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기행] 꿩 대신 닭이 아니다 가리맛조개 게시기간 : 2021-07-07 07:00부터 2030-12-17 21:21까지 등록일 : 2021-07-01 11:34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맛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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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자만 어머니들은 겨울철 참꼬막으로 상했던 마음을 가리맛조개로 달래고 있다. 순천시 별량, 보성군 벌교, 고흥군 남양과 과역을 품은 여자만은 참꼬막 주산지였다. 하지만 몇 년전부터 시나브로 참꼬막이 줄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명절 상에 올릴 꼬막을 채취하기도 힘들다. 대신에 여름철 가리맛조개는 여전히 여자만을 지키며 터주대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 덕에 뻘배를 타고 갯벌을 종횡무진 오가는 어머니들 목소리가 갯바람을 타고 포구까지 이어진다. 가리맛조개는 강 하구 조간대(만조 해안선과 간조 해안선 사이) 펄 갯벌에 서식한다. 가리맛조개는 다 자라면 10㎝에 이른다. 펄갯벌 60여㎝까지 수직으로 구멍을 파고 들어간다. 어민들이 가리맛을 잡기 위해서 힘든 이유다. 해마다 봄 여름에 잡아 탕이나 구이로 먹으며 제철은 7월까지다. 여름철에 바닷물이 빠지면 뻘배를 타고 나가 잡는다. 비슷한 모양을 한 ‘돼지가리맛’이 있다. 가는 모래갯벌에 서식하며 구멍이 큰 것과 작은 것 두 개다. 마치 돼지코처럼 생겼다. 봄에서 가을까지 제철이다. 입수공과 출수공이 가리맛조개에 비해 크고 껍질 밖으로 길게 나온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맛이 가장 좋다. <현산어보를 찾아서>에서는 명칭을 풀면서 가리맛의 ‘맛’을 땅속에 ‘마’로 푼다면 ‘가리’는 물을 의미하므로 땅속에서 자라는 마에서 왔을 것으로 해석했다. 즉 ‘물가에서 캐는 마’라는 의미로 가리맛 혹은 갈맛이라 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흔히 가리맛, 가리맛조개, 대맛, 죽합 등 맛조개류를 이야기할 때 ‘맛이 있어 맛이라 했다고 하는 해석과 다른 접근이다.
* 진흙탕 속에서 난다 <전어지> <난호어명고> <자산어보> 등에 가리맛조개를 ‘정(蟶)’이라 소개했다. <자산어보>에도 정(蟶)을 속명은 마(麻)라고 했다. 그리고 ‘크기는 엄지손가락만 하고, 길이는 0.6-0.7척에 이른다. 껍데기는 무르고 연하며 색은 희다. 맛은 좋다. 갯벌 속에 숨어 있다.’고 했다. 여기에 다산 제자 이청은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정자통>에 민(閩, 지금 중국 푸진성에 거주한 민족) 오(粵) 지역 사람들이 펄 밭 양식하는 곳을 ‘정전(蟶田’이라 한다고 했다. 진장기는 ‘바다 갯벌 속에서 난다. 길이는 0.2-0.3척이고, 크기는 엄지손가락만 하며, 양쪽 머리를 벌린다’라고 했는데 곧 이것이다.
실학자 이긍익의 <연려신기술>별집 제5권 ‘사대전고’에도 중국사신이 ‘정장(蟶腸)’을 찾았다는 내용이 있다. 역시 가리맛류 조개로 추정한다. 조선전기 문신 이승소의 시가와 산문을 엮은 <삼탄집> 제8권에도 ‘정합(蟶蛤)’이 기록되어 있다. 고문헌에 나온 ‘정(蟶)’을 ‘맛조개’와 ‘가리맛조개’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맛조개’는 모래갯벌에서 서식하는 죽합과이며, ‘가리맛조개’는 펄갯벌에 서식하는 작두콩가리맛조개과이다. 모양도 맛조개는 길이가 10㎝ 이상에 폭이 2㎝ 이내로 가는 대나무를 닮았지만, ‘가리맛조개’는 길이는 7~8㎝, 폭은 3㎝로 짧고 뭉툭하다. 이청이 <정자통>을 인용한 ‘정(蟶)’의 ‘길이’나 ‘양쪽 머리’라는 표현으로 보아 가리맛조개에 가깝다. 가리맛은 출수공과 입수공이 하나로 보이지만, 가리맛조개는 출수공과 입수공이 따로 분리되어 마치 양쪽 머리를 벌리는 것처럼 보인다. 결정적으로 손암이나 이청 모두 ‘정(蟶)’은 갯벌 속에 있다고 했다. <자산어보>에서 지적한 것처럼 ‘정(蟶)’은 가리맛조개는 껍질이 무르고 검은색 표면이 잘 벗겨져 흰색이 드러난다. 다만 흑산에서 갯벌이 발달해 가리맛조개가 서식하는 곳을 찾기 어렵다는 점과 길이가 손암과 이청이 각각 다르다. 서유구 <난호어명고>에는 ‘정(蟶)’은 ‘작은 대나무 대롱 같고 살에는 두 개 다리가 있는데 껍데기 밖으로 나와 있다’고 했다. 작은 대나무 대롱 같다는 표현에는 논란이 있지만 ‘두 개 다리’라는 표현은 가리맛보다 가리맛조개나 돼지가리맛에 어울린다. 가리맛조개는 여자만 순천갯벌이나 벌교갯벌, 득량만 보성갯벌처럼 미세한 펄갯벌이 발달한 폐쇄형만에 많이 서식한다. 따라서 흑산도처럼 갯바위해안이나 모래갯벌이 발달한 외해에서는 가리맛조개를 찾기 어렵다. 특히 손암이 말년에 머물렀던 우이도는 모래가 발달해 가리맛이 서식한다. 간척과 매립으로 가리맛조개 주요 서식지가 사라지면서 생산량도 줄었다. 최근에는 수온변화로 자원량이 급감해 전라남도에서는 인공종묘와 이식과정을 거쳐 자원증식을 꾀하고 있다. 같은 갯벌에서 자라는 꼬막은 성패로 자라는데 4, 5년 걸리지만, 가리맛조개는 2, 3년이면 충분해 경쟁력에서도 앞선다.
