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窓] 섬지방의 유일한 매향 기록유산, 암태도 매향비 게시기간 : 2020-05-09 07:00부터 2030-12-17 21:21까지 등록일 : 2020-05-08 10:31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문화재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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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불안 구원의 간절함이 깃든 “매향(埋香)”- 고려말 조선초, 왜구가 창궐하던 시기에 민인은 현실적인 불안을 구원받는 방법으로 “매향(埋香)”을 하면서 발원한다. 그리고 그 “매향”을 한 시기와 장소, 함께한 사람들에 대해서 기록을 한다. 돌을 다듬어 빗돌형태로 세우기도 하지만 선돌 그대로에 울툭불툭 새기기도 한다. 산꼭대기 바위 틈사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곳에 새기기도 한다. “매향비(埋香碑)”이다. 그냥 바위에 새겨 매향명 암각으로도 부른다. 매향(埋香)이란 향나무를 민물과 갯물이 만나는 곳에 묻는 일종의 행사이다. 민간 신앙 공동체에서 내세의 복을 빌기 위한 의례로서 행해졌다. 매침(埋沈)한 향(香)을 매개로 발원자와 하생(下生)한 미륵이 연결되기를 기원한 것이다. 구복적(求福的)인 성격의 미륵신앙과 접합된 매향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매향은 말단 지방사회를 단위로 해서 구현되며, 특히 발원자(發願者)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현실적 위기감을 바탕으로 한 순수한 민간신앙 형태이다. 오래 묻어둔 향나무는 약재나 불교의식용으로 귀하게 사용되었다. 매향의 시기와 장소, 관련 인물들을 기록으로 남긴다. 매향의 장소로서는 산곡수(山谷水)와 해수(海水)가 만나는 지점이 최적지라 구전된다. 그래서인지 섬이나 바닷가에 매향 기록물이 많이 남아 있다. 매향비는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고성 삼일포(1309년), 정주(1335년), 경남 사천(1387년), 충남 해미 등 몇 곳에서만 확인되었다. 그런데 1982년 7월, 신안 암태도 매향비 발견을 계기로 전남지역에서만 영암 서호면 엄길리(보물 1309호), 해남 마산면 맹진리 만대산(전라남도 기념물 제137호), 영광 법성면 입암리(고법성), 영암 미암면 채지리, 장흥군 용산면 덕암리 등에서 연달아 발견되었다. 신안 암태도와 영광 법성, 장흥 덕암리, 영암 채지리 매향비는 전라남도에서 2004년에 문화재로 지정하였다. 예산 효교리, 당진 안국사지 등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되었다. 이들 지역은 대부분 해안지역이고 그 시기도 여말선초로서 왜구의 피해가 극심했던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다. 암태도 매향비는 조선시대 초기 1405년(태종 5)에 세워졌는데 도서 지방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다. 매향의 시기, 장소, 참여자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로 불교문화사, 사회사 등을 알 수 있는 역사적 가치 있다. 암태도는 조선시대에 나주목에 속했다가 1895년에 지도군이 신설되면서 지도군에 속했고 1969년 신설된 신안군에 속하고 있는데 섬으로 형성된 신안군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는 3개의 섬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토사의 퇴적으로 하나의 섬으로 연륙되었다. 돌이 많이 흩어져 있고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 싸여져 있다고 하여 암태도란 유래된 이름이라고 하며 기록상으로 ‘암타도’로도 확인 된다. 암태도 매향비는 1982년 7월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의 도서지방 공동학술조사 과정에서 이해준교수가 발견하였다. 송곡리 주민들이 '비석거리'라 부르는 곳을 탐사하다가 인근 산 동쪽 기슭(송곡리 산185)에 비스듬히 서 있는 것을 확인한 것. 원래는 약간 높은 산릉(山陵)에 있었는데, 수로공사에 사용하기 위해 옮겨졌다고 한다.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석의 편평한 면에 음각되어 있다. 송곡리는 북쪽의 박달산과 북서에서 남동으로 길게 뻗은 산 사이에 자리한 산곡촌(山谷村)이다. 2010년 5월 27일 현위치로 옮겼고 보호각을 건립하였다. 자칫 수로에 묻힐 뻔 했던 것인데 ‘비석거리’라는 화석 지명이 남아 있어 찾게 된 것이다. 