 기수지역이 주요 산지였다. 굴 양식사를 보면 초기 해창만과 섬진강 입구에서 돌을 갯벌에 넣어 양식하는 투석식이 발달했다. 이후 경상남도 가덕만과 진교만 부근에서 대규모로 걸대식으로 진화했다. 투석식과 걸대식은 간척과 매립, 연안오염으로 양식장이 크게 감소했다. 이후 더 깊은 바다로 양식장이 옮겨져 부표를 띄우고 줄에 패각을 매달아 양식하는 수하식으로 발전했다. 고흥 해창만 방조제 밖에 있는 오취도에서 만난 어민은 가뭄이 심해 금년 굴 농사는 반타작도 못했다며 설명 절에 맞춰 아껴 놓고 있다고 했다. 통영이나 거제처럼 깊은 바다에서 수하식으로 양식하는 것이 아니라 조차가 서해나 서남해 지역은 강수량이 굴 생산량에 큰 영향을 미친다. 육지에서 유입되는 영양염류를 섭취하며 자라기 때문에 비가 오지않아 ‘육지가 흉년이면 바다도 흉년이다’는 말을 어민들에게 듣는다.
같은 굴이지만 자라는 위치와 환경에 따라 크기와 맛이 다양하다. 여름에도 먹을 수 있다는 개체줄이나 강하구 바다에서 자라는 벚굴은 어른 손바닥 만하다. 반면에 조차가 큰 백령도의 돌에 붙어 자라는 석화는 크기가 손톱만하다.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굴의 크기는 조금씩 커진다. 남도의 알굴은 서해 북쪽과 남해 동쪽의 굴의 중간쯤 된다. 그만큼 쓰임새가 다양하다. 생굴로 먹어도 좋고 젓갈로도 좋다. 굴밥에 넣어도 좋고 굴구이도 좋다. 전남의 굴의 쓰임새가 다양한 것은 갯벌이 많고 중조차라는 해양환경이 만들어낸 특징이기도 하다. 이에 맞춰 일찍부터 굴을 먹는 방식도 독특하고 다양하다. 굴의 껍질을 열어 알굴을 꺼내는 도구를 ‘조새’라고 한다. 조새는 손잡이(몸둥이), 껍질을 벗길 때 사용하는 날카로운 쇠붙이 ‘방아쇠’, 굴을 꺼내는 ‘전지개’로 되어 있는 단순한 어구다. 통영이나 거제처럼 수하식으로 자란 크고 넓적한 굴을 깔 때 작은 칼을 이용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숙련도에 따라 굴을 까는 작업량은 큰 차이를 보인다. 함평만 갯벌에서 본 노인은 내리치고, 열고, 갈고리로 꺼내는 세 번 손놀림으로 알굴을 꺼낸다. 큰 굴은 한번 더 내리치기도 한다. 비슷한 능력을 가진 물새가 검은머리물떼새다. 영어로 굴을 까 먹는 새라는 의미의 ‘오이스터캐쳐(oystercatcher)’라한다. 부리가 조새마냥 튼튼하고 날까롭다. 이 새는 고흥갯벌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굴밭은 대부분 ‘마을어업’으로 이루어지는 어촌 공동어장이다. 이렇게 관리하는 굴밭은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채취해야 한다. 마을에 따라 굴밭을 나누어 개인이 관리하고 있는 어촌도 있다. 갯벌이 공유수면이고 공공자원이지만 개인재산처럼 운영되는 형태다. 어촌의 어촌계에서 공동관리하는 굴밭은 생산량의 일부분을 마을운영 자금으로 사용한다. 나이가 많은 어민들도 겨울철에는 조새하나로 굴밭에서 쏠쏠한 벌이를 한다. 구차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일자리보다 굴을 까는 일이 더 떳떳하다. 마을어업이 어촌복지의 근간이며 사회복지일 수 있다. * 피굴에서 진석화젓까지 주산지답게 굴을 가장 야무지게 먹는 곳이 고흥이다. 일찍부터 굴 양식을 많이 했던 해창만이나 여자만과 득량만은 모두 굴이 자라기 좋은 곳이다. 지금도 굴밭으로 생계를 잇는 어촌이 많다. 싱싱한 굴이 많이 나올 때는 생굴을 채소나 해초와 버무려 먹거나 매생이와 함께 굴국을 끓여 먹었다. 고흥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굴 음식으로는 피굴과 진석화젓을 꼽을 수 있다. 둘 다 음식을 만드는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어머니가 만들어 자식들에게 먹였던 음식이다. 피굴은 알이 실한 굴을 껍질째 깨끗하게 씻어서 삶은 다음 한 알 두 알 껍질을 벗기고 살과 육수를 따로 챙겨 놓는다. 그리고 모아진 육수에 작은 굴껍질이 가라 앉기를 기다렸다가 웃물만 따라낸다. 몇 차례 반복한 후 파, 깨 등 간단한 양념을 더한 후 굴을 넣고 시원하게 먹는다. 마치 겨울철 동치미를 국물과 함께 먹듯이 즐겨 먹는다. 피굴이 제철에 잠깐 만들어 먹는 반찬이라면 진석화젓은 밑반찬으로 두고두고 먹는다. 싱싱한 굴을 천일염과 버무려 두었다가 적당하게 삭아 육수가 많아지면 알굴과 갈라낸다. 그리고 육수를 하루 밤낮을 끓인다. 이때 계속 졸아든 만큼 물을 부어 끓인다. 그리고 식은 다음에 건져 놓은 굴을 넣는다. 이렇게 몇 차례 반복하여 만든 젓갈이 진석화젓이다. 진석화젓은 진상품이었다.
글쓴이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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