* 입에 단내가 나야 잡히는 가리맛조개 가리맛조개을 뽑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구멍을 찾는 일이다. 구멍을 보는 눈이 있어야 헛손질이나 헛심을 들이지 않는다. 이어서 뺨이 갯벌에 닿을 정도로 손과 팔과 어깨를 갯벌 속에 집어넣는다. 여름철에는 뺨에 닿는 갯벌 열기가 가마솥에 불을 지필 때 얼굴로 다가오는 열기 못지않다. 그래도 가리맛조개를 뽑으려면 반나절 이상을 한증막 같은 갯밭에 머물러야 한다. 얼려서 가지고 나온 미숫가루와 빵, 우유, 바나나 등으로 끼니를 하지만 기력이 바닥난다. 기진맥진하며 가리맛조개을 뽑고 나도 끝이 아니다. 더 힘든 일이 남았다. 몸무게의 두세 배나 되는 자루를 뻘배에 싣고 몇 킬로미터나 되는 갯벌을 헤치고 나와야 한다. 한 발은 뻘배에 올리고 다른 한 발로 갯벌을 밀쳐야 한다. 뻘배가 오가는 길도 따로 있어서 아무 곳으로나 가서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또 그 길이 마르면 뻘배가 잘 미끄러지지 않고 너무 물이 많아도 힘주어 밀기가 어려우므로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경험이 중요하다. 뻘배 타는 모습을 보면 절로 숙연해지는 이유다. 그래서 이런 펄갯벌에서는 뻘배를 탈 줄 모르면 아예 갯벌에 나갈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가리맛조개를 뻘배에 가득 싣고 직접 한 발로 밀면서 나와야 한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니 기력이 쇠진할 수밖에 없다. 가리맛조개를 잡기 위해 뻘 속에 팔을 몇 번이나 집어넣었을까. 10여 년 전만 해도 100㎏ 잡기도 했지만 요즘은 양이 줄어 50㎏ 정도다. 가리맛조개는 ‘잡는다’고 하지 않고 ‘뽑는다’고 말한다. 뭍에서 보는 것과 달리 펄 속 가리맛은 화살만큼이나 빠르다. 가리맛조개가 서식하는 구멍으로 손이 들어오면 순식간에 팔 길이보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래서 재빨리 손을 넣어 뽑아야 한다. 가리맛조개 1㎏은 큰 것 약 60개에 이른다. 100㎏이며 6천 번, 50㎏이면 3천 번 갯벌에 손과 팔을 넣어야 한다. 조개를 뽑는 것을 실패한 것까지 하면 1만 번에 이를 수도 있다. 허리까지 빠지는 갯벌에서 뻘배 위에 큰 함지박을 싣고, 때로는 직접 타고 이동하면서 가리맛조개를 잡는 일은 극한직업이다. 남도 갯마을 어머니들 여름살이이다. 해녀들이 물속으로 들어가야 갑갑한 마음이 열리듯 갯마을 어머니들은 펄밭에 들어와야 편안하다. 힘듦과 편안함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같은 길, 같은 방향에 있음을 배운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4월부터 7월이 제철이고 구워 먹는 것이 으뜸이다. 불판에 올리고 조가비를 벌린 다음 국물이 완전히 없어지기 전에 먹으면 좋다. 단 가리맛살 가장자리에 붙은 것은 떼어 내고 먹어야 한다. 가리맛을 삶아 채소를 넣고 초무침을 해도 맛있다. 부드러운 가리맛살과 아삭거리는 채소가 잘 어울리고 아이들 입맛에도 맞다. 바지락회무침과 비슷해 남으면 밥과 비벼 먹어도 좋다. 된장국에 넣으면 살이 실해 씹는 맛이 꼭 고기 같다. 해물탕에 넣으면 고급스러운 맛이 난다. 일본에서는 초밥 재료로 이용한다. 다른 조개류와 마찬가지로 가리맛도 해감을 잘 해야 한다. 바닷물을 퍼다 하룻밤 담가 놔도 되고 바지락처럼 소금을 조금 넣은 민물에 담가 놔도 된다. 맛조개보다 통통해 씹는 맛이 좋고 탱탱하며, 육즙이 많아 달콤하다.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마산리, 구룡리, 호동리 그리고 보성군 영등리, 장암리, 대포리 일대 가리맛이 좋다. 이곳 근처 식당에는 제철이 되면 가리맛 구이나 가리맛 된장국을 맛볼 수 있다. 가리맛조개 철이 되면 순천 웃장이나 아랫장, 벌교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글쓴이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연구지원센터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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