이처럼 매향 기록이 있는 언저리에는 항상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글씨바위”, “비석거리”, “장군”, “보물” 따위에 대한 설화이다. 저 글씨를, 비석을 해독하면 무진장한 보물이 있는 곳을 알 수 있다. 장군이 나타나 나라를 구하고 많은 군량미가 있는 곳을 알 수 있다. 아무나 해독하려 했다가 잘못하면 재앙이 닥친다 등등. 간절한 민중의 바람을 담은 것이기에 위기를 해결해 주리라 기대하기도 하지만, 누구든 쉽게 가서는 안되기에 불가침성도 곁들여 전해지고 이어지는 것이다. 암태도 매향비는 바위의 표면을 다듬지 않고 결을 따라 편평하게 떼어낸 듯하다. 좌측 상단이 훼손되어 있다. 음각된 글씨 7행으로 크기는 6cm~11cm이다. 埋香處伴巳島 東岩置南今隱吉 西岩泰島北尾山永 熟飯女二 樂三年四月卄四日埋 釘施主永伊 香万仏香徒 □□香徒等埋香令有如可 □□良慈惠僧夲少□立碑 【해석】 향을 묻은 곳은 반사도다. 동쪽은 암치, 남쪽은 금은길, 서쪽은 암태도, 북쪽은 미산이다. 영락 3년(1405) 4월 24일 향을 묻었다. 만불향도, ▨▨향도 등이 향을 묻었다가 … 비를 세웠다. 음식을 마련한 여인은 둘이고, 정시주는 영이이다. 첫째 줄 '매향처 반사도(埋香處伴巳島)'라 하고 둘째줄부터 "동 암치(東岩置) 서 암태도(西岩泰島) 남 금은길(南今隱吉) 북 미산(北尾山)"으로 매향의 위치와 방위가 나온다. 동쪽은 암치도(岩峙島), 서쪽은 암태도(岩泰島), 남쪽은 팔금면의 거문지(巨文島)마을로 추정된다. 북쪽의 '미산(尾山)'은 동․서․남의 지명처럼 확인되지는 않지만 동서남의 기준지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보인다. 방향으로 보아서는 현재의 박달(朴達山)으로 보인다. 이처럼 매향처와 사방기준지에 이어 매향시기, 주도집단, 매향과 비석을 세운 경위, 참여자, 시주자, 새긴 사람 들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암태도 매향비의 특징은 매향의 주도층으로 '향도(香徒)'가 명시된 점과 '매향처(埋香處)'를 명확하게 기록한 점이다. 향도의 명칭도 만불향도(万仏香徒)인 점도 주목된다. 암태도 매향비는 1405년에 세워진 것으로 1982년에 발견되어 매향비 자체로서의 역사적, 학술적 가치 외에도 매향비 조사연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비의 발견 이후 많은 조사 연구가 있었고, 뒤따라 여러 곳의 매향사례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도서 지방에서는 거의 유일한 사례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처음 발견되었고 섬지방에서는 아직까지 유일하게 확인된 암태도 매향비. 1982년 발견 이후 학계나 문화계에서 소개와 연구가 이어졌고 2004년에 전라남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최근 현지 확인과 탁본문을 다시 살펴 보면서 새로이 판독되었다. “남 금은재(南今隱哉)”로 읽었던 글자를 “남 금은길(南今隱吉)”로 다시 읽게 된 것. “재(哉)”의 “戈” 부분은 암석의 결이 그랬던 것. 처음 조사 당시부터 이미 “거문지(거문질, 거문길)”라는 지명으로 보아 왔었는데 이번에 다시 판독하여 금은길-거문길-거문질-거문지의 지명 상관성까지도 알게 되었다. 또 하나는 “금시주 영이(金施主永伊)”를 “정시주 영이(釘施主永伊)”로 다시 보게 된 것. “金施主”로서는 그 직역에 대해 막연했었는데 새로 “釘施主”로 읽어냄으로서 매향비를 새긴 사람들의 공력을 기록해 놓은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시기 금석문으로 새긴 사람의 직역과 인명을 기록한 자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와 함께 이미 판독된 내용이지만, 숙반녀이(熟飯女二)의 기록도 중요하다. “만불향도”라 불렀던 향촌 공동체의 민간 신앙 결사가 매향의 의례를 할 적에, 그리고 그 기록을 남길 적에 “만불향도”라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마련 해준 시주인. “숙반(熟飯)”이라는 그 직역은 흔한 것, 쉬운 일 같지만 예사로운 일만은 아니다. 공력과 정성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집이나 동네 있는 음식 재료도 모두 동원했을 것이다. 향촌사회 민간 공동체의 모습이리라. 다시 읽게 된 사연은 5월 11일부터 7월 19일까지 국립광주박물관에서 특별기획전으로 열리는 “남도불교 천년의 증언”을 준비(윤여정, 정선종, 김희태)하면서이다. 남도불교문화연구회가 창립 30주년 즈음하여 기증한 탁본전이다. 이 전시의 네번째 마당으로 “민중의 염원을 모아-매향비”로 마련하였다. 신안 암태도 매향비(2020.2.24. 사진 정선종) 암태도 매향비 탁본문(남도불교문화연구회, 2003년 탁본) 암태도 매향비 탁본문(이해준교수, 1982) 글쓴이 김희태 전라남도 문화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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